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김치 냉장고
최경자
꿀밤나무 짙은 그림자가 밭둑까지 성큼 내려 와 있었다.
옥수수 긴 잎새는 초여름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고춧대 우거진 밭고랑 사이로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저 왔어요."
어머니는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정구지라 불리는 부추를 많이 재배 하셨다.
맑은 도랑물이 졸졸졸 흐르는 밭 가장 자리에는 항상 파릇파릇한 정구지가 깨끗하게 자라고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던지라 대구로 삶의 터전을 옯기신 후에도 변두리의 빈터를 활용해서 온갖
채소를 가꾸신다. 그 중에는 정구지도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가끔씩 들릴 때마다 가지각색의 나물들을 다듬고 손질해서 한 보따리씩 챙겨 주시기 때문에
한참 동안은 반찬 걱정없이 지낼 수도 있고 이웃들과 나눠 먹기도 한다.
김치 냉장고가 시중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 어머니 댁에 다니러 갔을 때였다.
어머니는 나를 한 쪽으로 부르시더니 "애야! 요새는 김치 냉장고라는 것이 나와서 참 좋다던데
너는 그런거 모르제?"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매일 장사나 하면서 들어 앉아 사는 딸이니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줄로 아셨던 모양이었다.
이웃의 새댁이 김장할 생각을 않길래 물어 봤더니 김치 냉장고가 있어서 일년에 김치 두 번만
담으면 걱정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자랑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는 세상에 그렇게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며 가격까지 알아 보셨다고
하셨다.
"애야 그것 하나 들여 놓아라. 너도 바쁘게 사는데 어미가 있어도 김치 한 번 제대로 못 담아
주니 네 한테는 그것이 꼭 필요한 물건 같더라. 조용하고 배추값이 쌀 때에 많이 담아서 저장해
두었다가 명절에 바쁠 때는 김치 담을 걱정 하지 말고 살아라."
나는 엄마 말을 들으니 그럴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있는 냉장고만 해도 속이 넓고 커서 김치
냉장고의 필요성을 크게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럭저럭 몇 개월이 지나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하는데 통 걸음이 없노? 한 번 와서 나물도 갖다 먹고 하지."
그 날 저녁 남편이랑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 댁으로 갔다.
그 날도 소담스럽게 챙겨 놓은 나물 봉지가 눈에 띄었다.
정구지, 풋고추, 깻잎, 호박잎, 겉절이 나물, 대파까지. 땡볕에 힘들게 가꾸어서 일일이 다듬어서
한 가지라도 더 챙겨 주시려는 마음이 예사 정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
함께 저녁을 먹고 과일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면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뒤 따라 나오시던 어머니께서 당부를 하셨다.
"나물은 가져가는 즉시 바로 냉장고에 넣어라. 그리고 정구지는 절대로 남 주지 말아라."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대답을 했지만 골목까지 나오신 어머니는 똑 같은 말을 또
되풀이 하셨다.
그래도 못 미더우신지 자동차 시동을 걸고 있는 사위에게 다가가서 또 똑 같은 당부를 하셨다.
"김서방, 얘가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나물은 꼭 냉장고에다 바로 넣고 정구지는 가다가 절대로
남 주지 말게."
우리는 어머니께서 유별나게 그러신다고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시키시는 대로 나물 봉지를 하나 씩 풀어서 냉장고에 정리 해 넣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정구지가 여러 단 들어 있는 사이에 비닐에 쌓인 납짝한 신문지 다발이 보였다.
이상해서 풀어 보았더니 만 원짜리 지폐로 묶여진 백만 원의 돈 뭉치였다.
아! 그랬었구나. 김치냉장고 한 대 들여 놓으라고 말씀을 하시더니 그냥 주면 안 받을까봐 기어이
여기에다 돈을 넣어 두셨구나.
그러면서 정구지 봉지는 절대로 가다가 남 주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눈물이 핑 돌았다.
차마 손이 떨려 바로 전화를 드릴 수도 없었다.
나물 봉지를 아무데나 내팽개쳐 뒀다가 풀어보지도 않고 이웃에게 이리저리 나눠 줘 버릴까봐
그렇게 걱정을 하셨던 것이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던 남편은 장모님께 도로 돌려 드려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형편이 아주 넉넉해서 주신 돈도 아니겠지만 늘 바쁘게 사는 딸이 안쓰러워 큰 맘 먹고 주신
돈 일텐데 도로 드리면 어머니 마음이 편하실까? 아마 받지도 않으실거야.'
우리는 며칠을 두고 의논을 했다.
그리고 돈을 돌려드리는 것보다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김치 냉장고를 들여 놓기로 했다.
훗 날 어머니가 더 연로 하시고 힘이 들 때에는 우리가 편하게 해 드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의 위안과 함께.
오뉴월 긴 긴 한 나절 뜨거운 햇살을 머리에 이고 밭에서 시간을 보내신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동네 할머니들과 시장 입구에서 난전을 이루신다.
거기서 어머니는 나름대로의 행복을 만들어 가신다.
한 여름, 옥수수 수염이 빨갛게 말라갈 무렵이면 그 낱알이 여물어 버리기 전에 한 번 다녀가지
않는 외손주들을 애타게 기다리실 것이다.
그리고 가지 각색의 야채들이 무성하게 자라면 먼저 전화를 하실지도 모른다.
'너거는 뭐 먹고 살길래 도통 걸음도 한 번 없노?'
우리집 김치 냉장고에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익어 가고 있다.
최경자 : 수필가. 대구 문인협회 회원. 수필사랑 문학회 회원. 한국불교대학 92기
첫댓글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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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찡하네요!! 참 좋은 인연입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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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도네요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인가봅니다 세상의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는 되겠지만 그리운 어머니는 .....
참 좋은 인연입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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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깊은사랑 글 잘 봅니다. ()()()
지기님 글은 좋은데 본인인지 궁금하구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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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님! 글쓴이는 본인의 필명 입니다. 수 년 전 문예지에 발표된 자작 수필이며 5월이라 올려 보았습니다. ()()()
가슴을 울리는 어머니의사랑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것입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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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글을 대하게 되어 고맙습니다.관세음보살_()_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항상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으로 미루게 되지요. 찾아 뵙는것도...전화를 드리는 일도...지금, 지금 바로 해 보세요. 목소리만 듣고도 너무나 기뻐할 것입니다. 원명신님, 어머니의 한량없는 사랑이 담긴 글 마음으로 읽습니다. 어머니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사시길 기원드립니다.^^*()
꼭 울 엄마 보는느낌이네요,,,,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관세음보살()()()
어머님의사랑이 아닌가싶네요. 세상의 모든어머님들의 자식에게주는 조건없는 사랑 , 우리어머님 생각이납니다. 우리모두 부모님께효도해야 할것같아요. 언제까지나 마냥 부모님께서는 기다려주시지 않는다고는 알고있는데.....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원명신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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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마다 넘치던 사랑~~~ 그립습니다 .관세음보살()()()
어머니가 계시니 참 좋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