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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우회 스크랩 (수성구 여행) - 고산서당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
무철 양재완 추천 0 조회 232 17.06.15 05: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산서당(孤山書堂)은 조선 명종 때에 지방 유생들과 윤희렴(尹希廉)이 재실을 짓고

이황에게 재호(齋號)를 청하여 재(齋)는 고산(孤山)으로, 문(門)은 구도(求道)라고 한 친필을 받았다.

당시 구도라고 쓴 편액은 지금도 남아 있다. 사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5년(선조 38)에 중건하였다.

1607년(선조 40) 정경세가 대구부사로 있을 때 강회를 열었는데,

이때 당(唐)의 도독(都督) 이성삼(李省三)도 수강하였다고 한다.

1690년(숙종 16)에 서원을 창건하여 고산(孤山)이라는 원호(院號)를 사용하고, 이황과 정경세를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1879년(고종 16)에 지방 유림들을 중심으로

강학계를 조직하여 옛터에 강당만 다시 중건하여 고산서당이라 편액하였으며 1964년에 중수하였다.

- Daum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


▶고산서당은 2호선 사월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욱수천과 성동로를 따라 편도 2.4km 지점에 있다◀





고산서당 입구 (성동로)



고산서당



고산서당



고산서당



고산서당



고산서당

고산서당은 방형(方形) 토장(土檣)으로 둘려져 있고 건물구조는 납도리 위에 3량(樑)가구로 결조된 간결한 구조로

대량(大樑)은 만곡(灣曲)이 있는 목재와 막서까래를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건물로 정면4칸, 측면2칸 규모로

가운데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고산서당" 편액은 "고산유허서당기'를 지은 이만승의 작은아들 이중철이 쓴 것이다



고산서당



공덕추모비



충의추모비



고산서당



이황.정경세나무 입구






정경세나무 (보호수 - 300년된 느티나무)

정경세 선생이 대구부사로 있을 때 이곳에서 강학을 베풀어 준 데서 이름을 붙힘


이황나무 (보호수 - 300년된 느티나무)

이황 선생이 고산서원을 방문하여 편액을 고산으로, 문액을 구도라고 지어주고 나무를 심었음






퇴도이선생우복정선생강학유허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

고산서당 바로 뒤편 언덕 위 평지에 있으며 이 일대가 옛 고산서원의 유허지이다


고산서당

서당 앞으로 경부선이 지나 다니고 남천이 흐른다


고산서당



고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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