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그분의 손 안에서
50여년을 성모님의 군사로 활동
남혜숙 마리아 광주대교구 남동성당 전교의 모후 Cu. 단장
전남 여수시 동산동성당에서 1956년 8월14일 세례 받았으니 어언 5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벌써 70을 바라보면서 내 삶에서 주님을 모르고, 성모님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5형제가 일요일이면 소풍가듯이 쫄랑거리고 따라다니면서 그때부터 신앙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당 갈 때마다(일요일. 교리공부) 우유가루, 옥수수가루, 밀가루, 사탕 등을 타다가 밀가루 우유가루는 밥솥에 찌고 빵 등을 만들어서 학교친구 동네친구들과 나누면서 모두들 성당에 다녔습니다. 더욱이 외국신부님이 계셔서 신부님께서 한국말을 하시는 게 신기해서 더욱 신바람 나게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교리공부 할 때는 교리문답 책을 외우면서 신부님 앞에서 벌벌 떨며 시험보고, 묵주기도며 삼종기도, 아침에는 조과 저녁에는 만과를 바쳐야 잠자리에 들 정도로 열심히 하였습니다.
수녀님께서 중학교 1학년 때 레지오 마리애를 알려주셔서 시작했는데 벌써 50년 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처음에 했던 활동은 일요일이면 단원들하고 바닷가며 공원이나 유원지 등을 다니면서 휴지를 줍는 일이었습니다. 가끔 지나가시던 어르신들이 어디서 왔는가 물어보시는데 동산동성당에서 나왔다고 말씀드리면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우리 성당에 오셔요” 하면서 깔깔 웃곤 하였습니다.
무교인 시댁 식구들 13명에게 전교, 세레 받게 해
고인이 되신 조 비오 신부님께서 신앙생활 안에서 레지오의 중요성을 강의하시면서 레지오는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해야 된다는 말씀을 듣고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끈을 놓지 않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년기에는 직장관계로 교중미사를 다닐 수 없어 새벽미사만 다니면서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교중미사를 다니겠다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짝을 주시라고 노래 부르듯이 기도하면서 배우자를 만나 광주에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결혼해서 무교인 시댁식구들 사촌까지 한분씩, 한분씩 세례를 받게 한 것이 13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느님보시기에 ‘마리아 잘 했구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병원에 근무하면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가두선교며 방문선교를 하면서 교리봉사까지 나름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꾸리아 간부 15년차 때는 본당에서 선교 봉사상을 주셔서 부끄럽게도 받았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본당은 광주대교구 남동성당(5.18 기념성당)입니다. 2005년 10월 전라남도 도청이 무안으로 이전되면서 공동화 현상으로 신자수도 많이 줄어들다 보니 단원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2개 꾸리아 48개 쁘레시디움이었는데 전출을 가고 해체되면서 지금은 1개 꾸리아 16개 쁘레시디움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꾸리아는 인근에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이 있어서 두 병원의 쁘레시디움이 속해 있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바쁜 병원 일과 중에 주회합을 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단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남대병원에서 레지오 마리애 한 쁘레시디움이 1995년도에 어렵게 창단되었는데 6개월 만에 두 개 쁘레시디움으로, 1년 후에는 세 개 쁘레시디움으로 분단하면서 꾸리아 간부가 본당에서 레지오 하고, 병원 가서 레지오를 하면서 주님께 기도하며 성모님께 온전히 매달리면서 참 즐겁게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전남대병원이 화순과 노대동에 분원이 생기면서 직원들 발령이 나고 1년에 한 번씩 순환근무를 하다 보니 지금은 모두가 해체되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활동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활동은 가두선교였고, 저는 자유롭게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관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레지오 단원으로 기쁘게 활동할 것
새롭게 꾸리아 단장 직책을 맡고 6년차인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조직을 활성화 하지 못하여 쁘레시디움 3개가 해체되고 단원 수는 줄고 어떤 쁘레시디움은 단원 2명만 남게 되어 혼성팀으로라도 살려보자고 간부들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간부들과 함께 단원확보에 2개월여 동안 전력을 쏟아서 성가대원 한분에게 레지오 마리애를 설명해주었더니 입단하고 세분은 남성단원들의 도움 받아서 입단하여 2명에서 지금은 2개월 만에 6명이 되어 엄청 씩씩하게 주회합을 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첫 주회를 실시한지 3개월 만에 코로나19로 인해 주회합이 중단되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레지오를 확장하기 위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매일 묵주기도와 미사를 봉헌하면서 온전히 성모님께 매달렸습니다. 저희 기도가 주님께 다다랐는지 주임 신부님께서 연차 총 친목회를 마치고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해체 팀은 없고 3개 팀을 다시 살리신다는 말씀에 가슴에서 뜨거운 성령의 감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20년에는 본당에서 2개 쁘레시디움, 조선대병원(현재 3개 쁘레시디움)에서 1개의 쁘레시디움 등 3개의 쁘레시디움을 창단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고자합니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19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고 매주 모여 기도하고 활동하던 단원들과의 주회합도 못하면서 일상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시간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루속히 미사에 참례하고 주회합이 재개되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기도드립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신앙생활을 뒤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은 저의 인생에 폭풍이 지나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큰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심을 믿고 있었기에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의 큰딸이 난치성 희귀병이 생겨 2015년에 2년6개월 동안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39세 나이로 하느님 품으로 떠나고, 저의 장부는 40여년 병고에 시달렸으며 나머지 20여년은 투석을 하다 2017년 68세에 하느님 곁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것같이 나의 아프고 쓰린 마음을 당신 사랑과 자비로 보듬어 주심에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 조 비오 신부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관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활동 하면서 본당신부님을 도와 신자들과 함께 봉사하면서 늘 기쁘고 즐겁게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