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 3월 30일
중랑천 석관 레포츠센터에서 시작한 아침의 산뜻한 출발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아침운동이 오전 10시경까지 이어지고 무려 4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석관동 일대를 누비는 성과도 있었지만, 정오경부터는 피로가 몰려와 기운이 쑥 빠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아침의 팔팔함과는 전혀 다른, 정오부터 찾아온 참을 수 없는 피곤함이 격려차 모처럼 찾아온 80년대 고대 총학생회 간부들의 마음을 조금 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그러면 유권자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내 피곤함을 지적하니 내가 조금 삐친 것이다.
그래도 다시 쭈꾸미로 점심을 먹고 용기를 내서 월곡1동 대로를 좌우로 돌고, 월곡2동을 돌아 조금 대담하게 한 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지하철 월곡역 농협방향의 출구 정면에 혼자 섰다. 누구든 역에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그 방향으로 올라오면, 올라오자 마자 나를 만나야만 하는 위치에 혼자 선 나는 사실상 유권자를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한 것이다. 다행히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지는 못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온 까닭에 한 줄로 한 사람씩 바로 내 앞에서 내리게 되어있어 악수하기도, 명함을 드리기에도 안성마춤이었다. 물론 거부하는 약간의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부분 나의 강제된 만남에 순응했다.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의 이 만남은 새누리당 후보나 운동원도 없고 매우 효과적이어서 최근 선거운동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운동으로 기록될 것 같다.
어제까지 사실상 전 지역을 2번 이상 순방했고, 특히 상가 등 고정된 지역의 유권자는 대부분 만난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유권자의 아주 작은 비중에 불과하다. 지금부터는 유동하는 유권자들의 시간대별 이동경로를 미리 파악해 둔 대로 그 역방향에서 올라가며 만나야 한다. 내 계산이 맞고, 유동 유권자의 이동 경로가 맞다면, 나는 내일부터 <걸어서 평화 만들기> 때의 정신으로 성북구를 끝에서 반대 끝까지 여러 번 걷게 될 것이다.
저녁에 석관동 두산 아파트에 들러 동대표 회장단회의에 참석해서 이문전동차 기지창에서 나오는 소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듣고, 이것을 완화시키거나 없앨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서로 협력해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5번의 내 선거에서 전철역에서 직접 인사하며 악수하고 명함을 건네주는 운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바쁘게 출근하는, 또는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것은 헛된 사치이고 자만이며 무작위 대중에 대한 나의 두려움 또는 정해진 선거운동에 대한 과다한 집착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늘 있었던 난처했던 일 하나. 월곡역에서 만난 한 여성이 나를 보자 마자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자신을 아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난감해져서 ‘얼굴이 익은데 얼른 생각이 안나네...’라고 말끝을 흐리자 10여전에 내가 주례를 선 여성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또 놀랍게도, 그 말에 그 여성의 부모님이 생각나 말끝을 이어가자 그 여성의 얼굴에 피어나는 반가움의 미소는 나를 진땀나게 하면서도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