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 사전전고(祀典典故) / 서원(書院) / 홍충도(洪忠道) 1800
충주(忠州)
운곡서원(雲谷書院) 만력 경자년에 세웠고 숙종 병진년에 사액하였다. : 주자(朱子)ㆍ정구(鄭逑)
팔봉서원(八峯書院) 만력 임오년에 세웠고, 현종 임자년에 사액하였다. : 이자(李耔) 기묘 명현 ㆍ이연경(李延慶) 기묘 명현 ㆍ김세필(金世弼) 기묘명현 ㆍ노수신(盧守愼) 선조조의 정승
누암서원(樓巖書院) 숙종 갑술년에 세웠고, 임오년에 사액하였는데 갑진년에 철훼(撤毁)하였다가 을사년에 복구하였다. : 송시열(宋時烈)ㆍ민정중(閔鼎重)ㆍ권상하(權尙夏)
충렬사(忠烈祠) 숙종 정축년에 세웠고 영종 정미년에 사액하였다. : 임경업(林慶業)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4권 / 충청도(忠淸道) / 충주목(忠州牧)
《대동지지(大東地志)》
【사원】
팔봉서원(八峯書院) 선조 임인년(1602)에 세웠고, 현종 임자년(1672)에 사액하였다. 이자(李耔)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벼슬은 우참찬이었으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의(文懿). 이연경(李延慶) 자는 장길(長吉), 호는 탄수(灘叟), 본관은 광주(廣州), 벼슬은 교리였는데,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김세필(金世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 본관은 경주이다. 벼슬은 이조 참판이었는데,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 노수신(盧守愼) 자는 관회(寬悔), 호는 소재(蘇齋),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벼슬은 영의정이었으며, 시호는 문의(文懿).
○ 운곡서원(雲谷書院) 현종 신축년(1661)에 세웠고, 숙종 병진년(1676)에 사액하였다. 주자(朱子)ㆍ정구(鄭逑)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본관은 청주이다. 벼슬은 대사헌이었는데,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목(文穆).
○ 누암서원(樓巖書院) 숙종 을해년(1695)에 세웠고, 임오년(1702)에 사액하였다. 송시열(宋時烈) 문묘에 보인다. 민정중(閔鼎重) 양주(楊州)에 보인다. 권상하(權尙夏)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庵),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벼슬은 좌의정, 시호는 문순(文純). 정호(鄭澔) 자는 중순(仲淳), 호는 문암(文巖),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벼슬은 영의정이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
○ 충렬사(忠烈祠) 달천(達川)에 있는데, 숙종 정축년(1677)에 세웠으며, 영종(英宗) 정미년(1727)에 사액하였고, 어제비(御製碑)가 있다. 임경업(林慶業) 자는 영백(英伯),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벼슬은 지중추부사였는데, 좌찬성을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화상(畫像)이 있다.
........................
팔봉서원(八峯書院) (1586) 검암서원(劍巖書院) 계탄서원(溪灘書院) -시소러스
조선 선조(宣祖) 때 충청도 충주(忠州)에 건립한 서원(書院). 이자(李耔)ㆍ이경연(李慶延)ㆍ김세필(金世弼)ㆍ노수신(盧守愼)을 배향함.
........................
陰崖先生集卷之四 / 附錄 / 行狀 議政府左議政盧守愼撰
韓山李氏在高麗。自稼亭文孝公諱穀,牧隱文靖公諱穡。父子相繼。入元朝。中制科。文章德業聞天下。遂爲文獻世家。牧隱仲子諱種學。簽書密直事。盡節先朝。畢命改社。密直生諱叔畝。爲刑曹判書。淑問無冤。家無長物。終知敦寧府事。諡良度。良度生諱亨增。僉知中樞院事。操身淸苦。一介不取與於人。僉知生諱禮堅。司諫院大司諫。所在以淸謹名。敎子弟檢飭。無外慕。聘善山金氏從仕郞寬安之門。以成化庚子。生公於漢都。諱耔。字次野。世稱陰崖先生。自幼嶷嶷然成人。不妄嬉戲。人知非凡常兒。年甫七八。大諫公始授之書。不煩指誨。一年離口讀。又一年通大義。稍長。學益力。退處一室。若有心會。癸丑。趨庭于三陟府治。遂上頭陀山中臺寺。讀宋史。慨然自奮。作萬言書。欲自獻。大諫公戒止之。有一老宿。持戒頗嚴。發言有道理。又喜之。欲參焉。寺前絶壁巉立。積雪交映。香燈永夜。激昂千古。及還都下。忽忽不樂。或時深憂永嘆。至欲作諫官。極言當世事。弘治辛酉。中司馬試。同榜若金安國,鄭忠樑,成世昌,柳雲。皆執友也。間遊國庠。不崖異於人。而莫不期以德器。李長坤,沈貞,季公仲,李孝彥,金希壽,宋好義,好禮,好智。俱與之同處磨礱。然每以向時所期待。已十損八九爲恨。甲子。擢文科第一名。授司憲府監察。充千秋書狀。比還。薦拜吏曹佐郞。時燕山政亂。僶勉從仕。唯用酒自汚。大諫公忤旨。初謫龍宮。尋移星州。公便丏聞韶。理民作人。咸盡其方。大有去後思。正德丙寅靖國。大諫公還朝。公又請爲陽川。未赴。有以公文學可備顧問爲言者。乃授弘文館修撰。庚午冬。丁大諫公憂。明年春。廬于龍仁器谷里。葬祭以禮。鄕里化之。旣除喪。見先壟下南溪巖隙。有楓林側生。心愛之。自號楓林居士。癸酉春。陞副校理,副應敎,司諫。甲戌八月。居大夫人喪。哀毀愈劇。制畢將歸。握奴手曰。留汝獨守。義同兄弟。嗚唈不已。丙子九月。直壟南崦之陽。構屋一間。翼以簷楹。繚以垣墻。爲齋宿之所。命曰思庵。作記以明其義。書諸板。乃曰。以懲吾過。且以爲規而揭之。蓋其意若將終身者也。冬。復授應敎。陞典翰,直提學。丁丑夏。陞副提學。移承政院右副承旨。戊寅五月。朝廷議奏請辨誣。上命博遴使者。銓曹難其人。請輟侍臣。薦擬副使。上特與增秩。固讓不允。遂入京進奏。復謄書禮部。見稱宗伯。題本一上。兪音旋降。乃奉勅回江。超拜漢城判尹兼知經筵事。賜土田臧獲。三月。遷刑曹判書兼五衛都摠府都摠管。尋爲議政府右參贊兼知春秋館事。
己卯禍起。坐累退居陰城。
始自號陰崖。謝絶閉杜。省愆守拙。至屢空。晏如也。唯左右圖書。凝神注目。家僮罕見其面。以其暇。則引學者數人。徘徊于門巖溪上。或疏泉引沼。誅茅架亭。嘯詠舒放。時得酒痛飮。以澆胸中磊塊。又好文字。每發於信筆以自娛。
歲己丑。更謀深閟。乃移卜忠州獺川上游之兔溪。築小精舍。名以夢庵。
或自號夢翁。其山高邃而水益淸。人迹如掃。村煙自稀。渚禽野獸。還往不驚。與前校理李灘叟先生延慶公居不遠。
仍自號溪翁。淸風朗月。輒一棹相就。窮硏道義。暢敍襟懷。樂而忘憂。餘一紀矣。癸巳十二月十五日。易簀。春秋五十有四。葬于先塋之側。
........................
陰崖先生集卷之四 / 附錄 / 溪灘書院記 院名。取溪翁灘叟之義。後改劍巖。後賜額八峯。亦取巖峯之義。 [盧守愼]
院于溪而聯灘爲號。尊同也。嶽三山之東曰俗離。頂有水分流。西流而北爲槐津。抵中原治南。南北山夾之者。兔溪也。迤風流山下。峭壁巉峯。束聳環列二三里者。劍巖也。霧豹雲虯。錦屛玉鏡。紆上下而映左右。綿亘不可斷。經細浦。歷獐項。至丹月部曲而峽盡。爲峽。窈而爽。闢而廓。眞隱者所盤旋者。天作而地祕之者幾劫。己卯禍起。韓山李先生參贊公。退寓雪城。濯纓于溪而樂之。輒卜其北岸。直壓劍面。構屋以居。廣陵李先生校理公。同時而擯。仍卜小築龍灘上。灘折西下而溪之獺川。會其左。或欲乘興而往焉。則便從一力。挐艇泝洄。可不暮而聞剝啄矣。嘗以溪翁,灘叟相命。每月扉風櫺。淸坐晤語。熟玩圖書。參訂古今。若將終身。不知老至。斯豈非二先生會心之境也歟。不幸未幾。相繼易簀。苔蝕側礎。兔窟荒蹊。過者愴然。爲斯文羞久矣。歲壬午春。監司金侯宇宏。唶迹之亡。謀諸牧伯李侯選。推州士數輩。相故宅之北。因其向背而董之役。後倅劉侯漢忠,吳侯澐。踵而用力。克底于成。其制則先建廟以奉二先生曰崇德。次講堂曰好懿。次齋東曰明誠。西曰敬義。遂繚以垣而門之。合扁曰溪灘書院。顧而四望之。峽裏煙霞水石。盡爲一院之有矣。未敢知大老之靈以爲如何。今金侯偉。聞而悅之。將究厥績。夫五君子者。殆能有以風厲而作興之。亦休矣夫。王子師傅康復誠。實主院事。累屬余文以記之。余惟。書院奚爲而刱。乃就鄕賢藏修地。爲學祠者也。思昔子朱子。欲以待夫不屑科試之士。而今世非之。豈不以不可與鄕校竝歟。殊不念古者閭黨皆有學。況此特家塾遺意。且其所以稱書。蓋曰是庋書之所云爾。書也何書。亦聖賢之籍也。聖人去矣。不籍之考。何所尋其緖而得其心。如使買其櫝而還其珠。又因以爲利。誠不若無籍之爲愈也。幸而有志。亦曰考其籍而效其爲而已。爲之何以。其事曰君臣父子夫婦長幼朋友。其法曰親義別序信。其功曰學問思辨行。然其大要。亦只是求其放心而已矣。竊願遊是院者。進而瞻乎廟。以致尊尙之義。退而聚乎堂。以盡講究之實。齋乎坐。尸如也。門乎出。賓如也。造次必于是。顚沛必于是。異時處約處泰。遇險遇夷。無入而不自得焉。夫如是。始是讀書人。豈不懿乎哉。嗚呼。弟子今老矣。朝夕乞骸而歸。常欲泊灘往溪。復識江山之勝。新窺堂室之好。以償宿債。耿耿難了。顧鍾鳴漏盡。矯首南悲。猶以托名姓楣間爲自慶。於是乎書。赤狗夷則歸德。後學盧守愼。記。
........................
澤堂 이식(李植)1584년(선조 17)~1647년(인조 25) 여고(汝固) 택풍당(澤風堂) 덕수(德水) 문정(文靖)
澤堂先生別集卷之十二 / 上樑文 澤風堂上樑文見澤風志 / 劍巖書院上樑文
伏以東膠西序之化隱。而山院之學肇興。崇德報功之典微。而鄕賢之祀始盛。矧聲敎東漸之域。當江漢上游之邦。論其隩區則百濟新羅之交會。按其名勝則金生強首之炳靈。洪惟聖治之休明。蔚有儒賢之輩出。鷄林學士採實於四科。夢菴先生接軌於千聖。同時仰灘叟之特起。及門喜蘇老之依歸。屬世方有爲。庶回唐虞之治。奈道之將廢。旋觸章蔡之姦。有受玦而處江湖。或摳衣而覷堂奧。北海詩書。馬鄭之學不孤。東洛衣冠。程邵之德自遠。千秋驗必反之理。一方懷不倦之仁。爰卽龍門之廢基。載營鹿洞之新學。靑雲白石煥焉宮墻。黃卷靑衿靄乎絃誦。雖龍蛇劫火之暫燼。幸奎壁星躔之再明。旣神宇掃地而新。而講堂待時以復。庶徒趨役。自力艱歲之餘。諸生僝功。不剝公府之有。溪山增色。魚鳥改觀。匡廬五峯。卽對濂溪之室。武夷九曲。還繞考亭之祠。吾黨斐然。斯文幸甚。讀其書論其世。寧有古今之殊。風乎雩浴乎沂。自在仁智之樂。輒申善頌。助擧脩梁。抛梁東。百折蒼崖一澗通。萬斛眞源誰得泝。春流曲曲漲桃紅。抛梁西。咫尺仙山路不迷。玉女風流誰敢䙝。瑤琴淸夜過前溪。抛梁南。削立三峯是劍巖。要識先賢眞氣像。芙蓉淬鍔照寒潭。抛梁北。松檜陰中巖徑仄。猿鶴休驚蕙帳空。鳶魚未見大機息。抛梁上。卓立高山人所仰。先生德宇與之齊。芬苾年年降歆饗。抛梁下。妙意一般知者寡。庭前芳草每年春。手植梅株今拱把。伏願上梁之後。廟貌永寧。儒門大闢。士服絃韋之訓。家行鄒魯之風。出處有方。當不渝於素節。騰騫有待。或繫望於蒼生。惟無媿於先賢。庶共扶乎吾道。
택당선생 별집 제12권 / 상량문(上樑文) 택풍당(澤風堂)의 상량문은 택풍지(澤風志)에 보임 / 검암서원(劍巖書院) 상량문
삼가 살피건대, 동교(東膠)와 서서(西序)의 교화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서 산원(山院)에서 가르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덕을 숭상하고 공에 보답하는 법의 시행이 미미하게 되면서부터 향현(鄕賢)을 제사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더군다나 성교(聲敎)가 동쪽으로 퍼져 나오는 구역에 위치하고 강한(江漢)의 상류에 해당되는 이 지역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 깊고 험준한 지세를 논한다면 백제(百濟)와 신라(新羅)가 일찍이 쟁탈전을 벌인 곳이요, 그 뛰어난 경치로 말한다면 김생(金生)과 강수(强首)의 영혼이 아직도 빛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삼가 생각건대, 성군(聖君)의 다스림이 온 누리에 밝게 펼쳐지자 유현(儒賢)들이 성대하게 배출되었다. 계림 학사(鷄林學士)는 사과(四科)의 과실을 채취하였고, 몽암 선생(夢菴先生)은 천성(千聖)의 발자취를 이었으며, 동시대에 탄수(灘叟)가 우뚝 일어나 우러름을 받았는가 하면, 소로(蘇老)가 귀의하여 그의 제자가 됨으로써 기쁨을 더하게 되었다.
당시로 말하면 세상에서 뭔가 큰일을 할 수 있는 기운이 무르익어 당우(唐虞 요순(堯舜))의 치세(治世)를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있었는데, 어떡하다가 세도(世道)가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곧바로 장채(章蔡)와 같은 간악한 자들이 득세를 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해서 결옥(玦玉)을 받고 강호(江湖)에 처하게 되자, 혹 옷깃을 걷어올리고서 당오(堂奧)를 엿보는 이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북쪽 바다에까지 시서(詩書)가 전해짐에 따라 마정(馬鄭)의 학문이 외롭지 않게 되었고, 동쪽 낙양(洛陽)의 의관(衣冠)들로 말미암아 정소(程邵)의 덕이 자연히 멀리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쯤 되자 사물이 극(極)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는 도리가 천추(千秋)에 징험됨은 물론이요, 한 지방 사람들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 인덕(仁德)을 마음속으로 사모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폐허가 된 용문(龍門)의 옛 터전에 나아가 녹동(鹿洞)의 새로운 학당(學堂)을 세우게 되었나니, 청운 백석(靑雲白石) 가운데에 학궁(學宮)의 담장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황권 청금(黃卷靑衿) 속에 사문(斯文)의 노랫소리가 애연(靄然)히 울려 퍼지게 되었다.
비록 용사(龍蛇)의 겁화(刦火)로 인하여 잠시 폐허로 변하긴 하였지만, 이제 다행히 규벽(奎壁)의 별자리가 다시금 비치게 되었는데, 일단 신위(神位)를 모신 사우(祠宇)를 말끔히 새로 단장해 놓고 나서, 강당(講堂)은 다시 때를 기다렸다가 복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서민(庶民)들이 어려운 한 해의 뒤끝에 자진해서 공사에 참여하여 힘을 아끼지 않았고, 제생(諸生)이 힘을 모아 낙성(落成)하면서 공부(公府)의 힘은 하나도 빌리지 않았다.
그 결과 계곡과 산봉우리가 더욱 빛을 발하고 물고기와 새들이 새로 모습을 바꾼 가운데, 광려(匡廬)의 오봉(五峯) 아래 염계(濂溪)의 거실을 대하는 듯 하고, 무이(武夷)의 구곡(九曲)이 고정(考亭)의 사우(祠宇)를 감싸 흐르는 것처럼 되었으니, 우리들만 영광스럽게 되었을 뿐 아니라 사문(斯文)을 위해서도 그지없이 다행스럽게 되었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그분들의 글을 읽고 그분들의 세상을 논한다면, 어찌 고금(古今)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쏘이고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한다면, 그 속에 저절로 인지(仁智)의 즐거움이 있게 될 것이다. 이에 찬송하는 글을 지어 들보 올리는 일에 힘을 보탤까 한다.
들보 동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東
벼랑 사이로 백 번 꺾여 시내 하나가 통하누나 / 百折蒼崖一澗通
콸콸 흐르는 저 물줄기 근원을 누가 찾아갈까 / 萬斛眞源誰得泝
봄물에 굽이마다 붉은 도화(桃花)가 넘치는데 / 春流曲曲漲桃紅
들보 서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西
신선의 산이 지척인 걸 길을 헤맬 리 있겠는가 / 咫尺仙山路不迷
옥녀와의 그 풍류를 혐의할 자 뉘 있을꼬 / 玉女風流誰敢褻
거문고 안고 맑은 밤에 앞개울을 건너도다 / 瑤琴淸夜過前溪
들보 남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南
깎아지른 세 봉우리 저기가 검암일세 / 削立三峯是劍巖
선현의 진짜 기상 알아보고 싶으신가 / 要識先賢眞氣象
연못 비치며 칼날 담근 부용봉을 한번 보소 / 芙蓉捽鍔照寒潭
들보 북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北
소나무 회나무 그늘 속에 비탈진 산길일세 / 松檜陰中巖徑仄
장막이 비었다고 학과 원숭이 놀라겠나 / 猿鶴休驚蕙帳空
물고기는 뛰어놀고 솔개는 높이 날으리라 / 鳶魚未見天機息
들보 위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上
우뚝 선 높은 산을 사람들이 우러르네 / 卓立高山人所仰
선생의 덕망 역시 저 산과 똑같나니 / 先生德宇與之齊
해마다 강림하여 분필을 흠향하시리라 / 芬苾年年降歆饗
들보 아래쪽에 떡을 던지세나 / 抛梁下
오묘한 이 뜻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 妙意一般知者寡
해마다 봄이 되면 뜰 앞의 방초가 무성한데 / 庭前芳草每年春
손수 심으신 매화 그루 몰라보게 자랐구려 / 手植梅株今拱把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는 사당과 신위(神位)가 길이 안녕(安寧)을 누리고 우리 유교의 문호(門戶)가 크게 열리는 가운데, 선비들은 현위(絃韋)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집집마다 추로(鄒魯)의 기풍이 진작(振作)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도리에 맞게 출처(出處)를 행하면서 자신의 절조(節操)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이요, 혹 때를 기다려 높이 뛰어올라 창생(蒼生)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해야만 선현(先賢)에게 부끄럽지 않으면서 우리의 도를 다 함께 부지(扶持)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주-D001] 동교(東膠)과 서서(西序) : 하(夏) 나라와 주(周) 나라의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으로서, 교육과 양로(養老)를 담당하는 기관을 말한다.[주-D002] 김생(金生)과 강수(强首) : 통일 신라 시대의 명필과 문장가이다.[주-D003] 계림 학사(鷄林學士) : 본관이 경주(慶州)인 김세필(金世弼)을 가리킨다.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거제도(巨濟島)에 유배되었으며,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조광조(趙光祖)가 사사(賜死)되자 이를 규탄하다가 유춘역(留春驛)으로 장배(杖配)되었다.[주-D004] 사과(四科) : 공문(孔門)의 4종 과목인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을 말한다. 《論語 先進》[주-D005] 몽암 선생(夢菴先生) : 기묘 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이자(李耔)를 가리킨다.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들과 어울려 도학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면서도 급진적 개혁 정책을 완화하고자 노력하면서 훈구(勳舊) 세력과의 갈등을 해소시키려고 하였으나 결국 급진 사림파의 반발로 실패하였는데, 기묘사화 때 함께 연루되어 숙청된 뒤 김세필, 이연경 등과 학문을 토론하며 여생을 마쳤다.[주-D006] 탄수(灘叟) : 이연경(李延慶)의 호이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섬으로 귀양 갔으며, 기묘사화 때에도 조광조와의 친분으로 인하여 귀양 갈 뻔하였으나 중종이 찬인록(竄人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버림으로써 유배를 면하였는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로는 이자(李耔)와 더불어 산수를 벗하며 낚시를 즐겼다.[주-D007] 소로(蘇老) : 호가 소재(蘇齋)인 노수신(盧守愼)을 가리킨다. 이연경(李延慶)의 사위로서 장인의 문하생이 되었다. 명종이 즉위하던 해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인하여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良才驛) 벽서(壁書) 사건으로 다시 진도(珍島)에 유배되어 20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하다가 선조가 즉위하면서 풀려난 뒤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나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주-D008] 장채(章蔡)와 …… 자들 : 사화(士禍)를 일으킨 장본인들을 가리킨다. 장채는 송(宋) 나라 장돈(章惇)과 채경(蔡京)의 병칭인데,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는 사마광(司馬光), 문언박(文彦博), 소식(蘇軾), 정이(程頤) 등 이른바 원우 당인(元祐黨人)들을 조정에서 축출하였다.[주-D009] 결옥(玦玉)을 …… 하였다 : 유현(儒賢)들이 조정에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자, 배우려는 자들이 몰려들어 점진적으로 발전한 결과 그 경지를 엿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옛날에 임금이 신하에게 벌을 내릴 경우 신하는 교외에 나아가 3년 동안 대죄(待罪)를 하는데, 이때 임금이 조정으로 복귀시키고 싶으면 온전한 옥고리를 내리고, 결별의 뜻을 보일 때에는 한쪽이 떨어진 옥 고리[玦]를 내린 고사가 전한다. 《荀子 大略 註》 당오(堂奧)는 ‘마루에 오른 뒤에 안방에 들어간다.’는 승당도오(升堂覩奧)의 뜻으로, 학문의 점진적인 발전을 뜻하는 말이다.[주-D010] 마정(馬鄭) : 후한(後漢)의 학자인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의 병칭이다.[주-D011] 정소(程邵) : 송유(宋儒)인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와 소옹(邵雍)의 병칭이다.[주-D012] 사물이 …… 도리 : 《근사록(近思錄)》 도체(道體)에, 복괘(復卦)를 설명하면서, “사물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니, 그 이치가 반드시 이와 같다.[物極必反其理須如此]”라고 한 말이 나온다.[주-D013] 가르치기를 …… 인덕(仁德) : 공자가,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我學不厭而敎不倦也]”고 하자, 자공(子貢)이,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은 지(智)요,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은 인(仁)’이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孟子 公孫丑上》[주-D014] 용문(龍門) : 덕망이 높은 현인의 저택을 뜻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이응(李膺)의 풍도를 사모한 후학들이 그의 집 마루에 올라가기만 해도 용문에 올랐다[登龍門]면서 기뻐했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世說新語 德行》[주-D015] 녹동(鹿洞) : 주희(朱熹)가 강학한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말한다.[주-D016] 청운 백석(靑雲白石) : 현인이 숨어 사는 곳의 산수가 빼어난 것을 비유한 말이다. 구양수(歐陽脩)가 자신과 동년(同年) 진사(進士)인 유환(劉渙)이 여산(廬山)에 숨어 사는 것을 찬탄하며 지은 시 ‘여산고(廬山高)’에, “스스로 푸른 구름과 흰 돌에 깊은 취미가 있지 않다면, 비범하기만 한 그의 뜻이 과연 어디에서 내려왔겠는가.[自非靑雲白石有深趣 其意矹硉何由降]”라는 구절이 보인다.[주-D017] 황권 청금(黃卷靑衿) : 황권은 서책을, 청금은 유생을 가리킨다.[주-D018] 용사(龍蛇)의 겁화(刦火) : 용은 진(辰), 사는 사(巳)로서, 임진년과 계사년의 왜란(倭亂)을 뜻한다.[주-D019] 규벽(奎壁) : 28수(宿)에 속하는 규수(奎宿)와 벽수(壁宿)로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성좌(星座)로 일컬어져 왔다.[주-D020] 광려(匡廬)의 …… 듯하고 : 광려는 은(殷)ㆍ주(周)의 교체기에 광유(匡裕) 형제 7인이 초막을 짓고 살았던 여산(廬山)이라는 뜻으로, 여산의 별칭이다. 오봉(五峯)은 여산의 오로봉(五老峯)으로, 송유(宋儒)인 염계 주돈이(周敦頤)가 집을 짓고 살았다.[주-D021] 무이(武夷)의 …… 되었으니 : 고정(考亭)은 주희(朱熹)의 별칭인데, 그의 ‘무이구곡도가(武夷九曲櫂歌)’가 유명하다.[주-D022] 그분들의 …… 논한다면 :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그 시를 외우고 그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그래서 그 세상을 논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옛사람과 벗하는 것이다.[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可乎 是以論其世 是尙友也]”라는 말이 나온다.[주-D023] 무우(舞雩)에서 …… 한다면 :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쐰 뒤 돌아오겠다.[浴于沂 風乎舞雩 詠而歸]”고 하자 공자가 칭찬을 한 고사가 있다. 《論語 先進》[주-D024] 인지(仁智)의 즐거움 : 공자가,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我學不厭而敎不倦也]”고 하자, 자공(子貢)이,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은 지(智)요,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은 인(仁)’이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孟子 公孫丑上》[주-D025] 콸콸 …… 넘치는데 : 도의 근원을 비유하면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주-D026] 옥녀(玉女)와의 그 풍류 : 신선인 동왕공(東王公)이 동황산(東荒山)에서 항상 옥녀 한 사람과 투호놀이를 하였는데, 제대로 적중하면 하늘이 찬탄을 하고 적중하지 못할 때에는 하늘이 크게 웃는 바람에 번개가 쳤다는 전설이 있다. 《神異經 東荒經》[주-D027] 거문고 …… 건너도다 : 송(宋) 나라 정호(程顥)의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에, “엷은 구름에 산들바람 정오가 가까운 때, 꽃 찾아 버들 따라 앞 개울을 건너노라.[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라는 구절이 나온다.[주-D028] 장막이 …… 놀라겠나 : 은자가 산을 떠나지 않을 테니 원숭이와 학도 놀랄 까닭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남조 제(南朝齊)의 주옹(周顒)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벼슬길로 달려 나가자, 공치규(孔稚珪)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풍자하였는데, 그 가운데에, “향기로운 장막이 텅 비게 되자 밤마다 학은 원망하고, 산사람이 떠나가자 새벽에 원숭이가 놀라도다.[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驚]”라는 구절이 나온다.[주-D029] 물고기는 …… 날으리라 : 군자의 덕에 힘입어 만물이 각자 제자리를 얻게 되리라는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고, 물고기는 연못 속에서 뛰어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말이 나온다.[주-D030] 분필(芬苾) : 제사 음식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초초자자(楚楚者茨)에, “정결하고 향기로운 효손의 제사에, 신령이 그 음식을 달게 받았다.[苾芬孝祀 神嗜飮食]”는 말이 나온다.[주-D031] 오묘한 …… 될까 : 소 강절(邵康節)의 ‘청야음(淸夜吟)’에, “달은 하늘 한복판에 이르고, 바람은 지금 물 위에 불어오도다. 이렇듯 맑은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이 아마도 적을거라.[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라고 하였다.[주-D032] 해마다 …… 무성한데 : 주염계(周濂溪)가 뜨락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놔둔 채, “저 풀도 우리의 뜻과 똑같다.”고 하면서 그 생의(生意)를 살피려 했던 고사가 전한다. 《宋元學案 卷12 濂溪學案下》[주-D033] 현위(絃韋)의 교훈 : 자신의 기질을 변화시켜 강약을 조화시키고 완급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전국시대 위(魏) 나라 서문표(西門豹)는 급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무두질한 가죽[韋]을 허리에 차고 다니고, 춘추 시대 진(晉) 나라 동안우(董安于)는 느슨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활줄[弦]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卷8 觀行》[주-D034] 추로(鄒魯) : 맹자(孟子)와 공자(孔子)가 탄생한 곳으로, 유교(儒敎)를 뜻하는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1
..........................
陰崖先生集卷之四 / 附錄 / 劍巖書院重建上樑文 李植
伏以。東膠西序之化隱。而山院之學肇興。崇德報功之典微。而鄕賢之祠始盛。矧聲敎東漸之域。當江漢上遊之邦。論其隩區。則百濟,新羅之交會。按其名勝。則金生,強首之炳靈。洪惟聖治之休明。蔚有儒賢之輩出。鷄林學士。採實於四科。夢庵先生。接軌於千聖。同時仰灘叟之特起。及門喜穌老之依歸。屬世方有爲。庶回唐虞之治。奈道之將廢。旋觸章,蔡之姦。有受玦而處江湖。或摳衣而覰堂奧。北海詩書。馬,鄭之學不孤。東洛衣冠。程,邵之德自遠。千秋驗必反之理。一方懷不倦之仁。爰卽龍門之廢基。載營鹿洞之新學。靑雲白石。煥焉宮墻。黃卷靑衿。靄乎絃誦。雖龍蛇劫火之暫燼。幸奎壁星躔之再明。旣神宇掃地而新。而講堂待時以復。庶徒趨役。自力艱歲之餘。諸生僝功。不剝公府之有。溪山增色。魚鳥改觀。匡廬五峯。卽對濂溪之室。武夷九曲。還繞考亭之祠。吾黨斐然。斯文幸甚。讀其書。論其世。寧有古今之殊。風乎雩。浴乎沂。自在仁智之樂。輒申善頌。助擧脩樑。抛樑東。百折蒼崖一澗通。萬斛眞源誰得泝。春流曲曲漲桃紅。抛樑西。咫尺仙山路不迷。玉女風流誰敢褻。瑤琴淸夜過前溪。抛樑南。削立八峯是劍巖。要識先賢眞氣像。芙蓉淬鍔照寒潭。抛樑北。松檜蔭中巖逕仄。猿鶴休驚蕙帳空。鳶魚未見天機息。抛樑上。卓立高山人所仰。先生德宇與之齊。芬苾年年降歆饗。抛樑下。妙意一般知者寡。庭前芳草每年春。手植梅株今拱把。伏願上樑之後。廟貌永寧。儒門大闢。士服絃韋之訓。家行鄒魯之風。出處有方。當不渝於素節。騰騫有待。或繫望於蒼生。唯無愧於先賢。庶共扶乎吾道。
.........................
陰崖先生集卷之四 / 附錄 / 請額疏 疏儒姓名不傳
自古。明王哲辟之待賢也。生則崇長之。歿則尊顯之。使善善之實。風於百世。此豈非敎化之本有所自耶。臣等謹按。故議政府右參贊臣李耔。天分甚高。根基廣厚。事親極其孝。處兄弟盡其友。其爲學。以灑掃應對爲階梯。以窮神知化爲歸宿。充養有道。體用皆備。唯務踏着實地。不喜空言。晩而眞積力久。義精仁熟。動靜語默。隨處而中。及己卯禍起。削罷鄕居。卜築於忠州之兔溪。卒。贈諡文懿。故弘文館校理臣李延慶。資高學邃。識見超詣。起居動作。自中規矩。篤於人倫。孝友天至。其爲學。擺脫俗陋。玩心高明。乃曰。知行固相須。然知爲先務。而養知在於淸心而寡慾耳。中廟朝。與一時名臣趙光祖輩。相友善。講磨道義。不屑擧子業。後登薦科。拜校理。黨禍作。薦科遂罷。寓居於忠州之龍灘。宣廟戊辰。申仁宗之命。復科復官先正臣李滉。稱其志尙高。學識遠如此。故能卓然自立於頹波之中。爲己卯完人。兩臣俱抱經綸之器。左右群賢。庶幾致君澤民。而得罪流落之餘。相聚於一州之境。道義相親。有若天與之便。則優遊講磨之地。不可無妥靈之宇。故自萬曆壬午。建祠而俎豆之。于今九十年餘矣。至如故刑曹參判臣金世弼。學問精邃。德行成就。文章超邁。博洽經史。爲一時名流所推重。己卯。以賀正使赴京。回到遼東。聞變作慨然流涕曰。孝直何罪。衮,貞輩。果殲盡士類矣。孝直。乃光祖字也。及還。以特進入侍經筵。進講論語過則勿憚改章。乃啓曰。殿下欲效唐虞之治。尊寵光祖。而一朝賜死。至爲慘惔。是殿下之過大矣。反覆極陳。言淚俱發。竟爲群小所惎。杖配於陰竹。仍寓居於忠州知非川上。與李耔,李延慶等。講學爲樂。後有敍命。不復仕進以終。故議政府領議政臣盧守愼。學問精博。文章奇健。德量行誼。爲一世士林之宗師。少時。聞先正臣李彥迪入洛。以書爲贄。請存心之要。彥迪指其掌曰。有物於此。握則破。不握則亡。守愼曰。是忘助之異名也。一言妙契。益用力於收斂之方。蓋其學。以居敬窮理。爲立脚之地。成己成物。爲推行之序。上嘗諭之曰。卿。伊洛之學。儒林之宗。又曰。程,朱議論。韓,柳文章。此聖人日月之明。千秋斷案也。且其受業於李延慶之門。又訪李耔於兔溪之居。故其所經過。草木皆香。一州人士。慕義無窮。粤在萬曆壬子。又以金世弼,盧守愼。同享於一院。而尙未有朝家恩額之頒。以彰尊崇之義。此豈非國家之欠典而士林之所羞乎。臣等。相率叩闕。仰干天聽。仍伏念。先賢藏修之地。旣有祠宇。則必有朝家寵錄之典。其來也舊矣。昔宋眞宗。賜應天府書院名。孝宗。賜岳麓書院名。至於吾東方。賜額書院。相望於八路。臣等此請。非出無稽。伏願殿下。深軫尊賢之念。曲採多士之誠。特命禮官。亟賜恩額。使四臣修道守義之實。彰著於後世。則吾道增輝。斯文永賴。不但榮於學宮。實乃有補於治化也。
........................
陰崖先生集卷之四 / 附錄 / 八峯書院賜額祭文 壬子 知製敎尹深製進
粤我祖宗。育材翹英。曁乎中,仁。多士揚庭。大雅宏達。濟濟爲群。遺風範後。凜有淸芬。維韓之李。文孝之孫。學本灑掃。期以窮神。充養有道。體用俱備。匪直能言。唯踏實地。少年慷慨。志欲匡君。正色立朝。素履罔愆。辨乎榮辱。窮達何貳。一紀處阨。令名終始。右諭先生 廣城之胄。己卯完人。行無瑕玷。學有淵源。氷玉其相。追琢其章。得名薦科。匪用爲榮。從容經幄。盡其葵傾。虛席論相。允出篤誠。善不近名。禍亦莫嬰。雖在錫褫。遐有輸贏。右諭灘叟 羅金之裔。歲寒松柏。豈唯文章。充以問學。地造逢原。隨處洞然。遂登瀛選。茅拔茹連。臨筵思啓。在郡召驛。演義勿憚。庶效牖約。忠則忘身。禍機奚惕。用舍有命。出處靡忒。右諭十淸 商顏老相。文與道俱。早依明師。擬黃甥朱。握節海島。匪怠匪荒。天其拂亂。德業彌光。辨析危微。論確執中。箋解發揮。以啓群蒙。晩際知遇。比古昭融。立志一疏。罄我丹衷。右諭穌齋 惟茲四臣。維邦之彥。羽儀明時。匡拂替獻。庶幾大東。民蒙至治。孰惎其間。含沙以伺。孰訛市虎。惑我天聽。孰爲雰虹。翳我大明。遂令慈母。投杼莫悟。駴機猝發。騈首一罟。天運循環。道無長否。不待百年。公議復起。歿加爵諡。存及登庸。士林增光。大激頹風。允矣君子。德音無瑕。雖不世施。敎成於家。銓風化俗。薰德善良。永懷不忘。曰篤在卿。瞻彼中原。與言遊處。地靈人傑。星徵賢聚。厥有藏修。尸祝攸享。八峯高竝。猶疑氣像。載錫嘉名。用揭新扁。祀事孔明。籩豆有踐。悵望異時。願以爲臣。側席如渴。思聞緖言。紓此紆軫。聊宣奠章。不昧者存。庶歆瓣香。
..........................
陰崖先生集卷之四 / 附錄 / 八峯書院春秋享祝文
氣宇淸明。學術醇正。聞風百世。肅然起敬。
...........................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1548년(명종 3)~1622년(광해군 14) 백구(伯懼) 수뢰누인(水雷累人) 청송(靑松) 문정(文貞)
一松先生文集卷之八 / 祭文 / 忠原劍巖書院祝詞
議政府左參贊陰崖李先生
氣宇淸明。學術醇正。聞風百世。肅然起敬。
弘文館校理龍灘李先生
資高學邃。道全德成。推其所有。以迪後生。
守知中樞府事十淸金先生
博聞彊識。厚德高風。追慕之深。遠近攸同。
議政府領議政蘇齋盧先生
德量行誼。學問文章。窮養逹施。亹亹難忘。
.....................
澤堂 이식(李植)1584년(선조 17)~1647년(인조 25) 여고(汝固) 택풍당(澤風堂) 덕수(德水) 문정(文靖)
인조 5 1627 정묘 天啓 7 44 1월 16일, 淸兵이 침입하자 찬획사가 되어 세자를 모시고 分朝로 내려가다. ○ 公州에 있다가 全州로 가서 군병을 모집하다. ○ 3월, 分朝를 철수하고 江都로 들어가다. ○ 9월, 忠州 牧使가 되다.
澤堂先生集卷之九 / 序 / 十淸先生遺稿序
故鷄林金參判世弼字公碩。世號十淸先生。先生以道德名一時。而文章不大傳于世。後人亦罕有識者。獨以余高王父容齋先生。曾與先生同竄巨濟島。故伊時唱酬題目。多在文集中。聯句一律則先生作參伍焉。常以未獲覩其大全爲恨。
丁卯冬。出守忠原。見州人祀先生于劍岩書院。余卽展敬祠下。
退而訪得其曾孫前縣宰仁龍。家藏遺稿一冊。篇什脫漏。字句訛舛。至不可讀。仍就加刪定。以便傳寫。公之詩以富蓄平鋪爲主。矢口成章。無少滯礙。計其箱篋所貯。當不止此。而兵火之餘。收拾絶少。是可惜已。始先生以詞業進。在成廟朝。已光顯矣。燕山之季。持正不汚。拘配累年。遭中廟反正。乃免旣牽復陞宰列。尤以道德開濟。爲士林所推重。己卯之禍。與龍灘,陰崖諸賢。俱黜于鄕里以終。嗚呼。古人之所謂三不朽者。先生殆備矣。卽斯集雖不足以盡先生之蘊。顧其聲音咳唾。尙彷彿文字間。學者於此可以觀世。可以觀人。烏可以失其大全而遂泯其傳哉。遂敍其槩以歸之。
.......................
수주팔봉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수주팔봉은 높이가 493m로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야트막하지만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세가 당당하다. 수주팔봉은 문주리 팔봉마을에서 달천 건너 동쪽의 산을 바라볼 때,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달천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절경을 이루고, 송곳바위·중바위·칼바위 등 창검처럼 세워진 날카로운 바위들이 수직 절벽을 이루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수부팔봉 일대는 옥천계 문주리층(담녹색녹이석편암)이 분포하는 곳에 풍화에 강한 암맥이 뚫고 들어간 곳이다. 수안보면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오가천이 달천과 합하여지는 과정에서 심하게 곡류하면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산줄기가 남은 것이다. 이후 다른 방향 구조선들에 의해 산줄기가 잘게 나누어지면서 여러 개의 봉우리로 분리됨으로써 달천의 맑은 물과 깎은 듯한 절벽을 안고 서 있는 기암 계곡이 형성되었다.
.......................
일암(釰巖) 권우(權祐)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관직은 직장(直長) 등을 역임하였고 충주(忠州)에 정자(亭子)를 지었는데, 황정욱(黃廷彧)이 호서 방백(湖西方伯)으로 부임했을 때 정자에 시를 남김.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1532년(중종 27)~1607년(선조 40) 경문(景文) 장수(長水)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 문정(文貞)
선조 16 1583 계미 萬曆 11 52 3월, 慶會樓 文臣 庭試에서 장원하다. 특명으로 掌隷院 判決事가 되다. ○ 곧 忠淸道 觀察使가 되다.
芝川集卷之二 / 七言律詩 八十四首 / 寄題釰巖權直長亭子 名祐。亭在忠州。
萬壑煙霞紫翠深。流丹亭影揷溪心。
昔賢祠屋長隣近。玉女風流自古今。
孤笛倚雲飄爽籟。淸湍咽月瀉松陰。
夢中一棹猶沿泝。覺後塵埃愧滿襟。
曾爲湖西方伯。時登覽于此。及遞還。追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