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차산성으로 가는 길/박홍점-
모두가 잠든 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푸른차산성으로 봄나들이를 간다 챙 넓은 해바라기를 쓰고, 나이를 거꾸로
먹나봐 들뜬 화장은 이제 마흔 살이다
십센치 킬힐 신고 도시락 따위는 필요 없다 입만 있으면 그뿐 살이 오르는
봄햇살만 있으면 그뿐 손에 손을 맞잡은 청춘들이 있고, 노래 속에만 있던 꽃
대궐 들뜬 화장이랑 나는 도란도란 꽃길 베어 먹으며 꽃 속으로 걸어 들어 간
다
(탯줄에 입을 대고 빨던 그때가 아니고서는 한 번도 함께 걸어본 적이 없어
말 안 듣는 아이처럼 신발 속에서 자꾸만 발가락이 튕겨져 나오곤 했지)
들뜬 화장은 이제 마흔 살 킬힐을 신고 백리쯤 걸어도 끄떡없는, 꽃들 만국
기처럼 펄럭이고, 오른쪽엔 푸른차산성의 돌담이, 왼쪽엔 봉분 같은 지붕들
마을을 이루고
주름과 고요는 꿈을 사이에 두고 뼈와 살은 길을 사이에 두고 봉분들이 부
풀어 오르는 봄빛을 받아먹고 배가 부른 날
들뜬 화장과 나는 자매처럼 친구처럼, 어느 순간 얼굴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들린다
비로소 당신의 말들이 들리기 시작해 청산가루도 먼저 먹어보던 리트머스
시험지, 당신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