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3월 7일)
<누가복음 20:45-21:6>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의 양면적 의미”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눅20:45-21:6)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8:1-5)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7)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19:45-46)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1:27)
『누가복음 21장에는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가 성전의 연보궤(헌금함)에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과부가 연보궤에 넣은 두 렙돈은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는 2,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 가난한 과부에게는 그 돈이 그녀가 가진 생활비의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바친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부자들이 풍족한 중에 헌금한 많은 금액보다도 그 과부가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의 헌신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가 부자들보다 더 많이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신 것은 그녀의 순순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셨음을 의미합니다. 즉 부자들, 특히 그 당시 중산층인 바리새인들은 많은 헌금을 드렸지만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헌금 행위를 사람들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등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한 것이었지만(마6:1,2 참조), 그 과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드린 것으로서, 그 헌금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극히 적은 금액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값진 보배를 바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도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극한 가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힘써 구제 헌금에 참여한 것을 크게 칭찬하면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고후9:7).
그런데 이처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이면에는 그 당시 유대교의 부패하고 타락한 현싱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즉 이 과부의 이야기 바로 앞에는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의 위선을 책망하면서 특별히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임을 폭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오며(20:45-47), 그 뒤에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의 웅대함과 화려함을 보고 찬탄을 하자 도리어 그 성전이 철저히 파괴되리라고 심판을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전후로 배치되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21:5-6).
즉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가 마지막 두 렙돈까지 헌금하게 된 데에는 서기관들이 율법을 가르치면서 과부와 같이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빈곤 계층에게도 헌금의 의무를 강요했음을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성전이 더 이상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굴혈(소굴)이 되었다는 예수님의 비판을 받는 가운데(19:46), 이 과부처럼 절대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돈까지도 헌금으로 거둬들여 성전이 화려하게 지어졌음을 시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가난한 성도들이 궁핍한 중에도 힘써 헌금을 하는 것 자체는 아름다운 헌신으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교회에서 율법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인 설교를 통해 헌금을 강요한 결과 가난한 자들이 무리하게 헌금을 하며, 그런 헌금들이 목회자들의 부유한 생활과 소위 ‘성전 건축’을 위해 사용이 된다면 그런 교회들은 강도의 굴혈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오늘의 기도 ● “한국교회가 가난한 성도들의 헌금까지 탐하는 강도의 굴혈이 되지 않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X/72
첫댓글 아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함으로 아낌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