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감정사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는 어느 날 무례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휴대폰의 벨 소리가 울린다.
“ 여보세요?”
“ 선생님! 휴대폰 맞죠?”
“ 그렇습니다”
“ 선생님? 저 아시겠어요,?”
“ 연근이 인데요. 몇 년전에 I고등학교에 중퇴했던”
“ 아, 그래, 알고 말고 어떻게 선생님 전화 번호를 알았죠?”
“ 학교에다 전화하여 비상 연락망에 적혀 있는 전화 좀 가르쳐 달라고 했죠.”
“ 그래 어쩐 일이지”
“ 예 진즉 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이제야 연락을 드립니다.”
“ 그래 넌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대학 시험은 잘 치르고...”
의례적인 안부를 물어 본다.
“ 예 만나 뵙고 말씀드리려고요.”
“ 그래 그럼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이따가 오후 5시쯤 모 제과점에서 만날까? ”
“예 알았습니다.”
나는 약속한 시간에 장소에 갔지만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속으로 무척 괘씸한 생각을 하고 제자 놈이 시간을 지키지 않다니? 이러고 있는데 헐레벌떡 제과점 문이 열린다.
“ 선생님 큰 절 받으세요”
“ 야야! 이런 곳에서 뭐하느냐.
“ 어때요, 다른 사람이 보면 어때요. 제가 선생님께 큰절을 드린 데요 ”
“ 선생님 건강하세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
“ 그래 너도 건강하고? ”
“ 예 진즉 찾아 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집안에 작은 일이 생겨서 그 동안 찾아 뵙지 못하고 이제야 시간을 냈습니다.”
“ 그런데 좋은 일이 있구나.”
“예 선생님”
“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쑥스럽습니다만 선생님은 보석을 알아보는 보석 감정사입니다. ”
“ 뭐 앞도 뒷도 없이 무슨 말이냐?”
“ 예 제가 보석이라는 말씀이죠”
“ 뭐? 네가?”
“ 아무리 그 보석이 진짜 100% 다이아몬드라 할지라도 감정사가 가짜라고 하면 가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겠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저를 몰라 보았지만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다니는 학교, 학급에 들어오셔서 수업을 하시며 정말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어요, 저는 어찌나 재미있는 토론 수업을 하시길래 그때부터 흥미를 같고 선생님을 좋아하며 글을 쓰고 선생님과 주제를 정하여 상담도 하고 토론도 하며 학창시절을 재미있게 보냈죠, 그런데 실은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였답니다. 선생님 시간을 제외하고는....
늦게까지 하는 자율학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침 일찍 조기등교하지 못하고 늦잠을 자기 때문에.... 이런 저런 시험 부담 때문에....
자꾸 학교생활에 염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 눈밖에 나고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었죠. 저는 결국 학교에 낙 (흥미)을 부치지 못하고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중퇴하여 일주일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고, 놀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내서 유부초밥을 사 주시면서 격려 해 주셨습니다. 이왕에 학교를 자퇴하였으니 취미 생활도 하고 자율적으로 개척해 가도록 믿음과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가능성과 힘을 주시니 절대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되겠다고 다짐을 하였답니다. 가능성과 힘을 주신 분은 일찍이 없으셨는데 선생님이야말로 참스승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선생님과 헤어지고 저는 곧바로 사설 독서실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그 다음해 검정고시를 1등급으로 합격하고 경찰대학교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습니다.
경찰대학교에서 면접을 하는데 여러 교수님들이 경찰 제복을 입고 면접관으로 오셨어요. 한 면접관이 경찰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한 수험생이 먼저
“ 아주 멋져요. 저도 그 멋진 제복을 입을 기회를 주십시오. ”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다음에 나에게 묻더라구요.
“ 저는 그 멋있는 제복은 모두 국가가 제공한 것 아니겠어요. 멋있다는 그 이면에 국록을 먹고, 국가가 모든 피복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국가 사회에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책임과 봉사가 따르는 직업이며 멋으로만 경찰이 되겠다면 차라리 경찰대를 포기하는 것이 낫죠. 이렇게 말해 버렸죠. 그랬더니 그 경찰대 교수가 얼마나 끔찍스러운지 금방 얼굴이 경직되어 꼭 자신에게 일침을 가한 것처럼 느꼈을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그리고 나는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경찰대에 붙었더라구요.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기분이 좋으신지 친구분들을 초대하고 친척, 외삼촌들이 서울서 내려오고 온통 축제였지요. 그러면서 내일 꼭 경찰대에 입교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경찰대에 입교를 거부했답니다. 제가 경찰대에 입교를 안 하면 결국 경찰대에 포기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서울대 발표인데 만약 서울대에 불합격이 되어 버리면 경찰대에 합격했더라고 경찰대 못 들어가고 서울대도 불합격되고 결국 나는 연세대 신방과를 가기로 맘먹고 경찰대를 포기하였답니다. 그러니 부모님께서는 더욱 불안해하시며 안달을 하셨죠.
그랬더니 부모님과 친척들을 4년간 학비 면제고 경찰대에 나오면 경위 계급에 파출소장 직급에 직장 보장되고 서울대보다 몇 번 낫다고 아등바등 온 식구 성화가 말이 아니었죠, 저는 그 자리를 피하여 친구 집에 가버렸죠. 제가 참 경찰상을 세우고 국민을 위한 지팡이로서 모범을 보여야 경찰로서 손색이 없을 텐데 사실 저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인내력이나 제도권의 틀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결국 경찰대에 포기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서울대 합격소식을 들은 것이었어요,
이찌나 좋던지 제일 먼저 선생님께 달려오고 싶었지만 뜻밖에 외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가 오고 엄마와 저는 외갓집으로 달려갔고 병원에 입원시키고 결국 외할아버지 병간호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거든요
엄마와 나는 교대로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할아버지가 쾌유되셔 시간을 내서 선생님을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정말 자랑스런 제자를 나는 얻게 되었다고 생각되어 가슴 뿌듯하다. 또한 그 제자는 헤어지면서 노란 비닐 봉투를 손에 쥐어 준 것이다. 선생님, 제가 I고 교복을 2년밖에 못 입었습니다. 그래서 새것이나 다름없어요. 깨끗하게 세탁 해 두었습니다. 동복과 하복 그리고 바지는 두벌입니다. I고에 어려운 학생이 있다면 몸에 맞은 학생에게 이 교복을 주세요. 이러는 것이다. 사실, 조금 늦은 까닭은 시내서 다시 집에까지 가서 교복을 가져오기 위해서 늦었습니다. 이런 저런 자상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얼마나 가슴이 찡해오던지 이런 마음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제자는 분명 훌륭한 이 나라 동량으로 성장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제자여!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제자로 영원히 남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