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품격은 말로 정해져… 한국 사회, 파탄 지경”
[대전일보 2007-5-17 11:33]
말은 인격이고 품격이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인품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차분하되 가라않지 않고, 편안하되 지루하지 않게 말하는 방송인 김동건 KBS 아나운서(68). 평생 마이크와 살아온 그는 방송계의 산증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때묻지 않은 심성의 소유자인 데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성실성으로 인해 국민 아나운서로 불리고 있다. 김 아나운서는 “잘하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야하고. 잘하는 대화는 상대의 말을 신중하게 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눈 팔지 않고 45년 째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김 아나운서를 16일 오후 대전일보 신수용 편집국장(이사)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진솔한 삶의 고백과 방송철학은 잔잔하면서도 긴 울림을 주었고, 말의 성찬을 이룰 정치 시즌을 맞아 그가 들려주는 한마디 한마디는 말의 소중함과 진실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 어떻게 지내십니까.
▲ 일주일에 방송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KBS ‘리얼토크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이라는 프로입니다. 방송 뿐 아니라 이것저것 관여하는 곳이 많아 바쁘게 지냅니다.
- 나이에 비해 50대로 보입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 (웃음) 비결은 없습니다. 젊어 보인다면 다분히 외탁을 해서 그럴 겁니다. 어머니가 워낙 동안이십니다. 바쁘고 젊게 살려고 많이 애를 씁니다.
- 방송 경력이 45년째이신데, 후회하지 않습니까. 다시 태어나도 방송인이 되실 건가요.
▲ 어떤 직업이든지 아쉽기도하고 만족스럽기도 한 법입니다. 아나운서란 직업은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죠. 다시 태어나도 아나운서를 할 겁니다. 한번 더 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방송생활이 행복하다는 얘긴데,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아나운서가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제가 성적이 조금 모자라서 그런 겁니다. 집안에서는 상대나 의대를 가라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어느 과에 들어갔어도 상관없었을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나운서를 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거든요.
- 차분하면서도 가라앉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로 ‘국민 아나운서’로 평가받습니다. 방송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 방송은 다양한 것이어서 딱 무엇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듭니다. 일상생활이자 삶입니다. 방송이 하나의 예술 가치가 아니라 인간은 방송을 보지 않으면 살기 힘들 꺼에요.
- 영욕을 지켜보신 방송의 산증인이신데, 그 동안 보람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아쉬움 보다는 보람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별 대과 없이 방송을 할 수 있게 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방송사에 길이 남을 방송을 한 것도 저의 복입니다. 장수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그게 보람이라면 보람입니다. 아쉬움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건데 이건 매일하게 되는 고민입니다. 아직도 신인 같을 때가 많습니다.
- 특히 7, 80년대에 고교생 프로그램에서, 80년대 이후에는. 가요무대 진행자로 친숙합니다. 대표작이나, 간직할 프로그램은 무엇입니까.
▲ 그런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6개월을 하든지, 19년을 한 장수프로든지 저에겐 모두 다 소중합니다. 항상 시작할 때 이 프로가 저의 대표작이 됐으면 하는 마음가짐으로 방송을 합니다. 시청자들은 오래한 프로그램이 최고라 생각하지만 저는 모든 프로가 다 소중합니다.
- 지난 1983년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이산가족 찾기 90분짜리 프로그램이 장장 138일이나 이어졌습니다. 방송 진행자로 의미가 달랐을 텐데.
▲ 제 본적이 황해도 사리원입니다. 거기서 태어나 자랐죠. 북쪽에 친척도 있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도 거기에 묻혀 있습니다. 그 방송을 하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만나 상봉하지 않았습니까. 기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 ‘멀리계신 동포 여러분 그리고 해외 근로자 여러분 반갑습니다’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가요무대 프로그램을 18년을 해왔습니다. 때문에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가 생겨났고 남다른 품격이 느껴진다는 평가입니다.
▲ 처음에 ‘11시에 만납시다’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 9월 20일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할 때 사회자로 뽑혀 갔었죠. 그것을 보고 P.D(방송제작 책임자)가 ‘가요무대’를 하자고 했지만 그 당시 쇼가 아닌 교양프로를 하기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찾아와서 제대로 된 프로그램 한번 하자고 조르기에 “그래 딱 한번만 해보자’”하고 나서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한번 해보니 이 프로는 내가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다른 연예오락프로그램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6개월쯤 지나니 미국, 중국 등 동포들과 중동에 간 근로자들에게서 편지가 많이 오더군요. 이민자들이 전 세계 500만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됐죠. 그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낸 멘트입니다.
- MBC 간판인 김주하 앵커우먼이 가장 존경하는 방송인으로 김 선생님을 꼽았더군요. 방송인에게 어떤 소양이 필요합니까.
▲ 후배들에게 늘 얘기 합니다. 방송인이기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고. 시청자들과 만날 때 신뢰와 애정이 없다면 계속 아나운서의 말을 듣겠습니까. 방송인이 전부 다 애정과 신뢰를 받을 수 없지만 오래동안 방송을 하려면 인정받는 아나운서가 돼야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믿을 수 없다면 속을 다 털어놓을 수 없듯이 말이죠. 신뢰를 받으려면 겸손,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나 방송 할 때 만 성실한 척을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더불어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장관, 총리 앞에서 설설 기고 수레를 끄는 분들 앞에서는 군림하고… 잘못된거죠. 약자에게 따뜻해야 합니다.
45년 간 아나운서를 한 것은 이 직업이기에 가능했습니다. 권력자와 부자라면 그렇게 오래 못했을 겁니다. 아나운서가 목에 힘주는 그런 직업이 아닌데 얼굴이 조금 알려졌다고 건방져서는 절대 안됩니다.
- 오래 전에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를 진행하던 중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도 없는 어린소녀의 얘기를 듣다가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방송하면서 일화가 많지요.
▲ 그 때 소년ㆍ소녀가장들이 많이 출연했습니다. 한국어린이재단에서 수기를 공모 해 1, 2, 3등을 뽑아 방송에 출연시켰습니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듣고 많이 울었습니다. 아이들과 얘기하던 중 한 아이가 “자전거가 하나 있으면 학교 다니기 편할 것 같다”고 말하는거예요. 그래서 필요하다면 하나 몰래 사주려고 “갖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어봤죠. 자전거라고 답할 줄 알았더니 “어머니”라고 해요. (눈시울을 붉히며) 그 때 그 말 듣고 최루탄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져서 30분 동안 잠시 쉬고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빨래하는데 손이 시리고 힘들다 하면 세탁기도 사주고 싶고… 그런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사주기 전에 많은 시청자들이 큰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곤 했죠.
- 연말 대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말의 풍년을 이루고 있습니다. 설득도 있을 것이고, 이해는 구하는 말도 있을 것이고, 선동과 허언도 있을 텐데 어떤 말이 가장 잘하는 것입니까.
▲ 예전에 월간 조선에서 말 잘하는 사람으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고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실 아나운서니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말만 잘하는 거나 단순히 쉬지 않고 단어만 나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오래 간직할 만한 애기를 하는 것이 좋으나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잘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중히 귀 기울여 듣는 방법을 길러야 합니다. 자기말만 계속하는 대화는 결국 상대방에게 좋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첫 번째도 상대방의 말은 신중히 잘 듣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역시 그렇습니다.
- 말이 인격, 품격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무엇이 담겨야 합니까.
▲ 제가 늘 강조하는 말입니다. 말 속에 진심이 느껴지야 됩니다. 말을 술술 막힘없이 잘하거나 품격 있는 어휘를 구사하는 이런 것들은 지엽적인 겁니다. 품격 있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한 나라의 대통령도 품격이 떨어지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배움이나 학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순박하고 진실해 마음에 와 닿는 말을 해야 합니다.
- 말을 잘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어떤 교육이, 훈련이 필요할까요.
▲ 한 나라의 품위는 말로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서의 말은 교양이 없는 말을 넘어서 파탄이 됐을 정도 입니다. 젊은이들이 쓰는 은어,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영화관에 가서 한국 영화를 한번 보세요. 육두문자가 무차별적으로 난무합니다. (목소리가 커지며) 가족이 함께 보는 영화에 쌍소리가 나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는 위험수위를 넘었고 누군가가 통제를 해줘야 합니다. 심지어 예전에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늦을 것 같다며 운전기사를 보냈습니다. 그 기사에게 “어디서 오느냐”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었죠. “사장님과는 청담동에서 찢어졌다”고 말하더군요. ‘헤어졌다’를 ‘찢어졌다’고 말한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야하는데 우리사회는 좋은 대학에 만 보내려고 혈안이 돼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건이 조성돼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머리는 좋아졌지만 인성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막말이 난무하는 겁니다.
- 인터넷, 휴대전화, 이메일 등의 범람으로 국적불명의 언어, 신조어가 생겨납니다. 흔들리는 말의 문화 어디에 문제가 있습니까.
▲ 사람은 편리하고 쉬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회규율, 법 등을 어기게 됩니다. 법으로도 막기 어렵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합니다. 최근 핸드폰을 이용해 문자를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신조어가 많이 생겼습니다. 핸드폰을 없애는 것이 방법이지만 그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교육 잘시켜야 합니다. 어른들이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까 궁리하지 진정 자녀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일부 방송 오락 프로그램의 저질성과 선정성, 청소년 윤리 등을 놓고 논란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방송 구조를 단번에 고치기 힘들 겁니다. 일부 방송들의 목표는 흑자입니다. 공영방송인 KBS도 마찬가지입니다. 1981년에 매월 신문대금이 2500원, 시청료도 2500원이었습니다. 현재 신문은 10000원, 12000원이지만 방송은 지금껏 2500원입니다. 이걸 갖고서는 방송의 막대한 예산을 짜 맞출 수 없습니다. 부득이 하게 광고를 하게 되고 스폰서에 맞춰 방송을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막강한 집단은 ‘어린 아이’들 입니다. 얘들 위주로 방송이 가게 되고 유치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방송에 대해 양심적으로 얘기 하건대 ‘위기’입니다. 방송을 편들자는 게 아니라 이것을 막는 길은 시청료 인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NHK 처럼 민간방송도 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방송 권력의 시녀다, 정부의 나팔수다 이렇게 얘기 하지만 이런 것을 떠나서 시청료 문제는 지도자들이 고칠 일입니다.
- “인생은 만남이고, 누구나 꼭 한번 밖에 초대받지 못한다.”라고 했던게 무슨 뜻이지요.
▲ 그건 어느 원로시인이 한 얘기를 인용한 겁니다. 인간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면 단순한 동물이지 그게 사람입니까. 사람을 만나야지 인생의 값어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번 밖에 초대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귀하고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후배들에게 많이 들려주는 말이죠.
- 정치인이나 유력자와의 만남도 많았던 걸로 압니다. 정계의 러브콜이 적지 않았을 텐데 왜 정치를 멀리 하셨습니까.
▲ 지난번에 은사이신 김동길 박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나는 자네가 정치나 기업에 가서 크게 돈을 벌거나 권력을 갖지 않고 외길을 걷는 것이 너무 보기 좋다. 제자에 대한 스승의 마음으로서 정말 흡족하다.”라구요.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는 제가 잘 압니다. 정치 할 성격이 아닙니다. 난잡한 정치판에 저까지 가서 하기 싫습니다. 지금 이 생활에 굉장히 만족합니다. 아나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아나운서들의 오랜 두려움 중 하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잊혀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장기범, 이광재, 임택근, 최계환, 전영우, 이규항, 박종세, 차인태, 변웅전, 황인용씨등 쟁쟁한 아나운서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을 좋아하십니까.
▲ 열거된 분들 다 좋아합니다. 장기범 선배 방송을 듣고 아나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전영우 선배 방송이 너무 좋아 매일 듣곤 했습니다. 그 밖에 많은 선배들이 아나운서에 대한 동기를 심어 주고 귀감이 되 주시고 직접 지도를 해주셨죠.
- 한국 아나운서 클럽을 만드셨더군요. 어떤 모임입니까.
▲ 본디 오래된 동호회입니다. ‘한번 아나운서는 영원하다’라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근래 사단법인으로 발전시켰죠.
- 대학교 다니실때도 방송에 관심이 많으셨죠.
▲ 연세대 3년 재학 시 YBS(연세대 방송국)를 개국하는 날부터 진행했습니다. 처음부터 학교방송 같지 않았죠. 문과대 본관 골방에서 시작해 백낙준 총장 개국 인터뷰도 하고 호출번호까지 허가받아 1kw로 신촌 일대에서 라디오를 가지면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유선방송시대였지만 무선방송에서 의의가 컸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사람들 중 그 출신들이 많습니다.
- 후배 방송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 항상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그렇게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는거죠. 권력이나 재력과 상관 없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신뢰를 잃지 않는 방송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열 번 잘하다가 한번 실수하면 신뢰를 잃게 됩니다. ‘서두르지도 말라. 쉬지도 말라.’ 존경하는 선배님께 이런말을 듣고 후배들에게 해줬습니다. 빨리 방송하고 싶어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천천히, 오래 사랑받는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실향민으로서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있지요. 남북통일문제는 어떻게 돼야 할까요.
▲ 저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통일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닙니다. 그저 소박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는 겁니다. 통일이라는 것이 서둘러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잘 참았으니 후유증이 적고 모두가 잘 되는 방향으로 이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통일이 우리 국민들에게 힘든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일의 경우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 했는데도 지금 많이 힘들어 하지 않습니까. 통일을 이루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은 어디서부터 나와야하는지 우리가 잘 준비는 돼 있는지 면밀히 차근차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행여 통일이 되고 나서 더 못 살겠다 하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될 일이죠. 이것은(통일문제)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나는 통일이 되면 평양에 가서 가요무대 M.C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 즐겨 부르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 가요무대를 19년 동안 진행하다보니 이노래, 저노래 다 좋아 합니다. 특히 윤극영 선생님의 ‘반달’을 좋아합니다. 윤 선생님이 친구 아버지라 잘 따랐고 방송할 때도 몇 번 모셨습니다. 현제명 선생님의 ‘고향생각’도 좋아합니다. 따듯하면서도 정이 있는 노래로 부르면 눈물이 납니다. 현제명 선생님이 1927년 25살에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을 가 미국에서 쓴 곡입니다. 옛날이니 한 두달 걸려 미국에 갔지, 생면부지 아는 사람은 없지 타국에서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지난번 미국에 가서 ‘가곡의 밤’을 할 때 제가 강력히 주장해서 이곡을 첫 곡으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울었죠.
- 방송을 하며 가장 감동적이었다든가,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입니까.
▲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리 격정적이고 참을성이 없다가도 인내심이 강합니다. 단합이 잘될 때가 있는 반면 모래알 같을 때도 있죠. 독일의 한 광산촌에 가요무대를 하러 갔을 때 베를린에서 한 시간 공연을 보러 8시간 운전을 하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브라질에서는 방송이 끝나니 극장에서 5~6천명이 태극기를 꺼내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가 이들을 감동 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송이 끝나도 가지 않고 태극기를 꺼내들고 흔드는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저는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
- 이번 주말에 대전을 방문하신다면서요.
▲ 대전에서 오는 19일 이미자 콘서트에서 사회를 봅니다. 이미자씨 남편이 경기고 나오고 방송부 선배이기도 해 이미자씨를 형수로 부를만큼 친분이 두텁습니다. 전국에 다니면서 투어를 하는데 “사회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해 와서 그러자고 했어요. 이미자씨는 권력자나 명문가가 아니지만 ‘동백 아가씨’를 통해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와 위안를 주었습니까. 그런 가수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일이고 사랑을 주는 것은 국민의 도리입니다.
- 어느 정권의 방송정책이 가장 좋았나요.
▲ 그건 말하기 곤란합니다. (웃음) 난 그저 좋은 대통령, 사랑받는 대통령이 나와서 국민들이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난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인기와 사랑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보십시오. 사랑을 받으면 국민은 그가 어떻게 해도 다 따라가게 됩니다.
- 계몽기를 거치면서 방송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나라가 잘 살게 된 데도 방송 나름의 역할이 있었겠죠.
▲ 라디오에서 TV로, 흑백에서 컬러로 방송 기술적인 변혁이 이루어졌고, 시대가 변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노력해 일을 하니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국민의 의식수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민주시민의 역량을 고취시키는 데 방송이 막중한 사명을 다 해야 합니다. 신문의 역할 역시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김 아나운서는 뜻밖에도 신문의 역할과 중요성을 역설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는 “신문을 안보는 것은 어른들이 잘못이 크다.”며 “젊은 친구들이 신문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