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가 직접 한 말이 거의 인용되어있지 않은데도 매닉스 특히 리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사라고 생각해서 번역해봤습니다. 사이먼 프라이스가 매닉스 초기부터 시작해서 리치 그리고 나머지 밴드와 친했던 사람인 것도 맞구요. 아무래도 pre-1995 매닉스의 팬이자 리치의 친구 관점에서 매우 감정적이고 시니컬하게 쓰여진 느낌이 드는 게 흥미롭네요.. 틀린 부분이 꽤 많을 것 같은데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그냥 괄호는 필자가 쓴 내용이고 * 붙은 내용만 제가 덧붙인 내용입니다.
매닉스의 귀환
멜로디메이커, 1996년 1월 13일
지난 12월 29일,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리치 에드워즈가 사라진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이 기사에서 사이먼 프라이스는 자신에게 있어 매닉스가 그에게 있어 90년대 초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였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웸블리에서 만난 팬들과 밴드의 귀환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버렛 트루(*음악잡지 기자)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 감정적인 컴백 공연을 리뷰했다(*이건 나와있지 않네요. 사이먼 프라이스가 쓴 게 다 입니다).
생존은 슬픔처럼 자연스러운 것
나는 아직도 리치가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걱정과 동정심이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렇다고 내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난 멍청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난 11개월 동안의 루머와 그 루머에 반대되는 또 다른 루머들을 겪고 나니 그냥 직감이 생긴 거다.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가끔 내가 뭔가를 알고있을 거라 확신하는 매닉스 팬들을 만나곤 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그런 거 모른다.) 사실을 부정하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티븐 모리 경정의 부정적인 결론에도 불구하고 내가 들은 증거들을 토대로 했을 때 - 그의 여권이 분실되었다는 점, 그의 계좌에서 2800파운드가 인출되었다는 점, 그리고 믿을만한 목격담들(엘비스나 짐 모리슨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불쌍한 미친놈들의 목격담을 말하는 게 아니다) - 나는 리치의 죽음이 분명해지기 전까지 그것은 아주 최소한으로 작은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 이제 당신은 내가 왜 리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현재 시제를 사용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혁명! 혁명! 혁명!
내가 리치를 처음 만난 건 1991년 봄, 만체스터 보드워크의 백스테이지에서였다. 나는 곧바로 그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반해버렸다. 나 뿐만 아니라 그 근처에 살던 여자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별로 화려하지 않은 루숌의 한 B&B의 바에서 나는 리치가 그의 새로운 "친구들"에게 정치와 팝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몇시간 동안이나 애쓰는 걸 보았다. 그러나 결국 리치는 항복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주기 위해 윗층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세 번째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싱글 "Motown Junk"는 헤븐리 레코드에서 발매되자마자 내 턴테이블에 며칠 동안이나 머물렀다. 오프닝의 Public Enemy 샘플링 - "혁명! 혁명! 혁명!"이라고 외치는 부분 - 에서 점점 느려지는 엔딩까지, 그 노래는 마약 연기와 작고 부드러운 구름들 사이에 마그네슘의 흰색처럼 하얗게 타오르는 아드레날린이었고, 죽은 듯이 잠을 자던 팝 계에 울려퍼진 자명종과 같았다. 매닉스의 라이브는 고음으로 울어대는 기타와 펄쩍펄쩍 뛰어대는 점프의 생생한 폭동이었다. "아이라이너와 스프레이 페인트의 난장판". 매닉스는 스스로 자신들의 리뷰를 썼고 자신들의 계획을 말했다. 그것은 안주하려는 혼수상태에 빠진 세대에게 정말로 도발적인 전기충격요법을 준 거였다. 무엇보다도 매닉스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매닉스는 내가 싫어하는 것(시끄러운 락 음악)을 사랑하게끔 만들었고 내가 믿지 않은 것을 믿도록 만들었다. 그 때문에 매닉스는 곧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매닉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다. 당시에 이것은 그다지 세련된 시각이 아니었다. 나는 "Generation Terrorists"에 긍정적인 리뷰를 주었다는 이유로 당시 에디터에게 반농담이었지만 잘라버리겠다는 위협을 들었다. 매닉스는 괜찮은 카피 밴드 정도로만 생각되었고 - 커버에 몇 번 실어주고, 인터뷰 몇 번 하고, 좀 놀려주다보면 슬슬 사라지겠지 -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라치면 온동네에서 비웃음을 사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만화같은 호피와 립스틱 이미지의 니키 와이어와 리치 에드워즈 - 화려한 쌍둥이(The Glamour Twins) - 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들을 구분하는 데에 꽤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니키 와이어는 히죽히죽 웃는 체셔 고양이의 이를 드러내고 웃는 미소를 하고서 악의를 담은 말을 찍찍 내뱉는 허무주의적인 썅년(*superbitch)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리치는 둘 중에서 좀 더 사색적인 우울함을 담당하는 쪽으로 명성을 쌓아갔다. 리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린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요. 이미 다 잃어버린 걸 아니까요."
YOU... LOVE... US...
차트 40위권에 든 14장의 싱글, 점점 발전을 이룬 3장의 음반, 4REAL 사건과 마이클 스타이프 등등의 엄청난 충격과 스캔들 이후, 매닉스는 더이상 웃음거리가 아니었다. 음반 판매량, 차트 순위, 공연 티켓 판매량과 같은 것들을 넘어선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매닉스는 Oasis같은 (Guns N' Roses의 팝-메탈 리프와 The Fall의 말도 안되는 가사의 짬뽕인) 공룡밴드가 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매닉스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스미스 이후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밴드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닉스는 - 단순한 욕망 그 이상으로 - 소녀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니키와 (특히) 리치는 여성화된 남자들이었고 ("나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아"*Life Becoming A Landslide 중), 매닉스의 여성에 대한 노래는 가끔은 서툴기도 했지만 ("Little Baby Nothing") 가끔은여성에 대한 굉장한 이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4st 7lbs"). 리치의 솔레이너스와 플라스(* 발레리 솔레이너스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이자 SCUM Manifesto의 작가, 실비아 플라스는 The Bell Jar를 쓴 소설가이자 시인)에 대한 집착, 비쩍 마른 수퍼모델에 대한 성적이지 않은 집착, 그리고 그의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단 많겠지만 남자에게 있어서는 드문 편인) 거식증까지, 모든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비남성적인 특징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혁명적이었고, 우리들의 너바나였으며, 분명 1990년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였던 것이다.
1994년 여름, 우울한 사건들이 (매닉스의 멘토이자 매니저였던 필립 홀의 죽음과 오래된 대학 친구의 자살 등) 계속되고 나자, 리치의 자학은 극적으로 심해졌다. 글라스토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난 지 얼마 안되어 리치의 부모는 이틀 동안 엄청난 자해를 시도한 상태의 리치를 카디프 부둣가의 아파트에서 발견했다. 이것은 곧 자살 시도로 해석되었다. 곧 리치는 근방의 윗처치 병원으로 옮겨졌고, 리치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비유해서 이야기했다 (전두엽절제술은 프로작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리치는 로햄튼의 프라이어리 정신병원으로 다시 옮겨졌고 거기에서 알콜중독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밴드는 남은 페스티벌 일정 - T In The Park와 Reading 페스티벌 - 을 3인조로서 계속해 나갔다. "마치 배신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 니키는 그 공연들은 리치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 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매닉스의 세번째 앨범이 나왔다. "The Holy Bible"은 어쩔 수 없이 리치의 앨범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물론 리치가 가사의 70%를 쓰기도 했다). 이 앨범은 매닉스의 "In Utero"이다(*너바나가 이 앨범을 내고 투어하는 도중에 커트 코베인이 사망). 각각의 수록곡은 엄청나게 압축된 이미지들 - 죽어가는 20세기의 가장 수치스러운 구석을 둘러보는 끔찍하고 참혹한 여행 (독재, 매춘, 거식증, 자살, 종족학살)과 e e cummings가 "manunkind"라고 불렀던 자비없는 최후의 날의 심판 - 을 가운데에 놓고 공전하는 난쟁이별들과도 같다. "We all are of walking aborting...") 곧 - 아마도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 회복한 리치는 다시 밴드에 합류하여 테라피?와 스웨이드를 서포트하는 부담없는 두 번의 유럽 투어에 나섰다.
굴복하는 건 너무 쉽지
내가 리치를 마지막으로 본 건 파리의 어두운 투어 버스 구석에서였다. 거기서 난 영국 잡지에서는 마지막으로 그를 인터뷰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리치가 아주 무심한 태도를 하고 의사로서 또 환자로서 스스로의 병세를 분석하는 능력이었다. (최근에 나는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테이프를 틀어보다가 그 인터뷰를 발견했는데, 리치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웃고 농담하는 걸 듣고 굉장히 놀랐다). 이렇게 프리즘과 같이 밝았던 점이 바로 리치가 "미쳤다"는 것을 내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히려 리치는 이렇게 야만적이고 무감각한 세상에 비해서 너무도 민감하고 똑똑했던 거다. 하지만 우리는 리치를 희생자로 생각해선 안된다.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했던 리치의 갈망이 그를 몰락과 (빨간 불이 켜진 방콕 도로에서 리치의 미친 짓을 상기해 보라) 순수함 (리치의 거식증과 엄격함)의 극단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리치의 죽은 동공은 라킨의 오래된 인간 혐오와 촘스키의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세상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리치가 자신을 향해 꺼내 든 면도날은 나머지 인류 전체를 향한 오컴의 날이었다. 내가 이전에도 한 번 쓴 것처럼, 영안실은 이 세상에 있기에 너무나 세심했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리치를 구별해주는 것은 리치가 그 공포를 말로 표현해내는 능력이었다.
12월에 매닉스는 매닉스는 런던 아스토리아에서 3번의 공연을 했는데 감정적으로 소모적이면서도 아주 웃기는 경험이었다. 코미디는 내가 - 아마 나 혼자서만 - 매닉스에게는 절대 갖다붙이지 않는 특징이었다. 마지막 밤,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제임스는 산타 모자를 쓰고 왬의 Last Christmas를 불렀고 리치는 산산조각 난 자신의 기타로 자기 머리를 때리다가 기분나쁠 정도로 고요한 미소를 띠고 션의 드럼킷으로 뛰어들었다. 그 모든 것에는 마지막이라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공연에서 매닉스가 The Holy Bible과 이전의 히트 싱글들 이외에도 오랫동안 잊혀졌었던 헤븐리 시절의 비사이드 곡을 연주했던 것은 왠지 조짐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니키는 예전에 부수곤 했던 싸구려 악기들이 아니라 정말로 비싼 악기들을 부셔댔다.
그 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일본 잡지 Music Life는 리치의 집을 방문했다. 그 때 리치는 머리를 빡빡 깎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채 (어쩌면 우연이었겠지만) 커트 코베인이 죽었을 때 신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검은색 스웨이드 컨버스를 신고 있었다. 그것은 리치가 그 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공책의 대부분을 강물에 집어던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허영의 (마지막) 불꽃(*"허영의 불꽃", "Bonfire Of The Vanities"는 죄악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화형시키는 의식).
고독, 고독, 11번째 계명(*성경은 십계명이죠)
2월 2일 아침, 매닉스의 홍보 담당인 질리언 포터가 나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그 전날 리치가 런던의 엠버시 호텔에서 오전 7시에 사라졌다며 매닉스의 매니지먼트사인 Hall Or Nothing과 런던 경찰로부터의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리치가 이런 일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질리언이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 개인적으로 나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는 점, 그리고 경찰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이 일이 심각하다는 걸 의미했다. 잠깐 동안 언론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 고급 잡지의 "절망의 문화"니 어쩌니 하는 기사에서부터 타블로이드 잡지들이 외쳐댄 "락스타 리치의 슬래셔 컬트"에 이르기까지 - 은 전부 다 본말이 전도되고 닭보다 알이 먼저인 방향으로만 나아갔으며 전혀 포인트를 짚어내지 못했다. 리치는 이전에도 컴파스로 자해를 했고 카디프 대학에 다닐 때부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셔댔지만, 언론들의 뻔한 분석은 다음과 같았다: 락스타가 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다. 더 나쁜 것은 그 언론들이 소녀부대들이 갑자기 리치를 따라 자기들의 팔을 긋기 시작했다는 걸 믿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주 일부분에 한해서만 사실이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소녀들이 이미 몇 년 동안 자해를 해 왔지만 리치와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낼 용기를 얻게 된 것 뿐이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리치의 차는 세번 다리 근처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냥 단순한 자살보다도 더 끔찍한 것일 거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의 그 신경을 갉아먹는 불확실성 말이다. 하루도 (그 생각을 하지 않고는) 흘러가지 않았다...
자살을 지켜보는 사람들...
요즘은 니키를 거의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장거리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제임스는 런던 사람 대부분이 증언할 수 있듯이 우주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들 중 하나다. 조용한 꼬마 션을 만날 때면 나는 항상 그에게서 OK 사인을 받아내곤 했다. 리치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만났다. 나는 언제까지나 리치가 카디프와 패딩턴을 오가는 기차나 어떤 호텔에 있는 모습 또는 한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돌아다니며 내 담배를 슬쩍 하고는 내게 잭 다니엘을 한 잔 부어주며 펄 잼이라든가 웨일즈 축구의 상황에 대해 떠들어대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내 "잃어버린 친구"에 대해 연극적인 눈물을 쏟아내진 않겠다. 리치는 쉽게 친구를 만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을 하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 나와 거의 같은 나이인 (우리 둘은 2달 20마일 간격으로 태어났다) 사람을 신성화하는 것이 조금 바보같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 나와 리치의 관계는 팬과 영웅 사이의 무비판적인 숭배와도 같았다. 내 집에 걸려있는 유일한 사진은 리치의 것이다.
지성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 내가 차별을 두는 유일한 기준이고, 리치 에드워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리치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 대단히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리치는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겸손 - 자기혐오를 약하게 부르는 단어일지도 - 이 제 2의 천성과도 같았던 사람인 리치가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실은 궁극의 모순이다. 내가 왜 리치와 동질감을 느끼는 지는 모르겠다(고결한 야만인과 교육받은 노동자가 비슷한 시기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피상적인 이유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난 우울증을 겪어본 적도 없고, 염색을 하거나 귀를 뚫는 것 이상으로 나 스스로를 다치게 한 적도 없다. 언제 술을 그만 마셔야 하는 지도 알았고 거식증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우울했던 적은 있다. 무척 우울했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다. 언제나 직접적으로 확인 가능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리치는 흔한 조울증에 걸린 것도, 외부적 요인에 관계 없이 먹구름처럼 가라앉는 반쯤 신체적인 병에 걸렸던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저 우리 모두가 걸리곤 하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우울증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리치는 모든것에서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퇴원 이후) "리치의 신성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성령화를 넘어선 단계의 우상 숭배를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에게 리치는 낙인찍힌 순교자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렸다". 리치 컬트(the Cult Of Richey, COR)에는 분명 병적인 관음증의 요소가 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자살을 목격하는 사람들이(될 것이)고 4REAL의 인생을 대리로 누군가 살아주는 것에 만족하는 위선자들이야, 우리가 듣고싶어하는 것 같은 그 훌륭한 곡들을 쓸 수 있을 정도까지만 망가져, 하지만 우리한테서 너무 멀어질 정도로 망가지면 안돼. 이것이 우리 중 일부분이 (웸블리에서 만난 팬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다.
1995년 12월 29일 웸블리
약에 중독된 것처럼 입 벌린 관중들 바깥으로 서로를 지나쳐서 걸어가다
내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를 29번째로 본 것은 개새끼들이 넘쳐나는 헛간에서였다(*웸블리). 그 해 가을, 매닉스가 만체스터 출신의 인기있는 레드 제플린 트리뷰트 밴드(*스톤로지즈)를 12월 29일 웸블리에서 서포트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전에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리치가 정말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 오면 우린 더이상 밴드를 계속 하지 않을거야." 이 행보는 남은 매닉스 멤버들이 리치가 살아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웸블리 공연을 하는 거라는 아주 믿고싶은 이론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그러니까.. 리치는 살아있을 거라는 거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연히도 이 절대 이기적이지 않은 시점은 리치가 앞으로 다시는 밴드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되겠다). 내 나름대로 매닉스의 컴백에 대한 의구심도 가졌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들이 컴백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컴백이 결국은 존나 용기있는 행동인 것도 맞다. 하지만 돌이켜 볼 때 매닉스는 그렇게 컴백해서는 안되는 거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로부터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일 게 분명했으므로 매닉스의 컴백은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는 감정적인 것이어야만 했다.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로만 이루어진 약 2천명 가량의 사람들만 있었어야 했다. 아디다스와 배기팬츠를 입고 다 똑같이 생겨서는 북쪽 사투리로 외쳐대며 헤드라이너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 역시 감정적으로 동요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다. 매닉스는 엄숙하게 무대로 걸어나와 할 일을 한 다음 다시 걸어나갔다. 제임스는 가슴이 보이는 흰색 티 셔츠를, 니키는 아이스 하키팀 카디프 데블스의 셔츠를, 션은 늘 입던 보스니아 용병 군복을 입고 있었다. 니키가 공연 시작을 알리는 것 외에는 화장도, 슬로건도, 수다스러운 선언들도 없었다. 그냥 매닉스와 그 음악 뿐이었다(당연하게도). 이렇게 큰 무대에서 리치가 늘 서던 오른쪽을 비워놓기로 한 제임스의 결정은 결국 무대 중앙을 향한 거대한 심연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만약 새로운 매닉스가 예전과 비슷해지려고 했다면 니키는 리치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그 얼굴, 그 입, 그 정신까지. 그러나 요즘의 니키는 선동가를 하기보단 궨트의 집에서 은둔하는 것에 더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본인 결정이지만..).
셋리스트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새로운 곡을 선보이기도 했고, 대중적인 아레나 관객들이 인식할법한 유명한 싱글들도 있었다("Motorcycle Emptiness"는 주유소에서 파는 드라이브용 컴필레이션 씨디의 Chris Rea와 Dire Straits의 노래 사이에 껴있다). 그러나 "두번째 서포팅 밴드"만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들 같은 사람들은 그 셋리스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섯 개의 신곡들 - "Elvis Impersonator", "Deisgn For Life", "Enola Alone", "Austrailia", "Everything Must Go" - 은 모두 믿을 수 없을만큼 가슴아픈 노래들이었고(그러지 않기도 힘들었을 거다) "The Holy Bible"의 고딕적인 격렬함에서 벗어나 "Gold Against The Soul"의 멜로딕함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 매닉스에게 있어서 늘 문제였던 부분이다(현재 매닉스는 가사 중에서 어느 부분이 리치의 것이고 어느 부분이 브래드필드/와이어/무어가 새롭게 쓴 것인지 밝히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91년 당시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공격적인 You Love Us를 96년에 듣는 것은 잘 봐주면 시대착오적이고 공허한 것이고, 아니면 역겨운 모타운 쓰레기에 다름아닌 것이었다(재결합한 비틀즈가 "에드워즈가 뒈졌을 때 난 웃었지"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쓸 것 같은가?). "Roses In The Hospital"은 사실 노래라기보다도 남처럼 생경해진 이 밴드가 비뚤어진 공동체의식을 갖고 데이빗 보위의 "Sound And Vision"을 "Radio Ga Ga"의 박수소리를 더해 편곡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한 부분은 가장 최근작이고 가장 훌륭한 앨범이자 리치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앨범인 "The Holy Bible"의 곡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화관이 얹혀진 기타가 무대 오른쪽에 놓여있다거나 "리치 에드워즈, 1967-?"이라고 써있는 흑백사진이 걸려있다거나 "리치 너를 위한 곡이야!"라든지 프레디 머큐리 추모식같은 광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상황을 인정하기를 완전히 거부하는 모습은 매우 불편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미래에 대한 공포?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진 말아주길. 매닉스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걸 잘 안다). 웸블리에 모였던 팬들 대부분은 매닉스가 앞으로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데에 절대적인 확신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다른 의견을 가진 팬들도 있었다(더 많은 수의 팬들이 원칙적으로는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있다). 어떻든간에 매닉스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다. 제임스의 뿌리깊은 근면함이 그걸 가리킨다. 게다가 제임스와 니키, 션이 음악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거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Condemned to Rock 'n' Roll"...?). 그러나 한 명의 팬으로서 "걔들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 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결과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2월 나는 깔끔하고 단정한 결말을 바랐다. 리치의 유산으로 남은 4트랙짜리 EP를 녹음하고, 리치가 사라진 그 날짜에 발매한 다음, 공연 따위는 없이 품위있게 그대로 인사하고 떠나가는 것. 최악의 시나리오는 믹 존스가 떠나고 남은 불쌍한 쩌리들끼리 1~2년 동안 절뚝거리던 클래쉬처럼 상처입은 절름발이 동물이 되는 쪽이거나 시드 비셔스가 죽고난 이후의 섹스 피스톨즈처럼 웃음거리가 되거나 하는 쪽일 것이다. 양쪽 다 가능성이 적다. 그나마 나은 것은 Therapy?나 망할 Foo Fighters처럼 어느 정도 인기있는 인디 삼인조로서 계속해나가는 것일 거다. 결국 해체할 때 쯤엔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귀에 착착 달라붙는 멜로딕한 노래 위주로 무장한 채 이전보다 훨씬 큰 밴드가 되고 조용하게 예전의 헌신적인 팬들을 잃어가면서 자신들의 영혼을 돈에 팔아넘길 수도 있다(만약 매닉스가 아직도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개새끼들로 가득찬 헛간(*웸블리)은 연습장소로 썩 나쁘지 않겠다). 가능한 얘기다. 어떤 의미에서 이 마지막 두 가능성은 늘 있어왔던 위선과 패배주의에 잘 들어맞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뭐라고 매닉스를 비난하든 그들은 니키 와이어가 어깨를 들썩이고 씩 웃은 다음 "우리는 창녀/거짓말쟁이/(빈 칸에 아무 말이나 넣으시오)라고 늘 말해왔잖아."라고 말하며 그 비난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좀 더 긍정적인 본보기라면 조이 디비전의 잔재에서 뉴 오더가 만들어져서 이전보다 더욱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낸 예가 있다. 여기서 비슷한 부분은 그냥 보이는 수준을 넘어선다: 리치가 없이 매닉스는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온 작사가가 함께하는 여전히 걸출한 음악적 실력을 보여주는 그룹이다(하지만 이 경우에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아닌 새로운 밴드명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한 번 그저 그런 공연을 했다고 이 모든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부적절하고 성급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기도한다 - 난 믿는 게 확실히 있다 - 매닉스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 끝내주는 앨범을 만들어서 모든 예상들이, 내 것도 포함해서, 잘게 부서져 버리기를. 내 마음은 매일, 아니 매 시간마다 이랬다 저랬다 변한다. 나는 아직 이 밴드를 사랑하지만, 이 밴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제멋대로 친구를 선택하는 방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기준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닉스가 감상적인 애착 그 이상의 이유를 보여주길 바란다.
첫댓글 으아 정말 잘 읽었어요 ㅠㅠ 감사합니다..!
문장 한 줄 한 줄에서 매닉스에 대한 사이먼 프라이스의 애정이 뚝뚝 묻어나와서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먹먹했네요ㅠㅠ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매닉스의 미래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생각한 것 같구요 'ㅡ' 의도한 바는 아닌데 이거 읽는 동안 이어폰에서는 제임스 Still a long way to go가 흘러나왔는데 (뭐 이것저것 껴맞추면 다 그렇겠지만)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For this I surely know - there's a long way to go"
(참 그리고 중간에 있는 공연 사진은 웸블리 공연은 아니구 아마 96년 피닉스 페스티발일거에요! 'ㄱ')
그러게요 그냥 기자가 아니고 한 팬이 쓴 것 같은 느낌이라서 더 와닿는 거 같더라구요.. 저도 이거 읽으면서 매닉스 셔플로 해놓고 들었는데 중간에 카디프 애프터라이프가 나올 땐ㅠㅠ still a long way to go도 정말 딱이네요. 사진 피드백 감사합니다ㅋㅋ 웸블리 때 단체사진이 없어서 구글링하니까 나오던데 아니군요ㅠ 제임스랑 니키 사진으로 바꿔놓을게요!
근데 이 글 조회수가 왜 이렇죠ㄷㄷ 뭐지..
순전히 제 추측인데, 빅뱅이 다음주인가? 암튼 이번 달에 웸블리 아레나에서 공연한다고 하더라구요.. 혹시 그것 때문에 웸블리 공연이나 그런 게 검색어에 걸려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
헉 그 빅뱅이요? 웸블리를 채우는 빅뱅이군요... 와우 와우;;
저도 그래서 그 웸블리가 그 웸블리 말하는 거 맞나 했어요 정말ㅋㅋㅋ 저는 그 얘기를 슈퍼주니어 무지 좋아하는 스웨덴 매닉스 팬(!!!)한테 들었는데 제가 여태껏 빅뱅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싶더라구요ㅋㅋㅋ
아ㅋㅋ 정말 빅뱅 때문인가보네요ㅎㅎ 지금 투어매니저 하는 친구가 어제 도쿄돔 꽉채운 사진 보여주던데ㄷㄷㄷ 인기 좋아서 공연이 자꾸 추가되고 있댑니다. (저는 빅뱅 노래 한곡도 기억 못하는데..ㅡ,.ㅡ)
아.. 언제 시간 부담없을 때 다시 한 번 정독해봐야겠어요. 알찬 번역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
와.. 정말 잘읽었어요. 좋은 글+멋진 번역 최곱니다ㅠㅠ
안그래도 며칠전에 다른 자료 찾다가 96년 셀렉트에 실렸던 이 공연에 대한 짧은 리뷰 읽고 마음이 짠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