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건강법을 일구는 사람들
진정한 애국자, 현대의 화타
손 진 (제주민족생활관 대표, 제주 전통문화지킴이)
1998년 2월 가슴에 통증이 자주 와서 단순한 소화불량인줄 알고 약만 지어다 먹었다. 그런데 약을 먹을 때만 괜찮을 뿐 조금 지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진찰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위내시경을 하자고 하여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검사 중 내시경 모니터에는 주먹만 한 종양이 보였다. ‘아, 저것이 암 이구나’ 이러한 생각이 내 머리 속에 번개같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심경이야 말로 무어라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참담한 것이었다. 서울로 조직검사를 보내봐야 확실히 안다고 하셨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일주일을 기다리는데 왜 그리 시간이 긴 지 일 년이 지난 것만 같았다. 위암이란 것을 직감하면서도 병원에 검사 결과를 보러갔다. 역시 위암 3기말 이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체념 비슷한 푸념이 한숨과 함께 터져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하루라도 빨리 서울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고 나는 수술을 안 받는다고 맞섰다. 왜냐하면 몇 년 전 아내가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혈관질환으로 입원했을 때 들은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입원실이 없어서 암 병동 6인실에 입원했는데 같은 방 보호자들 이야기를 들으니 말기에는 고통과 통증이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따른다고 했다.
항암치료 하다가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퇴원하여 집에서 백혈구 수치를 올려서 재입원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보호자에게 물으니 죽을 줄을 알면서도 집에서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입원한다고 하였다.
‘아!, 암은 병원에서 나을 수 없는 불치병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내가 주변 사람들 형제, 친척, 친구를 동원하여 나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 마지못해 한다고 했다. 수술을 한
다음에는 내 방식대로 하기로 약속했다. 민족생활의학이라는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
강동성심병원에 입원하면서 검사를 받았다. 위 수술 이전에 심장 시술부터 해야 한다고, 관상동맥 세 개가 전부 막혀 있어서 위험하다고 했다. 시술을 받았다. 앞쪽 두 개는 풍선과 용수철을 시술하고 뒤쪽에 있는 관은 찾아 들어가지 못해 시술을 못했다.
그 다음 위 수술을 했다. 10일 뒤 퇴원하기 위하여 면담을 하니 의사선생님이 ‘소견서를 써 줄 테니 제주에 내려가도 항암제를 꼭 맞으라’고 하셨다. 안 맞으면 책임을 못 진다고. 소견서와 함께 탄 한 달 치 약을 집에 와서는 몽땅 쓰레기통에 버리고 민족생활의학 책에 써있는 대로 실천하기 시작했고, 수소문 끝에 장두석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제주에 사는 누군데 책을 보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수술은 했어?”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네,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짜고짜 “그따위 짓거리는 왜 하냐”고 된통 욕을 하셨다.
초면인데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수술을 하면 더 힘들어 진다고 자세히 말씀하시더니 제주에도 교육 받은 사람이 있으니 가서 만나 보라 하셨다.
보름쯤 있다가 선생님께서 제주에 오셔서 만나게 되었다. 한복 입은 모습을 처음 뵈었을 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안광이 서리고 남을 압도하는 도인 같은 풍모에 거역할 수 없는 기세는 좀처럼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비로운 분으로 보였다. 우리 부부에게 하신 말씀은 확신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먹는 음식 중에서 암세포가 좋아하는 기름진 것과 고영양소는 암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소화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암세포가 좋아하지 않은 음식과 채소류와 생수를 많이 섭취함으로써 종양을 자연 소멸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뒤 수련회를 통해 교육과 함께 단식을 하였다. 교육을 마치고 정신은 맑았으나 몸은 초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냉온욕 시설을 갖추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풍욕을 시작하여 풍욕이 끝나면 나무보일러에 물을 끊이기 위해 불을 지폈다. 8시까지 풍욕하고 냉온욕을 하고 감잎차를 마시고 산책으로 오전 일과를 끝냈다. 12시에 집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와 들에서 자라는 민들레, 냉이, 쑥, 닭의장풀 등 20여 종 이상의 풀을 뜯어 부드러운 것은 나물로 썰어서 된장에 버무려 먹고, 질기고 딱딱한 것은 즙을 짜서 먹었다.
낮에는 산과 들에 나가 운동 겸 나물 채집을 하였고 짬나는 대로 겨자찜질과 모관운동, 붕어운동 등을 하였다. 저녁에는 11시까지 풍욕으로 하루 일과를 끝냈다. 정말로 실천하기 무척 벅찬 일이었고, 어떤 때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소중한 가족을 생각하면서 매 시간 결심하고 또 결심하면서 나약한 마음을 다스려 나갔다.
4년 뒤 심장에 통증이 와서 서울삼성병원에 심장과 암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았다. 심장은 4년 전에 받았던 시술이 잘못돼서 통증이 왔고 뒤쪽에 시술을 안 받은 관상동맥은 너무 깨끗하게 뚫어져 있었다. 암은 깨끗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 뒤 더욱 열심히 실천하여 심장에도 문제가 없어졌다. 가족과 이웃들의 도움과 나의 노력과 실천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가르침과 이론은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몸소 입증했다.
선생님은 제주에 오시면 항상 우리 집에서 대포 한 잔 하시며 담소를 즐기신다. 말씀 중에는 환자를 생각하시는 마음, 현대인들의 잘못된 섭생과 생각 때문에 고뇌와 번민이 무척 많으신 듯하다.
이 시대 흐름이 의학과 영양학이라는 이름하에 비만과 성인병이 만연해 나라 전체가 걸어 다니는 병자들 세상이라 개탄하신다. 내가 사는 집은 거미가 집을 짓고 자연과 한 가족이 되어 있다.
병으로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과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