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채 작가님의 < 나스카라인 > 합평 및 분석
1) 한줄 요약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그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용하는 우체국에 근무한다. 사귀었던 남자와 여행 갔던 페루의 대평원에 그려진 거대한 나스카 라인(문양)은 어릴 때 그녀가 운동장에다 혼자 그리던 그림과 닮았다고 스스로 세뇌한다. 남자가 떠난 뒤 그녀는 휴대폰도 없고 이모티콘이나 은어, 기호도 모른 채 고양이를 기르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녀는 밤마다 집에서 로직퍼즐을 푼다. 고양이 마저도 떠나고, 그녀는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점점 고립된다. 결국 그녀는 6호 택배상자 두 개를 이어 붙여 대형 소포 박스를 만든다. EMS국제특급우편용지를 붙이고, 자신이 박스 안으로 들어가 페루의 나스카로 가는 소포가 된다. 소통의 부재를 그린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2) 시간적, 공간적 배경(인물의 상황적 배경 포함)
* 우체국 - 지속적으로 교신/소통을 하려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
* 페루 – 중남미 국가(관광 명소 : 마추픽추, 나스카 대평원<나스카 문양>, 쿠스크<태양제>)
마추픽추 역사 보호 지구
나스카 지상화
페루 최고의 관광 명소
쿠스코
3) 등장인물 분석(인물의 동선이나 심리상태 추이)
* 나(화자) : 우체국 직원.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함
* 할머니 : 말로 소통을 안 해도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할머니
* 남자 : 근사한 저녁식사를 사주고 싶어 했던 애인. “너를 모르겠어”하고 떠난 비열한 남자
* 굿바이 보이 : 인디오 아이, 잉카제국의 통신을 담당한 파발꾼 챠스키의 후예
* 미스신 : 뭐든 색다른 것에 호기심이 강한 우체국 동료 직원
* 집배원 : 반송된 우편물에 우표를 추가로 붙여 배달이 되게 배려하는 참사람
* 키가 껑충 큰 남자, 지팡이를 든 사랑에 빠진 할아버지, 고아원 원장, 아이, 아이 엄마
4) 줄거리 요약(주인공에게 어떤 장애물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 혹은 좌절되는가)
1. 어릴 적부터 가는 귀가 먹은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화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소통할 사람이 없었다. 내(화자) ‘말’도 할머니 묘에 같이 묻혔다.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나스카 문양과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
2. 나(화자)는 우체국에 근무하며 고양이를 기르고 밤이면 로직퍼즐을 푼다. 이해할 수 없단 말을 남기고 떠난 남자와 다녀온 페루여행, 고독할 때면 나스카 라인에 대한 추억을 회상한다.
3. 우체국에 방문하여 분주하게 누군가와 교신(소통)하는 사람들. 헤어진 남자와 더 이상 교신(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송된 편지, 보낸이 주소가 없는 우편물을 폐기한다.
4. 새끼 고양이 네로는 성장하며 본능적으로 집 외부로 진출하여 쥐를 잡는다. 나(화자)는 더 이상 무엇과도 교신(소통)하지 못하게 된다.
5. 결국 그녀는 6호 택배상자 두 개를 이어 붙여 대형 소포 박스를 만들고, EMS국제특급우편용지를 붙인다. 자신이 박스 안으로 들어가 페루의 나스카로 가는 소포가 된다.
5) 객관적 상관물(심상을 대신 표현하는 물건)이나 상징이 되는 소재 찾기
<소재가 주제에 기여하는 방식에 대해 주시>
* 나스타 라인 – 벌새, 콘도르, 거미, 나무 - 외계인(?)의 교신/소통을 상징
혼자라고 생각할 때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교신을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 함
* 벌새 펜던트– 떠난이가 준 선물(교신/소통을 원하는 상징)
그는 나스카 라인을 꼭 다시 와서 보여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
* 로직퍼즐 –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취미 - 소통/교신 부재 상징물
* 네로 – 화자와 소통하는 새끼 고양이(어른 고양이로 성장하며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
* 지팡이 – 주인공이 의지했던 할머니를 떠오르게 함. 안정감을 줌.
* 반송된 편지, 보낸이 주소가 없는 우편물, CCTV모니터 6대 – 소통/교신 부재 상징물
* 우표, 우편물, EMS국제특급우편용지, 소포박스 – 교신/소통 상징물
6) 좋은 문장이나 장점 및 느낀 점, 아쉬운 점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 조금 비좁은 듯하지만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천천히 숨을 고른다.
마추픽추를 떠나는 버스가 구비 돌 때마다 만나던 아이는 결국 버스보다 먼저 도착해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아이는 잉카제국의 통신을 담당한 파발꾼 챠스키의 후예였다.
나는 이틀 전에 푼 로직퍼즐의 그림이 나스카의 어떤 문양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추픽추, 나스카, 페루,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나는 밤마다 로직퍼즐을 푼다. 로직퍼즐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람들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 갈피에 숨은 의미를 해독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을 이해했다고 말하지만 실상 이해 못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향해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불안한 모양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교신하기 위해 스스로 중독됐는지도 모른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면 네로는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내 바지를 슬쩍 잡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듯해 네로를 새삼스레 바라보곤 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렇게 바쁜 걸음을 걷지 않지. 그 말을 들은 뒤부터 일부러 천천히 걸으려고 애썼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천천히 걸어도 가볍지. 발이 땅에 닿는지도 모르거든.
할머니하고만 살아 온 나는 할머니처럼 얘기하고 행동했다.
내가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망구망구 할망구, 하고 놀렸다.
할머니는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나마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늘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어느 날은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 이어지는 긴 뱀을 그리기도 하고,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삶기도 하고, 목을 길게 뽑고 있는 꽃을 그리기도 했다.
나는 질겁하고 네로를 내동댕이쳤다. 네로는 자지러지듯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순간적으로 손등을 할퀴고 열린 화장실로 달아나 버렸다. 네로의 입 주변에 시뻘건 피가 묻어 있었다. 네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했다. 달아나는 네로의 배가 불룩하게 늘어져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유일하게 나를 이해한다고 믿었던 그가 떠나려 할 때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억이란 단단한 세월 속에서 느닷없이 톡, 하고 씨앗이 사방으로 터져버리는 봉숭아 씨방 같은 거라는 걸 나는 몰랐다.
그 그림들은 내가 혼자일 때마다 그려왔던 그림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 그림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혼자라고 생각할 때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교신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말 핸드폰 없어.”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휴대전화가 없었으므로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거실 겸 부엌으로 된 좁은 공간에 무릎을 세우고 팔짱을 끼고 쭈그려 앉았다. 몸이 떨려 누울 수가 없었다. 헤어 드라이어의 온풍으로 머리와 몸을 데웠다.
행복을 파는 우체국?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띄엄띄엄 시를 읽는다. 오늘도, 나는, 에머, 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아들 군대에 보내 놓고 얼마나 구구절절이 썼겠어. 목 빠져라 답장을 기다릴 텐데 집으로 반송하지 말고 오십 원 보태서 다시 보내 줘.”
CCTV가 희미하게 몰려드는 어둠 속으로 푸른빛을 흘린다. 여섯 군데 설치된 카메라는 어둠을 응시하며 저 혼자 밤새 눈을 뜨고 있을 것이다......모니터의 여섯 칸 중 한 칸에 유령처럼 서 있는 내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스팀에 등을 대고 두 손을 등 뒤로 넣는다. 할머니의 온기처럼 따뜻하다. 아니, 엄마의 자궁 속처럼 평화롭다.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들을 꺼내 뒷면에 풀칠을 하고, 상자 안쪽에 붙인다. 작은 방 안을 그림으로 도배한 것 같다.
나는 소포 안에서 잠이 들고, 소포는 페루의 나스카로 배달된다.
나스카인들이 천 년 동안 그린 지상 최대의 그림들 위에서 내가 그렸던 그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림들은 끝을 알 수 없는 크기로 늘어난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천오백 년 이전의 그림들과 포개져 합일을 이룬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옹알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 에필로그(epilogue)
아홉 번째 합평 관련 과제를 제출하면서...
한 편의 슬픈 이야기를 읽었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은 이시대의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다만, 타인과의 소통(교신)에 문제가 있지만. 성장 과정은 어찌할 수 없다해도 사회 진출 후 좋은 인연을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소설 쓰기‘ 관점에서 보면, 보통의 사람들 보다 약자인 인물을 내세워 우리가 주변에서 보아온 현실에 대해 의문을 갖도록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반성하거나 그 해결책을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요사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존엄과 존경으로 가는 소통’ 같은 좋은 강좌도 있고, 적정한 정도의 독서를 통한 대화(소통) 모임도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저런 적정한 ‘길’을 안내해주는 시스템 구축의 의지가 부재하다. 정부도 민간 기관도 각종 사회단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양극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양극화는 심해지는 듯하다.
오늘도 다른 이야기나 한 번 하고 끝내야 할 것 같아 작품 속에 나오는 『행복을 파는 우체국?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 벽 액자에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가 적혀 있다. 띄엄띄엄 시를 읽는다. 오늘도, 나는, 에머, 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에 포커스를 맞춰본다.
유치환 시인*은 생전에 많은 연시(戀詩)를 썼다. 통영여중 교사였던 이영도 시인**은 남편이 결핵으로 일찍 사망하여 21세에 미망인이 되었다. 기혼자인 유치환은 이영도에게 5천여 통의 편지를 보내고 많은 연시(戀詩)를 썼다. 처음 만난 1947년부터 시작된 그녀와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1967년,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이어졌다. 다만, 두 사람은 현실의 만남을 갖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영도는 유치환에게서 받은 연서 2백여 통으로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를 발간 했다(중앙출판공사, 1967). 기혼자인 유치환이 다른 여인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이 또 다른 한 여인에게는 아픔과 슬픔이 되었을 것. ‘행복’이라는 것의 ‘이중성‘에 대해 고민해 본다.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
문학작품을 독자로만 대해오던 저에게
3달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신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늘~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세요~~
...................................................................24/03/15 youngkwon ;~)
참고 *
1908년 7월 14일 生 ~1967년 2월 13일(향년 58세) 死. 1931년 '문예 월간'에 첫 시인 '정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그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1937년(29세) 통영으로 귀향했다. 통영에서 향교 재단이 운영하던 통영협성상업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이 시절 유치환은 발행, 편집인이 되어 같은 해 7월 1일 부산 초량에서 동인지 『생리(生理)』를 창간하며 1939년 첫 번째 시집인 '청마시초'를 발간했다. 해방 후 충무/부산/경주 등 지방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였으며 훗날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경주고등학교장, 경주여자고등학교장, 경남여자고등학교장, 대구여자고등학교장,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장까지 역임했다.
참고 **
1916년 10월 22일 生 ~1976년 3월 5일(향년 59세) 死, 21세에 남편을 잃고 외동딸을 홀로 키우던 과부. 통영여중 재직 당시 가정 교사로 근무. 유치환이 죽고 나서 두 달 후에 《사랑했으므로 幸福하였네라》(중앙출판공사, 1967)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부수인 2만 5천 부 인쇄. 판매수익을 모두 기부했다.
>>>>>>>>>>>>>>>>>>>>>>>>>>>>>>>>>>>>>>>>>>>>>>>>>>>>>>>>>>>>>>>>>>>>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