‘커튼콜’ㆍ‘두뇌공조’ㆍ‘오아시스’ㆍ‘어쩌다 마주친 그대’. 마니아라면 이미 짐작했겠지만, 앞에 이야기한 것들은 지난 8개월 동안 전파를 탄 KBS 2TV 월화드라마다. “뭔가 묵직함 등 오랜만에 일상적 리얼리티가 넘치는 드라마인 듯싶어 본방사수”한 ‘커튼콜’ 이후 마치 습관처럼 지난 8개월 동안 내리KBS 2TV 월화드라마를 봤다.
금방 마치 ‘습관처럼’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딱히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 선택한 KBS 2TV 월화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지면에서도 밝혔듯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상파 방송처럼 없애거나 쉬어가지 않는 KBS 2TV 월화드라마여서다. 이를테면 꾸준히 편성을 이어온 KBS 2TV 월화드라마를 조금이나마 응원하고픈 본방사수인 셈이다.
어쨌거나 송골매의 히트곡 제목과 같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5월 1일 시청률 4.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했다. 딱 한 번 3.8%(5회)로 떨어졌을 뿐 16회 종영까지 4%대를 유지했다. 단, 최종회에서 5.7%로 급상승해 이게 최고 시청률이 되기도 했다. 그럴망정 직전 ‘오아시스’보다 못한 인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만그만한 시청률은 일단 소재 영향이 아닌가 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2021년을 사는 윤해준(김동욱)이 1987년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만난 백윤영(진기주)과 함께 ‘우정리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다. ‘시간여행 스릴러’라 할 수 있는데, 이게 한국 시청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소재라는 것이다.
아무튼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2021년을 사는 윤영이 자살한 엄마의 여고시절인 1987년으로 돌아가 해준을 만나 원팀이 됨으로써 흥미와 함께 궁금증을 자아낸다. 딸이 부모가 결혼하기 전 시절로 돌아가 만나는 시간여행의 기상천외한 발상이라 할까. 스릴러치곤 전개가 늘어져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긴 해도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이 흥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가령 봉봉다방 주인 청아(정신혜)가 해준 엄마이고, 지역 유지 윤병구(김종수) 아들 연우(정재광)가 범인이면서 아버지로 드러나는 게 그렇다. 윤영이 백희섭(이원정)에게 뇌물이라며 기타를 사주는 등 웃음과 함께 보는 재미를 주지만, 그러나 ‘그건 아니지’ 하는 거역감의 정서가 생기는 것이 문제다. 가령 엄마와 아빠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친구 먹는’ 전개가 그렇다.
해준의 경우 한 술 더 뜬다. 그의 아버지 연우가 범인으로 드러난 깜짝 반전이 그런 게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아버지가 아들을 ‘뒤지게’ 패서 죽게한 것으로 드러나서다. 부자 관계인 사실을 모르고 저지른 짓이라 해도 이런 패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해준이 밝혀내 구속된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아버지란 설정도 편하게 볼 서사는 아니다.
시간여행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려한 듯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2021년 현실에서 이미 벌어진 나쁜 일을 아예 없거나 좋은 결과로 바꾸는 시간여행이어서다. 요컨대 자살한 엄마가 시간여행을 통해 작가로 거듭나고, 호화로운 집에서 아빠와 금슬좋게 지내는 결말이 썩 흐뭇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무릇 인생의 엄중함이 마치 한바탕 희롱당한 듯해서다.
물론 살인사건 추적과정에서 드러난 희섭 부모와 큰형이 1980년 광주민중항쟁때 죽음을 당한 사실은 보는 이들을 아연 숙연케 하는 힘이 있다. 간신히 작은형 유섭(홍승안)과 함께 살아남은 희섭이 기관원들에게 끌려가 몽둥이 찜질에 물고문까지 당한다. 그러니까 2021년 다릴 절뚝이는 희섭의 전사(前史)를 보여줌으로써 윤영의 아빠와 큰아빠 이해에 성큼 다가간 것이다.
시간여행을 통한 판타지 스릴러에 그런 시대상황속 개인적 아픔이 드러난 건 의외라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2회부터 14회까지 시작 전 ‘지난 이야기’를 계속 보여주었다. 시간여행을 통한 판타지 스릴러가 그만큼 난해한 이야기라는 방증이 아닐까 싶은데, 거기서 묘사된 광주민중항쟁 피해자로서의 삶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여행의 판타지라곤 해도 의아한 게 있다. 가령 1987년엔 고교생들이 제과점이 아니라 예사로 다방을 드나들었는지 의문이다. ‘헐’이라든가 ‘됐고’ 같은 말들이 1987년에 쓰인 것인지도 마찬가지다. 여고생 작가의 ‘작은 문’이 장편소설이 아니라 ‘고미숙 단편집’인 것도 의아하다. 통상 단편소설집이 그렇듯 화제는커녕 출간된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해서다.
완급 조절상 그리 한 것인지 몰라도 나로선 12회부터 나오기 시작한 해준과 윤영 사이의 연애모드는 좀 아니지 싶다. 막판에 해준의 아들이 나타나는 걸 보고 ‘그래서였구나’ 이해하긴 했지만, 내내 몰입하던 드라마 보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스릴러로서 나름 팽팽하게 이어오던 긴장감이랄까, 뭔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가장 아쉬운 건 이른바 묻지마 범죄도 아닌 연우의 연쇄살인에 대한 어떤 필연성이 좀 약하게 그려진 점이다. 어린 시절 책을 읽느라 자신에게 무관심하던 엄마가 집을 떠나며 버리기까지 한 것이 연쇄살인의 심리적 배경으로 나온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3명이나 연달아 죽인 극악한 범죄의 그런 동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플랭카드’(‘플래카드’가 맞는 표기다.)라도 크게 걸고”(11회)라든가 16회에서 윤영이 떠난다고 말해놓고 만난 것이니 이순애(서지혜)의 어떻게 된 거냐는 물음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없어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는 배우도 “한 34년쯤 뒤에 우리집에서 만날 것”이라고 하는 윤영에게 울먹이며 “다시는 못볼 거라고 하지”라 말하는 표정 연기의순애 역 서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