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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민 1989년 독일유학시절: 3-3. 헝가리 탐방후 귀행 대장정
김재민 추천 0 조회 476 21.08.27 08:47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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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8.27 09:50

    첫댓글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았군요.의외로 아이들이 차안에서 찌증 안내고
    잘 견뎌주어서 다행입니다.

  • 작성자 21.08.28 07:39

    그래요.. 상황이 그리되어 지금 생각하면 택도 없는 무리운전의 귀행을 했네요.. 지적대로 아그들이 잘 자주지 않고 칭얼됨을 계속했다면 당연히 어디선가 1박을 했을텐데.. 요놈들이 모두 남아들이라 너무 잘 자줘 무리한 고고씽을 했던 모양임다.

  • 21.08.27 10:29

    에이..
    너무 무지막지한 운전이었쏘...
    옛날에 우리 누나에게 들은 얘긴데
    한국 아주머니가 여자분들을 여러명 모아서 여행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많이 죽고 다쳤답니다.
    이 와중에 운전하던 아주머니도 돌아가셨는데
    그 남편되는 분이 자기 아내가 죽은 것도 슬프고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하여 아주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김박 일행은 다행히 아무탈 없이 잘 와서 추억거리가 되긴 했지만...

  • 작성자 21.08.28 09:37

    맞네요.. 올라오면서도 체력이 한계점에 도달할 때는 에이, 어디가서 1박이라도 하고 올라가자 하는 생각이 자주 났지만, 모두 다 차 안에서도 잠들을 잘 자주니 "내가 잠들기 전에 1마일이라도 더 가자" 하는 정신으로 계속 기레이 한거네요.

    지금 생각하면 여러 사람의 안전을 위해 있을 수 없는 자기다짐이고 객기였지만, 하늘이 불쌍한 놈 그냥 한번 봐준 덕에 일행들이 무사하게 도착한 것 같았심다. 그 후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결심하고 운전에 관한 한 반성의 삶을 살고 있네요.. 요즘은 마누라도 운전 잘하고 해서 어떤 장거리 길에도 최대 1시간 이상은 단독 계속 운전하지 않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심다..

  • 21.08.27 12:11

    잘 읽었심다. 운전 고생하셨네요.
    나도 전에 7박 8일, 10박 11일 하며 광막한 미국 서부를 혼자서 가족만 태우고 장거리 운전을 몇 번 해 봤는데 여기서는 다른 주에 가는 것이 유럽에서 다른 나라 가는 것만큼이나 머니까 돌아오는 길에 캘리포니아에 들어서면 마치 고향에 다 온 듯한 안도감이 들더군요.
    헝가리는 본래 조상이 우랄 산맥 쪽에서 온 아시아 관련 종족이라 이야기만 들어도 조금 친근감이 드네요. 비록 성당 건축이나 성곽 같은 외향이나 문화를 보자면 서구나 별 다름이 없지만요.
    귀로의 상황 묘사 솜씨가 긴박감을 주는군요. 김박에게는 예사로운 서술 능력일지 몰라도 아무나 그렇게 써 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 작성자 21.08.28 13:32

    아, 법사도 장거리 운전 경험이 있어 대체운전자 없이 혼자서만 단독 주행해야 하는 상황을 같이 겪은 모양이네요.. 야간 장거리 주행한 경우도 제법 있었겠심다. 사실 요럴 때 그간 살아온 자기 삶을 반추하며 미래를 구상하는 생각정화의 기회도 제 경우에는 가져집디다.

    미국은 땅덩이가 크니 다른 지역 갔다 목적지에 1,000Km 전방에만 들어서면 사람들이 '다 왔다!'하는 심경이 된다하니 참 그 스케일이 유럽 사는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달라보이데요.. 먼 다른 주에 갔다가 캘리포니아주만 들어서면 여정이 거의 끝났다하고 여겨진다는 게..

    헝가리 주류 마자르인들이 아시아계 훈족의 일파라 합디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여겨지네요.. 몽골족 및 투르크족과도 전투를 통해 많이 조우했을테니 동유럽내에서는 아시아인의 혈통이 가장 많을거라 생각됨다.

    귀행길 묘사가 생각하지도 못한 긴박감을 불러일으켰다니 고마운 격려사네요.. 황감하게 접수하겠심다.

  • 21.08.28 13:26

    @김재민 돌이켜 보니 나는 다른 가족과 번갈아 운전하면서 장거리를 간 적은 없네요. 각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를 몰고 워키토키(김박 이야기에도 나오더구먼요) 들고 간 적은 있지요. 셀룰라폰 이전 시대 이야기입니다.

    헝가리인은 훈족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지요. 훈족은 대개 터키계(흉노)로 추정되는데 헝가리인의 조상인 마자르인이 유럽으로 오기 한참 전에 지금의 헝가리 등지로 쳐들어왔다가 멸망 후 소멸했지요.
    마자르인과 가장 친근관계에 있는 현존 민족은 우랄산맥의 동쪽, 오브강 중상류에 남아 있는 만시족이지요. 이들의 얼굴이나 체형은 동서양 중간 쯤 되는데 이들의 일파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혼혈하여 현재의 헝가리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빠졌네요.

  • 작성자 21.08.29 09:31

    @이원익 아, 그 옛날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는 두 서너차로 같이 여행 다닐 때 워키토키가 참 요긴했겠심다. 우리는 다른 가족들과 북유럽 여행 다닐 때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네요.. 서로 콘보이처럼 붙어다녔기에 그런 필요를 못느낀갑심다.

    마자르가 훈족의 일파가 아니라니 권위자인 법사의 견해를 접수하겠네요.. 그리고 흉노의 주력민족이 터어키계였다니 그것도 새롭심다. 지리적 분포를 보니 중앙아시아와 소아시아(아나톨리 반도) 쪽은 맞는 것 같네요. 그 근처에 있는 페르샤 쪽은 흉노 터어키와 또 다른 민족 분열을 보입디까?

    터어키 사람들이 우리를 형제 민족이라 부르는 걸 보면 우리 조상들도 우랄 알타이 지역에서 동쪽으로 이주해 중국으로부터 동이로 불리워졌을거라 유추됨다. 그렇다면 우리민족도 흉노족의 한 지류였다 여겨도 무방하겠네요.. 갑자기 흉노라는 단어가 우리 편인 것처럼 친숙하게 들림미다.

  • 21.08.31 04:28

    @김재민 아이고 답신을 늦게 봤네요. 터키족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흉노의 본향은 지금의 외몽고이며 몽고족은 그들의 동북쪽에 살았었지요. 이때는 완전한 동양인들이었지요. 그러다 터키족이 몽고족에 밀려 서쪽으로 이동해 가면서 확산하고 혼혈하는데 지금의 이란인 페르샤와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거치며 언어와 문화는 유지하되 피는 현지인의 피를 더 많이 받아들여 서양화 되지요. 페르샤와 소아시아의 원주민은 역사시대에는 인도 유럽어를 쓰는 백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지요. 흉노의 일파가 거꾸로 동진하여 신라의 경주 김씨가 됐다는 설은 개연성이 있습니다만 우리민족의 주류가 흉노족이라기보다는 본래의 한국민족(고아시아족? 알타이족? 미상)에 흉노족 일파가 들어와 지배층이 됐을 수도 있다고 봐야겠지요.
    터키를 우리가 걸핏하면 형제국이라 부르는 것은 일종의 우리 짝사랑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터키인들은 우리보다는 일본을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625 때 참전한 것도 형제를 구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터키가 1.2차 대전 때 줄을 잘못 서 손해를 많이 봤는데 극동에 전쟁이 나자 이번에는 실수 없이 빨리 숟가락 얹어서 전과를 제대로 챙기자는 목적이라는 설이 진실에 가깝겠지요.

  • 21.08.27 17:12

    나성에서 시애틀까지의 거리가 1800키로 정도 되니..1500키로면 매우 먼 거리라 하겠습니다.
    그런 귀향 거리를..그대로 달렸으니 중간에 자주 쉰다 하지만..상당히 무리였다 생각되는군요.

    저도 나성에서 시애틀을.. 차로 몰고간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1박을 해도 쉽지가 않더군요.
    몸이 좀 좋은 젊은 사람들은.. 20시간 연속 운전으로 주파했다는 등의 자랑을 하기도 합디다만-

    당시 부다페스트를 목표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신듯 한데..
    저도 김창훈 부부와 아리조나 피닉스란 도시를 목표로 세부 계획없이 무작정 떠났다가
    운전만 엄청나게 힘들게 한 기억만이 주로 남게 되더군요.

  • 작성자 21.08.28 09:40

    시애틀-LA 구간이 1800이나 된다고요?.. 미국 지도를 보니 능히 그 쯤 될 거리임다. 저가 비행기가 일상화 되기 전 시절이라면 자동차 주행도 이해가 되네요.. 뭐한다꼬 이 노선을 차로 1박까지 하며 다녀왔능교? LA친구들 만나러?..

    어제 안그래도 소생은 모처럼 1년 만에 김동조 사장, 성욱조 단장과 세명이서 12시에 가락시장 근처에서 만나 무려 5차까지 자리를 바꾸면서 8시간 반이나 이 아재들 말대로 이빨들 한번 제대로 털고 왔네요.. 특히 어제의 주 이빨털이는 단연 성단장이었심다. 아, 그 자리에 서토도 있어야 했는데.. 리액션의 황제 동조 사장이 옆에서 추임새 끝내주게 넣어주고 해 이 만남자리가 모두에게 코로나 시국의 우울함들을 제대로 털어내는 정화의 자리기도 했심다.

    내게도 이빨 털 기회를 줬지만 도저히 그 입담에 쨉이 안돼 보조 파트너의 역할을 전혀 못하니까 성단장이 "니는 글잽이로써 손이나 털어라" 하며 입담경연에서는 자동탈락을 시켜줬심다..혼자서 마이크를 잡고서는 자신의 가족사, 중고교 시절의 화려한 일탈기, 고교 클럽사(옥스포드, 워커스, 무스탕 동시 참여), 교우들 간에 있었던 다양한 스토리를 원도 한도 없이 다 들었네요.

  • 21.08.27 17:46

    요전의 김박사 요청에 따라..산울림 김창훈에 대한 글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앞전의 본문 글에서는 댓글이 많았던 데다..글이 빨리 뒤로 넘어가게 되어 이야기를
    풀어놓을 기회가 마땅치 않더군요.

    한 때 유명 밴드로써 많이 알려졌던 사람이니만큼..굳이.. 좀 상세하게 관련내용을 풀어볼게요.

    김창훈은 애초 나와 전혀 인연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지만.. 식품공학을 전공한
    착실하고 실력있는 대학 후배인데다..

    같은 직장에 2-3년 후배로 입사하여 우연히 같은 부서에 배치되면서 바로 내 밑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고.. 이후 내가 미국으로 발령되자.. 김창훈도 2년 뒤 쯤인가
    미국으로 나오게 되어 또다시 함께 근무하게 되었으니..어찌보아..아주 인연이 많은 사람이라 하겠지요.

  • 작성자 21.08.28 08:43

    산울림 밴드와 그 형제들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둘째 창훈씨는 서토와 같은 S대 농대 출신이더만요. 저그 형 창완씨도 같은 출신이었고요.. 아마 그래서 창훈씨가 서토와 학맥으로 좀 알게 된 사이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미국지사에서 서토와 사수-부사수의 관계였다하니 더 밀접한 인연의 관계였네요..

    사람이 음악만 잘하는게 아니라 직장생활인으로서도 딱 부러진 처신을 했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라 여겨짐다.. 지금도 미국에 거주하는 지 아니면 조기 귀국을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예인과 자유영혼 기질이 쫌 있어보이는 서토 외에 체제순응적인 다른 직장동료들과도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성은 갖고 있습디까.. 아무튼 흥미로운 인연이었겠심다.

  • 21.08.27 18:02

    당시 제가 나올 때만 해도 상사 주재원들은.. 일종의 외교관 등급의 비자를 받았으나
    이후로 규정이 바뀌어 일반 노동 비자로 바뀌게 되는 바람에

    김창훈은 일단 방문비자로 나와서 일하는 중.. 미국에서 노동비자를 다시 획득해야 하는
    혼돈된 상황이 되어.. 거의 1년 이상을 가족초청을 하지못하고..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

    따라서 초기 한두 달 정도는 저의 집에서 함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이상하게도.. 바뀌어진 비자 행정상의 곡절이 많았던 탓인지 아니면 변호사의 업무부실
    이었는지.. 비자획득이 계속 늦었졌고 따라서 거의 1년 이상의 기간을..LA 다운타운에서
    하숙을 얻어 혼자 생활해야 했습니다. 공연한 고생이 많았지요.

    입국 후 거의 1년 반이나 지난 후에야 드디어 부인인 김미회씨 그리고 아들과의 상봉이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도 들어 볼만한 흥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주요부분이 아니니..그 내용은 줄일게요.

  • 작성자 21.08.28 09:43

    오, 여기서는 창훈씨가 한달 정도나 서토집에서 같이 기거했다는 사실도 밝혀지네요.. 아니 이 양반은 당시 한참 뜬 산울림 밴드생활에 왜 전념하지 않고 생활인의 길도 선택했는지 그 연유 역시 궁금함미다. (김진회가 한번씩 만나면 지 혼자 썰을 밑도끝도 없이 펼치다가 내가 경청하고 있음을 중간확인 시켜주듯 그 인과관계를 다시 물어대면 '햐, 일마 와 이리 궁금쯩이 요리 많노? 이바구 끊기거로.." 하며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묻고 가야지요..)

    뭐할라꼬 그런 고생을 사서 했는지는 모르지만 미모 부인과도 1년 반이나 생이별하며 살았다니 그 애가 탐이 마치 이중섭이 일본으로 부인과 자식을 같이 보낸채 담배갑 은박지에 긴 사연을 깨알처럼 써보내던 그런 심정이었겟다 여겨짐다. 서토가 그 기간에 좋은 보시를 베풀었구려.. 하모, 사람이 당연히 그랬어야제..

    김미회씨와 같이 동행했다는 여행기는 특별히 궁금하니 있는 기억 없는 기억 다 짜내어 여기에 한번 읊어주소.. KBS 여앵커 시절 눈에 어찌나 우아하게 비치던지 당시 KBS PD하던 내 대학친구 윤모에게 한번 만남의 자리 부탁했으나 주선 명분이 서로 닿는게 없다고 나혼자 캇트 당한 아픔도 있었심다..

  • 21.08.27 20:34

    와~1500km 운전! 무사고였던건 天運이었오.
    향후 헝가리갈때 좋은 안내서가 되겠지만 갈 가능성은 1%^^

  • 21.08.27 21:36

    쪼매만 있으면 헝가리,첵코 편도 나옵니다.

  • 작성자 21.08.28 11:35

    그래요.. 사고 안 당한게 진짜 자비로운 부처님 보살핌 때문이라 지금도 믿고 있심다. 헝가리 더 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은 나 역시 같이 갖고 있네요.. 아직 못가봤기에 갈 여건이 되면 눈을 돌릴 최애 후보지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으로 꼽는 중임다.

  • 작성자 21.08.28 09:10

    @이길영 길영공의 동유럽 탐방기 기대하네요.. 이번에는 너무 빠르지 않는 템포로 연재해 주소..

  • 21.08.28 11:15

    @김재민 하루살이와 모기가 같이 놀다가 모기가 저녁이 되자 피빨아 먹으려가야 한다고 내일 놀자고
    하루살이에게 말하자,하루 살이 하는 말이
    "모기야! 니는 좋겠다! 내일이 있어서...!"

  • 21.08.28 16:19

    @이길영
    모기가 하는 말이...

    "하루살이야, 니는 내일이 없으니 울매나 좋겟노-
    나는 정말 힘들어 죽것다. 내일도 또 피빨아 묵으러 가야댄다." ^^

  • 21.08.28 16:26

    @김의철 하기사 언제부턴가 저녁에 눈 감으면 아침에 못 일어나면 좋겠다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언제 누가 위의 부류에 들어 갈 지는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 21.08.28 17:10

    김박사, 전일.. 서토가 많이 좋아했던 성욱조/김동조 사장과 오붓하게
    회동했다니.. 무엇보다 반갑고.. 또한 부럽기가 짝이 없네요.

    요즘 워커스 소식이 거의 없기에..모두들 노인 나이에 가까이 접근해가다 보니
    기가 빠지고.. 힘도 달리고 해서 그런가 했지요.

    성단장의 촌철살인 입담이 아직도 대단하다니..서토의 예상이 많이 틀렸던 모양이며
    여전히 대단한 심신의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는듯 하여 더구나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미 세월이 많이 흐른 이야깁니다만..특히 두 분은 이전 한국 방문시에.. 2-3차 까지
    자리를 같이 동행해 주었고..

    특히 김동조 사장은..당시 굳이 서토를 차에 태우고 변화한 서울 주변을 안내/설명 해주며..
    골프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어..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었지요.

  • 작성자 21.08.29 09:37

    아, 서토가 예전 2000년대 초중반 우리 홈카밍데이 행사 때와 부친 상 때 한국 들어온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이 두 양반과 만나서 제법 찐한 회포를 푼 적도 있은 모양이네요.. 그저께도 서토 얘기 한 챕터 할애해 제법 나눴심다. 서토는 역시 어디 가나 화제의 인물이 맞습디다.

  • 21.08.28 17:01

    이 모두가.. 사실, 진정 갚아내고 싶은 추억이라.. 지금쯤의 나이면..이 분들을 초청하여

    오레곤 곰사냥도 같이 하고..잘생긴 미국 미녀들을 옆에 앉혀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함께 하는 일정을 당연히 잡을 만도 하겠거늘...

    우짜다 보니..아직까지도 생업에 헉헉대야 하는 바람직 하지못한 상황에 머물러 있어..
    참으로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기분에 젖는 경우가 잦습니다.

    마침 이 두 분의 소식을 듣자니..그러한 간간한 생각이.. 문득 다시금 나게 되는군요.

    두 분께 안부전해 주시고..언젠가..
    김박사와 더불어..함께 자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계속 노력하겠슴미다.^^.

  • 작성자 21.08.29 10:02

    오레곤에서 곰사냥이란 게 요즘은 사라진 이벤트겠지요?.. 우리 복날에 개고기 파티하며 수십만 마리 견공들을 도살하는 것이 이제는 야만적인 풍습이라해서 점점 음성화되듯이 말임다.

    미국 본토산 미녀들보다 세계 각지에서 이민온 미녀들과 어울려 우리 룸살롱 같은 데서 술판 대접한다면 그 경비가 서토 한달 생활비가 날아갈 판 아임미까.. 그럴 각오까지 되어있다는 맘만 전하고 행여나 객기는 부리지 마소.. 두 아재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임다..

    지박사는 술담배 예전부터 전혀 안하는 독실한 양반이라고 두 아재가 확인해 주던데 그 말도 신기합디다. 고교, 대학시절에도 그랬는지.. 나는 그저께 두 아재가 어찌나 맥주, 소주를 호탕하게 마시던지 무알콜 맥주 갖고 오지 않은 김에 맥주 한 서너컵, 소주는 근 10년만에 2잔이나 받아마셨네요. 입담 분위기 망치지 않기 위해.. 모처럼 알콜이 들어가니 중간에 좀 졸리기는 합디다만 그리 큰 부작용은 못 느꼈심다.

  • 21.08.29 23:14

    저도 장거리 운전 혼자서 많이 했습니다만,원칙을 사전에 세웁니다.
    코스에 따라서 구경을 하는 코스가 있고, 그냥 이동을 하여야 할 코스가 있습니다만, 물론 마누라 컨디션을 생각해서
    그렇게 정하였지만, 오전 오후 각각 2시간 운전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평균 하루 평균 주행 250킬로 정도 ,최대 300킬로 단위로 숙소를 정합니다.
    만일 무리가 있으면 여행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에 컨디션 안배를 해야합니다.
    이렇게 하면 3-4주 혼자 운전해도 괜찮습니다.
    여럿이 교대로 운전을 한다하더라도 아무래도 신경이 쓰입니다.

  • 작성자 21.08.29 09:57

    길영공, 좋은 장거리 운전 습관 가졌구료.. 그래도 핸들 잡으면 2시간까지 가능하다 하니 나보다는 아직 생생한 듯 하요.. 나도 본 습관을 참고해 체력안배에 더 신경을 쓰리다. 마누라가 2시간 내가 1시간 하는 주행 원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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