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 첫 방송서 윤 대통령 '입틀막' 패러디
누리꾼들, "재밌다" 응원…"압수수색" 걱정도
윤, 3년 전엔 "정치풍자는 권리" 말해놓고
말바꿔 비판·풍자한 언론·시민 입 틀어막아
대통령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면 억센 손아귀로 입을 틀어막는다는 ‘입틀막’은 이제 윤석열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에서 야당 국회의원, 카이스트 졸업생, 심지어 친정부 성향의 의사도 ‘입틀막’을 당한 채 끌려나갔다. 시민들은 ‘입틀막’에 이어 ‘또틀막’(또 입틀막을 당함), ‘삼틀막’(세번째 ‘입틀막’ 당함)이라며 조롱했다. SNS에서는 시민들이 자기 입을 자기 손으로 틀어막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진을 올리는 ‘입틀막’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다. (관련기사 "SNS에서 퍼지고 있는 '입틀막' 저항운동")
주류 언론들은 윤 정권의 ‘입틀막’ 사태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무례한 행동’으로 소개하거나 기껏해야 ‘과잉경호’ 정도의 비판에 그쳤다. 그러나 ‘입틀막’은 단순한 ‘과잉경호’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명시한 ‘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주류 언론들은 잠잠한데, 케이블방송 예능프로에서 ‘겁도 없이’ 이를 풍자하는 개그가 등장했다. 예전부터 거침없는 정치 패러디와 풍자로 눈길을 끌었던 쿠팡플레이 코미디 쇼 ‘SNL코리아’가 3월2일 새로 시작된 시즌 첫 회에서 대통령 앞 ‘입틀막’ 장면을 재연한 것이다.
이 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 분장한 개그맨 김민교 씨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풍자해 “105년 전에 우리 선열들이 자유를 향한 신념으로 3.1운동을 일으키셨는데, 결론적으로다가 그 자유의 정신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한 말씀 더 드리자면 풍자는 SNL의 권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유롭게 해주겠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SNL코리아는 지난 2021년 11월쯤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경선후보를 초대해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주현영 기자: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신다면 SNL이 자유롭게 정치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건가요?
윤석열 후보: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입니다.
대선 후보 시절 “정치풍자는 권리”라고 자신있게 말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거짓말을 비꼰 것이다. 김민교 씨는 이어 "동훈아"라고 부르며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전화 통화하는 장면을 연출하다가 ‘저쪽이 잘 못해서 내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샀다.
이어 대통령실이 제작한 설 홍보영상에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들이 합창하는 장면을 패러디했다. 이 장면에서 윤 대통령이 한 직원의 노랫소리가 맘에 들지 않자 신호를 주고 곧바로 이 직원은 주변에 있는 양복입은 자들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는 장면이 방영됐다. ‘입틀막’을 풍자한 것이다.
이 영상은 짧은 동영상으로도 편집돼 인터넷과 SNS에서 확산중이다. 누리꾼과 SNS 사용자들은 오랜만에 방송을 통해 접한 윤석열 대통령 패러디와 정치풍자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SNS코리아의 방송내용을 보도한 MBC뉴스 유튜브 사이트는 12시간만에 1백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7천여개의 댓글이 붙었다. 댓글에는 ‘재밌다’ ‘최고다’ ‘진정한 풍자’ 등의 응원글도 있지만 ‘압수수색에 대비해야겠다’는 걱정의 글도 많았다. ‘김건희 씨가 디올백 받는 것도 풍자해달라’고 요구하는 댓글도 있다.
3년여전 후보 시절 ‘SNL 정치풍자는 권리’라고 했는데, 설마 이 방송을 이유로 제작진 압수수색이나 고소고발에 나서겠는가? 그러나 수많은 댓글처럼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여러 차례 말바꾸기와 거짓말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유’를 강조하고서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오지 않았는가?
‘바이든-날리면’ 방송보도(정확히 말하면 ‘윤 대통령 욕설 발언 보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보도, 천공이라는 자의 대통령 관저 개입 의혹 보도, 신학림 김만배의 녹취록 보도(정확히 말하면 ‘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의 윤석열 검사 무마 의혹’ 보도) 등에 대해 언론사를 압수수색하고 기자를 고소고발했다. 방통위와 방심위를 이용해 마구잡이로 뉴스 심의와 방송사 징계를 밀어붙였다. 이런 게 다 언론자유·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입틀막’ 사례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연설 모습을 짜깁기한 풍자 동영상에 대해 경찰수사와 방심위 긴급심의와 영상차단 조치가 순식간에 진행됐다. 김건희 씨를 그냥 ‘김건희’라고 부른 것을 문제삼아 SBS 방송에 제재를 가하고, 날씨를 전하는 MBC뉴스에서 ‘파란색 숫자 1’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이라며 여당이 방심위에 제소하는 코미디같은 일도 벌어졌다.
그동안 수없이 언론과 시민의 입을 틀어막고, 풍자 동영상은 신속하게 차단해온 이 정권이 이번 SNL코리아의 ‘입틀막’ 풍자에 그냥 눈감고 넘어갈지 모르겠다. 디올백엔 '박절하게' 거절 못했다는 대통령 윤석열은 자신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는 참으로 박절하다. 폐지됐다가 다시 살아난 KBS 개그콘서트엔 정치풍자가 사라진 지 오래다. SNL에 출연해 자기 입으로 약속까지 했으니 SNL 정치풍자에 ‘입틀막’은 없으리라 기대하는 건 바보같은 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