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님의 《그 사람 내게로 오네》를 읽다가 알게 된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첫손꼽히는 백석 시인과
김영한 여사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법정스님과 길상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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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 백석과 자야 · 1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 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 문학 할 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에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 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 백석白石(1912-1996) : 시인.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
평북 정주 출생. 1929년 오산고보 졸업 후 도쿄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 수학
1934년 조선일보 출판부 입사 《女性》지 편집.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
1936년 시집《사슴》간행. 《백석시전집》이동순 편(창작과비평사 1987).
** 김영한金英韓(1916-1999) :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열여섯 살 때,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1936년 항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白石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백석 시인에 대한 회고 기록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1990년에는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 1995년에는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을 펴냈다.
김씨는 지난 1951년 서울 성북동 청암장을 인수해 '대원각'으로 개명, 국내 3대 요정의 하나로 키워냈다.
과거 고급 요정의 대명사였던 서울 성북동 대원각(당시 1000억원을 호가)을 법정스님에게
조건없이 시주해 길상사吉祥寺로 변신케 했다.
그 사람 내게로 오네 119~121쪽/우리글/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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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전 강제윤 시인의 책의 통해 알게 된 백석 시인의 새로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밀실정치의 요람이었던 요정 대원각을 시주 받아 법정스님이 세운 절이 서울의 길상사다.
시주자는 백석(백기행, 1912~1995)시인의 연인 이었던 고 김영한 여사다.
이 땅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첫손꼽히는 백석 시인은
기생이었던 그녀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자야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자야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속의 나타샤의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다.
백석과 헤어진 뒤 그녀는 평생 백석을 그리며 홀로 살았다고 한다.
자야는 《내 사랑 백석》이란 책에서 '백석이 사귄 다섯 여자 가운데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자야였고 자신 또한 백석에 대한 사랑을 평생 올곧게 간직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생이었던 자야는 1936년 회식장소에 나갔다가 백석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에게 반한 백석은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고 말했으며 이후 사랑에 빠졌다고 증언했다.
자야의 믿음처럼 백석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그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그네는 백석의 시 속 나타샤란 여인은 자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시란 게 원래 그렇다. 자야도 나타샤고, 자야 전에 사랑한 여인도 나타샤고, 자야 후에 만난 여인도 나타샤다.
사랑하는 여인이이면 누구나 나타샤다. 스물넷, 청년 백석이 사랑한 나타샤는 '난' 이라는 소녀였다.
(강제윤 시인의 '통영은 맛있다' p.192~194 인용)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녀에게 더욱더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1,000억원이 그 사람의 시한 줄 못하다며, 한평생 백석 시인을 그리워 했던 그녀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 오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달라고 했던 그녀
2014년 2월 9일(일) 눈 온 다음날 아침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길상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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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가 원래는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1987년 공덕주 길상화(법명)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스님을 친견 한 뒤
당시 싯가 1,000억원이 넘는 음식점이던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1995년 법정스님이 그 뜻을 받아들여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고
주지에 현문스님이 취임 했다. 1997년에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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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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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입구의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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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전 앞에 세워져 있는 '길상7층 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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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길상사를 보시한 길상화 김영한 여사와 법정스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길상사와 성북성당, 덕수교회가 함께한 종교간 교류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무상으로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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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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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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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범종각
김영한 여사는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1997년 12월 14일 법정스님으로 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만 받고
절터와 전각을 모두 보시하고 길상사가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랬다.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며
대원각 시절 여인들이 옷을 갈아 입던 팔각정이 있던 자리에 범종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가슴이 얼마나 찡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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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찰의 대웅전과는 다르게 대원각 요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상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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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옆 해맑은 동자승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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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극락전에서 바라본 눈내린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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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처소 송월각이 궁금한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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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선원의 선방을 조용히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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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선원 선방 앞에 세워진 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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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진영각
법정스님(1932년 음력 10월 8일~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1954년에 승려인 효봉의 제자로 출가 하였고, 1971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2010년 3월 11일에 서울시 성북구 성북 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무소유의 의미입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진영각에는 법정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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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불일암과 함께 길상사 진영각 뜰 안에도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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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의 눈내린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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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께 다시 한번 인사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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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숙소와 명상수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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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각에서 김영한 여사가 머물렀던 길상헌으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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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여사가 22살 한참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울 때 그녀에게 첫사랑이자 평생의 연인
백석(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한 인재이자 촉망받던 시인)을 만나 둘은 첫눈에 반했다.
아니 백석이 그녀에게 푹 빠졌다. "이제부터 당신은 평생 나의 마누라야! " 스물둘의 진향에게 굳게 약속했다.
기생 진향에겐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백석은 중국 전설속 여인의 이름을 따 그녀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붙혀 주었다.
서울에서 함께 한 2~3년간의 시간, 두 사람의 사랑은 날로 깊어졌다. 그러나 기생의 신분으로 부부가 될 수가 없었다.
부모의 반대를 이길 수 없었던 백석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자야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창창한 앞날에 짐이 되기는 싫었다. 백석은 자야를 설득하지 못한 채 만주로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연락이 끊어진 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지면서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영원한 이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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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여사의 유골이 뿌려진 곳에 세워진 공덕비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달라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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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각에서 탈바꿈한 길상사를 한바퀴 돌아 원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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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화장실은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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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헌 뒤뜰에서 바라 본 스님들의 숙소와 명상수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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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헌 뒤뜰에서 바라 본 진영각,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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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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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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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날 되라'는 동자승의 인사를 받으며...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다시 찾아가고 싶은 서울
도심속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길상사 나드리를 마쳤다.
길상사 위치는?
길상사 찾아가는 길, 길상사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길상사 홈페이지 http://kilsangsa.info/door.asp 참조
출처: 우리문화 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