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나아가자(2023년 9월 20일 수요일 설교)
성경 : 이사야 2:1-22(구약 970)
이사야 2장은 크게 두 가지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에 예언이 담겨 있고
두 번째는 현재의 시온의 죄악된 상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현재의 시온의 모습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회복되어 다시 영화롭게 될 미래의 시온에 대한 예언을 들려주신 다음 현재 시온의 영적 상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는 곧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를 기록하면서 서두에 5절을 보면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렇게 마지막(22) 절에서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에서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라고 선포하고 시온의 죄악상을 말하면서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므로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듣는 것이 복되고 들으므로 믿음에 이르고 들으므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면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든지 팔을 벌리고 서서 오라고 부르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1. 가르침을 받습니다.
3절을 보면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면 그곳에서는 우리를 가르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데 어떤 가르침을 받는가 하면
첫째로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3절 중간 부분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고 우리는 그 길로 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길은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길을 거치지 않고 목적지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길은 이사야서에서 대로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 길은 평탄한 길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똑같이 목적지를 가는데 어떤 사람은 좋은 길로 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비포장도로에다 굽은 길을 돌아 돌아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길은 대로며 평탄한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의 길 즉 평탄한 길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는 그 길로 행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옛 속담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왕에 가는 길이라면 모로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로 가는 길이 아니라 평탄한 길 좋은 길로 가는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나오는 자들에게는 나의 길을 가르쳐 주어 그길로 가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 안에 그 길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율법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다른 말로 하면 교훈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말씀하신 율법은 어리석고 미려한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교훈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세상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놀라운 비밀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고 천국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며 축복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학문을 많이 공부한 사람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줄 수 없는 놀라운 비밀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으며 하늘의 신령한 지혜를 주셔서 세상 사람들이 당할 수 없는 지혜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으면 지혜가 넘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아무 것도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며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세상의 모든 섭리가 담겨 있고 축복의 원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이 원리와 섭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고 축복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옴으로 받게 되는 두 번째 은총은 평화입니다. 4절을 보면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께서 열방 사이에 판단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판단이란 말은 심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재한다는 말입니다. 양쪽의 의견을 듣고 어느 쪽은 올바른지를 판단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중재하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사법제도에도 화해하게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은 바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중재자가 되셔서 중재를 하기 때문에 평화가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다투거나 등을 돌리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중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셔서 모든 상황을 정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성도는 싸우거나 다투거나 변명하고 해명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중재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우리를 중재하십니다. 그럴 때는 그 말씀과 감동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자꾸 화해라고 말하고 중재하시려고 할 때 성령이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놀라운 기적과 축복이 임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중재를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중재가 있으면 전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전쟁을 위한 무기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전쟁을 연습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전 방법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게 되고 또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평화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5절을 다시 보면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빛 가운데 사는 삶은 본문에 의하면 세 가지 삶을 말하는데
첫 번째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 말씀하기 전에 빛 가운데 행하자고 말씀하시는 것은 여기 열거된 죄악을 떠나는 것은 곧 빛 가운데 사는 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빛이면 빛 어둠이면 어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둠의 대표적인 예가 우상 숭배입니다. 6-10절 까지를 보면
2: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2: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2: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2: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2: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하나님께서 우상을 미워하는데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동방 풍속 즉 블레셋 사람들처럼 점을 치며, 이방인과 손을 잡아 언약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과 언약을 하고 손을 잡은 이유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고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기들보다 우상을 숭배하고 점을 치고 미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훨씬 부유하게 살고 무기도 잘 갖추어져 있어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손을 잡고 언약을 했는데 거기에는 우상이 가득하고, 사람이 손으로 만든 온갖 우상들이 있고 그것에게 절하고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물질을 따라서 우상숭배자들과 손을 잡고 언약을 하고 그들을 따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고 점을 치고, 미신을 따르는 자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빛이 아닌 어둠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상은 결국은 언젠가 다 파괴되고 무너집니다. 18-21절까지를 보면
2: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2: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21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두 번째로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면
2: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빛에 행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인생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 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그의 호흡이 코에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으로 이 구절을 보면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마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아무 보잘것없느니”
이 말은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됩니다. 언제가 호흡이 끊어지는 것이기에 코로 호흡하는 사람을 의지하다보면 의지하던 사람의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께 나온 성도들은 하나님의 길로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앞서가시는 길을 따라 감으로 평탄한 길로 가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고 싶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고, 빛 가운데 걸어감으로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