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왕폭 등반기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모습이 단정하다. 자고로 큰 일을 치루기 전엔 항상 모든 것이 정돈되어져야 속이 편한 법.
귀철이 내일 등반이 기대되는 지 장광설이 요란하다. "토왕 한 번 해야죠!" 벼르던 귀철이..
내일 등반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은 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보통 때 같으면 부어라 마셔라 입이 귀에 찢어져 있어야 하는데
인수 형 입에서 뭐가 쑥 나왔네...괴긴가?
잘 생긴 삼일이. 코롱 빙벽반 댕게 오더니 등반력이 일취월장
후배 동영이. 사랑하는 요강단지 아자씨를 독수공방하게 만드는 바위, 얼음..우터하나...(ㅡ,.ㅡ);;;;
항상 연구하고 공부하는 삼일이에게 자일 메는 '신기법'을 습득 중
토왕폭 등반기
일시-2012.1.28~29
날씨-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
인원-뫼우 11명,태백 1명
장비-100 자 2동, 80 자 3동,스크류 25개, 기타 빙벽장비
일정-하단시작(06:50)
하단완료(10:50)
중단완료(11:30)
상단시작(12:30)
상단완료(15:30)
좌골 도보 하산
Y계곡 초입 도착(토왕 삼거리)-(16:10)
하산완료(18:30)
프롤로그
솔직히 말해 나는 그 때 쪼메 훌쩍거렸었다.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 내리던 그 물방울의 생경함, 그 의미를 내 가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팍, 쪽 팔리게시리 이 나이에 웬 청승이야!'
40 중반 불혹철면 나이에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인가 싶기도 하고..
혹여, 마누라가 보면 멩구스러워 어떡하나 싶어 소리 죽여 눈물을 삼키곤 창문 너머로 눈길을 주기에 바빴었다.
그 날 따라 석양 노을은 왜 그리도 슬프도록 아름답던지..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며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암초 밑을 어슬렁 거리는 놀래기 새끼처럼 여기저기를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글 한 편.
그 글을 읽으며 마누라 몰래 눈물을 찔끔거렸고, 그 이후 토왕은 마음 한구석에 벌렁거리는 또 하나의 심장이 되어 있었다.
부치지 못한 편지
이날 밤 산장에서 송준호는 '석주에게'라는-이승에서 저승으로 띄우는-묘한 편지를 썼다. 주소란에는 이렇게 적혔다.
받는 사람='석주귀하'
보내는 사람='준'
받는 사람 주소='노루목'
보내는 사람 주소='벽에서'
'잘 있었나.그동안 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네.
내일 벽과의 감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네. 아니면 자네 품으로….
등반할 나를 도와줄 S대 상대 OB인 J와 P 두 악우(岳友)를 소개하겠네.
기억해두고 깊이깊이 사귀어보고 싶은 두 사람이네. 석주도 고마워할거야. 나는 확신한다네.
아직 자네는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석주가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열심히 한발 한발 힘차게 오를 것이네.
정상에서 대화를! 노루목에서 일배하세! 좁은 지면 메우기보다는 서로 힘찬 격려로 서로를 지켜주면 좋을 걸세.
용아장성에서처럼. 후회하지 않을 행동뿐, 결코 두려워하지 않겠네.
나의 맘 한없이 메꾸고 싶지만 주고 받을 얘기는 토왕성의 하얀 벽 꼭대기에서! 여유를 가져보세.
1월 1일 설날 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은 보람일세. 넘기기 싫은 하루였다네.'
-옮긴 글-
불면의 밤, 온 갖 잡 생각은 떠나질 않고
"니는 뭔 걱정이 그리 많나?" "뭐가 또 궁금하나?"
그러곤 뒤따라 나오는 웃음소리. "아하하하하"
'얼라리어! 이 형, 기분 좋은 갑네. 웃음 소리가 경쾌한 걸 보니... 참새 거시기를 봤나?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데..'
내가 그 간 겪어본 바에 의하면 영석 형의 웃음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수가 있다.
기분이 편안하고 좋을 때는 까르르 폭죽 터지는 듯한 웃음소리,그냥 웃겨서 웃을 때엔 툭툭 끊어지는 웃음소리.
"야, 대충해서 가면 되지 뭘 그리 생각하고 걱정하나?"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을 물어 보기만 하면 대뜸 나오는 영석 형의 반응이다.
'참 나원, 이 양반한텐 뭔 말을 못하겄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준비는 철저히 해야지. 토왕이 애들 장난인가?'
기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 싶을 정도로 토왕에 대 해 막연한 두려움과 조바심, 그리고 가슴 저린 그 뭔가가 가슴속에 있었다.
위킹산행을 하다가 중년이 되어서야 바윗길에 빠져 들며 조금씩 알게된 고래등짝 같은 시절 산 선배들의 절절하고
애틋한 사연들은 세파에 닳고 닳아 왠만해선 관심조차 두지 않고 무덤덤했던 나의 가슴속 깊은 곳 애절한 마음 떨림이
동심원을 그리며 녹아 있었다.
전전반측
술도 먹히질 않았고 잠도 오질 않는다.
오만가지 잡 생각에 머리속이 복잡하다.
안그래도 등반준비에 이것 저것 생각이 많은 데, 새로 이전하는 사무실 공사 현장 일도
챙겨야 했고
그 와중에 직원 하나가 덜커덩 그만 둔다는 소리를 토요일 아침에 전해 듣곤 고심에 빠져 오후 한 나절을 뒷수습한답시고
허비한 지라 이 상황에도 토왕을 꼭 가야만 하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어찌어찌 대굴박을 열심히 굴리고 전화기를 잡고 한 참을 씨름한 후에서야 결정했다.
'가자! 토왕으로!!'
영석 형과 문기가 선등할 것이고 내가 세컨, 또 한 줄은 누구? 귀철이 아니면 한진이.
하지만, 영석 형이나 문기가 탈이 날 경우 내가 올라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내일 토왕 정상조는 영석 형과 '토왕 한 번 해야지' 하고 벼르던 희승이 형, 나, 귀철이, 문기 그리고 태백의 재홍이. 또 누구?
도시,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제대로 이루질 못한다.
술을 좋아했던 나의 선친 역시 뭔 일이 있어도, 기어서라도 집에 찾아 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그 애비에 그 자식.
재호 형님 코로롱, 문기도 크르릉, 한진이는 조금씩 뒤척이고...아마도 영석 형은 안 자고 있을 게 분명하고..
개잠 반, 뜬 눈 반.
후배들의 아침 준비 소리가 분주하다.
나도 4년 동안 식기 따까리 열심으로 했었는 데.
고마웠다.
여명의 눈동자는 토왕을 향해 비추고
개울을 건너고 여명을 헤치며 토왕을 향해 나아간다.
예전 기억이 새록하다.
이 맘 때 계곡 옆 암반 이곳에서 삼일이가 밤을 새워 구조 임무를 수행하던 모습.
배낭에 지고 간 소맥 폭탄주 대포알 한 통을 119구조대원들과 나누어 마시던 기억.
당시, 사고자를 구조하기 위해 인수 형과 문기와 나는 이 길을 세 번 오르락 내리락했었다.
돌아 올수 없는 강을 건넌 사고자의 시신이 팔에 닿을 때의 섬짓한 느낌은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극락왕생하세요....
점점 가까워 지는 토왕의 자태.
가슴이 뛴다.
숙제 해 가지 않아 선생님의 빳다를 기다리는 초딩의 마음.
점점 내 차례는 다가오는 데, 앞에서 빳따 맞는 친구 놈의 비명소리가 귓구멍을 후벼 파는 느낌.
뭔 일이 생기면 내가 톱으로 나가리라.
꼭 그래야 한다.
'띠바, 마음이 싱숭하다'.
우 영석 형, 좌 문기. 하단 9부를 넘어 섰다. 한 고비는 넘겼다.
속으로 몇 번을 되뇌며 시뮬레이션을 머리속으로 그렸다. 빙질이 강빙이니 스크류가 버텨 낼 것이다.
나의 앞잽이 영석 형이 날으면 나도 밑으로 몸은 던지리라. 그래야 추락 거리가 줄어들지...
바람이 불어 두 선등자가 스노 샤워를 맞고 있다.
토왕의 아침은 춥다.
자세가 엉거주춤. 낙빙을 피하려 우측 벽면에 붙었기 때문에 등반자 자일이 1직선이 되지 못했다.
반성한다. 선등자가 추락시 많이 나를 것이다. 시선 또한 선등자에게 고정되어 있지 못하다.
영석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바람에 날려 오는 유리알 같은 낙빙 때문에 위를 보기 힘들었다.
자일이 빠져 나가는 감각으로 빌레이를 봐야 했다.
토왕 하단 정상에서 재홍과 귀철. 귀철의 표정이 심난해 보인다.
당초,
상,하단 정상조에 포함됐던 재홍은 하단만 하기로 하였고, 하단에서 고전을 한 귀철은
상단을 하지 마까? 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쭈구리 할 만 하구만
붙었다.
문기는 좌벽, 영석 형은 우벽.
어둠을 뚫고 뫼우의 투 톱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단 중간에 오를 쯤 바람이 몰아치며 스노 샤워와 더불어 낙빙세례가 시작됐다.
영석 형이 위에다 대고 욕을 해 댔다.
"시퐈, 낙빙 떨구지 말라고~" " 쉬팔 넘들이 와이리 낙빙을 떨구고 지랄이고."
등반을 하면 성격이 예민해 지는 영석 형은 의례껏 저런다.
그것이 본인의 마음을 다 잡기 위한 방법임을 나는 알고 있다.
영석 형은 마른 기침을 '컹컹'하며 등반을 하고, 문기는 배때기에 힘을 꽉 주며 트름을 '꺽꺽' 해 댄다.
몹시 요란스럽다.
과거,
문기가 그럴적 마다 영석 형은 "전 마, 와이리 꺽꺽거리노!" 하며 밑에서 킬킬 웃곤했었다.
'푸힛, 자기도 '컹컹'거리면서'...
내 버릇은 뭘까나?
아마 애꿎은 목구녕의 가래를 '으허억 칵칵' 긁어 대지 않았나 싶다.
자일이 세 번 댕겨졌다.
완료 신호다.
나도, 드뎌,
담탱이 빳따를 맞기 시작했다.
칠판에 두 손을 활짝 펴 붙이고 종아리에 힘을 줘 아픈 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픈 척 하면 지는 거다.
숙제 해 온 놈들이 뒷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아파하는 나를 보며 고소하다는 듯이 히죽거릴 것이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 놈들 좋아하는 꼴을 나는 못 본다.
바일이 탱탱거린다.
파르르하는 떨림이 없다.
헤드가 덜럭거리는 게, 영~ 감이 좋질 않다.
'니미,, 시몽 아나콘다를 쓸 걸 그랬나?'
준환이 형이 영구임대 해준 그리벨 바일. 꼽히는 감이 좋아서 그걸 들고 왔는데..
손목고리가 없어 부담이 되었었다.
스크류 회수 할려면 손목고리가 없는 게 편하다.
뭐 어쨋든, 이런저런 이유로 그리벨을 들고 붙었는 데, 왠지 찝찝하다.
남들이 찍어 논 자리에 바일을 꼽았는데도 덜컥거린다.
오만 잡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종아리가 땡긴다.
'시벌, N바디, N바디,N바디...'
종아리가 땡길 땐 'NO 바디 NO바디 컴 츄르가♬' 아니라 N바디를 해야 한다.'
종아리 이쁜 '원더걸스'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온리 N바디.
하단 직벽을 지나며 안정감이 찾아 든다.
견딜만 했다.
나름 잽사게 하단을 마친 것 같다.
옆 줄의 귀철이가 밑에서 아우성을 친다.
뭐라고 소리를 빽빽 질러 대는 데, 잘 들리지가 않는다.
'귀철이 자식, 애조지 마르나 보네.'
제법 시간을 지체하고 올라 온 귀철이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자일 한 동을 달고 오는 데 무거워 죽을 뻔 했다나 우쨋다나..하네스가 바지 밑에 늘어 붙어서 졸라 힘들었다고 푸념이다.
게다가 자일이 고드름에 걸려 그거 벗기느라고 생쑈를 했다고 하는 데,
'남의 애좆은 나의 즐거움이다'. 라고 말했다면 귀철이 거품 물고 방방 떳을려나?
"야!~ 니만 자일 달고 왔나? 나도 달고 왔다. 나는 무거운 줄 모르겠던데?"
하지만, 귀철은 무거웠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말구로 내 뒤에 있던 재홍이가 내 자일 끝자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덕에 나는 자일 무게를 덜 느꼈던 것 같다.
황소 같은 귀철이 투덜거리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중단부에서 장비 점검 중인 영석 형과 문기. 하단 좌우 벽을 나란히 선등해 올랐다.
나는 영석 형 줄, 귀철인 문기 줄.
꽃미남 문기 얼굴이 삭아 보인다..헤르만 불이 오버랩 된다.
고 송준호 님을 기리며 사진을 흑백으로 만들어 보았다.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 지고
중단을 거슬러 오른다.
여기 어디쯤일 것이다.
슬립을 하며 꽃잎처럼 흘러간 곳이..
토왕 하단 정수리에 깊이 박힌 피켈 한 자루.
토왕골에 맺힌 한 서린 피켈 한 자루.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山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 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
장비 점검은 끝났다.
" 자! 가자 토왕 조지러.."
앞 팀 등반자 말구의 모습이다.
또 다른 팀 말구자. 똥색 바지. 많이 힘들어 했다.
문기가 드뎌 토왕 여신의 허리 춤을 더듬기 시작했다.
애랫도리는 다 섭렵했으니 윗도리도 느껴봐야 되지 않겠는가.
뜨거운 은빛 살결에 입을 맞추고 고샅고샅 알뜰살뜰 은밀한 곳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짜릿짜릿 했을 것이다.
하기사... 나는 뭐~ 하도 찌릿해서 담배 불을 지렸으니...제길 헐.
상단조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재홍..하단 정상에서..
중단 설원에서, 하단 확보 중인 재홍과 한진, 귀철을 땡겨 보았다.
여전히 귀철의 표정은 심난하다.
자 가자. 고래 잡으러
문기와 영석 형이 그 길을 오른다.
계속되는 폭설로 적설량이 많아 상단까지 접근이 쉽다.
하단을 쉽게 한 덕분인지 마음의 부담이 많이 덜해졌다.
상단벽이 벌떡 서 있다.
문기가 다시 붙었다.
정상조 4명, 문기가 톱으로 나가고 영석 형이 세컨, 나는 써드, 귀철이 말번.
애들 대갑빠리 만한 낙빙이 팅겨져 왔다.
무시무시한 낙빙.
등반도 힘들지만 살벌하게 날라 오는 낙빙은 추운 날씨와 더불어 나를 더욱 얼어 붙게 만든다.
낙빙 피할만한 곳에 쭈그리고 앉아 우모복을 꺼내 입었다.
귀철은 움푹 파진 곳에 아예 자리보전하고 앉았다.
하단을 한 후, 많이 힘들어 했던 귀철이.
땀을 많이 흘려서 인가? 연신 춥다며 몸을 움추린다.
긴장을 해소하려는지 황소 같은 몸을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 쉰다.
생각보다 벽이 더욱 벌떡 서 있다.
새벽에 벌떡 서는 건 거시기 뿐만이 아니다.
욕지거리를 하며 펌핑이 한창인 심장을 진정시켰다.
"띠바 졸라 뻘떡 섰네!"
손이 시려 담배 꺼내기도 귀찮다.
괜히, 문기가 애처로워 보인다.
'쟈가 뭔 죄나!'
'게다가 이기 뭔 청승인지...'
나 같은 후루꾸 촌 넘, 전문 산악인 흉내 내다가 쪼다 되겠다 싶다.
그러나 고래가 저기 있는 데, 그냥 두고 가는 건 나의 가오가 허락질 않는다.
'자~ 가자 고래 잡으로..'
효가리 서외과 원장이 잘 잡는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만..
제길....
그러고 보니 홍식 형님의 솜씨도 무시무시하다고 했는데.
제길....
그런 고래라면 백번도 더 잡겠다만..제길..제길..이런 제길 콱콱콱.
상단 테라스에서 확보 중인 등반자들..
말이 테라스지 이건 완전 짜달뺑이..
귀철이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찍지 말라고...
위 사진은 여러분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찌릿해서 지린 건 , 나 뿐만이 아니었다.
등치가 크니 지리는 것도 오래 걸린다.
한 참을 지렸다.
그로 인해 토왕 여신은 애를 가져 부렀다.............그 애 이름이 개토왕폭이라나 뭐라나...(ㅡ,.ㅡ);;;;;
우리 뒤 팀 선등자 출현. 빨간 바지..저 아저씬 고수임에 분명할 것이다.
앞 팀 말구 아저씨..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재홍이 상단 포기하는 바람에 상단조가 4명으로 줄었다.
하여, 문기가 톱을 서고 영석 형이 세컨, 나, 귀철 말구.
위의 선등자가 후등자를 안타까이 보고 있다.
저 곳이 정상이라 생각한다면 그대는 토왕을 못 가본 사람이다.
'토왕 정상에 가 봤슈? 안 가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여~'
저기는 상단 테라스. 헉헉 거리는 후등을 내려다 보는 맘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문기가 힘들었나 보다. 퀵을 제대로 걸지 못했다. 루트 탐색 중.
얼음 기둥을 직상하자니 힘이 겁나게 들고, 왼쪽으로 붙자니 낙빙이 무섭고 이래저래 선등은 힘들고 어렵다.
빨간 바지 아저씨.
상단 등반 중 바일에 매달려 나랑 맞 담배질 한 사람이다.
라이타를 건네 주던 아주 친절한 아저씨이다.
낙빙 세례를 피하려 구덩이 속에 폭 들어 간 귀철(빨강 스페츠).
요상한 자세로 있다. 저기 뭔 자세? 빨간 건 바가지, 밑에 빨간 거 두 개는 스패츠.
'도대체 몸을 어떻게 그 구덩이에 우겨 넣은 거야?'
그 위 청색 우모복 나. 위에 영석 형.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영석 형이 완료했다.
내 차례.
뒤에 따라 오던 빨간 바지 아저씨 오자마자 잽싸게 후등 댕겨 확보 지점 구축해 놓고 치고 나갔다.
'오매, 조땠다.'
저 아저씨 뒤 따라 가다 낙빙 맞으면 골로 갈 것이다.
이 아저씨 내 뒤에 가다가 낙빙 맞기 싫은 지 죽기 살기로 바일을 휘두르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위, 톡톡 찍으며 거미처럼 올라간다고?
그런 소리는 개소리이다.
이 선등 아저씬 사정없이 얼음에 바일을 박아 넣는다.
얼음이 부서져라 바일을 콰작 콰작 박아 넣으며 오른다.
강빙에 쇳덩이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살벌하기 그지 없고,
수시로 들리는 '낙빙' 소리에 몸은 더욱 움츠려 든다.
더군다나 빨간바지 아저씨의 낙빙 외치는 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깝고
토왕골에 메아리 치는 '느아악' 소리는 망자의 호곡소리처럼 들린다.
'아이고! 아저씨요, 떨어지는 낙빙보다 아저씨 낙빙 외치는 소리가 더 무서워요.'
대기하느라 장시간 있어서인가?
몸이 굳어 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우벽 가장 우측 모양이 활짝 펼쳐진 디에드르 형태로 되어 있다.
보통 디에드르 형태의 등반은 발이 밖으로 나와 스태밍 자세를 취해야 발란스가 유지되고 안정감이 생겨
등반이 원활한데, 심장에 펌핑이 온 나는 안으로 자꾸 기어 들어가 버리니 팔에 무리가 가고 발란스가 깨져
등반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10m를 오르면 펌핑이 오던 손아귀가 5m 전진을 하기 바쁘다.
펌핑 오기전에 빨리 풀어야 한다.
쉬어야 한다.
펌핑 닥친 팔은 회복이 불가능이다.
손목고리가 없으니 그 정도가 더욱 심하고 가슴이 쫀득해진 나는 그 강도가 더욱 빡시게 와 닿는다
펌핑의 전조증상이 마구니처럼 손아귀에 스멀스멀 밀려 오는 게 느껴진다.
피피에 매달려 쉬었다. 죽을 지경이다. 뒤 따라 오던 귀철이 추워 죽겠다며 빨리 올라가라 성화다.
쿼크에 손목고리를 턱 장착한 귀철은 힘이 넘쳐나나 보다.
'이 자식아, 내가 지금 죽기 직전이다.'
안되겠다 싶어 피피에 매달려 팔을 흔들며 펌핑을 풀으려 노력했다.
바일을 놓칠것 같은 이 참담하고 한심한 현실.
'닝기리 조또!'
위 사진이 담배 피고 어쩌고 하던 그 당시의 사진이다.
귀철이 추월을 할려고 올라 서고 있고 나는 바일에 피피 걸고 옆으로 비켜 주고 있다.
빨간 바지 아저씨와 성심껏 사귀기 시작.
담배 그리고 꼰대 성님
이건 뭐, 후등자가 옆 팀 선등보다 더 버벅거리는 쪽 팔리는 상황.
빨간바지 아저씨가 힘이 드는 지, 스크류 한 개 박고는 쉬고 있다.
나도 바일 잇빠이 쎄레 박고 피피를 걸었다.
나:아저씨. 어사 와싸요?
빨:서울서요.
나: 뭔 산악회래요?
어쩌구 저쩌구 노가리질을 하는 데, 귀철이 또 투덜거린다.
"아! 형, 빨리 좀 가요! 추워 죽겠싸요."
"야, 좀 기달래라. 팔이 아파 죽겠다."
나: 아저씨 담배 한 꼬바리 하실래요?
빨: 조치요. 하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울려나 눈짓을 보낸다.
가느다란 담배 '에세 원'
나: 괜찮아요. 저도 있어요.
나는 물리는 맛이 있는 굵은 담배를 좋아 한다. 한 개피 빼어 물고 라이타를 찾아 뒤적였다.
그 아저씨 라이타를 내게 건넨다.
"라이타 드리까요? 여기 있어요." " 감솨합니다"
둘이서 사이 좋게 이바구질을 하며 노적봉을 굽어 보는 데, 무전기가 쉑쉑 거리며 울린다.
"학기야! 니 빨리 안 올라 오고 뭐 하노?"
"옆 집 아저씨 하고 담배 한 꼬바리 하고 있어요." 어쩌고 저쩌고...
무전기의 영석 형 목소리 옥타브가 '잇빠이 데스네'로 변했다.
"야! 쉬퐉, 선등이 추워 죽으라 카는 데, 니는 무신 담배를 피고 있노?"
"야! 그리고 니는 왜 산에 가면 아무나 하고 친할라 카는 데. 그거 하지 말라꼬 내 몇 번이나 말하드나?"
우리 세컨 꼰대 영석 형, 열이 잇빠이 받아 가꼬 무전기 너머 고함소리가 난리다.
'젠장, 올라가면 또 한소리 듣겠네.'
담배 핀다고 주머니를 뒤적이며 빨간 바지 아저씨에게 라이타를 얻으려 좌측으로 트레버스 해서 가는 도중,
귀철이 지가 먼저 가겠다고 나를 앞질러 오르기 시작했다.
한 2m를 올라갔나?
귀철이 느닷없이 추락을 외치며 내 옆으로 낙하.
내 오른쪽 어깨죽지를 스치며 밑으로 떨어졌다.
"귀철아! 괜찮나?"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철이가 추월을 하고 난 후, 나는 담배를 물었고 그 와중에 추락이 일어 났다.
황소 같은 귀철이 크램폰이 내 어깨를 찍었으면 아마도 내 어깬 아작이 났을 것이다.
담배 덕에 나는 그 나마 무사했었나?
시몽 아나콘다. 시몽 아나콘다.
손목고리가 있는 시몽 아나콘다만 있었다면 그 고생은 안했지 싶었다.
손아귀에 스멀스멀 스며드는 펌핑 아웃 느낌의 끔찍함이란.....
제길.
운동해야지.
상단 테라스 도착.
문기가 와들와들 떨고 있다.
나는 올라 오느라 땀을 뻘뻘 흘렸는 데.
영석 형 빌레이 보고 나 빌레이 본 문기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다.
영석 형이 성질 부릴 만 했다 싶었다.
문기에게 몹시 미안했다.
내가 올라 가자 마자 문기는 추워 죽겠다며 바일을 찍기 시작했다.
문기 공제선 너머로 사라지고, 영석 형도 사라지고.....
옆 팀 아지매 한 분.
"아저씨 낙빙 떨구지 말고 가세요!"
나를 못 미더워하는 듯한 그 말에 은근히 쫑이 받아 살곰살곰 걸고 올라갔다.
자일 하나에 나는 중간자 매듭, 끝자 귀철이.
귀철이가 떨어지면 나까지 잡아 챌텐데 하는 걱정이 있어 뒷꼭지가 계속 근질거렸다.
올라 오는 귀철이를 뒤 돌아 보고 또 돌아 보고.
'귀철아 떨어지지 마라. 니가 떨어지면 나는 완전 하늘로 나른다.'
그 새, 단련이 되었나? 나름 자세를 잡고 걸고 디디며 쉽게 올랐다.
토왕폭 정상에.
올라섰다.
토왕의 품 안에.
나는 중간자, 귀철은 끝자. 한 자일에 두 명의 등반자가 연등으로 올랐다.
귀철의 추락시 연속 추락할까 싶어 완경사에 접어 든 후, 주마를 이용 자기확보를 하고 올랐다.
빙벽을 하며 땀 흘려 보긴 처음이었다.
노적봉이 우뚝하다. 북사면 음영진 능선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4인의 우정길이 보이고
토왕 상단에 올라 선 영석 형. 표정이 해 맑다.
영석 형의 자켓이 아바타가 토왕골을 굽어 보고 있다.
나의 표정에 그간의 역정이 녹아 있다.
바람 한 점 없고 포근했던 날. 몇 번을 가 본 중 제일 따따했던 날씨.
이제 표정이 많이 풀렸다. 문기의 웃음이 상쾌하고 자신감에 가득찬 귀철의 표정이 굳세다.
해 냈다는 마음이어서인지..귀철이 턱이 한 마디는 더 튀어 나왔다.
'니는 턱이 무기이자 흉기여~'
고마운 나의 동료 자일 파티들
토왕은 내게 과분한 대상지였다.
준비 되지 않은 자에게 토왕은 지옥 그 자체이다.
고도감으로 전해지는 공포, 낙빙으로 인한 모골의 송연함.
체력 부족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빈약하기 그지 없는 정신력.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이끌어 준 고마운 나의 자일 파티들.
함께 오르며 힘이 되어 주고 격려해 주고 위안이 되어 준 나의 자일 파티들.
고마운 마음.
이제는 내려 가라 토왕신이 속삭인다.
내려 갈 시간이 되었다. 지는 해가 아름다웠다.
정상에 오른 문기의 무전 송신 소리는 잊을 수 없다.
"형! 빨리 올라 와요! 여기 완전 환상이에요!"
'토왕의 정수리에 우뚝 선 그대 모습은 님의 침묵속에 찬란하여라.'
에필로그
바쁜 핑계로 등반기가 많이 늦어 졌다.
조금 쓰다가 손 놓고 꾀부리다 이제서야 마무리 지었다. 어언 4개월.
돌이켜 보면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고드름 깨어 입에 물으며 타는 목마름을 달래었고,
두근 거리는 심장의 울림은 악우의 정으로 어루만졌다.
무사히 토왕의 품에 안기게 해 준 선후배들과 밑에서 서포트 해준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맨 앞에서 톱을 서며 끌고 간 문기와 후배들에게 토왕의 맛을 보게 해 준 영석 형,
함께 한 귀철에게 감사한다.
Y계곡에서 회원들이 끓여 준 라면의 맛은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다.
훗날, 뒤 따라 올랐던 토왕, 언젠간 제일 먼저 올라 보리라.
"니 토왕 해 봤나?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
2012. 봄 학기
첫댓글 고맙습니다... !!!
좋았고...
고생했다.!
이럴려구,,,이렇게 감동을 주시려고,,,어떻게 또 눈물이 나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ㅎㅎㅎ,. 형님은 직업을 잘못 선택한거 같아요,....^^
뭐라 말해 줘야하나?
아침부터 감동이네요. 대박임다.!!!
등반기 읽고나니 제가슴이 꿍꽝거려서 미칠것같아요
이건 또 뭔가요~
고생한만큼 오래토록 남아있겠죠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선배님!
학기야 니가 내친구인게 자랑스럽다 ㅎㅎㅎ 애조지마르면 거시기가 마른다는건가?
그날이 오면..
빨간 자일 처럼
정열에 불타 오른다
은빛 피켈처럼 악우의
우정이 반짝인다.
그런날이면,,
파란 빙폭에 붉은 장미꽃이
활짝 피기 시작한다
하나 ..
둘 ..
셋 ..
넷 ..
그 무엇인가을 위하여...
토왕성 폭포을 등반하면서.
1994.겨울 어느날.
한폭의 소설.영화처럼 느꼐짐니다.
토왕폭의.위용속에서
한폭의 드라마같이...저희 카페에 스크랩 허락해주시면 ....
울 회원 재홍이와 저희 모든 회원들에게 아주 좋은 교육과
정보의 ........그럼 너무 잘읽어습니다.......감사....
아~!
시바~~
등반기를 머 이렇게 잘~쓰는것이여...!
ㅎㅎㅎ
학기아우님 스타일로 한줄달었네..ㅎㅎㅎ
아-씨!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네!
명작 잘 읽었다!
시간 만들어 내 한 턱 쏜다...기둘려!
홍가오를 지금부터 뫼우의 공인 작가로 등극시킴..
이 작품이 탄생 하기 위하야....작년 겨울부터 꿩이 그렇게도 울었나보다..
근데 상단위에 막걸리집이 없어졌나?
예전엔 정상 등반하면 기념으로 막걸리 한잔씩 하고 내려오고 그랬지~~~..
학기는 우리에게 때로는 감동을..때로는 실망을 주곤한다.
어렇게 재미난 등반기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등반중에 한 꼬바리 하면서 자일파티를 추위 속에서 더 지체하게 했던
부분은 실망으로 다가온다! 글 너무 재미나게 읽었고 앞으로 늘 감동만 주었으면 하는 마음!!.
우와 4개월에 걸쳐서 조금씩 쓴다는게 참 힘든일일텐데.... 잘 읽었습니다. 등반기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구요.
아주 매너있는 산사나이 모습으로 토황의 정수리에 서서 궐연을 한대물고 포도주를 한 모금하면서 전화해라!!! 나는 아주 아주 멋지게 등반 했노라고
그러면 내가 준비하마 축하주를 !!!
학기!이렇게 부르니 빵에있는,,, ㅋㅋ그건아니고 !토왕에 고래가 있다구??글 읽고 구미가 확 땡기는것이 이나이에 또,,,할일이 있었나???
암튼 오래만에 시원하게 읽고가네...!^^*
헛..많이 달렸네.
모든 선,후배님들 읽어 주셔셔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 보니 표현이 거시기 한 부분이 더러 있는 데, 현장감을 살릴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태백의 강명성 님.
별 것 아닌 글, 옮겨 가신다니 제가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항상 ,안등 즐등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