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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3장
개관, 하나님의 지혜, 사도의 직분, 교회안에서 파벌, 복과 상, 육신에 속한자, 영에 속한자
저자와 제목, 연대
고린도전서의 첫 번째 단어는 바울이 이 편지의 저자라고 진술한다. 이 사실을 의심을 타당할 이유는 없다. 편지의 신학적 관심사, 편지의 문체가 지닌 힘, 편지의 어휘, 이 편지와 다른 바울의 편지들 및 사도행전과의 역사적 관련성 등은 이 편지가 바울의 편지임을 나타낸다. 이 편지의 전통적인 제목은 이 편지가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최초의 편지가 아니라 '정경에 수록된' 두 편집 가운데 첫 번째 편지임을 뜻한다.
바울은 로마의 아시아 속주에 있는 도시인 에베소에서 오순절 마지막 날 이전 어느 때에(16:8), 따라서 봄에 고린도전서를 썼다. 이 시점이 주후 53년 봄인지, 54년 봄인지 또는 55년 봄 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사역이 끝나갈 즈음에 이 편지를 썼다(고전 16:5~9, 참조, 행 19:21~22).
목적, 계기, 배경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지협 위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위치로 인해 고린도는 에게 해 지방과 지중해 서부 사이의 해상 교통의 번성하는 교차로가 되었다. 고린도는 많은 문화와 종교와 뒤섞인 곳이었다.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로마의 법과 관습이 특히 상류 계층 사이에서는 중요했지만 "많은 신과 많은 주"가 고린도에 자리잡았다(8:5).
이런 신들에 대한 예배는 국정, 도시 축제, 직인 길드, 사교 클럽, 전반적인 일상생활 속에 완전히 통합되었다. 고린도는 또한 수사적 과시를 즐기는 청중에게 돈을 내게 하고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전문적인 순회 웅변가들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바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곧 교회가 세워졌다.
바울은 로마에서 온 새로 사귄 두 친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사역에 도움을 받았는데 그들은 바울처럼 추방된 유대인이자 직업적인 천막 제조업자였다(행 18:1~4, 18~19, 24~28; 롬 16:3; 딤후 4:19). 바울과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50년대 초에 고린도에서 18개월을 지냈고 그 후 바울은 유대와 수리아에 잠시 다녀간 뒤 에베소로 갔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미 에베소에 있었고(행 18:19; 고전 16:19) 바울이 도착했을 때는 역시 고린도에 있었던 노련한 기독교 변증과 아볼로와 만난 상태였다(행 18:24~19:1; 고전 1:12, 3:4~6, 22, 4:6, 16:12).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렀고 어느 시점에 고전 5장9절에서 언급한 다른 데서는 알려지지 않은 편지를 고린도 사람들에게 썼다. 이 편지를 쓰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 편지는 고린도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음행을 다루었다(5:1~13, 6:12~28).
이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첫 번째 편지를 오해할 뿐만 아니라(5:10) 분열, 음행, 사회적 우월 의식 등의 심각한 문제들로 골치를 썩고 있음을 알려주는 구두 보고를 받았다(1:10, 5:1, 11:18). 그와 거의 동시에 결혼, 이혼, 이방 종교 행사 참여, 공중 예배 속에서의 질서, 그리스도인의 몸을 부활에 대한 상당한 신학적 혼란을 보여주는 한 편지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도착했다(7:1, 8:1, 12:1, 15:12, 35).
이런 고치 아픈 사태 전가에 대한 반응으로 바울은 고린도에 그들의 행위가 대부분 복음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견을 진술하는 많은 분량의 편지를 부득불 써 보내야겠다고 느꼈다. 그들의 분열에 뿌리에는 지혜, 의, 성화, 구속 동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1:30, 4:7)과 양립할 수 없는 교만이 놓여있었다(3:21, 4:6, 8, 18~19, 5:2, 6).
게다가 약하고(8:10, 11:22) 소외된 자들(14:16, 23)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신의 권리만 자기중심적으로 주장하는 태도(6:12, 8:9, 9:12, 10:23)는 복음의 진보가 아닌 그들 자신의 사회적 출세가 그들의 최고 우선 순위임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고린도에서 대부분의 음행과 우상 숭배의 뿌리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함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있었다.
모세 율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에게 경계선을 규정해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율법의 바탕이 되는 주제, 그들의 문화로 식별되는 한 백성들과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5:1~2, 13, 7:9). 더구나 각 신자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의 내주(6:19)와 신자들이 부활하신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새로운 연합(6:14~17, 15:30~34)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문화의 도덕적 불순함과 깨끗하게 결별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했다.
종종 엄중한 이 편지의 어조(4:18~21, 5:2, 11:17, 22)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들에 대해 깊은 개인적 애정을 느꼈다. 이 사랑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목적으로(10:31)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영의 잘 지어진 거처가 되고(3:12,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이 되기를 원했다(1:8).
고대 도시 고린도
아크로고린도는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서 있는 높이 575m의 작지만 가파른 산이다. 고대 고린도는 이 산의 기슭에 세워져서 마을에 물을 공급해주는 천연 샘의 혜택도 누렸다. 바울 시대에 고린도는 내륙으로 몇 킬로미터 들어간 곳에 있었지만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의 레가이온 항과 동쪽으로 에게 해의 겐그레아 항(행 18:18)을 연결하는 지역을 다스렸다.
배들은 종종 가장 좁은 곳이 대략 6km인 펠로폰네소스 지협의 이 좁은 구간을 따라 이 두 항구 사이에서 육로로 수송되었다. 주후 1세기의 몇몇 통치자들은 어리석게도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이 시도는 19세기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청동 예술 작품, 부요함, 음탕한 성생활로 잘 알려진 유명한 그리스 도시 고린도는 로마와 전쟁하는 동안 주전 146년에 파괴되었다. 도시는 주전 44년에 로마인 자유민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도시 중심지에 있는 뚜렷한 고고학적 지층은 역사상의 이 간극을 증언해준다. 새 식민지의 1100년 동안 나온 비문들은 대부분 라틴어로 되어 있었지만 도시의 예술과 생활 속에서는 헬라 문화에 강한 흔적도 분명히 나타났다.
1세기의 고린도는 직교 그리드에 바탕을 둔 로마식 도시 계획을 따랐다.
상점, 주랑, 공화당, (도시의 민회를 위한) 불레우테리온, 연무장,
목욕탕, 화장실, 극장 등과 같은 전형적인 도시형 건물들이 지어졌다(또는 재건되었다). 이 시기의 몇몇 큰 저택들도 발굴되어 되었다. 도시 중심부에는 샘물을 끌어오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인 개조된 페이레네 샘이라는 자랑거리가 있었다.
중앙 광장에는 오늘날까지 주위보다 높은 연단이 서 있고 그 부분의 한 비문은 이 연단을('베마', 즉 법정에 해당하는) '로스트라'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갈리오가 바울을 무죄로 판결했다는 바로 그 장소일 것이다(행 18:12~17). 오데이온(지붕이 있는 작은 극장) 같은 다른 몇몇 중요한 고고학 유적들은 신약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 시대에는 거대한 도리스 양식의 (아테나 또는 아폴로에게 받쳐진) 주전 6세기에 지어진 신전들이 도시에 산재해 있었다. 실제로 저술가 파우사니아스가 주후 2세기 중엽에 고린도에 대해 썼을 때 이 도시에 대한 그의 묘사는 마치 이교적인 불후의 신성한 장소들에 대한 여행 안내서 같았다. 고린도에는 자랑할 만한 아스클레피오스(치유의 신)에 중요한 성소가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로 와서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치료받기를 기도 하곤 했다.
특히 큰 신전 E를 (유피테르를 위한 신전일 수도 있지만) 아우구스투스의 누이 옥타비아에게 바쳐진 것으로 보는 이들의 견해가 옳다면 황제 숭배의 특징들은 명백했다. 아크로고린도 꼭대기에 있는 유명한 헬레니즘 시대의 아프로디테 신전은 주후 1세기 동안 다소 작은 건물로 재건되었다.
천 명의 신전 창녀들에 대한 스트라보의 주후 1세기의 기록이 그 이전 헬레니즘 시대의 아프로디테 신전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바울 시대의 로마식 신전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쨌든 로마 시대에 그런 항구 도시에서는 음란한 성생활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다른 중요한 고고학적인 특징들 고전 9:24~27(이스트미아 경기대회), 8:1~11:1(고기시장), 행 18:4(회당과 유대교), 롬 16:23(에라스도 비문 등)
핵심 주제
1. 교회는 하나님의 영의 거처이므로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세움으로써 연합을 위해 힘써야 한다(1:10~4:21, 특히 3:10~16, 14:12).
2. 그리스도인은 다음 네 가지의 실제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야 한다.
a.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연약한 이들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8:1~9:18, 10:28, 33).
b. 그리스도인은 문화적으로 민감한 복음 전도를 통해 불신자들을 얻어야 한다(9:19:23, 10:27, 32~33).
c. 그리스도인은 함께 있는 불신자들이 믿음에 이를 수 있도록 예배를 드려야 한다(14:16, 23~25).
d. 그리스도인은 공중 예배에서는 개인적인 과시를 위해서나 누가 더 나은 은사를 가졌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 영적인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11:2~16, 12:12~30, 14:1~35).
3. 성관계는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만큼이나 깊은 남녀 사이의 연합을 형성하며 따라서 성행위는 결혼에 국한되어야 한다(5:1~13, 6:12~20, 7:5, 9, 36).
4. 세례와 성찬은 중요하지만 둘 다 복음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살아가는 일에 비해서는 부차적이다(1:14~17, 10:1~5, 11:17~34, 15:29~34).
5. 예수님의 (그리고 예수님의 따르는 이들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육체적 부활은 기독교의 신앙 및 실천의 한 핵심적인 요소다(6:14, 15:1~58).
문예적 특징
고린도전서는 영적으로 어려움이 겪는 한 교회에 보내는 목회적인 편지다. 다른 신약의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이 편지도 '상황적인' 편지이며 본문 속의 표시들에 주목해 보면 고린도전서의 상황을 꽤 쉽게 종합할 수 있다. 이 편지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교적인 문화와의 관계, 교회 내의 분열, 성만찬 같은 교회 관습의 순서, 영적인 은사의 사용과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매우 적실성 있다.
이 편지는 또한 성, 결혼, 독신, 미덕(특히 사랑)과 같은 개인적 도덕의 문제들도 다룬다. 고린도전서는 전형적인 1세기의 서신 형식을 따르지만 그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인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인사, 감사, '파라에네시스' (일련의 도덕적 권면) 등의 일반적인 서신의 요소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 편지의 본론은 바울이 다루는 고인도 교회의 상황과 질문으로 채워지며 서신의 결구(16장)는 바울이 이 교회와 맺고 있는 관계 때문에 광범위하다. 권면과 교훈이라는 수사적 양식이 이 편지를 지배한다. 13장은 사랑을 찬미하는 찬가(기록된 헌사)다.
이 책은 대조, 반복, 비유 같은 수사적 기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또한 진리와 오류, 도덕적인 선과 악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사용한다.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을 여러 가지 방면에서 바른 길에서 벗어난 이들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 편지는 강하게 잘못을 교정하는 식의 어조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지혜의 본질, 사도의 직분, 교회안에서 파벌 싸움
거룩함, 통일성, 바울의 사도직과 고린도 교인들의 거룩함과 통일성은 이 편지의 가장 중요한 주제에 속합니다.
1~31절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거룩하여지고 성도라....',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른 모든 민족에게서 구별하셨습니다(출 19:5~6).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이 그들의 택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도록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레 11:44~45).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중심성과 분열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영적으로 각처의 모든 그리스인들과 연합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1~2절).
'그 안에서....풍족하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인 풍성함이 적절치 못한 교만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감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선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그 선물들을 사용한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치료책은 건전한 분량의 감사에서 발견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를 가치있게 여겼지만 이런 은사들의 잘못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은사의 사용이 분열을 가져왔습니다(5절).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여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때 이는 많은 영적인 은사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지녔던 말하는 능력이나 지식이나 기술이 "풍족"해진 것임을 뜻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에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이는 영적인 은사들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일시적인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뜻합니다((7절).
'책망할 것이 없는', 고린도 교인들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날의 결코 정죄함이 없을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거룩하게 되기까지 했으므로 심판 때 아무도 그들을 기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므로 그들의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으로 만드실 것이라고 바울은 확신합니다(8~9절)
바울은 우선 분열의 문제를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자신에게 전해준대로 묘사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세 명의 그리스도인 순회 설교자 가운데 어느 한 사람에게 오만한 태도로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그들에게 세례를 해주었냐에 따라 여러 파벌로 나눠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아볼로를 잘 알았습니다. 아볼로의 수사적 능력은 인상적이었고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떠난 뒤 아볼로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게바는 베드로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아람어이며 두 이름 모두 사도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바울과 달리 베드로는 결혼했고 아내와 함께 고린도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고린도 내의 한 파벌은 다른 모든 파벌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나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표어를 내건 것으로 보입니다(12절).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바울은 세례를 중요한 일로 간주하지만 세레는 복음 선포에 비해서는 부차적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일은 세례와는 달리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여러 설교자들이 아니라 복음을 삶의 중심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말의 지혜', 수사학적 설득의 기술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높이 평가받았고 고린도 같은 대도시에는 전문적인 웅변가들이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인상적으로 과시했습니다. 바울의 복음 선포는 이런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족함은 메시지 그 자체의 능력을 집중 조명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성령이 바울의 말에 큰 능력을 부여하셔서 그 말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고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켰습니다(17절).
'십자가', '미련한 것',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복음 전파는 너무나 잔인해서 고상한 사람들이 있는데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처형 방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의 구원의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사역 자들의 메시지보다는 사역 자들의 수사학적 능력에 더 매료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십자가의 능력에 반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18절).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대적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주장을 입증할 더 많은 기적적인 표적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조종하기 위해 그런 요구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보여주신 표적만으로도 그들의 불신에 대해 아무런 변명거리가 없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헬라인은 고대 야만인과 대조적으로 문화 민족이며 따라서 지혜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메시아는 믿지 않는 유대인에게는 불쾌했고 믿지 않는 헬라인에게는 터무니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믿음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수준보다 더 깊은 지혜를 통해 역사합니다. 바울은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일부를 구원을 얻도록 효력있게 부르십니다(22~25절).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해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짓밟힌 자들의 높아짐과 인간적 지위의 역전이라는 주제는 구약에 예언 돼 있습니다(27절).
1~23절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육신에 속한자 성령에 속한자, 하나님의 복과 상급, 하나님만 자랑
'육신에 속한', 1절의 첫번째 예는 '육신으로 특정지어지는' 이라는 뜻의 헬라어 단어('사르키노스')를 표현하고 두 번째 예는 '육신으로 만들어진, 육신적'인 이라는 뜻의 약간 다른 단어를 표현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이 두 단어 모두를 고린도 교인들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실망을 표현하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육신은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지만 바울의 편지에서는 종종 '구속받지 않은 인간 본성'과 그 모든 욕구 및 특징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들의 분열적 행동은 그들이 마치 그들 주위에 믿지 않는 세상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당연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바울은 도덕적, 영적으로 미성숙하고 교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수준 높은 가르침을 주는 것은 도움도 안되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1~3절).
'자기가 일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복과 상급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시는 사명에 대한 그들의 신실함에 따라 달라집니다(8절).
'금이나 은이나 보석', 솔로몬의 성전건축에 사용된 재료들입니다. 여기서는 '나무나 풀이나 짚'과 대조적으로 심판을 견뎌낼 것들을 뜻하는 이미지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은 믿음과 순종으로 행하는 일은 살아남아 보상을 받겠지만 "육신"의 능력이나 성경에 대한 불순종 가운데 행한 일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12절).
'상을 받고....해를 받으리니....구원을 받되 불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롬 5:1) 마지막 날에 정죄에 직면하지 않겠지만(롬 8:1, 33)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행위를 심판하시고(롬 14:10~12) 또한 그에 따라 그들에게 보상하실 것입니다(마 6:1~6). 바울의 요점은 교회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어떤 식으로든 교회를 든든히 든든히 세우는 데 기여하는 사람에게 다 적용됩니다(14~15절).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이 문맥에서는 교회)을 멸하는자는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이 솔로몬의 성전을 파괴한 바벨론 사람들을 결국 멸하셨듯이 마지막 날에 영원한 멸망에 직면 합니다(17절).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오만은 고린도 교회 안에 분열의 뿌리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가 자신에게 세례를 준 지도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하나님께 속한자 임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 지도자 자신도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이는 만물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해 주셨다는 뜻입니다(21~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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