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통 이야기
[펌]
당신의 삶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졌을 때,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낄 때, 마요네즈 병 이야기를 떠올려 보아라.
한 교수가 그의 철학 수업 시작 전에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앞에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말없이 그는 매우 큰 빈 마요네즈 병을 들어 올렸고 그 안을 골프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이 병이 꽉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조약돌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았다.
교수는 가볍게 그 병을 흔들었다.
조약돌은 골프공 사이의 공간으로 굴러들어 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이 병이 가득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교수는 다음으로 모래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아 부었다.
역시 모래는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다시 한 번 이 병이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교탁 아래에서 두 잔의 커피를 꺼내 그 내용물을 병 안에 모두 쏟아 넣었고, 커피는 모래 사이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채웠다.
학생들은 웃기 시작했다.
"이제,"
웃음이 가라앉자 교수가 말했다.
"나는 자네들이 이 병이 자네들의 인생임을 알았으면 하네.
골프공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야.
자네들의 가족, 자녀, 자네들의 믿음, 건강, 친구 그리고 자네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 말이네.
자네들 인생에서 다른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것들만 남는다 해도, 그 인생은 여전히 꽉 차있을 거야.
조약돌은 문제가 되는 다른 것들이네.
자네들의 직업, 집 그리고 차 같은 것들이지.
모래는 그 외 모든 것들이지. 작은 것들 말이야."
"만약 자네들이 모래를 병 속에 가장 먼저 넣는다면,"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조약돌이나 골프공이 들어갈 자리는 없을거네. 인생도 이와 같네.
자네들이 자네들의 시간과 힘을 그 작은 것들을 위해 써버리면, 평생 자네들에게 중요한 것이 들어갈 공간이 없을게야.
자네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에 집중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낚시를 가도 좋고, 건강검진을 위한 시간도 갖게.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게.
다른 (골프)경기를 하게.
언제나 집을 치우고 고장 난 것을 고칠 시간은 있을 거네.
가장 중요한 골프공을 먼저 생각하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그리고 남은 것들은 그냥 모래일 뿐이네."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커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물어봐줘서 고맙네. 이건 단지 자네들의 인생이 얼마나 가득찼든지 간에,
언제나 친구와 커피 한 잔 할 여유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네."
제8사단 전우회원님들!!
커피 한 잔 할까요?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도 활기찬 하루되세요.
며느리도 모르는 ‘사람의 가치’
[펌] /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돼지 네 마리’ 값 여성 탐험가부터 수백억 원 연봉까지 요지경 몸값…
사람의 욕구만큼 다양한 가치 기준
20여 년 전 서울 상명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술대학의 한 교수가 철제 조각품 5점을 만들어 경기 김포의 작업실로 옮기려고 운동장에 내놓았는데, 학교 근처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고물상에 팔아넘겨 경찰에 구속됐다. 그들은 경찰에서 “학교 쪽이 귀찮아 처리하지 않은 줄 알았다. 한갓 고철 덩어리가 예술품이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5점 가운데 3점은 되찾았으나, 2 점은 이미 절단해버린 상태였다. 학교 쪽은 그 피해액이 3천만~4천만 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인부들이 고물상에서 받은 돈은 2만 1500 원이었다. 똑같은 물건의 가치가 사람에 따라서 1천 배 이상 차이나는 것, 동물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 사회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 예술작품에도 ‘상대성이론’은 적용되는가?
고가의 예술작품도 비전문가의 눈에는 한갓 고철 덩어리로 보일 수 있다.
똑같은 물건의 가치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은 인류라는 종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라움’ 미술관에 전시된 ‘마망’(엄마)이라는 작품. 한겨레 자료
고귀한 작품도 고물상 눈에는 고철일 뿐
오지 탐험을 즐기는 어느 한국 여성의 경험담이다. 인도네시아의 외딴섬 깊숙한 산골마을에서 며칠 묵을 기회가 있었단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결혼을 할 때 신랑이 신부 쪽에 값을 치러야 했다. 이른바 ‘신부대금’(bride wealth)이다. 이 여성 방문객은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과연 자신과 같은 조건의 여자를 신부로 맞이하려면 어느 정도 대가를 내야 하는지가 궁금해 현지 주민에게 물어봤다. 외모도 준수한 편이고 대학원도 졸업했기에 꽤 높은 값이 매겨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실망스러운 답이 되돌아왔다. 돼지 네 마리 정도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이가 서른을 넘어 아이를 많이 낳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생물학적 차원에서 사람의 값어치를 계산하고 거래하는 것이 전혀 없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급하게 돈이 필요해 모든 것을 처분하고도 모자라면 자신의 육신까지 팔아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예전에 가난한 이들이 수돗물을 마셔가면서 피를 팔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나의 몸은 과연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가장 쉽게 셈한다면 혈액이나 장기 매매 가격을 참고할 수 있겠다. 혈장을 한 번 뽑아주면 얼마를 벌 수 있다거나, 암시장에서 신장 하나가 얼마에 거래된다는 등의 정보를 모아 따져보는 것이다. 아예 목숨까지 포기하고 몸의 모든 부위를 팔아넘긴다면 건강한 사람의 경우 몇억원까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몸을 그대로 팔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노예시장이라는 것이 엄연하게 존재했고, 거기에서는 신체적 건장함을 절대적 척도로 몸값을 매겼다. 그런데 더 이상 노예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가끔 인신매매가 이뤄진다. 얼마 전 대구에서 어느 젊은 남녀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갓 낳은 아기를 200만 원에 판 일이 있었다. 그 가격이 어떤 기준에서 매겨진 것인지 궁금하지만, 아기를 돈을 주고 사고판 것 자체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런데 아이를 판매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해외 입양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지금도 한국은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많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보내고 있다. 미국 가정이 한국 아이를 입양하는 데 치러야 하는 비용은 1만 7215 달러로, ‘입양 시장’에서 한국 아이가 가장 비싸다.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한겨레21> 760호 ‘똑똑한 한국 아이 2169만 원이오’)
‘정신적 부가가치’로 수백억 원 버는 스타들
이렇듯 사람의 가치를 생물학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로 따져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이상의 차원에서 가늠할 때가 훨씬 많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 가치가 먹이나 서식지, 짝짓기 상대로 분명하게 한정되는 반면, 사람이 갖는 욕구나 필요는 엄청나게 폭넓다. 드넓게 펼쳐지는 상상계에서 촘촘하게 의미의 그물을 짜내 공유하고, 거기에서 경험되는 희로애락의 부피가 실로 방대하다. 그래서 정신적 부가가치를 생산하면서 큰돈을 벌어들이는 이들이 많다. 예술, 스포츠, 연예 등의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거나 탁월한 기량을 뽐내는 사람들이다.
그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받는 ‘몸값’은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올해 영국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스페인의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한 축구선수 호날두가 이번 시즌에 받는 연봉은 950만 파운드(약 156억 원)로, 매일 4천만 원 이상 버는 셈이다. 연봉 외에 광고 수입 등도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호날두도 매년 1천억 원 이상을 버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앞에서는 감히 돈 자랑을 하지 못한다. 천문학적 계약금이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도대체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것일까?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픈 곳을 고쳐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거액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의 수많은 스포츠팬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공 잘 다루는 재주 하나 가지고 그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다. 현란한 드리블이나 정교한 스윙에 경탄을 금치 못하다가도 그들과 나의 수입을 비교하면 힘이 쪽 빠진다. 나의 몸값이 너무 초라하다. 그것을 애써 잊거나 무시하려 하는데, 다른 뉴스들이 나의 ‘무능력’을 상기시켜준다.
» ‘몸값.’ 인간과 노동의 가치를 계량화하려는 시도는 뜬금없다.
세계적 투자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은 20억 원이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그라운드를 누비며 매일 4천만 원 이상을 번다. 당신은? (왼쪽부터)
연합· 뉴시스
예를 들어 유명 인사들의 보험금 같은 것이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가수 강원래씨는 그로 인한 손실액을 계산해 21억 원을 받았고,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사망 보험금은 35억 원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작고한 삼성전자 임원의 경우 유가족이 보험금으로 50억 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과연 내가 죽으면 나의 가족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보험회사에서 사용하는 공식에서는 평균 연수입을 따지고 그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 등을 산출한다. 보험회사는 수입을 되도록 적게 계산하려 하고, 수령자 쪽에서는 최대한으로 잡고 싶어한다. 한 인간의 생애를 그가 종사했던 직업 활동의 수입으로 환산하며 옥신각신한다.
인간의 노동이 산출하는 가치를 경제적으로 계산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필자가 외부 강연 의뢰를 받을 때에 가끔 곤란한 질문이 들어온다. 강사료를 얼마 드리면 되겠느냐고 물어오는 것이다. 속으로 생각하는 금액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그쪽에서 책정하는 기준으로 달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의처럼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일수록 값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절대적인 액수보다 상대적인 차이에 민감해진다. 가끔 과분한 강의료를 받고서 뿌듯해하다가도, 세계적인 스타 강사들이 받는 강의료에 비교하면 ‘껌값’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부질없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힌다.
비교는 끝이 없다. 자선기금을 모으기 위해 워런 버핏과 점심 식사할 수 있는 티켓을 경매에 부쳤는데, 무려 168만 달러(약 20억 원)에 팔렸다고 한다. 나도 그 흉내를 내서 학생들과 함께한 송년 파티 자리에서, 나와 함께 외식을 하고 영화까지 보여주는 티켓을 경매에 내놔봤다. 그 돈은 어디엔가 기부하고 일체의 데이트 비용은 내가 내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1만 원에 낙찰됐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와 점심 식사 하는 즐거움에 비해 워런 버핏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20만 배 이상이 되는 것인가?
본질적 가치, 돈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파고들다 보면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한다. 과연 가치를 가격으로 매긴다는 것이 가능한가? 나의 존재나 활동의 산물 등을 화폐 단위로 측정해 본질을 포착할 수 있을까? 어느 기업인이 시인을 만난 자리에서 대뜸 던진 첫마디가 “요즘 시가 팔리나요?”였다고 한다. 매상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 무엇이든 잘 팔리면 그 정당성이나 가치가 인정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오히려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돈이란 매우 정확한 듯하지만, 그것처럼 오락가락하는 것도 없다. 수십억원 연봉을 받는 미국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회사를 말아먹어 주주는 물론 사회 그리고 지구촌 전체에까지 폐를 끼치는 경우를 우리는 지난해 여러 차례 목격했다. 반면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무능력자라 할지라도, 만일 외국에서 인질로 잡혀 정치적으로 민감해진다면 정부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몇십억원까지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그의 몸값은 인질범들이 부르는 대로다.
문화의 영역으로 갈수록 가격의 자의적인 성격이 짙어진다. 이 글 첫머리에 미술작품을 둘러싼 해프닝을 소개했지만, 미적 가치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반 고흐가 남긴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세상에 쓰일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목적에 도움이 되거나 이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너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체스럽고 무거운 짐으로 여겨진다면, 그리고 네가 나를 불청객이나 게으름뱅이로 보게 된다면,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낫겠다는 느낌이 든다. …내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고흐뿐이랴. 천재적인 예술가들 가운데 당대에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이가 많다. 거의 굶어죽다시피 했던 이중섭 화백이 자신의 그림이 얼마에 거래되는지를 저 세상에서 알게 되었다면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을 듯하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생을 마쳤지만, 만일 그들의 저작권료를 제대로 따져서 챙겨준다면 엄청난 액수가 될 것이다. 반면 당대에는 반짝이는 갈채를 받으면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역사에는 한 줄도 오르지 못한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
예술만이 아니리라. 우리가 귀하게 생각하는 것일수록 값을 매기기가 어렵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객관화해 숫자로 정확한 값을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봉이 2배 차이가 난다고 해서 능력의 차이가 갑절인 것은 아니다. 자연의 만물들에 가격표를 붙이는 것도 허망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코끼리는 10억 원 정도 줘야 구입할 수 있지만, 비둘기나 참새는 돈 한 푼 없이도 그냥 잡아먹거나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코끼리가 참새보다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는 생태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동물만이 아니다. 어떤 대상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그 본질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
가격은 알아도 가치는 모른다는 게 답
‘뜬금없다’고 할 때, 뜬금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하지 않고 시세에 따라 달라지는 값’인데, 생각해보면 모든 가격은 뜬금이다. 그래서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그러나 어느 것의 가치도 모른다.’
Pearls before Swine
돼지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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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진주의 가치
진주는 보석 중 가장 가치 있는 물건입니다. 오늘 날에는 다이아몬드를 가장 비싼 보석으로 여기지만, 15세기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다이아몬드 가공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진주를 가장 값진 보물로 여겼습니다. 지구상에는 10만 3천 종의 조개류가 있습니다. 그 중 1만 5천 종의 조개류에서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진주를 만드는 조개류는 약 1300 종 정도입니다. 요즘은 인공으로 양식한 진주가 많지만 원래의 진주는 천연산입니다. 그래서 그 희소가치가 매우 컸습니다. 진주는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진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총체적 의미에서 본다면 福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복음이 왜 진주에 비유되고 있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 소유한 자에게 주는 행복감입니다. 보석은 소유한 사람에게 큰 행복감을 줍니다. 길거리를 다니는 여인네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비싼 모피 옷을 입고 다이아 반지를 끼고 귀고리를 걸면, 괜히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요란하게 걸어갑니다. 소유의 행복입니다. 좋은 집에 사는 행복도 그렇습니다. 복음은 소유한 자에게 행복을 주는 보석입니다.
둘째로, 불변하는 가치입니다. 이 세상 모든 영광은 결국 변질되거나 사라져 버립니다. 은금 패물도, 돈도, 권력도, 명성도 무한히 오래 가지는 못 합니다. 아름다움도 건강도 총명함도 나이 들면 시들어버립니다. 클라크게이블도 죽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쭈그렁 망텡이가 되었습니다. 치장해도 소용없어요.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참 보석의 가치는 변질되지 않는데 있습니다.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보석 자체가 아닙니다. 참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입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천대받는 물건이 있습니다. 뭔지 아세요? 바로 壽石입니다. 수석에는 山水景石도 있고, 物形石도 있고, 紋樣石도 있는데, 저는 특히 산수경석을 좋아합니다. 돌 하나를 놓고 산수의 경치를 감상합니다. 평원도 있고, 산도 있고, 계곡도 있고, 호수도 있습니다. 수석 하는 사람들은 돌 하나하나를 감상하면서 무궁무진한 상상을 하고 기쁨을 누립니다. 수석은 여러 가지 기쁨이 있습니다. 돌을 찾는 探石의 기쁨이 있습니다. 돌을 감상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돌을 정리하고 추억을 더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돌 하나하나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돌에 무식한 사람에게는 돌은 그냥 돌일 뿐입니다. 도대체 저 무거운 것들을 왜 집안에 끌어들이는지? 그냥 귀찮을 뿐입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돌은 단 한 개도 집에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가족들 중에 돌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냥 자루에 넣어서 버리자고 합니다. 까마귀가 어찌 백로의 심정을 알겠는가? 가치란 그것을 아는 자만이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족들 욕하자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돌 가치는 몰라도 인생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꼭 알아야만 할 가치가 있습니다. 만일 알아보지 못한다면 영원이 불행에 빠져야만 되는 결정적인 안목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가치를 알지 못하는 두 짐승이 있습니다. 첫째는 돼지요, 둘째는 개입니다. 돼지와 개는 최상의 가치를 모르는 인생들을 비유합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고상한척 하던 사람들이 왜 개와 돼지로 비유됐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돼지와 개는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첫째로, 돼지입니다. 돼지는 자기 배 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돼지는 배부름에 최상의 가치를 둡니다. 육체의 안락함 이상의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어디에 먹을 것이 있을까? 얼마나 먹을 것이 많은가? 누가 먹을 것을 주는가? 누가 내 육체를 즐겁게 해 줄까? 요즘 돼지 같은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돈과, 의식주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루미 한 마리가 논에서 우렁이를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이 두루미를 보고 천국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무한히 오래 살고,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항상 기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가 넘치고... 한참 설명을 했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뭔지 아십니까? “야, 천국에도 우렁이가 많이 있냐?”
둘째로, 개입니다. 개는 일면 돼지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도덕의 가치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제 친구가 기르던 잡종 개가 있습니다. 이 개를 어떻게 처치할 수가 없어서 이웃에 개를 잡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개를 끌어다가 어설프게 잡는 바람에 개가 잡는 도중 도망을 쳤습니다. 온 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서 주인집으로 도망쳐 온 겁니다. 그런데 주인을 보자 반갑게 꼬리를 치는 거예요. 주인이 자신을 죽이도록 請負한 사실도 모른 채 주인만 좋다는 겁니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주인을 떠나지 않습니다. 죽은 후에는 몸까지 다 바칩니다. 그런데도 세상에 나쁜 것에는 다 “개”字을 붙입니다. “개살구”, “개차반”, “개꼬라지”, “개망신”, “개떡”, “개수작”, “개싸움”, “개판” 등등. 왜 개가 이렇게 나쁘게 취급당할까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개는 도덕성이 없습니다. 위아래도 없고, 부모 자식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습니다. 부도덕의 대명사입니다. 도덕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도 개와 비슷한 위상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사람들입니다. 반듯한 직장이 있습니다. 가정도 있습니다. 학식도 있습니다. 재산도 있습니다. 명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덕성이 없어요. 낮과 밤의 생활이 다르고, 여럿이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의 생활이 다릅니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가진 가치 의식의 문제입니다. 제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보세요. 누가 내게 이런 쓸 데 없는 물건을 줬을까? 오히려 밟고 귀찮아 할 겁니다.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라고 했지요?
영원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메시야는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천국도, 영혼도 상관없고, 오직 현세에서 배불리 먹고 사는 것만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가치 의식을 갖고 있습니까? 혹시 돼지의 안목이나, 개의 안목으로 살지는 않겠지요? 진주는 가치를 알아보는 자의 것입니다.
더 나은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구상에 사는 수 백 만 가지 동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가치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가치 있고, 어떤 것이 더 행복한 것인가? 사람은 가치를 비교하고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돌아보다가 우연히 금광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즉시 밭 주인에게 달려가서 밭을 살 터이니 팔라고 했습니다. 밭 주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팔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밭 값이 생각보다 훨씬 비쌉니다. 평당 만 원이면 되겠는데, 평당 십 만 원도 더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이 사람은 재산을 다 처분했습니다. 자기 재산을 다 팔아 바친다 해도 결코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 밭에는 황금이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다른 재물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것을 팔아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었습니다. 또, 어떤 보석장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보다 더 값나가는 진주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마을에서 진주를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감정해보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값나가는 것이예요. 그래서 그는 그 진주를 사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주의 값이 예상보다 너무 비쌌습니다. 자기 장사 밑천으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집과 부동산, 패물을 다 처분해서 그 진주 하나를 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무척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그 진주는 전 재산을 합친 것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어찌하든지 더 아름답게 그리고, 더 意味深長하게 그리려고 애를 씁니다. 시를 짓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더 적합하고, 더 멋진 구절을 찾아낼까 노력합니다. 사업가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경영을 할까 노력합니다. 발명가들은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한 물건을 고안해 낼까 연구합니다. 모두가 더 나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것을 취하려면, 마땅히 한 세계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생물이 먹기 위해 삽니다. 돼지 인생입니다. 그리고 정욕을 위해 삽니다. 개 인생입니다.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은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해 삽니다. 육체보다는 영혼을, 땅보다는 하늘을, 일시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을, 낮은 것보다는 존귀한 것을, 찾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갖고 계십니까?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더 나은 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적당히 통제하고, 최상의 가치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소망과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돼지와 진주
[펌] / 강영구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그대에게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聖經)은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야훼 하느님께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이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숨결(입김)로 사람이 되었지만, 짐승들은 사람이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짐승이 됩니다.
하느님의 숨결로 사람이 된 인간은 두발을 땅에 딛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여 곧게 서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네 발로 깁니다.
당연히 사람의 관심사와 짐승의 관심사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땅을 바탕으로 하늘로 향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거룩한 것, 즉 하늘과 관련 있는 것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짐승의 관심사는 땅에 있습니다.
거룩한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개나 돼지에게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뼈다귀 따위가 진주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지금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돼지에게 진주는 돌맹이일 뿐
[펌] / 국민TV방송
어느 추운 1월.
한 남자가 워싱턴DC 역에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그는 바하의 곡을 연주했다.
3분 뒤, 어떤 중년남자가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금방 자리를 떠났다.
4분 뒤 바이올리니스트는 1달러를 벌었다. 어떤 여성이 그의 음악을 듣지도 않고 지폐를 내던지며 스쳐...갔기 때문이다.
조금 뒤, 반대편 벽에 기대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그 사람 또한 손목시계를 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음악을 가장 감명깊게 들었던 건 3살의 남자아이.
바쁜 아이의 엄마가 빨리 가자며 재촉한 탓에 오래 서있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는 걸어가면서도 계속 뒤돌아보며 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유심히 들었다.
그가 바하의 곡을 연주한 한 시간 동안, 그의 앞에 멈춰 섰던 건 단 6명이었다. 돈을 넣은 사람은 20명쯤 됐지만 그 중 멈춘 사람은 거의 없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번 돈은 32달러.
연주가 끝나고 울려퍼지던 음악이 멈춰도, 박수는커녕 역내 변화를 눈치챈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Joshua Bell.(조슈아 벨)
세상에서 가장 재능있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그는 지금, 역사에 남을 연주를 했다.
그것도 30억 짜리 바이올린을 들고.
불과 이틀 전, 보스톤에서 치렀던 그의 콘서트는 최하 13만 원부터 시작하는 티켓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던 참이었다.
우리들은 진짜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만한 것에 돈을 쓰고 있기는 한 걸까?
세상에서 가장 재능있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코앞에서 연주하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우리는, 혹여나 더 많은 소소한 아름다움들을 매일매일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잡설] 남자의 수명은 아내 때문
통계에 따르면 혼자 사는 남자보다 아내와 함께 사는 남자가 평균 수명이 더 길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아내가 남편을 잘 보살피기 때문일까?
섹스를 하는 것이 수명을 늘리는 것일까?
아내의 음식이 수명을 늘려주는 것일까?
아니면 아내가 옷을 잘 세탁해 주어서일까?
이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물고기의 얘기를 들어보자.
생선회를 파는 사람은 고기가 오래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생선이 죽으면 값이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족관에 작은 상어 한 마리를 풀어 놓으면 된다.
물고기들은 상어한테 먹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피해 다닌다.
긴장상태의 물고기는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물고기가 수족관 내에서 일찍 죽는 것은 태만하고 긴장이 풀어져 있고 제 맘대로 놀다 보니 운동량도 떨어져 일찍 죽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있으면 항상 움직여야 하고 긴장을 하게 된다.
온 세상에 어떤 남편이라도 아내 때문에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내를 가진 남자는 평생을 긴장하며 항상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
나태해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남편들은 수명이 늘어난다.
혼자 사는 남자들은 긴장이 없다.
출동할 태세도 필요 없다.
아무 때나 저 좋을 때 움직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내가 있으면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한 눈을 팔거나 술을 많이 먹거나 양말을 벗어서 아무데나 던지거나, 늦잠을 자거나, 여하튼 일거수일투족에 조심하지 않으면 아내의 잔소리는 바로 퍼부어진다.
그러면 남편은 긴장하고, 거기에 반응하고, 즉시 복종하여야 한다.
어쨌든 아내들은 게으르고, 편안해 지려고 하는 남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수족관의 상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내란 참 고마운 존재이다.
남자의 수명을 늘려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내에게 감사해야 하며 아내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아내 때문에 남자가 수명이 연장되는 이유가 더 있다.
남편은 여자를 벌어 먹여야 하기 때문에 늘상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고민을 하면 머리를 많이 쓰게 되고 그 결과 또 수명이 연장된다.
두뇌 노동자가 육체노동자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바로 아내가 남편으로 하여금 두뇌 노동자가 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고마움을 알도록 하자.
아내의 잔소리를 고마워하라.
아내의 바가지에 고마워하라.
아내에게 감사하고, 순종하라.
그러면 너희가 오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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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체의 요가
아름다운 나체요가를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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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유머]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돌대가리!!
한 정신병원에서 신참 정신과 의사가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데 시간을 깜빡 잊었다.
신참의사는 다른 일을 하다가 중요한 회의가 생각나서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그런데 마침 시계가 고장이 났는지 시계가 가지를 않았다.
당황한 의사는 시간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근처에는 모두 정신병 환자들만 있었다.
그래서 한 정신병자에게 물었다.
"여보세요. 혹시 지금 몇시인지 아세요?"
그러자 정신병자는 자기 손목을 보았다.
시계가 없었다.
의사가 그냥 가려고 하자 정신병자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해시계를 만들어서 시간을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신병자가 막대기를 가지고는 병원 마당 한 가운데 세웠다.
그리고는 해를 쳐다보고 그림자를 보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주머니 안쪽을
쳐다보았다.
의사는 정신병자가 하는 짓이 흥미로워서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저렇게 해서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정신병자는 각도기를 꺼내서 그림자의 각도를 재고 난 후에 또 다시 주머니 안쪽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계산하더니 또 주머니 안쪽을 쳐다보고 난 후에 마침내 시간을 알아냈는지 의사에게 말했다.
"해의 각도와 해시계의 그림자를 봐서 지금 정확하게 5시 36분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신참 정신과 의사는 너무 놀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그쯤 된 것 같았다.
"아니? 당신은 그렇게 머리가 좋은데, 왜 정신병원에 들어와 있습니까?"
의사가 묻자
정신병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야, 이 돌대가리야!
내가 머리가 나빠서 여기에 들어왔냐?
정신이 조금 이상해서 들어왔지.
내가 정신병자이기는 하지만 너처럼 돌대가리는 아니란 말이야."
그 말에 정신과 의사가 기분이 상해서 정신병자의 기를 죽이느라고 물었다.
"그럼 당신은 해시계로 시간을 측정했는데, 만약에 날이 흐리거나 해가 안 나왔을 때, 또는 날이 저물었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압니까?"
그러자 정신병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이런 돌대가리!"
그러면서 정신병자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며 말했다.
"그때는 주머니 안에 있는 시계를 보면 되잖아!"
???
김종학作‘ 청둥오리’ / 캔버스에 아크릴 / 각 60.6X72.7㎝ / 20호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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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어느 조미료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하루 조미료의 매출이 떨어지자 사내에서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우수한 사원들이 모여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시험해 보았지만, 한 번 꺾인 매출은 전혀 상승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한 여자 사원이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조미료통의 구멍 크기를 두 배로 하면 어떨까요?"
그 아이디어는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고 그 결과 매출이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물음이 달랐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이 늘 것인가?"
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조미료를 사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었던 것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비법, 그것은 물음을 바꿔 보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답이 안 나오는 물음에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3초만에 행복해지는 명언 테라피』
(히스이 고타로 지음 / 서인행 옮김 | 나무한그루)(사진 | 김이정 작가)
첫댓글 선배님 저는 긴장이아니라 경직상태 (70년대 논산훈련소 수용연대 입대장병수준) 인대요 ㅋㅋ
김 전우님, 안녕하세요?
긴장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경직은? ㅎㅎㅎ
김 전우님께서는 무척 애처가이신 모양이지요?
옛 어른들의 '가화만사성'이란 말에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김 전우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돌격^^^선배님 노력하겟습니다
이 전우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멋진 밤을 보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