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랜 침묵속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이쯤에서 논리적으로 정리를 해야 하겠기에
넷티즌들께 고합니다.
먼저 용어정리를 드리자면,,
[실미도 684부대]을 어떤 의미에서 [북파공작대]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당시 공군첩보대 OSI는 고유의 업무가 별도로 있었으며,
실미도 684부대는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려는 [특수테러/기습타격돌격조]같은
성격의 부대였습니다.
당시 육군북파공작대는 HID[설악개발단]/해군북파공작대UDU[만포개발단]은
은밀히 운용대어 오고 있었습니다.
1968년 1월21일 청와대 습격사건이후
UDU/HID/OSI 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활발히 대북공작을 하였습니다.
한달에도 수차례 OO공작을 수행하였습니다.
당시에도 그러하였으며,,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UDU/HID/OSI부대의 자원들은 모두 선량하고 애국심이 뛰어난
대한민국 건장한 건아들 중에서 엄선에 엄선하여 물색하였습니다.
그 물색과정에서 순진한 청년들에게 언질한 내용들이
한편의 사기극이요,고의적으로 법적근거없이 자행된 일종의 범죄행위로
요즈음에 문제되고 있으며,,혹독한 훈련과정이 인권의 사각지대 였으며,
훈련이나 교육도중 부상자 발생시 부적절한 대처로
장애자와 인명손상이 많았던 과오들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시 실미도로 갑시다.
부대구성요소를 보면, 기간병으로 나오는 분들이
바로 공첩OSI소속부대원 교관나리들이고,
훈련병(설경구/임원희/정재영/강신일)등입니다.
31명모두 사형수나 죄소자들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 절반정도는 순진한 시골청년들도 있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아뭏든 그 31명은 구두계약이라도
사면복권과 임무완수후에는 새로운 신분전환을 약속받고
실미도에 입소했다는 점과 혹독한 훈련과정을 격었다는 것이
다른 북파공작대와 비슷합니다.
해방이후 국가는 북파공작요원들을 1만 3천 여명 운용하여 왔으며,
그 중에서 7,800여명이 공작중 전사하거나 피포(임무수행중 적에게 체포)/
피살(임무수행중 적에게 사살)/200여 명이
행불(임무수행중 그 생사가 불명하고 존재여부가 미확인된 상태)상태이고,
생존 공작원들은 4,400명 있으며, 나머지는 자연사망 하시거나 행정자치부 전산이나
현 상태에서 연락불능상태입니다.
1만3,000 여 명중에서 사형수나 죄수신분의 분들을 공작원이나
첩보원이나 실미도처럼 테러요원으로 활용한 인원은 전체의 1%도 아니되는데
마치 모든 북파공작원들이 1%의 그런 신분의 출신으로 호도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습니다.
자아..봅시다.
교관과 훈련병..
사부와 생도들..
그런데,,,기간병 18명은 군인으로서 근무중 순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서
국가유공자가 되었고,,그 유가족은 그 분들의 죽음에 슬퍼합니다.
생존하신 분들은 살아있는 죄로 먼저간 동료기간병들에게 추모하고,
훈련병[생도]들의 죽음에도 애도합니다.
기간병 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살아계십니다.
허준호 배우역활의 조중사가 소대장으로 살아계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피해자다.
우리는 명령을 수행했었던 군인이었다 라고 떳떳하게,,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물론 친동생같거나 한민족으로서 인간적인 동정심이나 동포애도 있었겠지요.
31명의 후손이나 유가족중에서 정권을 잡고,,당시의 사실을 재조명하고
5.18유공자법 처럼 특별법이라도 만들면 그렇게 똑 같이 말할수 있을까요?
31명의 요원들은 이름없이 그렇게 공비나 폭도나 질나쁜 사람들로 매도당하며
지금까지 3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31명의 가족들은 아들이나,형이나,오빠나,동생들을 찾아서
전국 방방 곳곳을 헤매였고,,
돈도 떨어지고,,병 들고,, 온 집안이 풍지박살 나고,,
그 소중한 가족을 가슴속 깊은 곳에 묻고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오고 계십니다.
그 31명의 가족들이,,
바로 북파공작원 1만3,000 여명의 가족들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분들이 영화을 보면서,,,영화을 보고 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31명의 이야기는 바로 1만3천명의 북파공작원들의
슬픈이야기 중의 십분의 일 정도입니다.
요즈음 유행어 처럼 북파공작원들을 ,,,
31명의 실미도 훈련병아니 실전배치 되었기에
기습돌격조 31명의 숭고한분들을 두번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 하시길 바랍니다.
얼마전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옆 공터에서
다음카페 실미도 동호회 회원들이 [위령제]를 한다기에
참석하였습니다.
기간병 출신 분들이 앞에 나서서 인텨뷰하고 좀 언잖게 하시기에
분명코 경고하였습니다.
31명의 영령 앞에 참회의 잔을 따르시고,,앞으로는 앞장서서 나서지 말고
조용히 침묵하시길 권고하였습니다.
마침 생존 기간병 한분은 참아 대중들 앞에 나서지 못하시고
화장실에서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참모습도 보았습니다.
기관병을 영웅처럼 몰고 가는 시나리오 형태와 영화에 전반적인 그림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며,, 추후 재발방지 약속도 받았습니다.
어떤의미에서 기관병들은 군인으로서 임무에 충실하다가 순직한것이고도
여겨지지만 ,피해자격인 31명의 훈련병입장이나,
그 유가족들측면에서 보면은 혹독한 훈련을 빙자한 교관나리들의
잔인한 훈련방법과 부상자 사후관리는 비난 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부대해체 방법을 전원 사살이라는 방법으로 설정했다는 것..
훈련병들이 그 처럼 무장봉기하도록 방치하고 적절한 대처를 못했던
정치인들과 고급지휘관들의 책임이 막중하며,,그 책임을 이제 국가가 져야 하며,
그 사후보상은 국민적인 부담인 세금에서 분담해야 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분단조국에서 불가피하게 있었던 일로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특수임무수행자 보상법에 실미도 요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그게 유가족들에게는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만,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고
선진조국으로 나아 가기위해서는
모두가 한 번은 격어야 할 [홍역]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왠지 외투 깃을 세우고
쓸쓸히 걸어가는 노인네의 모습이
31명의 유가족 처럼보이고,
1만3,000여 명의 북파공작대 가족들 처럼 보이는
쓸쓸한 대보름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