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가정 (家庭) -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 박종인

[하얀동심]

가정(家庭) / 이상

門(문)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生活(생활)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門牌(문패)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減(감)해간다.食口(식구)封(야봉)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收入(수입)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鍼(침)처럼月光(월광)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壽命(수명)을헐어서典當(전당)잡히나보다.나는그냥門(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門(문)을열려고안열리는門(문)을열려고.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이 시는 모더니즘의 대가 이상의 것입니다. 어느 분이 근대 시인들의 시중 하나를 평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평이 아닌 시 읽기를 제 방식으로 펼쳐 볼까 합니다.
-기존 다른 분들의 해석이야 어떻든 또는 잘못 읽는 우를 범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더니즘이란 기존의 틀을 깬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 시의 특징은 행과 연의 구분이 없으며 띄어쓰기까지 무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시도로서 시란 어떠해야 한다는 논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중 삼중으로 읽히게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봄으로써 시적이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의 문을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아무리 잡아당겨 보아도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가장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또는 자신의 내적 성향이나 인격 내지는 축적된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에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조른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내를 안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우리 집 내 문패 앞에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가정이라는 굴레가 책임을 부여하고 무능한 인간으로 만들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밤 속에 들어서서 제웅처럼 자꾸만 감해진다는 것은 잠자리까지 거부하는 아내이다 보니 아내의 맘에 들게 행동하려는 자신이 그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느낌인 듯 보입니다.
-그래서 식구야 어디 봉한 창 어디라도 한구석 터놓아 달라고 내가 수입되어 들어가야 하지 않나 라고 말하고 있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 말은 빈틈없는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는지 식구의 마음 안에 마음이 들어가게 해 달라고 사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붕에 서리가 나리고 뾰족 한 곳은 침처럼 월광이 무뎠다. 라는 이 말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쌀쌀함이나 정숙한 태도로 뾰족하게 쏘아붙이는 말들에 무뎌졌다는 말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집이 앓는 가보다, 그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는가 보다, 라는 말은 가정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앓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너무 힘에 부치는 것을 표현한 듯 보입니다. 다른 말로 잦은 다툼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원치 않는 이혼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명을 헐어서 전당잡히나 보다. 라는 이 말에서 식구의 마음에 들려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이혼으로 애끓는 마음을 표현한 듯이 보입니다.
-나는 그냥 門 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여 달렷다. 門을 열려고 안 열리는 門을 열려고. 이 말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하여 성공적인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나 다시 재결합을 시도하는 노력의 정도가 녹아있습니다.
-물론 이상 시대라면 가부장적 영향이 지대했을 것이므로 아내가 남편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어쩌면 당시도 큰일을 하는 남자는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어서 등한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내로부터 홀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상 시를 읽으면서 글자가 옛날 말이라는 것 외에는 오늘날 읽어도 시대에 뒤처진다거나 낡은 시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숨겨진 시들은 시대가 흘러가도 새로운 맛을 계속해서 선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할까요?
-혹 제가 시를 시인의 의도가 아닌 방법으로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은 것 같이 읽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시가 읽는 이의 세계관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좋은 시라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문 향 박종인-

이상(본명:김해경)

■ 프로필

1910년 서울 통인동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출생

1912년 부모를 떠나 백부 김연필의 장손으로 성장

1917년 신명학교(新明學校, 당시 누상동 소재) 입학. 이 때부터 그림에 소질 보임

1926년 보성고보 5학년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입학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

<조선과 건축> 회지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각각 당선

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 발표, 서양화 '초상화'를 '선전(鮮展)'에 출품, 입선

1933년 심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 사임

1934년 '구인회' 가입, 본격적인 문학활동 시작.

1936년 '지주회시' '날개' 발표, 변동림과 결혼 후 도일

1937년 사상 불온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 5월 유고작 '종생기' 발표

[클린턴]

가화 만성 치국 평천하라 했죠.
우선 집안이 평온해야 나가서도 일이 순조로울 텐데 험난하여 조마조마하네요.
시에 대한 풀이 내용 잘 읽어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얀동심]

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조삼모사]

오늘에사 우수회원이 되어 이 게시판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다 보면 인내심과 자제력을 기를 수 있거니와
자신의 처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하얀동심]

네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