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이야기는 버츄프로젝트의 출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린다 캐벌린 포포프의 저서 The Virtues Project Educator's Guide 서문에 실린 내용이다. 미덕의 언어가 어떠한 힘을 갖고 있는지, 또 어떠한 형태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버츄프로젝트의 기본 철학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시골도시에서 두 어린 아들을 키우던 시절의 일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가끔 집안의 신조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말을 내뱉어 나에게 큰 충격을 주곤 했다. 둘째 아이 크렉이 1학년이던 때의 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크렉이 우리 앞에서 인종주의적인 단어를 입에 담으며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상투적인 편견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크렉은 머리에 이가 득실거린다는 등 소문으로 얻어들은 이야기를 나열했다. “크렉, 하지만 존은 어떠니?” 존은 초콜릿 색 피부를 가진 크렉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에 대해 크렉은 여섯 살짜리 아이의 논리로 이렇게 말했다. “걔는 빼고요.” 왜 존은 예외냐고 묻자, “제일 친한 친구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날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다. 그 이후 나는 크렉으로부터 피부색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두 번 다시 듣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그들에게 존경, 인내, 관용 등의 덕목을 가르쳐야 하는 나의 책무는 한층 도전적인 일이 되었다. 이러한 미덕이 학교에서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편, 우리 큰 아이는 개방수업의 실험실 속에서 그에 따른 소음과 혼란에 항상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나의 또 다른 근심거리였다. 개방수업은 그에 필요한 조건이나 여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교실에는 그 어떤 제한이나 제약도 없었다. 현장을 참관하러 갔을 때,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우리 아이는 그 한 가운데 있었다. 소음은 귀가 멍멍해 질 정도였다. 무질서도 나름대로 다스리는 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와 몇몇 다른 아이들은 그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담당 교사는 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나는 가슴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날 나는 교장선생님에게 면담을 청했다. 그는 낙담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개방수업의 운영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군요.” “작지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가 반문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수업진행이 가장 어려운 학년은 어느 학년이지요?” 교장선생님은 일학년 수업을 꼽았다. 그는 내가 정신과 전문의라는 것, 특히 어린이와 가정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덧붙었다.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그렇게 해 주세요.” 일학년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의 시각은 오전 11시,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온통 땀에 젖어 있었고,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한 작은 여자 아이가 계속해서 선생님을 올라타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키미, 제발 좀 그만 두어라!”라는 말을 몇 번인가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주 몇 시간씩 선생님을 돕고 싶습니다. 아주 다루기가 힘들거나 고집불통인 아이 다섯 명을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일주일에 두 번 그 아이들을 몇 시간 동안 맡아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그 여선생님의 얼굴에 비쳤던 표정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섯 명의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었고, 그 중엔 키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도화지, 크레용, 건포도, 그리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학교로 갔다.
존슨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자, 그 이름의 주인공들은 차례로 내 주위로 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아이들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역력했다. 나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자세로 앉아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아주 특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한단다. 선생님이 나와 같이 갈 아이들로 너희들을 뽑으셨어.” 그러자 아이들의 근심이 아주 조금은 덜어진 듯 했다. 혹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혹 어슬렁거리기도 하며 아이들은 내 뒤를 따라 조그만 비품 보관실로 들어왔다.
그곳에는 내가 미리 준비해 둔대로 어린이용 의자들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 “자, 앉아라!”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재빨리 그들의 대략적인 특성을 파악했다. 르로이는 무의식적으로 눈동자를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신경장애가 있는 듯 했다. 죠니는 지나치게 활동적이어서 의자에 앉기는커녕 그 위에 올라가 벽을 더듬으며 ‘벽타기’를 하는 것이었다. 키미의 옷은 지저분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으며, 몸놀림도 대단히 불안정했다. 그래서 혹시 누군가 그를 학대하거나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몬드는 움직임이 둔했고 비만이었다. 티미는 무엇인가 굉장히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키미와 죠니는 코카사스계였고, 르로이와 레이몬드와 티미는 아프리카계 아이였다.
나는 아이들 앞바닥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우린 이제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세 가지 아주 특별한 것에 대해 함께 배워볼 거란다. ‘존중’, ‘인내’ 그리고 ‘자제’라는 것이지.” 나는 나에게 주의를 기울인 네 명의 아이들만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죠니는 제외시켜야 했다. 계속 벽타기 자세로 의자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마칠 즈음, 죠니는 그 자세에 싫증이 났는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칠 새라 입을 열었다. “얘들아, 지금 죠니가 나에게 주목하는 것을 보았지! 저것이 바로 좀 전에 이야기한 존경의 한 종류란다.” 순간 죠니는 완전히 어안이 벙벙해져서 ‘쿵’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았다. 죠니의 주의를 붙드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 수업은 우리들만의 비밀이 될 거야. 너희들이 존경, 인내, 자제, 이 세 가지를 배우고 나면, 그땐 너희가 너희 반 친구들에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어.”
나는 매주 건포도와 팝콘으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그 말의 의미를 배워나갔다. 그에 대한 보상은 ‘나의 글자 먹기’였다. 그들은 활짝 웃었고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주로 중점을 둔 것은 아이들이 이 세 가지 미덕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갈고 닦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몇 가지 단순한 기술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조용히 하세요!”라고 하면 ‘동상처럼 그 자리에 멈춰서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동상 놀이’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 후에 뒤 따라 올 선생님의 지시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 보이는 한 가지 방법임을 이해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때는 선생님에게 뛰어 오르거나 소리를 지르는 대신, 한 손으론 입을 가리고 다른 손으론 하늘을 가리키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자제력을 연마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키미는 특히 마법의 존경 동그라미 훈련을 했다. 물리적 경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아이는 원숭이처럼 사람들에게 뛰어 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키미에게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는 모두 ‘마법의 동그라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서로 다른 사람의 ‘마법의 동그라미’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 자신과 타인에게 존경심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임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어느 날 티미는 나나 다른 아이들에게 뛰어 오르지 않고 수업시간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나는 수업을 마친 후 티미를 오랫동안 껴안아 주었다. 죠니는 나의 주의를 끌고자 할 때마다 나로부터 각별한 인정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미덕 연마와 직결된 내용의 것이었다. 레이몬드는 특히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탁월했으며 또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몇 주 안에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이 ‘기적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언급과 함께 감사의 서신을 받았다.
학기가 끝날 즈음 다섯 명의 아이들은 존경, 인내, 그리고 자제라는 미덕의 열매를 높이 치켜들고 교실 안으로 행진해 들어갔다. “오늘은 우리가 너희들의 선생님이야.” 레이몬드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우리는 너희들에게 존경에 대해 가르쳐 줄 거야.” 이 말을 한 죠니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르로이와 티미는 ‘왼손은 들고 오른손은 입술에 대는 기술’을 시범해 보였다. 우리는 반의 모든 아이들과 함께 ‘마법의 존경 동그라미 놀이’와 ‘동상 놀이’를 했다. 다섯 명의 내 아이들은 자긍심으로 빛났고, 다른 아이들은 우렁차게 박수를 쳐주었다. 학교는 이 단순한 미덕 프로그램을 토대로 한 ‘품행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채택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타났으며, 그 덕분에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이 초기의 경험은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그로부터 16년 후인 1991년, 남편과 나, 그리고 남동생이 함께 설립한 버츄프로젝트의 씨앗이 되었다. 버츄프로젝트는 현재 전 세계적인 풀뿌리 운동이 되어 우리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우리의 철학은 우리가 아이들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좋은 자질, 즉 미덕을 보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발현되도록 격려하면,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가장 바람직한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행복한 배움의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버츄프로젝트는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다. 버츄프로젝트의 목적은 존경, 인내, 자제와 같은 덕목이 지적인 교육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습득해야 할 항목에 포함되어서 참다운 ‘미덕문화’가 뿌리내리도록 돕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지금은 모든 학교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가장 좋은 자산, 곧 미덕을 갈고 닦고, 또 그에 따라 살도록 격려하고 배려하는 공동체로 변신을 꾀할 때이다.
첫댓글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해 지는 아이들, 지도가 점점 더 어려워 지는 교육이 인성교육을 숙제로 안고 있는 이 사회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관심 기우려야 할 내용입니다.
네.. 한번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존경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네요! 역시 고수들은 다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