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실천신대 정재영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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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한국 사회: 변화와 위기의 시대, 회복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
코로나 뉴노멀과 4차 산업혁명의 확장
2023년의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코로나 팬데믹의 안정화이다. 사회 전반에 코로나 뉴노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뉴노멀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래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5-10년간의 세계 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을 코로나 상황에 적용한 것이 코로나 뉴노멀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지던 기존의 생각이 바뀌었다. 아프면 쉬고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다. 또한 위생이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언택트’ 방식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반드시 대면 업무가 필요하지 않은 일은 재택근무로 대체되기도 하고, 비대면 방식의 상거래와 상품 주문, 온라인 회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무인 점포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주 4일 근무제도 시범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4차 산업혁명을 더욱 빠르게 진전시키고 있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융합하여 초연결성, 초지능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했다. 이로써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 경계를 허무는, 또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간의 상호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술 융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집적된 데이터가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 및 활용을 거쳐 산업을 비롯한 폭넓은 범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다시 데이터로 최적화되는 구조이다. 이는 속도와 범위, 영향력에서 과거의 산업혁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별성을 가진다.1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플랫폼 개념이 혁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디지털 기술의 등장이 플랫폼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플랫폼의 규모와 구성 원리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무형의 구조물을 의미한다. 사업자는 정보통신 기술 플랫폼 내에서 어느 두 그룹으로 하여금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게 하여 쌍방향으로 연결하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은 플랫폼 구축을 통해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 등 다수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이 과정에서 모든 참여자가 가치와 혜택을 얻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은 단순히 경제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실천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플랫폼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플랫폼 사회’로 접어들게 되었다.2
‘플랫폼’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승강장, 발사대, 수영장의 다이빙 준비대’ 등을 뜻하는데, 이제는 ‘경제·예술·IT 플랫폼’이라는 용어로 사회의 많은 분야에 적용되어 ‘네트워크의 집단화, 가치 구조나 틀’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창의적이고 확장된 사고를 폭넓게 ‘플랫폼적 사고’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플랫폼적 사고는 사업 영역에 적용되어 기업 풍토를 바꾸고 있다. 교육계, 의료계 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이다. 교계에서도 플랫폼 처치, 플랫폼 목회라는 말이 드물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 우리 사회는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이것을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각 영역의 전망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의 파급력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막대한 정보의 양을 스스로 분석하고 처리하는 인공지능, 즉 초지능이 크게 주목받는다. 최근 10년 사이에 정보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데이터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대용량의 데이터를 연계하고 분석하기 위해 도입된 기술이다. 인공지능은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종종 영화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실제 대중의 삶과는 멀게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 사이의 바둑 대결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같은 해 등장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 또한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챗GPT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챗GPT는 대규모 언어모델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서, 이전의 인공지능 서비스와 달리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운영사는 계속 새로운 버전을 공개하고 있는데, 올해 출시한 ‘GPT-4’에서는 답변의 정확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
챗GPT는 기존 인터넷의 단순 검색 기능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다양한 내용도 짧은 시간에 편집하고 정리해서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내놓는다. 예를 들어, 특정 관광지의 여행 일정을 짜달라고 하면 구체적인 숙박, 음식 정보를 활용하여 근사한 여행 계획을 제시한다. 이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학술 주제나 논문도 그럴듯하게 작성해 준다. 심지어 챗GPT를 이용하면 누구라도 쉽게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다. 다양한 신학 정보들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기존의 탁월한 설교들을 모아서 더욱 훌륭한 설교문을 내놓는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발전하면, 목회자가 해 오던 일의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신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목회자의 79%가 챗GPT에 대해 알고 있으며, 47%가 이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조사한 일반인들의 챗GPT 사용 경험(36%)보다 높은 수치로, 목회자가 일반인에 비해 챗GPT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특성상 뭐든지 물어보기만 하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고, 심지어 허구의 내용까지 만들어서 제시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도가 높아져서 그러한 오류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인터넷 정보 중에는 여전히 사실과 다르거나 완전히 허위인 내용이 많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이러한 내용들을 그대로 취합할 경우 내용의 진위가 분명하지 않은 정보들이 더욱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당연히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표절의 문제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내용을 구성해서 생기는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논문이나 설교 등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작성 과정에서 챗GPT 활용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보들을 취합하는 것이므로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 등 잘못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관점이 그대로 담기게 된다는 약점을 지닌다. 성차별적인 내용이나 특정 부류에 대한 혐오 표현이 걸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챗GPT를 일상생활에서 정보를 취합하거나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할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용할 때는 보다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정
코로나 사태 이후 여러 부정적인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국제 사회는 더욱 불안정해졌고, 이는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전부터 세계화의 영향으로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인력의 이동까지 국제화되었고, 이로써 한 국가 안의 일자리 또한 세계화의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세계 경제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향은 일자리의 변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으로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고, 또 실업이 증가함으로써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도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은 공장 자동화와 직업 구조의 변화 역시도 지속적으로 일자리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노동시장의 주요 흐름은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노동력 수요 부족과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킨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노동 생산성의 혁신은 노동량과 노동시간의 절감 효과를 증폭시켰다. 향후 대규모 일자리 감소 현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수년 안에 현재 직업 중 50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자리의 부족은 결국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게 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 실업률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올해 실업률이 최저 수준이고 고용률이 높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매우 다르다. 올해 상반기 60세 미만 민간 풀타임 일자리 취업자는 지난해(1,914만 3,000명)보다 9만 1,000명가량 감소하였다. 질 좋은 민간 일자리는 크게 감소했고, 3년 이상 취업하지 않은 청년 중 집에서 시간을 보낸 ‘니트족’이 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트(NEET)족이란 영어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가 없는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말로 영국 정부가 1999년에 처음 사용한 말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청년층 인구가 감소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청년 고용률은 23.8%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경기 침체의 영향만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청년 노동력의 수요가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래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상품 수명 주기도 단축됨에 따라 기업이 단기적인 시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규 청년 인력보다는 즉각적인 활용이 가능한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고 소수 핵심 인력 양성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신규 청년 인력의 취업난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3 특히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확산하면 신규 채용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향후 청년들의 취업난이 훨씬 더 가중될 것으로 예측된다. 당장 경기를 호전시키기는 어려우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고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고립의 심화
코로나 상황에서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우울감이 크게 증가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고립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통계청의 ‘2022년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외부 활동 및 대인관계 단절로 인해 ‘사회적 고립도’가 더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에 34.1%로 코로나19 상황 이전인 2019년(27.7%)보다 6.4%p 늘어, 2009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사회적 고립도는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경우’ 또는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의 비율로 파악한다. 한 해가 지나야 조사가 시행되기 때문에 현시점의 사회적 고립도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 수치는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 사회 전반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스스로 평소 일상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도 55%로 절반이 넘어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외로움’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 개인 사이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외로움과 고립의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영국은 외로움 담당 공무원을 두고 있고, 일본도 지난해 고독 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했을 정도로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의 외로움 지수가 영국 국민의 외로움 지수보다 높다고 하니,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고용 불안정의 결과로 고립 청년과 은둔 청년도 더욱 늘어나고 있다. 고립 청년은 사회관계나 사회적 지지체계 등 사회 자본이 모두 결핍된 청년이다. 그리고 은둔 청년은 고립 청년 중에 외출 없이 제한된 공간에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청년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청년 히키코모리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올 초 실시한 서울시 조사 결과를 전국 청년 인구에 대입하면 고립 또는 은둔 청년은 6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무조정실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둔·고립의 계기 1순위는 ‘취업 어려움 및 실직’이 38.9%로 가장 많았다. 청년재단에서는 고립 청년의 비경제활동, 정책 비용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7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청년 문제는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 더욱 큰 사회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사실 사회적 고립의 문제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한 트렌드 전문가는 코로나 이전부터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분석하여 ‘외로움’을 핵심 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인해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우울감이 극도로 증대되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인 자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 수준이다. 자살의 요인은 다양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사람일수록 자살에 더 취약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그 위험도가 낮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해마다 발표하는 OECD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보면, 공동체성과 관련된 사회관계망의 질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 매번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동안에는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살률이 다소 떨어지기도 했으나 향후 다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므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지만, 상황이 호전되면 오히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의 박탈감이 더욱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의 고립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교회도 마을 돌봄과 같은 활동을 통해 사회적 고립이나 자살 예방을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여파
그렇지 않아도 모두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만든 사건이 작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하였다. 핼러윈 축제에서 다수의 사람이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196명이 다치고 159명이 숨진 것으로 보도되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믿을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고, 온 국민이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정부 관련자에 대한 재판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나 명확한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더욱 크게 실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세월호 참사 때의 모습과 중첩되어 사람들을 더욱 큰 절망 속에 빠뜨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 이태원 일대는 축제의 거리가 아니라 추모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해외에서까지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 상권도 오랫동안 침체되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사태로 인해서 국민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회적 재난에 대한 경험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재난이 종료된 이후에도 재난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난의 경험은 외형상의 피해뿐만 아니라 안으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일으키는데, 재난을 경험하거나 목격할 경우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충격으로 이어지고, 긴장, 두려움 등을 확산시켜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4
따라서 이러한 재난 상황을 정확하게 규명하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책임감 있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 이러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정치 이념에 따라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만 극명하게 나뉘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 또는 지지 여부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태도가 나뉜 것이다. 같은 시간에 벌어진 정권 비판 집회 때문에 이 참사가 벌어졌다고도 하고, 놀러 간 젊은이들, 유흥에 빠진 사람들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하냐는 입장과 생명 자체의 소중함을 호소하며 질서 유지를 소홀히 한 행정 관리자의 책임을 묻는 입장으로 양분되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러한 사회적 재난을 정치 이념에 따라 판단하거나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인들은 코로나 사태 동안의 방역에 대해서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했고 서로 다른 대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말로는 ‘과학적인’ 기준을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더욱 따졌다. 이는 최근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일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해석하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공동선의 가치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큰 정치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정치 이념보다 기독교적 가치와 성서의 가르침을 우선해야 한다.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족들의 아픔과 상실감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을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족들은 여전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에서 발의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이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관련 법안들 역시 통과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무런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반기독교 문화를 즐기려고 했다든지, 심지어 벌을 받은 것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정죄하는 발언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도 옳지 않다. 그리스도인 유족조차도 교회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을 정도이다. 먼저 진상과 책임 규명이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후에 이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가는 말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 사회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처음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앞으로의 사회가 코로나 이전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석학들은 이 위기를 기회의 시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사태가 인류 역사에서 대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변화보다는 부정적인 변화가 더욱 눈에 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 없이 단기간의 변화에 즉흥적으로 대응한다면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성찰과 반성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동시에 새로운 위험 또한 몰고 왔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다. 또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 요소도 증가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에서 위험 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온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근본 문제인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은 크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 요소는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 요소가 각 사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발생하게 되면 그 불안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특히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파괴로 인한 생태계 교란과 기후 위기는 인류 사회를 더욱 크게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환경 문제가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위험 요소를 증가시키는데 이것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3-4년 안에 코로나보다 훨씬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기후변화로 지구의 물순환이 바뀌고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문명이 빈번한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코로나19 역시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파괴된 모든 생물이 대대적인 이주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5 이처럼 생태계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인류 모두의 과제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후 위기 시계는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당장 생계 문제를 비롯해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대안을 마련할 여력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나 침체에 빠져 있는 개신교를 비롯한 한국의 종교 단체들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기가 매우 버겁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무종교인 비율은 60% 선을 뛰어넘었다. 종교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겨우 넘긴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제 종교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넘어 관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굳이 종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각자도생의 사회, 무한경쟁 속 더욱 피폐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은 특별히 종교 본연의 역할이자 의무로서 더욱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코로나 사태라는 사회적 재난과 위기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더욱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주(註)
1 클라우스 슈밥, 송영진 옮김,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 현재, 2016), 12.
2 문상현, 『플랫폼 사회』(커뮤니케이션북스, 2022).
3 김태황, “미래 산업구조와 일자리의 변화,” 박찬식·이우성 엮음, 『한국교회여, 미래사회를 대비하라』(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 2006), 69.
4 박주언 외, “재난정신건강 평가도구,” 「대한불안의학회지」 11/2 (2015): 95.
5 안희경, 『오늘부터의 세계: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메디치, 2020), 19-20.
정재영|종교사회학을 전공하였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1세기교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한국교회의 미래 10년』, 『강요된 청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