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소개: 형상시학회
형상시학, 이미지의 반란을 꿈꾸다
김 주 명(시인)
현대인들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이 순수한 문학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겠다. 80년, 90년대를 지나면서 감각적, 즉흥적 언어들이 미디어를 지배하였고, 시는 이미 잊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본화, 대중화에 상처 받은 대중들을 문학이 감싸 안고 아픈 곳을 어루만졌다. 그러면서도 늘 그래왔듯 하나의 문학회는 탄생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탄생은 여러 가지 문학적 동질성의 추구 혹은 세계의 유사성을 가지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시를 사랑한다는 조금은 막연한 인간관계의 산물로 생겨나는 것이 동인이고 무크지이며 <형상시문학회>도 현재까지 그 존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수상가옥의 시기(2007 - 2012)
한 사내가 수상가옥을 지었다. 물 위의 집? 이사람, 저사람 입소문도 내면서, 신문에다 대놓고 떠들고 다녔다. 그게 언제였던가요? 2008년 여름은 그렇게 더 뜨거웠다.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해할까요?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나요? 저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요? 등등 의문들은 고성동, ‘문화 공간 윤’에서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손길이 닿지 않는 이들은 인터넷 신호에 의탁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기초반’, ‘주간반’, ‘야간반’, 참 멋없는 이름들에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소속되기 시작했고 백일장, 시낭송회, 각종 문학행사의 향기를 찾아 다녔다. 많은 시집도 모였다. 그러면서 하나둘 등단소식, 수상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미래의 형상시학을 미리 보기라도 한 듯, 두 편의 시가 세상에 나왔다.
《인용시》 1
늙은 배나무는
상처 덧난 새의 위장
명치 끝 소화되지 못한 옹이에
흰 봉오리 매달고 있다
짓무른 발 바위까지 뚫으려는
번식의 욕구가 꽃을 피운 걸까
시든 몸이 오래 삭힌 종이 내밀듯
달팽이관 되짚어 가지 끝에 거는
귓불의 무게가 가볍다
오래된 나무가 먼데까지 귀 기울여
내려놓는 꽃잎
발끝까지의 거리가
깊다
- 「배꽃/ 권분자, 2009이조년 백일장 대상 수상작」
《인용시 2》
아파트 정원에
미꾸라지 떼들로 가득하다
이 미꾸라지들은
지난 겨우내 눈과 찬바람을 먹고
초승달 문지른 기러기 날개깃도 삼켰는지
살이 부드럽고 뼈가 무르다
구름 더불어 놀던 물고기들은
밤낮 사랑에 등은 젖고
푸른 바다처럼 불어난 제 새끼들을
구름 밑으로 쏟아내곤 한다
이때 바람은
물고기들을 말갛게 씻기는 비누가 된다
햇빛은
미꾸라지들에게 찬란한 빛깔의 양복을 입혀준다
미꾸라지들은 옥상에 머리 처박고
떨어져 서로 아우성치다가
다시 뛰어내려 겨우 턱걸이로 걸리는 꽃망울
반만 벌린 꽃술 속으로
미끌미끌 정액처럼 흘러든다
왕성한 성욕이다 봄비는,
꿈틀꿈틀 기어가는 미꾸라지
푸르스름한 꽃의 자궁 속에
검은 알을 무수히 슬어놓는다
-「 목련祭 / 이재하 2009, 계간 문장 겨울호 신인상 수상작」
두 편 모두, 봄의 꽃을 소제로 이미지를 끌고 간다. 그러면서도 배꽃으로 생의 통점을 누르는가 하면, 아파트 정원에서 만난 봄꽃의 꽃망울에서 삶의 강한 욕구를 그려내기도 한다. 이 두 편의 시는 ‘지진예감’이라 할 만큼 이듬해, 2010년 김주명 시인이 「환승입니다」로 평사리 문학대상을 수상하였다. 이렇게 지역의 작은 문학 동아리가 주목받기 시작할 즈음, 애초에 오래 살 생각이 없었는지 작게 지은 수상가옥에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기둥이 흔들리기도, 벽체가 무너지기도, 지붕도 고칠지언정 결단코 가라앉는 법은 없었다. 그러던 수상가옥은 발전적 허물어짐이 이루어졌다
◆형상시 창작 발전소(2013- 2017), 『형상시문학동인』, 창간호 “보석가게를 오픈하다”
드디어 「형상시문학동인」의 이름으로 창간호 “보석가게를 오픈하다”를 펴냈다. 그렇게도 갈망했던, 북구 고성동의 작은 글방에서 탄생한 문집을 세상에 내 놓았다. 처음 드러낸 형상시문학은 단순한 목적을 가졌다. 그간 <수상가옥>이라는 창작교실에서 창작 수업을 마친 수강생들이 수업 중 습작한 시들로 묶어냈다. 짧게는 5개월의 기초과정 수료자부터 길게는 만 5년을 시와 혹독하게 싸워 낸 작품들이다. 절반쯤은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도 했으며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은 미등단의 잠재적인 시인들이다.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해, 「형상시문학동인」의 기둥을 굳건히 세운 시 한편이 세상에 나왔다.
《인용시 3》
거미도 없는 빈 거미줄이 도처에 무성하다
초읍동 일층 단칸방에 살다가
얇은 요위에서 오년 만에 발견된
독거노인은 백골이다
산동네 좁은 골목길이 얼키고 설켜
커다란 거미 한 마리쯤은 키웠겠다
한 생을 다한 그녀는 거미 몸에 들어
자신을 갇히게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풀어낸 실로 여리고 성을 쌓은 것이다
방 한쪽 구석엔 냄비와 그릇 두어개
빈 가스버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 한 겹 두 겹 아홉 겹 까지 껴입은 옷은
추위 멈추고 싶은 몸부림 이었겠지
무뎌진 낮과 밤의 경계에서
이끼는 바닥의 습기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녀가 백골이 되어 가면서
곤충들 더 이상 걸려들지 않을 때
거미는 자신을 걸어둘 장치로
바람 속에 집을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도처에 걸린 거미줄이 내 얼굴에 닿을 때
초읍동 반 마장 거리의 파도 자락은
이미 떠나고 없는 배의 후미인 듯
거미집 바람벽을 밀고 있었다
- 「바람의 사슬/심수자, 2014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고은 시인의 짧은 평에서 “우리 동시대의 처절한 삶의 비극성 도출에 방점이 찍혔다”에서 형상시문학회가 나아갈 길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서 단숨에 5집까지 출간하는 시의 저력을 보이며, 형상시 회원들이 각종 문학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면을 연보로써 살펴보면 이렇다.
2014년 1월 형상시문학회 비영리단체 승인을 받았으며, 8월 형상시문학회 동인2집 “허공을 얻다 ” 발간하였다. 11월에는 한휼 시인이 시흥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 한 해만 신인상 수상자로 최미애, 오상직, 박춘남, 모현숙, 신기업 시인이 등단하였다.
2015년 8월 형상시문학회 동인3집 “서정시 공원” 출간하였으며 시인등단으로는, 월간 ‘모던포엠’으로 송영태 시인이, 계간 ‘문장’으로 홍준표 시인이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고모령 효 예술제 대상 고국희 시인을 비롯 최미애, 이복희, 박지영, 김문숙, 박춘남, 권분자 시인 등이 문학제 및 백일장에서 거듭 수상하였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고성동에 있던 창작원을 가창으로 이전하여 갤러리 ‘아르떼’를 함께 오픈하였다. 8월 형상시문학회 동인4집 “흘러가다 보면 길이 있겠지” 발간하였고, 시화전 및 낭송회를 영천 거조암에서 가졌으며, 11월에는 거리 시화전 ‘가창골’을 열었다. 김건화 시인이 ‘시와경계’의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최미애 시인은 “최치원 신인 문학상” 을, 이밖에도 문학제 및 백일장,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많은 회원들이 수상하였다.
2017년 11월 형상시문학회 5집 “얼마나 오래 깃발로 펄럭일까”를 출간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회원들이 꾸준히 등단과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집을 꾸준히 발간한 점이다. 《형상시인선》이란 표제를 달고 지도 시인인 박윤배 시인의 「연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권이 넘는 시집을 형상시 회원들이 발간하였다. 이는 하나의 문학회를 넘어, 우리문단에도 적잖은 파급력을 가지기에 충분하고, 지금도 시창작이나 시집발간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학회의 교본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형상시학」으로 거듭나다(2018 - )
형상시학회 회원들은 한때 시인을 꿈꾸었으나 생활의 길을 걷다가 다시 창작의 길로 들어선 시인들이다. 일부는 제대로 문학을 전공하였거나 이미 등단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현대성이 지니는 시의 가치와 형식의 변화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자각에 의해 재충전하려는 회원들의 모임이다. 다시 말해 한곳에 안주하기보다는 끈임 없는 발전적 변신을 통해 자신의 문학을 찾아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등단 시기도 인생의 중·후반기를 넘긴 사람들이기는 해도 오로지 문학에 대한 열정과 꿈만으로 살아왔기에 ‘누가 읽어줄 것인가?’ 하는 고민을 그들은 하지 않는다. 그건 현대 예술은 어쩌면 완성의 의미에 가치를 두지 않는 묘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업성에 편승하지도 않는다. 설익음과 농익음의 경계를 시의 이미지로 해결해보려는 문학사적인 반란을 꿈꾸기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실험인가? 2018년 형상시인들의 이미지에 대한 가늠자가 되는 시를 보자.
《인용시 4》
노을의 혀가 차오르는 강물에게 건네는 말
차곡차곡 씹어 올리다 보면
돌탑이 된다
닳아 가는 말 알아들어
포개어지는 말 알아들어
한 권의 시집을 엮을 수 있다면
내 입술은 너의 바닥을 제대로 읽었다 말할 수 있으리
너로부터 닫혀 있는 나, 나로부터 닫혀 있는 너
노을 서성이는 강가에서
서로의 등에 얽힌 사연을 들춰
어떤 돌은 너를 닮았다고
어떤 돌은 나를 닮았다고
흘러서 또 어디로 떠나는 물에게
중얼거림을 하나 더 보탠다
아래위 구분되지 않는 탑을
우리는 그렇게 무던히 쌓기도 하고
하염없이
허물기도 하는 거였다
- 「돌탑/김건희, 미당문학신인작품상 수상작」
정확한 묘사와 진술로 정서와 메시지를 전하고 끊을 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 우리네 삶의 속내, 그리움이며 한 같은 것들을 가없이 표출해낼 수 있는 시적 역량을 높이 샀다. 노을 같이 번져오는, 강물처럼 흐르는 그리움을 돌탑처럼 쌓아올린 단정한 형태의「돌탑」을 당선작으로 민다. -문효치(시인)
2018년부터 『형상시학』으로 명칭을 달리하며 시를 더욱 더 이미지로 담금질 해 나간다. 그리고 이번에 펴낸 6집에는 어느 동인지에도 볼 수 없는 「형상시학」만의 해설을 담아 함께 내 놓았다. 이는 시를 고민하는 많은 시인들에, 또 시인을 꿈꾸는 예비시인들에게도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대구은행 백일장에서 이경복 (본명 박선희)시인이 대상을, 신은순 ,김건희 시인이 입상을 하였다. 그리고 9월 산림문화 공모전에서 김건화 , 김건희 시인이 입상을 하였으며, 포항 호미문학상 대상에는 신은순 시인이, 달구벌 백일장에서는 고국희, 정유진 시인이 입상을 하였고, 최충문학상에는 김건희 시인이 입상을 하는 영광을 보았다. 더욱이 지도교수이신 박윤배 시인이 금복문화상 「문학부문」 수상하여 형상시학 10년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형상시학」회 시인들은 시를 공부하는 목적도 각기 다르고 나이도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사회적 지위나 경험도 각각이다. 아마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시는 그 양상이나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 있고 자연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도 제각각 일 것이다. 아직 미완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새로운 신입 수강생들을 위해 항상 문을 열어둔다. 시창작원 <형상시학>에서 기초 과정을 마치고 나면 희망에 의해 「형상시학」 회 회원이 될 수 있다.
“사는 일이 뜻하지 않게, 우연 혹은 필연으로 의미가 되는 사건들이 찾아와 너와 나 혹은 우리라는 관계가 생겨난다. 뜻하지 않은 결별도 겪는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생겨나는 갈등들은,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 지나고 보면 고스란히 남는 것은 따뜻한 기억이며 사랑이다.” - 박윤배 「오목누이집 증후군」의 自序 에서
글쓴이 김주명 시인은 현재 인도네시아, 롬복에 거주하고 있으며, 형상시학회원, 인도네시아 문인협회 회원이다. 시집으로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선」, 산문집으로 「롬복이야기」가 있다.
첫댓글 그리움이 베여있는 사진과 함께...깔끔히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에 당도한 형상시학회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