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어디까지 왔나 - 언어 형식을 중심으로
김준오, 부산대 교수
1.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학을 흔히 분단 문학으로 규정 짓는다. 물론 이
용어에는 역사적 현실을 고려한,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실 신문학이 시
작된 개화기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 50주년을 맞이한 오늘에까지 문학과 역사적 현실
과의 관계는 예외없이 근본적인 문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이 용어가 산업사회의 일대 전
형기에 들어선 70년대에, 그래서 사회의식이 필수적인 요청 사항이 되었던 시기에 집중적으
로 거론된 것은 아이러닉하다. 이것은 생산 양식의 근대화가 정치적 근대화를 희생시킨 하
나의 보상 차원이나1) 심지어 독재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는2)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분단 문학은 한과 염원이 서려있는 역사 의식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 심장한 용어
임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가 식민지 시대의 문학처럼 문학사에 있어서 시대 구분이 될 수 없
음은 물론이다. 기술의 편의상 본질 개념보다 순서 개념인 시간 단위로 10년씩 묶어 문학사
를 기술하는 것이 예사로 허용될 만큼 해방 50년의 현대 문학은 다양하게 변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 50년의 현대 시사도 여러 의미 단락으로 분할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모든 현대시는 영속적인 경향(전통적)이나, 때때로 지배적인 경향(시대상황의 특징)이나, 두
드러지게 미래 지향적인 경향((실험적)에 참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문학사 서술이 반드시
참조해야 할 법칙이다. 현대시의 변화는 지배적인 시 양식과 모순 관계로 들어서는 실험시
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만 현대시의 변화가 이런 실험시들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
다.
여기서 한 편의 시 속에 담겨져 있는 시대의 흔적은 시인 을 추구한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 를 추구한 데서 얻어질 수 있다는3)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사란 시의
단어가 보여주는 변화의 역사라 해도 이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다. 시어
의 변화가 바로 현대시의 변화에 상응하는 것은 장르 조건상 언어가 가장 강조되는 곳이 시
장르라는 장르 비평적 관점이나 시가 어디까지나 언어 구조라는 형식주의 관점에만 근거하
지 않는다. 언어 그 자체는 사회적 환경의 일부이며 이데올로기적 소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의식이 현실과 존재를 굴절시키는 관점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언어와 그 형
식(언어학적 형식이 아니라 발화의 형식)이다4). 시적 언어가 보이는 변화가 사회적이거나
지적인 여러 경향의 압력에 기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시의 서정성 회복을 목표로 한 현대시 반성5)은 시의 위기 의식으로까지 확산되는 심
각한 국면을 보이고 있다. 현대시의 한 본질적 측면을 드러낸 이 반성은 현대시의 창조에
실패하는 전통적인 서정시 이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것은 서정시의
일반적 특성을 정의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포기해야 됨을 시사하지만 무엇보다 현대시의 변
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해방 50년의 현대 시사를 기술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현대시의 언어를 중심으로
현대시의 변화 요인과 변화 과정을 추적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변화 과정이 지금 현단계
현대시라 진단하고 전망까지 가져 보는 전사가 됨은 물론이다.
2.
해방 공간의 현대시가 좌. 우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민족문학의 수립을 목표
로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합목적적 문학 운동에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 전제되
는 것은 강요사항이고 이것이 국어의 정화작업으로 구체화 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다시
말하면 해방 공간의 현대시는 무엇보다 모국어를 회복하고 모국어가 시어로 정착되는 상징
적 의미를 띤다 하겠다. 당대 청록파의 자연시들이 열광적으로 읽힌 것은 그 모국어로 표현
된 자연애가 모국어로 표현된 민족애의 등가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해방
공간의 현대시는 민족시 로 불릴 만하다6). 해방의 감격이 미래 지향의 복음주의적 자연애
로 변용된 박두진의「해」는 이미지와 리듬, 그리고 의미의 조화를 의도한 언어 의식의 산
물이다. 4음보의 안정된 리듬과 상징적 수법이 구사된 서정주의「밀어」는 광복의 기쁨이라
는 의도적 의미가 놀랄 만큼 완전히 아름다운 서정으로 변용되어 오히려 해방 공간의 시로
어울리지 않을 정도이다.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님아,//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해방 공간의 이『귀촉도』시편에서 우리의 고전 탐구가 모국어 개발의 매개였다. 「밀어」
처럼 언어를 배열할 때 언어의 율성을 최대한 살려 일상 언어와 구분되는 부드럽고 여유 있
는 시적 언어를 만들어 낸다. 선택한 소재 뿐만 아니라 이런 리드미컬한 언어 형식에 의해
서 그는 전통적 정서를 환기시킨다.
김윤식이 조지훈의 「산상의 노래」를 해방 공간의 희귀한 시 로 규정했을 때 그가 주목
한 것은 해방의 감격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굴절되지 않기 위해 시인의 개인적 혼의 문제로
처리된 데였다7)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古木에 못박힌 듯 기대여/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갈구하며
/울어 왔는가//아아 이 아침/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은은히 울
려오는 종소리.//이 제 눈 감아도 오히려/꽃다운 하늘이어거니/내 영혼의 촛불로/어둠 속에
나래 떨던 tot별아 숨어라.
해방 공간의 시는 새로운 세계의 송가이거나 순국 선열에 대한 추도시가 주조이고 또 주조
이어야 한다. 서정시의 하위 유형으로서 송가와 추도시는 장중하고 진지한 어조가 필수적이
며 미적 거리의 조정이 잠정적으로 유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진지한 문어체의 남
성적 어조로 일관하고 있는 유치환의 「울릉도」처럼 이미 송가나 추도시가 아니다. 그 대
신 미적 거리가 적절히 조절되고 있는 절제를 엿볼 수 있다. 김윤식은 이것을 정신사적 관
점에서 다분히 루카치의 어조를 빌려 해방의 감격이나 이데올로기에 혼이 파산되지 않은 희
귀한 예외로 규정한 것이다.
당대의 송가와 추도시는 가장 강력하게 대중을 향하여 발화하는 기회시 의 전형적 형식들
로서 문학사에서 용인된다. 이것은 6.25 전쟁을 제재로 한 50년대 초의 전쟁시나 60년대
4.19 헌정시, 그리고 80년대 민주화 투쟁에 희생된 인물들을 추모한 정치시들로 연속된다.
그러나 기회시는 체험의 적법성에 무방비로 노출되거나 그 지나친 합목적성 때문에 흔히 미
적 거리의 희생을 수반한다.
해방 공간은 좌. 우 이데올로기의 대립. 갈등으로 빚어진 혼란과 무질서의 정치 시대로 그
당대적 특징이 드러난다. 해방 공간의 시를 시인이 없는 시 의 문학적 위기8)나 20년대 초
감상적 낭만시처럼 형태에 무관심한 시 형태의 방종이라고 했을 때9), 이것은 물론 좌익 계
열의 이념시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당대 좌익 시들은 식민지 시대의 카프시처럼 여전히 사
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선전 도구나 생산 양식이었다. 이런 합목적적 이념시들의 언어는 공통
적으로 환기적 언어가 아니라 폭로적 언어가 지배소가 된다. 이데올로기와 미학적 생산 양
식이 모순 관계에 놓인 당대 이념시들에서 이데올로기는 텍스트를 압박하여 무질서 속으로
빠뜨린다. 여기서 무질서란 의미의 무질서가 아니라 형식의 무질서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념시들의 언어는 철저하게 지시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용악의 「오월의 노래」는 이데올
로기적으로 굴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호적인 관념적 언어 대신 일상적 언어를 구사하
여 구체성을 획득한 점에서 당대 이념시들의 예외가 된다. 특히 젖가슴 헤친채로 젖가슴
헤친채로/잠든 에미네며 딸년이랑/모두들 실상 이쁜데 의 「시굴사람의 노래」나 서술체의
산문적 진술로 일관한 「하늘만 곱구나」는 당대 다른 이념시들과는 달리 적대 감정의 격렬
한 어조와 구호적인 절규 대신 향토적이고 감각적인 우리말을 시어들로 선택함으로써 해방
공간 서민의 고달픈 삶의 정서를 낯익은 인간주의적 서정으로 승화시킨 민족시다. 한자어의
자제가 당대에는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라는 의의를 띠고 있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제 말의 백석 시를 상기시키는 이용악 시는 70년대 민중시로 이어지는 리얼리즘 시의 한
가능성이다.
6.25 체험을 제재로 한 50년대 전쟁시는 다시 고통의 언어로 긴장한다. 전쟁은 선악 이원론
의 경직된 사고를 낳는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전쟁시는 이런 문맥에 놓인다. 그러나 50년대
시는 전쟁의 비참함을 매개로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전쟁시의 일반적 법칙에 따른다.
유치환의 「기의 의미」에서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폭력이고 조지훈의 「다부원에서」에는
비참과 허무 그 자체로 해석되고 있다. 구상의 「초토의 시」는 다음과 같이 비가적 세계관
으로 전쟁을 수용하고 있다.
너를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모두/ 비명 뿐이었지(초토의 시.15)
50년대 후반기 부부의 이미지를 산봉우리들로 형상화한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는 심리
적 거리를 확보한 만큼 초기 전쟁시들의 직서적 언어를 극복하고 비유적 수사를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한, 규범적인 휴머니즘 시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다분히 도전적인 서민의 어조를 채용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전쟁시에 있어서 인간성의
재발견은 당대 실존주의의 본격적 수용과 무관하지 않다.
50년대 현대시 전개의 한 중요한 경향이었던 모더니즘 시가 6.25 동란에 의해서 촉발된 것
은 역설적이다. 전봉건의 「철조망」, 「강물이 흐르는 너의 곁에서」, 신동문의 연작시
「풍선기초 7호」, 김광림의 「꽃의 반항」에서 전쟁은 극한 상황의 체험으로서가 아니라
관념적 차원으로 추상화되어 당대 체험시들과는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특히 신동문의 연
작시는 30년대 반생명적인 완전한 산문체인 이상 시의 부활을 보는 느낌을 준다. 6.25를 세
계사적 시각 속에서 묘사하고 가치중립적인 세계관 을 도입하여 일종의 기호의 세계에 접
근한 비정한 현상주의를 모더니즘으로 정의한 것은 김윤식의 날카로운 통찰이다10) 말하자
면 당대 모더니즘 시는 엄연한 현실을 추상화하는 수준으로 최대한 미적 거리를 확보한 자
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반서정주의의 새로운 언어 의식을 보인 점에서
주목된다.
당대 청록파류의 전통시 존재를 한국 시단만이 가지는 슬픈 숙명인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비극 이라는 인식에서11)출발한 후반기 동인의 모더니즘 시 운동은 명백히 전통 서정주의
의 반성이다. 김규동의 「나비와 광장」,김경린의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에서 언어는 즉
물적이며 자연과 토속적 이미지 대신 문명의 이미지를 비논리적으로 연결한 추상적 세계다.
이것은 현대성을 현실원칙에 대한 추상원칙 의 방법론에 둔12)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론에
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향에게 언어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의미에 전연 구속되지
않은 순수. 절대의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 절대 이미지는 이질적 이미지들을 병치시키는 몽
따쥬 기법의 산물이다.
모래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형태시의 요소를 곁들인 「바다의 층계」에서 언어는 이미 지시적 기능를 상실하고 난해
한 의식의 미궁을 환기할 뿐이다.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학은 30년대 이상 시와 三四文學 을,
김춘수의 무의미시와 60년대 현대시 동인인 이승훈의 비대상시를 연결시키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후반기' 동인의 모더니즘 시는 문명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면서 우수에 차 있다. 왜냐하면
박인환의 「어린 딸에게」에서 볼 수 있듯이 기계 문명의 접촉은 비참한 전쟁이 그 매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명을 철저하게 가치의 상실로 해석한 그의 「목마와 숙녀」는 그러므로
매우 감상적이다.
당대 모더니즘 시론에서 이미지는 결코 장식물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 로 부각된다13) 따라
서 모더니즘 시의 언어 의식은 은유의 창조로 집중되고 은유는 시적 개성의 척도이자 현대
성의 기준이었다.14) 뿐만 아니라 이 은유는 유추에 근거하지 않는 이미지들의 돌연한 결합
에서 현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회화성을 지성의 산물로 한정하는 것은 이미 김기림의 시론이나 30년대 회화시에
서 경험할 수 있다. 방법론적 자각으로서 이 지성에서 반서정주의는 자연스럽게 배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기 동인을 비롯한 50년대 모더니즘 시의 관념어들이 서구어를 일인들이
번역한 일상 한자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을 때15) 이것은 50년대 모더니즘 시의 치명
적인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언어 탐구에서 현대시의 가능성을 모색한 김춘수의 성과는 역사가 부재하는 본질의 쇠약
함 과 현상의 엷음 이라는 비판에도16) 불구하고 매우 크다. 그는 해방 공간의 『구름과 장
미』에서 이국적인 서정을 보였지만 50년대 후반 서정시가 인식의 틀임을 보여 주는 일련의
시편들을 발표했다. 「꽃」에서 사물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언어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이
때 언어는 바로 명명 행위가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일체의 선입관이나 기성 관념을 유보시키는 현상학적 환원은 그의 무의미 시론의 핵심이
다. 「꽃」은 이미 이런 현상학적 환원을 예감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
다 의 은유로 시작되는 「꽃을 위한 서시」에서 언어는 존재의 본질을 오히려 왜곡시키는
위험한 가능성이다. 인식의 시에서 보인 그의 시관은 시를 존재의 집으로 정의한 하이데거
시론에 닿아 있으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과 사물의 관계로 대치시킨 그의 작품 세계
는 매우 릴케적이다. 신동집의 「잎이 가지에서 떨듯이」나 「나는 무엇을......」등도 존재
탐구의 시편들이다. 그러나 그의 인식의 시는 사물의 존재보다는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는
쪽이다. 이런 인식의 시는 현대 시사에서 시적 깊이를 획득했으나 흔히 서정성을 희생시키
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당대 박성룡. 김종삼 등의 시들은 이미지의 배열에서 리듬은 더 이상 고려되지 않고 그 대
신 시적 긴장을 유지하여 서정이 지적으로 통제되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띤다. 그러나 지속
적 정서인 한을 방언과 토속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강」은 그 느릿
하고 부드러운 어조가 서정주의 어조에 닿아 있는 전통시다. 이것은 70년대 고어를 적절히
부활시킨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로 연결되는 전통적 가락의 맥을 형성한다.
시어의 변화는 50년대 또 하나의 시적 경향인 풍자시에서 나타난다. 풍자는 원래 인간사를
지향하는, 그리고 진지성과는 거리가 먼 시민적 양식이다. 풍자는 무엇보다 어조에서 변별된
다. 이방원의 「하여가」 제목을 패로디한 송욱의 「하여지향」에서 주된 풍자 수단은 동음
이의어를 반복하는 언어 유희, 그러니까 언어 골계다. 이 언어 골계에 의하여 당대 속악한
현실과 지배체제의 기만성을 풍자한다. 시정어의 대담한 수용은 언어 골계와 더불어 시어의
확산에 기여한다.
그러나 시어의 확산은 전영경의 풍자시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풍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아이러니의 기교를 적절히 원용하면서 시정어는 물론 온갖 비속어와 욕설을 최
대한 동원한다. 뿐만 아니라 판소리 어조와 서민적 넋두리도 풍자적 목적을 효과적으로 수
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우미관 근처」,「사본 김산월 여사」,「인생이란
무엇인가 묻는 주착없는 청년」,「희화소묘」 등의 풍자시들이 언어의 절제를 잃고 요설화
되어 있는 점이다. 그의 요설은 엄밀한 언어 선택과 압축성을 요구하는 전통 시문법을 해체
하면서 추악한 삶과 정치적 비리를 남김없이 폭로한다. 이런 시어의 요설화는 당대 연작시
나 장시의 시도와 더불어 현실과 인간의 내면 의식을 다양하게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인식의 틀이 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의미 심장하다. 전영경의 하급 문체와 요설체는 60년대
김수영을 거쳐 80년대까지 현대 시사에서 뚜렷한 문체적 전통을 형성한다. 50년대 풍자시는
현대시의 방향성을 전망하게 해 준 점에서 시사적 의의를 지닌다.
3.
50년대 말에 이미 배태되었던 참여 문학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순수. 참여의 양
극화가 노정된 것이 60년대 시의 첫인상이다. 김수영은 그 첫인상의 대표적인 전범이다. 그
러나 그가 참여시의 기수가 되기 전에 모더니즘 시 운동에 참여했던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 형식의 예술성과 내용의 산문성, 곧 현실성이 시의 전부이고 이것이 이른바 온몸
시학 으로 구현되었을 때17) 그는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현대시의 가능성으로
서 참여시를 쓸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에게 참여시란 단도직입적인 이데올로기 선전이나
사회 역사적 상황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 를 겨냥하는 것이다. 4.19 혁명의 좌
절을 노래한 「푸른 하늘을」은 참여시의 이런 의미망에 놓인다.
어째서 自由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革命은/왜 고독한 것인가를//革命/왜 고독해
야 하는 것인가를.
이것은 60년대의 과제가 자유 에 있음을 천명한다. 자유는 그의 시정신이며 시의 형성 원
리다. 형식도 내용도 모두 이 자유로 수렴된다. 해방 공간의 혼란을 정신사적으로 조명하는
자리에서 이상과 현실, 본질과 현상, 과학적인 것과 심정적인 것이 분열된 애매모호한 상태
에 놓인 세계를 김윤식이 분단 현실로 지정한 것과는18) 달리 김수영이 우리의 사고가 이데
올로기적으로 고착되는, 다시 말하면 문화를 단 하나 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한 획일주의
로 해석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의 참여시가 겨냥한 변화 란, 그래서 시의 현대성을 획득
하게 되는 것은 정치적 자유의 결여로서 이 획일주의를 극복하는데 있다. 놀라운 것은 자유
는 다름 아닌 혼란 이며 이것은 「전화 이야기」에서 잡음 이라는 시적 상관물을 얻는다.
전화의 혼선을 그대로 발췌.조립한 형식은 전위시들에서 볼 수 있는 패로디 기법이다. 그래
서 김수영 시에서 시의 언어와 일상 언어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으며 구분될 필요도 없다.
행에 의한 발화 형식은 시를 시답게 하는 형식적 조건이다. 시의 형성 원리로서 김수영 시
의 자유는 행의 배분에서도 유감없이 작용한다. 그의 경우 자유로운 시행은 일상적 언술 행
위에 보다 밀착되며 현실 비판의 냉철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사상적인 것을 추진하게 된
다.
풍자는 김수영의 참여시의 중요한 양상이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이 한국문학
사」는 소시민을 야유하는 자기 풍자를 보인다. 이 풍자 양식은 혁명의 좌절 이후 소시민의
좌절을 주범으로 파악한 산물이다19). 그의 참여시는 전형적인 시민시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그의 참여시가 비속어.악담. 야유.선언 등 비시적 일상 언어를 자유롭게 선택
한 요설적 성격을 띠고 있는 점이다. 그의 유명한 反詩 선언은 통사체의 전통을 파괴한 하
위 모방의 선언이다. 그의 요설체와 해사체는 뒷날 현대 시사의 공식 문체가 되게 한 시의
혁명이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참여시의 한 전형이면서 차라리 하나의 교훈이다. 이 작품
은 외세와 지배 체제의 허구성과 폭력을 배격하는 민중.민족.민주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
특수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가라/四月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
시적 진술이 명령의 어조로 일관하는 것은 전적으로 언어의 기능 중 청자 지향의 지령적
언어 기능이 가장 우세한 데 기인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80년대 노동시에서 재연되었듯이
소박한 모사론의 한계를 이미 지니고 있다. 시는 누구나 이해되도록 단순해야 되고 그래서
다수의 동의를 획득하게 된다는 이 모사론은 매우 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성에 종속된 나머지 현실을 강화. 확대하는 예술성과 상상을 기만의 원천으로 추방하고
기교의 감소 원칙, 곧 단순화 원칙을 고수한다. 「껍데기는 가라」의 동어 반복과 언어 절
제, 그리고 이미지들의 알레고리화는 모두 이 단순화 원칙에 환원된다. 이런 언어 형식은
알맹이/껍데기 ,흙가슴/쇠붙이 의 의도적 대립 구조로 구체화되었듯이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
라는 인식의 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벼는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 로시작되
는 이성부의 「벼」는 단자적 저항이 아닌 공동체적 저항과 민주의 고통스러운 삶을 서정적
으로 형상화시킨 언어의 진지한 천착을 보인, 예외적인 참여시다. 그러나 이성부. 조태일. 최
하림이 보인 민중시가 현대 시사의 주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70년대를 기다려야 했다.
시어의 변화 시도는 이런 참여시와 대극의 위치에 있는 순수시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수행
된다. 참여적 민중시에서 언어의 문제는 소재 선택과 직결되지만 순수시에 있어서 그것은
소재를 처리하는 기법과 보다 연관된다. 김춘수는 연작시 「타령조」에서 장타령의 사설조
를 주입하여 자유시에서 자동화된 리듬과 의미의 해체 작업에 착수했다.
김춘수의 무의미 시론은 언어 기능상 산문의 언어는 의미를 지시하는 기호(수단)이지만 시
의 언어는 그 자체가 사물 (존재)이라는 장르론적 관점에 입각해 있다. 말하자면 무의미는
다른 문학장르와는 변별되는 고유 영역이고 무의미시는 본질적으로 순수시인 것이다. 언어
의 의미 기능을 무화시키려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그가 역사는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는
허구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체험적 인식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실천은 일차
적으로 산문시 또는 회화시처럼 서술적으로(사실은 묘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
면 무의미 작업이란 사물에 대한 일체의 기성 관념을 유보시키는 현상학적 환원이다. 언어
기능, 그러니까 이미지의 기능면에서 그는 현대시를 서술적(descriptive) 심상의 시와 의미
전달의 수단인 비유적(metaphorical) 심상의 시로 계보화 한다20). 궁극적으로 무의미시는
대상이 무화된 절대적 심상, 곧 모방적 요소가 전연 없는 , 비논리적으로 결합된 이미지에
의해서 구조화된 추상시다.
무의미시는 의미 대신 익명의 정조를 환기한다. 언어의 지시적 기능을 극소화하는 대신 언
어의 심미적 기능을 극대화 한다. 이런 심미적 기능의 강조는 장르 특유의 보상 형태로 파
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미 시는 그에게 있어 그대로의 사물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내
면세계)에 도달하는 독특한 인식의 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무의미시가 고대 설화적
인물인 처용의 탐구에서 시상이 촉발되고 형상화되는 점이다.
바다가 없는 海岸線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
었다(「처용 단장1의 Ⅳ」)
그는 참여시나 민중시의 우리 를 허구로 부정하는 유아론적 고립주의자다. 따라서 바다 와
같은 상징도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상징이다. 그는 70년대의 「처용단
장」2부에서 의미가 스며들 혐의가 짙은 이미지마저 제거하고 언어의 소리, 곧 리듬만으로
시가 되는 무의미시의 극단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그의 무의미시는 전통의 의미시에 대한 충격적인 도전이다. 실상 무의미 시는 초현실주의
내면탐구와 일치한다. 현대시 동인들의 순수시 운동은 수수께끼 시, 가짜의 모호성, 부정직
의 비난을 받으면서 내면 탐구와 언어 실험에 집중했다.
김춘수의 의미시와 무의미시를 이승훈은 대상시와 비대상시로 명명한다. 그의 비대상 시론
은 일종의 해체주의적 의심하기에서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시의 대상이 되어 온 인간의 삶
은 인습화되고 자동화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는 인식론적 회의를 제대로 제기하지 않
았다. 삶에 대한 인식론적 회의는 시 자체에 대한 회의의 등가물이다. 따라서 시쓰기는 결코
인습적이고 관습적일 수 없고 오히려 이것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대상의 근거가 허구라는 인식론적 회의에서 비대상시가 탄생된다. 여기서 비대상이란 시인
의 내면세계며 다라서 비대상시는 세계 상실의 시다. 문제는 이 내면 세계가 좀처럼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일종의 무 이며 비대상시는 언제나 이 무 의 일부를 포착하려는 고심의소산
이라는 사실에 있다. 「어휘」에서 언어는 표현수단이 아니라 놀랍게도 대상이 된다.
그는/意識의 가장 어두운 헛간에/부는 바람이다//당나귀가 돌아오는/호밀밭에선/ 한 되 가
량의 달빛이 익는다.
그의 언어가 잠재 의식 그 자체라는 점에서 라깡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적
언어로서 일상어의 관습과 문법을 벗어나고 이 속에서 이미지들은 비논리적으로 결합된다.
그에게 시적 언어는 은유다. 그러나 이 은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지 않고 철저하게 비동일성
에 근거한다. 비대상시가 난해시의 전형적 표본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김영태의 「첼로」는 공감각의 원리로서 음악의 선율을 회화의 이미지로 형상화시킨 언어
감각의 극치를 보인다. 오세영의 「그릇.1」에서 시어는 실용언어를 뒤집어 놓은 것이며 이
것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내면적 깊이를 가능하게 한다.
현대시 동인들은 내면 세계를 탐구하거나 외부 세계와 사물을 내면화한다. 그들에게 시쓰
기란 인식의 자유다. 그래서 현실 원칙의 의식의 통제마저 거부하고 자유 연상의 내면 세계
를 비동일성의 은유나 몽따쥬 기법에 의해서 형상화한다. 인식의 자유는 언어의 자유와 구
분되지 않으며 이 언어의 자유가 언어파 로 불릴 만큼 언어의 기능을 다양하게 실험하는 시
의 자율성과 예술성을 획득하게 했다.
四季 의 동인 정현종의 시에서 언어는 비교적 짧은 시행을 타고 가볍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가고 있어 정서적으로 긴장하거나 과장하는 법이 별로 없다. 그의 시어는 「교감」으로
대표되듯 유동적이고 부드러운 서정을 타고 하나로 융합되는 존재론적 변환을 꿈꾸는 순수
한 욕망의 언어다. 그의 어조가 다분히 여성적인 것은 이와 관련된다. 70년대 연작시 「말의
형량」은 한알의 말이 썩은 아픔 으로까지 언어가 생명화되어 언어파 시의 모습을 대변했
다.
전통시에서 동야의 형이상학으로부터 이미지와 장면들을 비논리적으로 결합시키는 시적 기
교를 추출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신라초』와 『동천』의 시편들에서 서정주는 불교
의 인연사상을 상상적인 은유로 변용시켰으며 박제천의 경우 연작시 「장자시」에서 노장사
상으로부터 현란한 이미지를 창출했다.
50년대 『난. 기타』로부터 60년대 『청담』에 이르기까지 목월은 자연시로부터 일상시로
놀라운 변신을 했다. 인간과 가족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조촐한 서정으로 승화시킨 일상 언
어들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육성에 가까운 독백체로 가능한 한 시행을 짧게 한 데서 빚
어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조는 사실적인 친근감을 준다. 「적막한 식욕」이나
『경상도 가랑잎』의 시편들에서는 전통의 토속적 삶의 경상도 방언과 민요, 무가조를 도입
하여 한과 달관의 전통 서정을 효과적으로 환기한다. 특히 「이별가」는 방언의 소리 효과
를 전경화시켜 여기에 미묘한 뉘앙스를 부여하는 언어 감각의 섬세함을 보인다.
뭐라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니 뭐라카노, 바람에 불려서
60년대 시단에서 이른바 한글 세대의 대표 주자로 지목되는 황동규의 시는 주로 기행시 형
태를 채용하고 있지만 「전봉준」,「삼남에 내리는 눈」,「허균」처럼 역사적 인물이나 고전
을 당대 삶의 의미로 재해석하는 인유의 기법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80년
대 현대시에 시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 심장한 시적 전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4.
60년대 말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미당의 연작시 「질마재 신화」는 처음부터 장르적 문제들
을 안고 있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등의 전통 설화에서 취재한 이 연작시는 산문
시라는 장르 명칭을 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시 장르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시
에는 치명적인 결함인 산문의 설명적 문체도 서슴없이 오용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미
당이 한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밝힌, 「질마재 신화」를 쓴 동기다. 그에 의하면 시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소설과 같이 액션 을, 그것도 우리 액션 을 시에 도입한 것이다 21). 이것은
현대시의 난해성(특히 60년대 이후 언어파들의 순수시)에 대한 비판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시의 언어 형식이 소설을 본떠야 된다는 미당의 기이한 주장은 실제 생활의 언어를
쉽게 써야 함을 70년대 시의 과제로 내세웠을 때22) 다시 반복되었다.
시에 액션을 도입하는 서술시는 새로운 시 형식이 아니라 문체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 묘사
시와 대립되는 한 유형이며 이것은 우리 전체 시사에서도 전통 양식이다. 미당이 시와 소설
의 장르적 조건을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의 서술시가 리얼리즘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
대한 의미를 지닌다.
원론적으로 문체는 제재에 따라 선택된다. 곧 사물과 사물의 특징은 묘사 되자만 삶의 조
건과 삶의 과정은 서술 된다. 70년대 시의 주류적 경향인 민중시는 소외된 서민의 열악한
삶의 조건과 그 과정을 제재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서술시의 문체를 취하게 되고 따라
서 자연스럽게 리얼리즘을 지향하게 된다. 신경림의 「농무」계열의 민중시에 주목할 수 밖
에 없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
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가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
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철없이 킬킬대는구나/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
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고
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농무」전문)
이 작품에는 산업사회의 근대화가 가져오는 문제적 양상을 전형적으로 재현한 역사성이 부
여되어 있다. 농민의 목소리를 채용하여 서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산업 시회의 충격으로
삶이 뿌리채 뽑힌 소외된 농민의 고통을 행위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환기시키
고 간혹 미완결 시행을 적절히 섞어서 서사적 리듬을 자연스럽게 진행시키는 언어 형식이
재현의 진실성을 더욱 고조 시킨다. 「농무」의 역사성은 이런 세심한 배려의 언어 형식을
얻어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민중시의 주조는 물론 소외된 서정이다. 정희승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소외의 서
정은 시인의 민중적 삶에 대한 애착과 구분되지 않는다. 서정주의적 민중시의 한 표본이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묘사와 서술이 어울려 환기된 소외의 서정이 격조가 높아 오히
려 민중시답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이 소외의 서정은 많은 민중시에서 산업사회에 대한 비
판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산업 사회가 지배 체제의 체제 유지를 위한 재생산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곧 당대의 폐쇄적 정치에 대한 보상 심리가 물질적 측면으로서의 근
대화를 향한 열기로 전화되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많은 민중
시가 저항시의 성격을 띠고 따라서 풍자가 민중시를 더욱 고무한 점이다. 김지하의 「오
적」이나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시편들에서 비속어와 욕설의 하급 문체는 풍자적 목적
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중의 이데올로기가 민요, 판소리,
무가,서민가사 등 전통 민중 장르의 형식을 재생산한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민중 장르등
은 민중시의 미학적 거점들이다.
신경림의 「목계장터」를 비롯한 일련의 민중시들은 단순.소박하고 향토적인 언어를 4음보
의 민요 가락으로 조직하여 한을 중심으로 한 서민의 생활 감정을 환기시킨다. 이제는 폐어
가 된 고유어를 되찾아 활용하는 그의 민중시는 전통시와 구분되지 않는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은 판소리의 문체와 어조를 모방하여 지배 계층의 기만과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특히 풍자의 대상인 다섯 도적을 희귀한 한자로 표기한 언어 골계가 매
우 흥미롭다. 「오적」은 판소리 장르의 도입으로 현대 풍자시의 가능성 뿐만 아니라 장시
의 가능성도 함께 보인 점에서 문제적 작품이다.
풍자의 목적에 원용되는 아이러니도 70년대 현대시의 성격을 결정한다. 민중시가 60년대
참여시의 기능을 자임한 것이 70년대의 시사적 의의지만 시적 태도와 문체면에서 김수영 시
에 닿아 있는 오규원 시의 주된 무기는 아이러니다. 그러나 오규원 시의 원리도 언어파처럼
인식론적 회의다. 관습화된 언어와 관념을 의심하고 뒤집는 작업이 그의 시쓰기의 정체다.
「양평동. 2」에서 중세 기사도 소설의 반대 진술인 「돈. 키오테」를 패로디한 기법 자체가
인식론적 회의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패로디란 원전을 다르게 읽기 이기 때문이다. 사실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관리된 현실을 등기된 현실 로 거부하고 등기되지 않은 현실을 탐구하는
것이 그의 패로디의 전략이다. 그의 소재는 언제나 파괴하고 거부하는 기법에 의해 감지된
다. 이런 인식론적 회의에서 아이러니 어조는 필수적이다.
地上에는 사랑스런 自由가 참 많습니다. 당신도 혹 自由를 사랑하신다면 좀 드릴 수는 있
습니다만(「이 시대의 순수시」).
현대시에서 아이러니는 진지한 어조가 희극적 태도인 유희적 어조로 대치되는 근본 원인이
다. 오규원에게 아이러니가 기법이라면 김광규에게는 세계관이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현실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객관적 정신이며 산문 정신이다. 아이러니는 현대시의 산문화를 가
져오는 주기능이다.「오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주로 도시의 일상적 삶을 아이러니로
처리한다. 「어린 게의 죽음」은 고도의 상징적 기법이 구사된 풍자시로서 참여시의 한계를
벗어난 작품이지만 일상 언어와 일치하는 그의 시어는 현실주의적이고 단순하다.
80년대 김광규의 아이러니의 부정 정신은 더욱 심화된다. 「二代」는 아이러니의 한 극점
이다.
학생들의 교복도/사라진 오늘/운전기사 강씨네는/차고에 딸린 두 칸짜리/연탄방에 산다/마
누라는 안집의 빨래를 해 주지만 /밥은 따로 해 먹는다.
산업사회의 부정적 한 단면을 드러낸 이 작품에서 아이러니는 차이성 을 발견하는 언어 능
력이다. 시인의 주관을 강조하는 언어의 표현적 기능이 무화되고 그 대신 언어의 지시적 기
능이 우세해서 독자에게 시의 전달 내용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이성복의 도시적 감수성은 심상치 않은 언어 형식을 보여 준다.「그날」에서 화자는 「二
代」의 경우처럼 철저하게 보고자의 기능만 수행한다.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종일/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없었다......
이 작품의 구성 원리는 어느 하루의 극히 일상적인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환유
원리다. 이것은 언어 선택의 은유 원리가 지배하는 전통 시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행
의 배열도 더 이상 그 기준이 의미 단락이 아니다. 세계가 폭파해버릴 어떤 불확실한 공포
가 잠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일상적 삶 속에 묻혀 버리는, 현대성의 무의식으로서 일상
성을 문제로 제기한 테마 역시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도시적 감수성에 근거한 일상시 또는
도시시는 80년대 후반 현대시의 주류적 경향으로 부각되었다.
5.
80년대는 많은 현대시들이 무거운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된 시대다. 근본적으로 삶의 인식
으로부터 소재의 선택과 처리까지 정치적이었다. 특히 새로운 발표 매체인 무크의 문화 운
동과 더불어 노동시(또는 노동해방시)가 크게 부각되어 현대시의 정치적 성향이 더욱 심화
되었다.
민주화와 분단 극복은 당대 정치시에서 가장 신성한 것으로 다룬다. 특이한 점은 많은 정
치시들이 허구적이든 역사적이든 인물을 인류의 원천으로 하거나 아예 인물시 형태를 취하
고 있는 현상이다. 인물은 인간적 가치나 삶의 가치 또는 예술적 가치의 표상이어서 재료의
이점이라는 프리미엄없이 이미 부여되어 일단 의미 심장한 재료다. 인물은 시인의 내면세게
와도 연관되지만 보다 당대 사회 역사적 삶의 의미와 문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의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예수가 빈번하게 인유적 이미지로 채용되는 것은 어느 특정 시대에
어떤 말이 지배적인가 , 말의 굴절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그 굴절의 매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이 시어 분석의 제일 과제임을 시사한다23). 80년대를 시의 기법상 인유 또는
패로디의 시대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정치시들은 이성부와 정일근의 유배시 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다산, 김정희, 전봉준
등 체제에 도전하여 개혁 의지를 펴다 좌절한 역사적 인물들이나 처용, 흥부 등 허구적 인
물을 통해 정치적 테마를 효과적으로 형상화 한다. 최두석의「심봉사」는 우리의 식민지 근
성과 무기력을 허구적인 심봉사의 인유로 날카롭게 비판한다. 고은의 「이 죽음으로 해방이
여 살아오라」, 김정환의 「묘비명」은 체제의 억압과 폭력에 희생된 학생, 노동자들의 죽음
을 애도한 추모시로서 전형적인 정치시다.
유배시나 추모시 형태의 정치시 어조는 진지하고 엄숙하다. 그러나 곽재구의 「세월 혹은
에어로빅」, 유하의 「오공시대」, 허수경의 「여의도 엘레지, 2」등 정치 풍자시의 어조는
태도의 희극을 보인다. 노자와 달마 선사 등 성현을 풍자적 인물로 격하시킨 오태환의 「수
화」는 고풍스럽고 점잖은 말씨의 고급 문체로 오히려 정치 풍자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임
동확의 「외로운 단수형의 풀잎 하나」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패로디한 정치시다.
민중시는 80년대 후반 노동시로 대치되면서 문학 노선이 보다 선명해졌다. 제재를 선택하
고 처리하는 시각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고정된 만큼 어조와 주제가 분명했다. 이런 이데올로
기적 조건에 의해서 생산된 노동시의 언어 형식은 지극히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다.
그대는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먹고 있다.....(중략)......./그대는 가장 따뜻하게 만들고
가장 춥게 입고 있다(김남주,「민중」).
계급 모습을 완벽한 대립 구조를 통해 선명히 드러내는데 언어 형식의 단순성은 매우 효
과적이다. 장르를 매체화 하려는 민중 문학론에서 시가 주류적 장르로 격상되는 것은 전연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장르의 매체화 란 물론 정치적 투쟁의 수단 이외 다름 아니다.
소설이 장르 조건상 이런 매체적 기능에 부적합하여 격하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시에서
도 비유와 상징 등 암시적 장치들을 폐기하고 그 대신 노래와의 통합을 권장하는 것은 순전
히 매체적 기능 때문이다.
민중 문학론에 있어서 장르 통합론은 실상 장르 해체론이다. 장르 해체란 문학의 근본적이
고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문학의 위기일 수도 있고 확신일 수도 있다. 80년대 전
후해서 우리는 30년대 이상 시 후 가장 충격적인 해체시를 경험하게 된다. 황지우, 박남철의
놀라운 전위의 실험시들이 그것이다.
이들의 해체시는 모든 기성품들을 발췌.조립하는 미적 자유로 집약된다. 이것은 이미 금세
기 초 서구의 역사적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시도된 것이다. 황지우의 「한국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날」,「심인」, 「벽.1,3」,「마침내, 그 40대 남자도」는 기성품의 조립이 작품의
구성 원리다. 시인은 단지 편집자의 위치로 전락했기 때문에 시인의 목소리는 없고 작품 세
계는 타인들의 말이나 현실의 파편들로 가득 차 있다. 해체시는 표현 매체가 더 이상 언어
만이 아니고 무제한적이어서 그 자체 언어의 위기 또는 빈곤의 심각한 징후를 함축한다.
이런 해체시는 환유시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환유시는 현대시의 의미 심장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황지우의 「 상징도 찾기」,「그들은 결혼한 지 7년이 되며」,「꽃말」,
「버라이어티 쇼 1984」, 박남철의 「러시아 집패설」 등은 타인들과의 대화, 신문기사, 방
송, 편지, 원전 들의 글귀 등이 무질서하게 나열된 명백한 환유시다. 소재들의 연결이 인접
성 의 환유 원리 이외는 아무런 법칙이 없다. 마치 충동적 글쓰기처럼 보이는 환유시는 서정
적 자아 또는 이성적 자아의 통제와 간섭이 완전히 배제되고, 따라서 미적 거리가 전무한
무매개시 다. 시가 주관적 장르라는, 바흐찐이 다분히 비난의 어조로 기술한 단일한 목소리
의 독백적 언어24)라는 전통시 장르의 조건이 완전히 파괴된 셈이다.
텍스트의 개념이 모든 기성품으로 확대됨으로써 과거 원전의 풍자적 모방인 패로디의 외연
도 모든 기성품을 발췌하는 것으로 무제한 확산된다. 해체시 뿐만 아니라 오규원의 「빙그
레 우유 200㎖ 패키지」,「우리는 행복했다」의 광고시와 만화. 무협소설. 영화 등 대중 예
술을 소재로 한 유하의 연작시 「무림일기」나 「영화사회학」 시편들도 패로디 기법의 실
험시들이다. 여기서 패로디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 의 기능으로 새로운 문맥 속에서 원전의
수법을 폭로하면서 원전이 지닌 이데올로기(또는 의미)를 해체시키는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
다. 이 실험시들의 패로디가 감지한 것은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허구성과 모순
이었다.
도시시 또는 일상시는 정치시와 해체시를 극복하는데 그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
도시의 새로움은 새로운 언어 형식으로서의 시의 새로움에 등가되는 사실에서 도시시는 모
더니즘 시의 간판이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주류로 격상한 도시시는 후기 산업 사회의 징
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적 조건의 필연적 산물이다. 이것은 90년대 전후 포스트모더니
즘의 본격적 수용과 탈 이데올로기의 경향을 타고 더욱 고무된다.
이윤택의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연작시「새로운 전도사가 입성하여」는 관리되고
규격화된 도시적 생활 양식과 체제 순응적 인간을 비판하고 야유하는 어조가 특징이다. 그
는 유난히 ......하라 라는 시위.농성의 관습적 어법을 자주 채용한다. 이윤택의 유희적 어조
와는 달리 최승호의 『세속도시의 즐거움』의 문명 비판시들은 종말론적 세계관과 연관되어
어조가 여간 진지하지 않다. 90년대 이형기의 『죽지 않는 도시』의 시편들 역시 종말론과
결부되어 있으나 이형기 특유의 아이러니 어조가 지배하는 문명 비판시들이다.
그러나 도시시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일상성과 세속주의다.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가장 신선한 도시적 감수성에 의해 일상성과 세속주의를 환기한다. 언어가 극히
평범한 미국식 간식인 햄버거 요리 과정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는데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
다.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시라고 하면 안되나 (「버스 정거장에서」)라는 오규원의 놀라운
시관도 탈신비주의로서의 일상성의 시학이다. 황동규의 연작시 「관악일기」나「뉴욕일기」
의 언어들은 소재의 저항을 일체 받지 않고 헐렁한 주머니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
들」)처럼 긴장하는 법이 없다.
도시시들의 언어는 궁극적으로 풍자적 목적에 기여한 해체시처럼 언어절제를 잃은 요설체
다. 비정상적이고 비틀린 언어 형식으로서 요설이 해체주의적 회의론과 결부될 때 다음과
같이 의미 심장한 당위성을 띤다.
끊임없이, 떠벌인 자는 용서받는다/끊임없이, 혀가 빠지도록/하지만 핵심은 모호하다/.....
(중략)....../세계는 텅 빈 껍질에 불과하지 않은가(장정일, 「텅 빈 껍질」)
이것은 불확실성. 미해결성을 인식소로 한 해체주의적 세계관의 허무주의다. 그러나 요설은
자본주의의 물량주의에 오염된 혐의가 있으며 외설의 언어와 욕설의 대담한 수용과 더불어
일종의 언어폭력 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일부 도시시들의 세속적 경박성과 즉각적으로
수용 가능한 감각적 이미지들은 일회용의 소비 이데올로기에 순응한 결과로 보인다.
80년대 시는 유파를 초월해서 언어가 가장 학대받은 언어 수난의 시대다. 이것을 성의 모
순을 테마로 한 페미니즘의 여성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승자, 김
수경, 김승희, 고정희의 시에서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어조는 가부장적 억압의 산물이라는 인
식에서 언어가 매우 토의적일 뿐만 아니라 저주. 악담의 변두리 언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
90년대 김정란의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또는 막가는 나의 시법」이란 시제 그대로 페미
니즘 시의 언어 형식은 아버지의 기호 체계적인 전통 문법을 해체시처럼 파괴한다. 이런 페
미니즘 문제는 해체주의 세계관이 굴절된 결과임은 물론이다. 자주 과장된 자학의 어조를
수반한 페미니즘 시도 90년대 고통과 타락의 책임을 자아와 세계가 공유하는 고백시로 전개
되면서 그 신선한 시적 정직성으로 현대시의 한 변화 조짐을 부각시킨다.
6.
90년대 전후 크게 부각된 정신주의 시는 현대시가 다시 안정세를 회복하는데 기여한 주목
할 만한 현대시 반성이다. 정신주의 시는 80년대 과격한 형식 파괴의 해체시, 비판 일변도의
풍자시, 무거운 합목적적인 정치시나 노동시, 그리고 세속적 경박성의 도시시들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자리에 놓인다. 80년대 시가 두드러지게 반서정주의 경향을 띠고 토의적이고 분석
적인 시인의 지성이 반서정주의를 더욱 심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정신주의의 시는 무엇보다
전통과 서정주의를 회복한데서 그 의의를 가진다.
선사상과 노장사상 등 동양 고유적 형이상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한 정신주의 시는 외부 세
계보다 인간과 사물의 근원과 본질을 탐구하는 인식의 틀이다. 이것은 도덕적 의미와 구분
되지 않는다. 태도면에서 관습화된 비판적 지성을 회복하고 화해와 긍정의 시각을 회복했다.
선시가 주종이 된 정신주의 시는 역설적인 은유와 상징의 극히 압축된 언어 형식을 취한 점
에서 언어의 남용과 오용에서 빚어진 언어의 폭력과 산문의 원리인 축적의 원리를 극복하고
시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김달진의 「샘물」, 고은의 「냇가」, 조정권의 「허심송」,「송」등은 존재의 본질을 직관
하려는 선적 사유가 서정적 언어를 타고 한산시류의 자연 관조적이고 은일한 정관적 세계로
형상화된다. 중국의 선시 「십우송」을 패로디화한 김지하의 연작시 「애린」은 불교적 연
민의 서정으로 채색된 생명사상이 주조다. 황동규의 「뉴욕일기. 4」를 비롯한 『몰운대행』
시편들에서 선은 일상적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정신주의 시는 박태일의 「가을 악견산」 경우 전통시와 자연시의 새로운 가능성이었고 황
지우의 「山徑을 덮으면서」에 나타난 세계 수락의 태도는 야유와 분노로 일그러진 해체시
로부터 놀라운 시적 변모를 가능하게 했다. 최승호의 「반야 왕거미」,「물질적 열반의 도
시」는 불교적 이미지가 문명 비판용으로, 그러니까 반어적 으로 채용된 특수한 사례다.
주로 전통 시인이 주도한 정신주의 시에 의해 80년대 하위 모방의 산문체와 장시화의 경향
에서 서정적 언어와 단형성을 회복한 시적 변화는 사실 보수적이고 반동적이다. 이와 대조
적으로 현대시의 자기 반영적 징후는 현대시의 또 하나의 충격적인 시적 변화다. 여기서
자기 반영적 이란 언어가 참조 대상과 유리되어 그 본래의 지시적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언
어 그 자체가 지시 대상이 되는 언어의 자위 행위다. 메타시 또는 반시 (여기서 반 은 반
성 의 의미가 짙다)로 기술될 만큼 이 새로운 유형은 반영의 반영 , 그러니까 시에 대한 시
쓰기의 언어 형식이다.
현대시들은 박상배의 연작시「풀잎송」처럼 흔히 시적 과정의 공개이거나 시론의 개진이
다. 장르 구분 없이 글쓰기라는 현대의 장르 해체 현상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장정일의 「길안에서의 택시잡기」에서 진술된 시작 과정의 고통과 갈등은 기술 문명 속에
서 현대인이 겪는 삶의 고통과 갈등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사물을 여러 관점에서 구상해 보
는 시작 과정을 논리적 어조로 서술한 오규원의 「안락의자와 시」는 한 구상이 끊임없이
다른 구상에 의해 지워지는 자기 반영성이 테마가 되고 있다. 시상이 확정되지 않는 현상학
적 망설임은 해체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언어가 사물의 표현 수단이 아니라 사
물이 언어의 표현 수단이 된 놀라운 뒤집기가 여간 흥미롭지 않다.
박남철 자신이 명명한 일련의 비평시 는 가장 충격적인 메타시다. 참조 대상이 더러 감상
문과 비평 자료들을 곁들이지만 이미 발표된 다른 시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비평시에
서 타인의 작품은 주석으로 역사적 반성으로서 발췌된 것이다. 말하자면 비평시는 시 비평
의 패로디다.
현대시의 언어 형식에 끼친 해체주의적 세계관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
다. 오규원의 「뜰 앞의 나무」나 최영미의 「나무는」은 같은 제재에 대해서 앞 뒤 명백히
모순된 진술을 해서 해체주의적 세계관이 굴절된 담론의 상대주의를 암시한다.
현대시의 탈이데올로기의 대표적 징후로서 일상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
다. 일상성의 부정은 80년대 정치적 이념적 갈등을 겪었던 위대한 과거 에 대한 향수가 잠
재되어 있다. 90년대 시가 묘한 허무주의 색채를 띠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여기에 있다.
90년대 시의 성격으로 정착된 일상시에서 표층시가 파생되는 현상은 현대시의변화로서 주
목할 만한 시사적 사건이다.
표층시는 시인의 시선이 철저하게 현상에만 머무는 현상주의를 표방한다. 이것은 삶을 지
배하는 거대 담론, 지배적 원리의 붕괴라는 해체주의와 연관된다. 조윤희의 「여름」은 극
히 일상적 삶의 편린과 사물의 세부를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카메라 시점의 미세학과 그 질
투의 테마가 형이상학의 현대적 몰락을 시사한다.
80년대 후반 장경린은 「라면은 퉁퉁」에서 결말 맺기가 좌절된 반구조의 비유기적 형식을
해체주의의 반목적론적 세계관에 부여함으로써 전통의 유기적 형식을 파괴했다. 그의 최근
연작시 「코닥」도 표층시 고유의 언어 형식인 미세학의 카메라 시점으로 일상적 사건을 묘
사하고 있다. 오규원의 「지는 해」에서 화자를 포함한 등장 인물의 내면 세계는 일체 배제
된 채 시선이 현상에만 머문 객관적 서술체다. 이런 표층시가 처음과 끝이 불분명한 인접
성 의 환유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점도 간과될 수 없다.
7.
문명 비판시와 일상시 또는 도시시, 그리고 정신주의 시는 현단계 가장 확실한 현대시의
경향들이다. 합목적적 민중시는 김수영이 60년대 초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그림자가 없다」)고 예언한 듯한, 탈이데올로기적 경향의 90년대적 상황에 곤혹스
러워 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주의 또는 리얼리즘의 방향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곽재구의
「지실댁」, 최두석의 「경포에서」, 김명인의 「가족」, 김용만의 「단칸방 한 이불에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과 일상성의 재발견으로 민중시의 변모 가능성을 보인 것은 특기
할 만한 현상이다.
메타시를 비롯한 환유시 또는 표층시, 그리고 언어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고백시는 해
체주의적 세계관이 다양하게 굴절된 현단계의 새로운 유형들이다. 소멸한 전통 장르의 언어
형식을 재활용하거나 다른 이데올로기 분야에서 이미 만들어진 담론들을 시적 문맥 속에 새
로 지각시키거나 장르 혼합의 집단적. 다원적 글쓰기 형태로 현대시의 언어 형식을 근본적
으로 변화시킨 패로디 기법도 해체주의의 핵심적 전략이다.
진지한 어조에서 유희적인 어조로, 서정주의에서 반서정주의로, 유기적 형식에서 비유기적
형식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의 변화는 분단 50년 현대시의 흐름의 일반적
인상이다. 이것은 문화사, 정신사의 일반적 흐름과 상응한다. 최근 시의 서정성 재검토와 신
서정 논의들은 현대시의 전망과 결부된 문제 제기적 반성이다. 자본주의 소비 사회 속에서
시의 운명과 서정의 존재 양식을 진단하고 전망하는 일은 시의 사회학적 관심이다. 그러나
해방 50주년은 분단 50년의 역사다.
주
1)김재홍, 「60년대 시와 시인」,『한국 현대시 연구』(민음사,1989), p.365:
조남현,「근대화와 70년대시」, 앞의 책 p 640.
2)박대호,「근대화의 중층성과 70년대시의 민중지향성」,『한국 현대시사의 쟁점』(시와 시
학사, 1992) p 479.
3)F.W.Bateson, English Poetry and English Language.여기서는 Warren과 Welleck 공저
Theory of Literature(Penguin Book, 1956), p 174 참조
4)Mikhail M. Bakhtin, Formal、nyi Metod v Literaturovedenii(이득재 역, 문예출판
사,1992),p222
5)『현대시』, 1993년 2월호, 특집 「서정과 반서정」: 『문학사상』, 1994년 10월호, 특집
「한국 현대시와 서정성 문제」.
6)권영민,『한국현대문학사』(민음사, 1993)와 신용협,「민족문학 수립의 모색기」,『한국현
대문학사』(현대문학사,1989) 참조.
7)김윤식, 『한국현대 문학사』(일지사,1976) p.34
8)김광균,「문학의 위기」,『신천지』, 1946년 12월호
9)김춘수,『한국현대시형태론』(해동문화사,1959),p 129
10)김윤식,「해방에서 60년대까지의 詩史」,『한국현대시 연구』(민음사,1989),pp 50∼53.
11)김규동,『새로운 시론』(산호장,1959),p151
12)조향,「현대시론초」『문학』,1959년 10월호
13)이철범,「네오크래시시즘 시어론의 양식.상」,『문학예술』,1957년 5월호
14)이어령,「은유법론고」,『문학예술』,1956년 12월호
15)유종호,「토착어의 인간상」,『현대문학』,1959년 12월호
16)김윤식, 앞의「해방에서 60년대까지의 詩史」.
17)김수영,「詩여, 침을 뱉어라」, 『창작과 비평』, 1968년 여름호.
18)김윤식, 앞의 「해방에서 60년대까지의 詩史」
19)성민엽,「4.19의 문학적 의미」, 『해방 40년:민족 지성의 회고와 전망』(문학과 지성
사,1985)
20)김춘수,「한국현대시의 계보」,『시문학』,1973년 2월호
21)김주연,「이야기를 가진 시」,『나의 칼은 나의 작품』(민음사,1975),p11.
22)『한국문학』,1979년 11월호.
23)M, 바흐찐『도스또예브스키 시학』(김근식 역,정음사 1988),p 292
24)바흐찐, 앞의 책 『도스또에브스키 시학』, p53, p161 이하 여기저기서 참조.
* 본 논문은 계간 『시와 시학』1995년 봄호에 광복 50주년 특집으로 게재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