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전쟁 (중편소설)
작가: 백화 문상희
이 소설은 옛날에 맹호부대 장병으로 월남전쟁에
참전했던 삼촌의 얘기를 들은 근거로 쓴 소설이며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4) 사이공으로 가는 머나먼 뱃길
1965년 7월 17일 아침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단장을 따라서 부두에 있는 군부대 막사로 들어갔다.
인원 점검과 서류에 이름과 지장을 찍고 부두에서
승선 대기를 했다.
부두에서는 환송 나온 가족들과 함께 환송식이
거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군악대 연주와 함께 오색종이가 부두의 하늘을 뒤덮었다.
군함 옆에는 USA navy라고 영문으로 쓰여있었다.
군복을 입고 총과 배낭을 멘 군인들 수백 명이
줄을 지어 끊임없이 군함에 오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장교 계급장을 단 군인들과 단원들도
군함에 올랐다.
그 많은 군인들이 어디로 다 들어갔을까
정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장교들은 단장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
함상 건물로 들어가고
남은 장교 한 사람이 단원들을 안내했다.
장교는 함상에서 한 계단 내려가서 장교 숙소
두 개를 배정해 주었다.
침상이 5개 있는 작은방은 여자들이 묵을 방이고
또 하나는 꽤나 큰 방이었다.
큰방은 창고로 쓰던 방이라서 접이식 침대가 십여 개
놓여있었다.
그리고 부두에서 쓴 것처럼 또다시 단원들 모두가
두장의 서류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었다.
장교의 설명은 한 장은 군함 탑승 기록이고 또 한 장은
미군부대에 제출할 서류라고 했다.
또한 부연적인 설명과 함께 주의 사항도 오목조목
가르쳐주었다.
이 군함은 한국군의 군함도 아닐뿐더러 작전중이라
선상으로 나가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이었다.
또한 아래의 세 개 층에도 파병 중인 군인들이
타고 있어 통제구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대신 식사는 장교 식당에서 제공된다고 했다.
고인석 단장의 국가유공자와 군 경력을 알고 있는 장교는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뱃머리에서 바다구경을 하려고 했던 정태는
크나큰 실망을 했다.
"단장님!
월남 사이공 까지는 얼마나 걸린답니까?"
"그래, 내가 듣기에는 4박 5일이 꼬박 걸린단다!"
"아이고, 꼼짝없이 군함에 갇히는 신세가 됐네요!"
"그래, 정태야!
전쟁 작전중이라서 어쩔 수가 없단다!
심심하면 내가 격은 군대 얘기를 해줄까?"
"네, 해주세요 단장님!"
그래, 나는 사법고시 공부를 한답시고 25세가 되던
1949년 3월에 군 입대를 했단다!
나는 입대해서 바로 수도사단에 배속되었지!
그리고 6월에 맹호부대가 창설되었다!
그러니까 나도 맹호부대 창설 멤버란다!
다음 해 내가 상등병을 달고 6월에 한국전쟁이 터졌지!
우리 맹호부대는 용감한 부대였단다!
전쟁 초기에는 낙동강 하류까지 후퇴를 했다가
한때는 압록강 까지 진격을 했지!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다시 경기도 포천과 동두천
까지 후퇴를 했지!
우리 맹호부대는 지금의 휴전선 근처에서
밀고 밀리는 전투를 석 달간이나 했단다!
그 전투에서 전우들이 절반이나 전사를 했지!
나는 그 전투에서 수색 중에 전우 한 명과 함께
중공군 다섯 명을 붙잡아서 밧줄로 묵어 끌고 왔단다!
그 이후에도 나는 적군 초소로 기어가서 수류탄 투척으로
적군 분대원 모두를 전멸시켰지!
그러나 그 이튿날 전투에서 내가 있던 참호에
로켓포탄이 날아와서 많은 전우가 전사를 했지!
그때 나도 여기 장딴지에 파편이 박혔단다!
장딴지 근육이 모두 파열되어 수도 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장애등급을 받고 1952년 3월에
결국은 전역을 했단다!
"아이고, 큰일 날 뻔했군요 단장님!"
그래, 나는 그 공을 인정받아서 일계급 특진의
추서와 함께 무공훈장도 받았단다!"
단장은 정태에게 장딴지 상처 자국을 보여주었다.
상처는 열십자 형태로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우리 맹호부대는 용감한 부대였고 지금 이 군함에
타고 있는 군인들도 바로 맹호부대 군인들이란다!"
"예, 그렇군요 단장님!"
"이십 년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뛸 수가
없단다!
몇 번의 수술과 재활운동을 해서 지금은 천천히
걸을 수는 있지!
그래서 나는 서커스가 아닌 마술을 배웠단다!
단장은 속 주머니에서 묵직한 무공훈장을 꺼내어
정태에게 보여주었다!
"네~, 이것이 바로 그 무공훈장이군요!"
"그래, 이 훈장 덕분에 우리가 월남 위문공연을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육이오 전쟁은 북한의 공산군들이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그 공산화를 막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단다!
월남도 마찬가지야!
베트콩은 공산군이고 무기도 거의가 공산국가가
만든 것이다!
월남군은 우리나라 육이오 전쟁처럼 공산화를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이야!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 역시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전쟁에 개입을 한 거야!
우리나라는 육이오 전쟁 때 미국의 도움으로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지!
우리나라도 지금 미국을 도와서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참전을 한 것이야!
베트콩들은 미군보다도 우리 따이한을 더 무서워한단다!
우리나라 군인은 육이오 전쟁을 격은 군대이고
또한 공산군을 싫어하기에 더욱 용감하단다!
그래 정태야, 이해가 가느냐?"
"예, 단장님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래, 너도 이제 이삼 년 있으면 군대를 가겠구나!"
"예, 그렇습니다 단장님!"
"그래 그러면 군대 간 용대가 제대하면
그때 너도 입대를 하면 되겠구나!"
"예, 단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시간 날 때마다 기본적인 마술을 하나씩
가르쳐주마!"
"네, 고맙습니다 단장님!"
단장도 무료함을 달래 가며 정태에게 마술을
한 가지씩 가르쳐주었다.
총기 있는 정태는 단장에게 마술 개인기를 하나씩
전수받았다.
함상에 갇혀있는 며칠이 어찌 보면 정태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태는 함상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에 부지런히
단장의 마술 전수를 받아가며 운동에만 전념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역시 식당과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군함 선실에서 꼬박 4박 5일을 보내고 아침 9시경
월남 사이공 군사기지 항구에 도착을 했다.
단장은 시차를 모르기에 한국 시간으로 시계를 보았다.
이번에도 맹호부대 군인들이 먼저 하선을 하고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맨 마지막으로 하선을 했다
정태는 오일만에 함상으로 나와 하늘을 보았다.
정태는 며칠간 선실에 갇혀 있었기에 눈이 부셔서
손으로 하늘을 가린 채 실눈을 뜨고 보아야 했다.
잠시 후 눈에 들어온 사이공 항구의 모습은
정태가 상상한 이국적 모습 그대로였다.
해변가에 늘어선 야자나무는 정태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맹호부대 군인들은 부두 공터에 대열을 갖추어
대기하고 있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부두로 내려와서
서커스단 버스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함선 뒤꽁무니에서는 거대한 문이 열렸고
각종 장비를 실은 군용 트럭이 부두로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서커스단 버스가 내려왔다.
잠시 후 사이공 시내 쪽에서 군용 트럭 약 20대가
줄지어 부두로 들어왔다.
부두에서 원을 그리며 들어온 트럭에 맹호부대 군인들의
탑승이 시작되었다.
부대원들의 탑승에만 약 20분이 소요되었다.
"우와~, 대단하네요 단장님!"
"그래, 정태야!
저 맹호부대 대원들은 세월이 지났지만 모두가
내 후배들이란다!"
맨 앞쪽에는 장갑차와 MP라고 쓰인 지프차가 떠났고
그 뒤를 따라서 군용 트럭이 출발을 했다.
군인들을 태운 군용 트럭이 앞서고 각종 장비를 실은
군용 트럭이 뒤를 따랐고
그다음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도 출발했다.
버스 뒤쪽에도 무장을 한 장갑차와 지프차가
호위를 했다.
길거리에는 "환영, 맹호부대 제1진 참전용사,,라는
한글로 된 환영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군용 트럭은 약 20분 후 사이공 외곽에 위치한 부대
연병장으로 들어가서 도열을 했다.
트럭의 뒤를 따르던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는
부대 정문에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장교 한 명이 버스에 올라와서 거수경례를 하고
검문을 진행했다.
"지금부터 보안상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장교는 여기저기를 흩어보고 안내를 했다.
"기사님, 저기 연병장 왼쪽 축구장 옆으로 가서
주차를 하면 됩니다!"
단원들의 버스는 축구장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단원들도 버스에서 내렸다.
뒤따라 오던 군용 지프차 한대가 버스 앞으로 왔다.
중령 계급장을 단 장교가 단장 앞으로 와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월남 파병 맹호부대 선발대 대대장 중령
이성일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래요, 수고가 많습니다!
여기에 무대를 설치하는가요!"
"예, 그렇습니다 선배님!
연병장을 바라보고 축구골대 앞에 설치하시면
골대는 임시로 철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하고는 시차가 어떻게 되나요?"
"네, 한국보다 세 시간 정도 빠릅니다!
현재 시간은 열두 시 십 분입니다!
잠시 후 1시에 점심 배식이 있으니 저쪽 B동
장교 식당으로 가시면 됩니다!
배식은 아침 8시, 점심 1시, 저녁은 7시입니다!
또 필요하신 것 있으면 저기 초병에게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제가 달려오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 HQ라고 쓰인 본부로 오셔서
말라리아 예방접종을 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는 가끔 베트콩이 출몰하는 곳이기에
보안상 저쪽 C동이라고 쓰인 곳에서 주무십시오!"
"그래요,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네, 각 초소 초병들이 확실하게 경계근무를
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충성!"
대대장 이성일 중령은 단장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대원들은 우선 짐을 내려놓고 배식 막사로 향했다.
"단장님, 여기는 가로수도 모두 야자나무입니다!
야자가 주렁주렁 열렸네요!"
"그래, 정태야!
나도 사실 동남아 쪽은 처음으로 와봤단다!"
커다란 막사 A동 앞에는 부대원들이 줄을 지어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모두 총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단장님, 밥 먹을 때도 총을 메고 밥을 먹네요!"
"그래 전시에는 총이 밥보다 우선이란다!
나도 전쟁 중에는 언제나 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지!
심지어는 잘 때도 옆구리에 총을 끼고 잤단다!"
"네~, 그렇군요 단장님!"
단원들은 줄도 서지 않아도 되었기에 B동으로 들어가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곳에는 이성일 대대장도 와 있었다.
대대장은 식사 중에 일어나서 서커스 단원들에게
자리 안내를 했다.
"모두들 식사 맛있게 하시고 심심하면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저기 우체통에 넣으면 한 달 이내로
무료배달 해드립니다!"
대대장은 단원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점심 메뉴는 월남 쌀국수와 치킨이었고 단원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 모두 맛있게 먹었다.
(5) 월남 위문공연
단원들은 다시 서커스단 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무대 설치작업을 시작했다.
버스 옆쪽에는 언제 가져왔는지 빈 드럼통 30여 개와
구멍 뚫린 철제 발판도 가득 쌓여있었다.
잠시 후 대대장이 지프차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단장님, 저쪽에 있는 빈 드럼통을 세워놓고 그 위에
철재 발판을 놓으시면 무대 설치가 쉬울 겁니다!
약간 높게 설치를 해야지 많은 사람들이 볼 수가
있답니다!"
"아~, 그래서 드럼통을 같다 놓았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하루 더 준비를 하시고 모레 오후
두 시부터 두 시간씩 한 달 동안 공연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공연시간에 맞춰서 각 부대 장병들이 매회
부대원을 나누어서 올 겁니다!
현제 한국군 파병은 5개 부대 약 2만 명이 있고요
사이공 근처에 있는 미군도 관람을 할 겁니다!
그리고 관람 부대에서 들어오는 찬조금은 모두
단장님께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대대장은 철두철미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단원들은 대대장이 얘기한 대로 드럼통을 깔고
그 위에 철제 다리를 놓은 후 천막으로 덮었다.
이곳에서는 팬스용 천막이 필요가 없기에
천막을 접어서 두툼하게 깔았다.
그리고 발판이 이탈하지 않게끔 밧줄로 고정시켰다.
그다음 그 위에 부상방지 매트리스를 깔고
단장은 단원 모두를 무대 위로 불러서 뛰게 하였다.
"자~, 모두들 제자리 뛰기를 계속해봐요!
내가 돌아가며 이상이 있는지를 볼 겁니다!"
그것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단원들 11명이 올라가서 뛰어도 발판은 안정적이었다.
사이공 시간으로 오후 5시경 설치작업이 끝나고
단원들은 더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사이공 날씨는 사람 체온과 맞먹는 36도를
오르내리고 장마철처럼 습한 날씨였다.
다행히 C동 막사엔 간단한 샤워시설이 되어있었다.
단장은 여자들부터 씻게 하고 남자들은 밖에서 기다렸다가
반씩 나누어 샤워를 했다.
정태는 단장의 옆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다혜가 따라와서
정태 옆자리에 앉았다.
"정태야, 월남에
"응, 말로만 들었던 월남을 직접 와서 보니까 좋다 다혜야!"
"그래, 동갑내기라서 나는 네가 좋다 정태야!"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다해야!"
"그래 맞아!
정태 너하고 다혜는 동갑이었지!
다혜 네가 훨씬 선배 되니까 정태에게 많이 가르쳐 주거라!"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정태야, 단장님 말씀 잘 들었지?
나한테 잘 보여야 가르쳐 줄 거야 호호호!"
저녁 배식은 월남 야채쌈과 쇠고기 뭇국이 나왔다.
단원들은 식판을 들고 차례대로 배식을 받았다.
"많이 먹어라 정태야!"
"응, 고마워 다해야 너도 많이 먹어라!"
정태와 다혜는 동갑내기로 옆자리에 앉아서 소곤소곤
다정하게 식사를 했다.
재료는 사이공 것이었지만 한국인 사병이 조리를
해서 그런지 입에도 잘 맞았다.
단원들은 식사 후 일부는 간이의자에서 담배를 피우고
일부는 C동 막사로 들어갔다.
정태는 간이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보는 하늘보다 유난히 별이 더 많았고
사이공의 밝은 별빛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안부도 전하고 자랑도 좀 해야겠다!"
정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막사로 들어갔다.
막사엔 보안상 불빛이 아래만 보이도록 갓을 씌운
백열등이 있어서 편지를 쓸 수가 있었다.
" 어머니 전상서.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들 정태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아리랑 서커스단에 보내주신 덕분에
연습과 적응기간을 거쳐서 정식 단원이 되었답니다.
단장님은 육이오 동란 때 맹호부대의 용감한
군인이었답니다.
전투 중에 큰 부상을 입어 전역을 했지만
국가 무공훈장도 받은 용감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은 월남 사이공에 위문공연을
왔답니다.
단장님 말씀은 위문공연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 달간 휴가를 주신다고 했답니다.
아마도 9월 중순이면 집으로 갈 수가 있을 겁니다.
어머니 그때까지 건강 잘 챙기시고 평안하세요.
''월남에서 아들 정태 올림.
정태는 예방접종받으러 갈 때 PX에서 사 온 봉투에
편지를 담아서 우체통에 넣었다.
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6시경 부대원들의 우뢰와 같은
함성소리에 깨어났다.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아침 점호를 마치고
운동장 구보를 하고 있었다.
단원들도 단장의 지도 아래 무대 앞에서 몸풀기
스트레칭을 했다.
"자, 오늘은 식사 후 오랜만에 공연 리허설을
할 것입니다.
공연을 위해서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단원들은 군인들의 기를 받아 우렁찬 대답을 했다.
아침 식사 후 단원들은 본격적으로 리허설에 돌입했다.
단장은 세심하게 단원들을 다독이며 안전을
중요시한 연습을 이어갔다.
단원들은 6일 동안 군함 선실에서 보내느라 대체로
몸이 굳어있었다.
오전엔 리허설 점검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고
오후엔 집중적으로 서커스 리허설에 들어갔다.
단원들은 늘 하던 동작이라서 금방 컨디션을
회복하고 서커스 공연 리허설을 시연했다.
이튿날 오전 최종적으로 리허설 점검을 마쳤다.
식사 후엔 무대복을 입고 서로에게 화장을 해주었다.
아리랑 서커스단은 이로서 모든 공연 준비를 끝냈다.
첫 번째 관람 부대는 군함을 함께 타고 온 맹호부대였다.
점심을 먹은 맹호부대 부대원들이 연병장에
집합을 했고 대오를 갖추어 무대 앞으로 왔다.
정각 두시에 무대 앞 커튼이 열렸다.
첫 공연은 단장이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짝에 커다란
북을 메고 1인 악극단으로 오프닝 공연을 하였다.
단장의 공연이 끝나고 전체 서커스 단원들이 늘어서서
배꼽인사를 했다.
두 번째로 대대장 이성일 중령의 축하인사가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맹호부대 1진 부대원 여러분!
제군들은 사이공에 오자마자 첫 번째로 서커스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귀국하는 날까지 이 행운을 가슴에 담고 전투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방금 삐에로 공연을 해주신 분은 1949년 맹호부대
창설멤버로 육이오 전쟁에 참전을 하였고
많은 전공을 세워 국가 무공훈장도 타신 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군의 로켓포탄이 참호로
날아들어 큰 부상을 입었고
그 부상으로 인해서 전역을 하신 분입니다!
제군들 모두 일어나서 맹호부대 창단 멤버이신
고인석 단장님께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다음으로 부 대대장의 통솔이 이루어졌다.
"부대~~~ 차렷,
단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부대원들 경례 소리는 월남의 하늘을 찔렀고
단장은 그 인사를 받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다음 공연은 접시 돌리기와 상모 돌리기로 이어졌고
다음엔 무등 타기 공연이 이어졌다.
그다음 순서는 단장님의 불쇼와 화려한 마술이
이어졌고 공연 단막이 끝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음 외줄 타기 공연 준비를 하는 동안 김 씨의 원숭이
묘기가 이어졌다.
김 씨는 기어서 무대를 한 바퀴 돌았고
김 씨의 목에는 목줄이 메어 있었으며
원숭이가 줄을 잡고 김 씨를 끌고 가는 장면이었다.
원숭이의 손에는 회초리를 잡고 있었으니
부대원들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서커스 공연은 두 시간에 걸쳐 성황리에 끝났다.
그다음 날부터 차례대로 청룡부대와 백호부대
국군파병 장병들이 차례대로 관람을 하였다.
아리랑 서커스단 공연은 계획된 한 달의 절반인
2주간의 공연을 했다.
이번 일요일엔 하루 휴식을 하기로 정해져서
단원들은 사이공 관광길에 나섰다.
단장은 단원들에게 그날 특별보너스로 10달러씩을
봉투에 담아서 주었다.
사이공은 주둔 미군이 많아서 거의 달러로 결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대장 이성일 중령은 만일을 대비해서 무장한
부대원 1개 분대를 경호조로 딸려 보냈다.
정태의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모습은 나중에
월남 파병 입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원들도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월남 국민들의
생활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며 관광을 했다.
통역은 경호조로 따라온 부대원 한분이 유창한
영어로 통역을 해주어 언어소통은 문제가 없었다.
신바람이 난 단원들은 고향으로 가져갈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하루의 특별휴가를 보낸 단원들은 심기일전하여
다음 공연을 준비했다.
다음 관람 차례는 사이공에 주둔하는 미군 해병대부터
시작되었다.
런닝에 군번만 걸고 있는 우람한 체격의 자유분방한
미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관람을 만끽했다.
그다음 날은 차례대로 미군의 공병대와 공군 해군까지
관람이 이어졌다.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군인들로서는
일종의 에너지 보충이었다.
공연 때마다 미군들의 입에서는 원더풀, 원더풀 코리아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매회 공연 때마다 무대 앞에는 군인들이 선물로 주고 간
초콜릿과 깡통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우와~, 단장님!
이것을 한국에 가져가서 공연 때마다 불우이웃 돕기를 하면
좋겠네요!"
"그래, 정태야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좋겠구나!"
정태는 어릴 때부터 어렵게 살아왔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사이공에서의 마지막날 공연은 사이공 시장과 정치계
주요 인사들 그리고 각국 외교관과 미국 장성들까지
참석하는 피날레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그 마지막 공연에서 들어온 격려금과 찬조금은 아리랑 서커스단
일 년 치 소득과 맞먹는 거액이 들어왔다.
그 돈은 나중에 고물딱지 버스를 최신형 버스로 교체하는
원인제공이 되었다.
공연 시작은 언제나 단장이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짝에 커다란 북을 메고 1인 악극단으로
오프닝 공연을 하였다.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사이공 위문공연 마지막날 공연에서 사고가 터졌다.
다혜의 외줄 타기 공연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근처에서 커다란 폭팔음이 들렸다.
그 순간 5M 높이에서 외줄 타기 공연을 하던
다혜가 놀라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운데는 안전망을 설치해 두었지만 끝지점에
안전망이 없는 곳으로 떨어졌다.
안전을 위해 무대 옆에서 대기하던 정태가
순간적으로 뛰어가서 다혜를 받아냈다.
그것은 정태의 뛰어난 순발력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다혜는 정태에게 않기면서
허리가 한쪽으로 꺾였던 것이다.
"다혜야 괜찮아?"
"응, 폭음소리에 깜짝 놀라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거야!"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몰라, 지금도 얼떨떨해서 크게 아프지는 않아!"
다혜는 떨어지면서 놀라는 바람에 정태의
어깨를 잡으며 껴안고 있었다.
정태는 다혜를 않고 있다가 그제야 계면쩍어서
내려놓았다.
그러나 정태는 다혜의 체온이 두 손에 남아있는 듯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것은 정태가 동갑내기 다혜를 좋아하게 된
동기부여가 되었다.
단원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혜야, 큰일 날 뻔했구나!
정태 네가 다행히 다혜를 살려냈구나!
정말로 장하다 정태야 고맙다!"
단장은 정태를 칭찬하고 다혜를 안심시켰다.
관중들도 폭음소리에 잠시 술렁거렸다.
곧이어 대대장 이성일 중령이 무대로 올라와서
손으로 마이크를 톡톡 치면서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에~, 방금 폭음소리는 철조망 바깥에 매설한
지뢰를 산돼지가 밟아서 터진 소리입니다!
그러니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후 무대가 정리가 되었고 김 씨의 원숭이 앵콜공연으로
다시 한번 긴장한 관중들에게 폭소를 안겨주었다.
이어서 다혜가 주축이 된 부채춤 피날레 공연이 이어졌다.
다행히 다혜는 부채춤 공연을 무리 없이 해냈다.
아리랑 서커스단 월남 파병 위문공연은 그렇게
한 달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6) 아리랑 서커스단의 금의환향
공연이 끝나고 이성일 대대장은 감사의 표시로
멋진 회식을 열어주었다.
이튿날 단원들은 무대 철거를 위해 다시 한번
땀을 쏟아야 했다.
그때 지프차 한대가 무대 쪽으로 왔다.
이성일 대대장은 단장에게로 가서 한참 동안
얘기를 하였다.
잠시 후 단장은 단원들을 모아놓고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에~, 방금 이성일 대대장이 기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의 공연 소식이 사이공
전체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이공에 있는 대형 극장에서 공연을 요청해
왔습니다!
우리가 타고 가야 할 군함 출발은 아직도 5일이나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추가공연을 결정해서 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출연료는 입장료 수입의 80%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입니다!
나 역시 출연료의 80%를 단원 여러분께 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신 추가공연 결정은 단원 여러분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자, 공연에 찬성하는 단원은 손을 들어보세요!"
그러나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다.
단원들 전체가 무조건 찬성이었다.
이튿날 사이공 극장으로 가는 길에는 이성일 대대장도
무장을 한 지프차 타고 앞 뒤에서 경호를 해주었다.
이번 사이공 극장 추가공연은 무대 설치가 필요 없기에
무대복과 공연 도구만 준비하면 되었다.
이층으로 된 극장에는 소문을 듣고 온 관객들로
완전히 만석이 되었다.
단장이 한국말로 인사를 할 때는 이성일 대대장이
영어로 통역을 하였고
그 영어를 다시 극장 사장이 월남 말로 통역을 했다.
허리를 삐끗한 다혜도 별 걱정 없이 외줄 타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외줄 타기 공연을 마친 다혜가 사다리를 내려오자
정태가 다혜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다혜야!
삐끗한 허리는 괜찮은 거야?"
"응, 그때 정태 네가 나를 받아주어서 살아난 거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정태야 고마워!"
그 일을 계기로 사춘기의 정태와 다혜의 가슴에는
사랑이라는 싹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었다.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공연을 계기로
대한민국 서커스 공연과 따이한 군대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단장은 달러로 가득 채워진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자~,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 여러분!
이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아, 당연히 돈이겠지요 돈, 하하하!"
오랜만에 박군이 그렇게 말했다.
"저번에 받은 찬조금도 이번에 받은 공연료도
모두가 달러입니다 달러!
이 돈이 바로 가난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달러입니다!
월남전에 파병된 대한민국의 용사들의 월급도
바로 이 달러로 받는답니다!
결론은 우리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를 한 것입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이 돈을 우체국 통장에 입금을 하고
한국 돈으로 찾아서 여러분께 나눠드리겠습니다!"
단장이 그렇게 말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단원들은 부대에 도착해서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군함을 타기에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으나 단원들은 부대에 머물러야 했다.
그것은 사이공 시내에 출몰한 베트콩이 휴가 나온
미군 두 명을 총격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해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는
상황을 이성일 대대장이 알려왔다.
단원들은 부대에서 머물며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음날 이성일 대대장은 부대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환송 자리를 열어주었다.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아리랑 서커스 단원들이
내일 새벽 5시에 사이공 항구로 출발합니다!
아리랑 서커스단원 여러분 덕분에 우리 장병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맹호부대 후배로서 고인석 단장님께
존경을 표하며 이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성일 대대장의 환송인사가 끝나고 고인석 단장의
답사도 이어졌다.
"에~,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이 머나먼 이국땅
월남에서 뜻깊은 공연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성일 대대장님 덕분입니다!
맹호부대 창설과 육이오 전쟁에 참전했던 저로서는
월남전에 파병된 후배 장병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단장의 환송인사를 끝으로 단원들은 이튿날 새벽 출발을 위해
모든 점검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단원들은 새벽 4시에 기상을 했다.
맹호부대 조리병사가 특별히 끓여준 된장찌개에
새벽밥을 먹고 귀국길에 올랐다.
무장한 맹호부대 장갑차의 경호를 받으며
단원들이 탄 버스는 사이공 항구로 향했다.
이성일 대대장의 입회하에 출국심사는 비교적
간편하게 끝났다. 이어서 군함에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가 올라가고 단원들도 승선을 했다.
이성일 대대장은 군함 장교에게 무엇인지 몰라도
영어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성일 대대장은 단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고
단장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귀국길은 올 때보다 좋은 선실로 배정이 되었고
규제도 훨씬 유연했다.
한편, 가은에 살고 있는 정태 어머니는 정태의
편지를 받아 들고 떨리는 손으로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어린 자식을 객지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사이공 항구를 떠난 지 오일째 되는 날 군함의
장교가 선실로 들어왔다.
장교의 손에는 작은 메모지를 들고 있었고
그것을 단장에게 전해주었다.
메모 내용은 이성일 대대장이 쓴 것이었다.
"to, 고인석 단장님!
군함이 한국 해상으로 진입하면 함상에서 바다를
볼 수 있도록 미군 장교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습니다!
이 쪽지를 보실 때는 아마도 바다를 구경하고
계실 줄로 믿겠습니다!
아무쪼록 안전한 귀국을 기원합니다.
월남 파병 맹호부대 선발대장 이성일 올림.
미군 장교는 손짓으로 컴온을 외쳤다.
단원들은 함상으로 나가서 신비한 바다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뱃머리 너머로 어렴풋이 한국의 작은 섬들이 보였다.
정태는 월남으로 갈 때는 바다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마음껏 구경을 했다.
미군 장교는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30분쯤 지나서
다시 선실로 안내를 했다.
이튿날 군함은 머나먼 뱃길 5박 6일 동안 행해를 해서
저녁 8시쯤 부산항에 도착을 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관할 군부대에서 또다시
입국절차를 거쳐야 했다.
부산항에 도착한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밤이 늦어서
하룻밤을 부산의 여관에서 머물러야 했다.
이튿날 단장은 단원들을 데리고 나가서 아침밥을 함께
먹고 우체국으로 가서
가져온 달러를 우체국에 입금을 시켰다.
그리고 예금을 찾아서 준비한 여러 개의 봉투에 넣고
봉투에 이름을 일일이 적었다.
단장은 올해의 급료 봉투에다 휴가를 떠나는
단원들에게 반년치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더 주었다.
단장은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샀다.
그 이유는 가판대 신문기사에 단원들의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아리랑 서커스단 월남 위문공연,,
커다란 활자아래 단원들의 공연 내용과
고인석 단장의 맹호부대 무공훈장 이력도
쓰여있었다.
단원들은 그 신문기사는 보고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
단원들은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에 차례대로 올랐고
다혜는 정태의 옷자락을 잡으며 옆자리에 않기를
권했다.
"정태야 너도 열일곱 살이라고 그랬지?"
"그래, 다혜야!
너도 동갑이라고 그랬잖아!"
"그래, 그러면 너는 생일이 몇 월이니?"
"응, 나는 생일이 2월 7일이야!"
"그러면 나보다 오빠가 되네 호호호!
나는 생일이 팔월이니까 나보다 육 개월이 빠르다!"
"에이, 뭘 그런 걸 따지고 그래!
같은 나이면 친구지 안 그래?"
"그나저나 월남 위문공연에서 떨어지는 나를
받아줘서 정말로 고맙다 정태야!
너 아니면 죽을 뻔했잖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다혜야!"
정태와 다혜는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버스는 국도를 따라 서울로 향했고 단장의 말씀이
이어졌다.
"에~,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은 월남 위문공연으로
수입도 좋아지고 위상도 더욱 높아졌답니다!
이것은 단원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것입니다!
아마도 내년에는 더 많은 공연 섭외가 들어오리라
예상이 됩니다!
나도 사실 오늘이 10월 5일이라는 걸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월남을 오가는데 2주일이 소요되었고 또한 공연을
한 달 동안 하느라 날짜가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타국에서 공연을 하느라 다음 공연 일정도 잡지를 못해서
올해 공연을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단장의 말에 버스 안이 떠나가도록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올 후반기 급료에다 보너스까지 지급을
한 것입니다!
내년 공연 일정이 잡히는 대로 편지를 보낼 테니
그때 모이도록 합시다.
정태는 집이 문경 쪽이니까 서울로 가는 길에 동대구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줄 것이다!"
"네, 고맙습니다 단장님!
"그리고 김 씨는 집이 이천이니까 이천 터미널에
내려 드리면 되지요?"
"예, 고맙습니다 단장님!
올해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박군아!"
"예, 단장님!"
"저기 뒤쪽 따불백에 담긴 초콜릿과 통조림을
12개 봉투에 똑같이 나누어 담아서 단원들에게 하나씩
주도록 해라!
여러분이 고생하고 받은 것이니까 집으로 가져가서
선물로 드리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은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초콜릿과 통조림을
단원들 가족에게 선물로 주었다.
버스는 국도를 따라 세 시간을 달려서
동대구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정태는 초콜릿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돌아서서
단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단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단원 여러분 내년에 뵙겠습니다!"
정태는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정태는 이때까지 문경땅을 벗어난 일이 없었기에
물어물어 문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정태는 세 시간을 달려서야 문경땅에 도착했다.
다시 가은읍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오후 다섯 시쯤 되어서야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은읍
터미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