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11 (금) 11:28
영화 ‘브링 잇 온’을 본 사람은 10대 치어리더들의 재기 발랄하고 힘 있는 율동에 한번쯤 반했을 것이다.
우리 프로야구에 치어리더가 등장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관중 동원을 위해 지역 응원단을 섭외하다 90년대 중반 지금의 치어리더의 형태가 자리 잡았다.
지난해 치어리더는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메이저리그처럼 치어리더 없이도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구단의 의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열광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한국 문화에서 치어리더는 뺄 수 없는 독특한 응원 코드다. 세계 프로야구에서 유일한 그라운드의 ‘꽃’으로 존재하는 치어리더, 시즌 개막을 맞은 이들의 세상을 들춰봤다.
● 치어리더가 꽃이라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듯’ 치어리더들도 그라운드의 환호성 속에서만 화려한 ‘꽃’으로 변신한다.
‘꽃’이 되기 전이나 ‘꽃’이 진 후 이들이 맞는 환경은 예쁘게 꾸며진 정원이 아니다.
이들이 연습하는 곳은 주로 소규모 매니지먼트사가 운영하는 지하에 마련된 작은 연습실이 전부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치어리더가 쓸 수 있는 샤워장이나 라커룸이 따로 없어 씻지도 못하고 땀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간다. 돈은 월급제나 일당제로 받는데 일당은 대략 10만~15만원. 하루 수입으로는 꽤 많아 보이지만 1년에 홈 경기가 67경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연봉 1000만원 정도로 큰 수입원은 되지 못한다.
일반 사무실에서 일하는 또래 친구들보다 수입이 적어 그만두는 치어리더들도 있다.
● 치어리더들의 체력훈련
치어리더도 몸이 재산이다. 평균 키와 몸무게는 170㎝, 52㎏. 선정 기준은 외모가 우선이다.
일단 외모가 반듯해야 구단 관계자의 눈에 들 수 있고 기존의 치어리더들과 함께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지원자 대부분이 에어로빅 강사, 내레이터 모델, 무용·체육 전공 학생이기 때문에 춤 솜씨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는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연습을 한다. 매니지먼트사에 따라서는 몸매 관리를 위해 수영 강습이나 체력 관리를 위해 웨이트트레이닝 센터에 등록시켜주지만 따로 몸매 관리를 하지 않아도 단상 위에서 한바탕 뛰고 나면 1㎏은 가뿐히 줄어 유니폼이 헐렁해진다.
● 7㎝ 아래의 세상
이들이 신는 운동화의 굽 높이는 7㎝. 신발 아래로 비치는 세상은 다양하다.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검프 형’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단상 위만 넋을 잃고 바라본다. 술 마시고 단상 위로 뛰어올라오거나 경기에 지면 병을 던지는 무지막지한 팬도 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최근 유행하는‘몰래 카메라’. 아예 단상 밑에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대 찍어가는 대담한 소행을 벌이는데 대부분 치어리더들의 신고로 경비원에 잡혀가 창피를 당한다.
7㎝ 아래는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 앗, 나의 실수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대부분의 실수는 의상과 관련한 것이다.
격렬한 춤으로 상의의 단추가 풀어지거나 짧은 치마의 이음매가 뜯기기도 한다. 갑자기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가 하면 어떤 치어리더는 짧은 치마 속에 입는 언더 팬츠를 ‘깜박’한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고.
초보인 경우 춤을 추다 폭 좁은 단상에서 앞이나 뒤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느 팀은 치어리더가 뒤로 떨어졌던 그해에 우승을 차지했다며 ‘치어리더가 떨어지면 우승을 한다’는 미신도 생겼다고 한다.
● 눈은 열고 귀를 닫고
나비가 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선수와 치어리더들의 스캔들도 알게 모르게 많다.
경기 외에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어 소문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치어들끼리만이 아는 진실도 있다.
치어리더들은 대부분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구단으로부터 말 조심할 것을 주의받는다. 헛소문은 구단의 이미지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선수와 스캔들이 나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엄격한 팀도 있어 서로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 그래도 ‘꽃’이 좋은 이유
영화 ‘브링 잇 온’에서 오디션을 보러온 전학생 미시는 “치어리더가 허울 좋은 들러리”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치어리더들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이 있다. 비록 수입이 적고 몸이 힘들지만 자신의 끼를 수많은 관중 앞에서 발산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또 응원 리더로서 경기의 흥미를 끌어내는 데 책임감도 느낀다. 그라운드의 ‘꽃’이라는 표현이 듣기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단번에 끄덕인다.
그라운드의 함성을 먹고 크는 ‘꽃’. 역시 꽃은 꽃이라서 좋은가 보다.
심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