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음악에 대한 기호나 호불호가 약간씩 다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이 정도가 지나쳐서 경멸이나 혐오로 발전합니다.
특히 대중음악은 정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대중음악이 일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문화보다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문화이론도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계급(계층)이나 세대에 따라서 남들과 달라보이는 자기들만의 문화(상표)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쟤들과 달라!'라는 심리인데 이 이야기는 근거가 있습니다.
대항해 시절에 서양에 후추와 같은 향신료들이 전해졌습니다.
이 후추는 아주 비싸서 귀족들만 먹을수 있었습니다.
그후 현지에 후추 농장을 경영하거나 개량된 품종을 유럽에서도 재배하면서 가격이 떨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귀족들의 만찬에 향신료를 범벅하는게 문화였지만, 서민들이 향신료를 접하게 되자 상류층에서는 향신료를 적게 사용하는 것이 고상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빈티지라는 문화가 한때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했습니다.
싼티나면서도 올드한 패션 등을 좋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문화가 일반대중에게도 전달되자 어느새 상류층 문화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문화에 대한 특권(독점)의식은 신분을 초월하여 세대간에도 생깁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노래를 싸잡아서 '촌스럽다'라고 평가하거나 자신들만이 좋아하는 새로운 노래를 쫓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문화 충돌은 '디스코 폭파의 밤'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의 내용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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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Disco) 음악이란 무엇일까?
7080음악 중에서 디스코 음악이 있다.
예전 대중음악 악보 중에서 흔히 나오는 용어였는데 어느 시기 자취를 감췄다.
너무 급작스런 변화라서 지금도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오늘 한번 더듬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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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디스코는...
"디스코 (Disco)는 빠르고 경쾌한 리듬감으로 이루어진 대중음악 장르이다.
1977년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가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1979년부터 격렬한 동작에 의한 정렬적인 디스코가 젊은이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그 후 디스코에서 하우스 디스코로 발전되었다.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몸을 움직이기 쉬운 장르이며, 테크노보다는 기계적인 요소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16비트 음악인 펑크(Funk)의 빠른 템포를 빌려온 것으로 춤 추기 좋은 8비트의 흥겨운 곡조로 변형된 것이다."
뭔가 허전하게 느껴지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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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 설명하는 디스코는...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유행한 펑크(Funk)에서 파생된 댄스 음악의 장르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 펑크 음악이 점점 업비트가 강해지면서 더 이상 펑크의 범주에 엮을 수 없게 되자, 이러한 업비트의 빠른 펑크 음악을 "디스코"라고 칭하게 되었다. 단어 자체는 디스코텍에서 파생되었다.
디스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형성된 것으로 보여지며, 미국 동부의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당시 미국의 지배적인 음악은 록 음악이었는데, 디스코는 이러한 록 음악의 지배적인 분위기와 댄스뮤직에 대한 지나친 멸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점도 있다.
당시 미국은 1960년대 후반의 혁신적인 분위기로 인해 보다 쾌락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금기가 되지 않았고, 디스코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작 헤이즈나 배리 화이트같은 뮤지션들은 초기 디스코 음악의 확립에 기여했다.
디스코는 소울, 펑크, 라틴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디스코 밴드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원을 자랑하기도 한다.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이 밴드의 기본적인 구성이며, 그 외에는 오르간(때로는 오르간이 두명), 브라스 섹션(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등등등), 타악기주자(봉고, 우드블럭, 카우벨 등등), 여성 코러스을 포함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당시 점점 세분화되고 복잡해져가고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 등 대중음악의 흐름에서 일부만 차용했다.
비트는 분명 세분화 되어서 드럼 자체는 엄청나게 그루브해졌지만, 나머지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가 다소 단조로워지는 경향이 있다.
당시로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았던 16비트를 많이 사용한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음악 자체가 일종의 공식화가 되어있어서 16비트 드럼비트에 업비트 베이스라인을 끼워 맞추면 어떤 곡이든 디스코로 변형시킬 수 있는 마법의 음악이기도 하다.
노래방에 가서 리모콘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주를 디스코로 바꿔주는 버튼이 있는데, 이걸 켜보면 마법을 체험할 수 있다.
일단 이 음악은 당시의 사회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말초적인 음악이었고, 댄스 뮤직에 대한 당대의 거부감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게이 클럽이나 일부 제한된 사이키델릭 클럽, 히피 클럽의 플레이리스트에 오르곤 했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나서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74년경이나 되어서의 이야기다.
그리고 당시로서 당연한 반응이지만, 평론가들은 이 음악을 저속하다고 엄청나게 깠다.
그러나, 30년 뒤에 디스코는 힙합 문화로 인해 재조명이 된다.
이전에는 위의 이유들로 인해 이래저래 "경박하고 품위없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하는 사람만 하는 비주류 문화였으나, 1977년 12월 개봉된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라는 영화와 동시기에 발매된 사운드 트랙이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며 '디스코'라는 장르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게 된다.
흑인들이 유행을 시킨 음악 중 하나이고 위에 써있는 내용대로, 게이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1979년도에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이 일어나 디스코 관련 상품을 불태우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점점 인기를 잃어갔지만 음악 자체의 영향력은 시대가 지나면서 일종의 복고 열풍으로 인해 재조명되었다.
현재는 록 음악과 댄스뮤직이 섞이면서 디스코의 소스를 많이 차용한 곡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디스코를 불렀던 여자 가수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디스코 퀸으로 군림했던 여자 가수는 아만다 리어와 도나 서머가 있다.
특히 도나 서머의 Hot Stuff는 대한민국에 디스코 열풍을 불어넣었다.
대한민국에서 유행한 시기는 1978년부터이다.
원래 1975년경부터 비지스를 비롯한 다양한 디스코 그룹들이 소개되었으나 당시 일명 "다운타운 디제이"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뿐, 대중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1978년 존 트라볼타의 토요일 밤의 열기가 유행한 이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유행도 한 때, 80년대 중반 이후엔 디스코는 구닥다리 음악이 되어 내세우는 팀이 없게 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디스코 열풍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어지다가 디스코 폭파의 밤 이후, 90년대 부터는 인기가 사그러들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다양한 음악가(특히, 하우스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들이 디스코로 회귀의식을 보이고 있다.
다프트 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나, EDM 씬에서도 누 디스코(Nu-Disco)나, 퓨처 펑크 등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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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의 설명은 지나치게 솔직할 때가 많다.
설명 중에 '디스코 폭파의 밤'이라는 용어가 두 번 등장한다.
요지는 당시 디스코가 너무 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여기에 질려버린 대중들과 싼티 나는 음악을 싫어하던 보수층들이 합세하여 야구장 측에서 기획한 이벤트를 폭동으로 만들어버린 1979년에 발생했던 유명한 사건이란다.
그리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디스코가 대중음악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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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하러 가야지~~~
첫댓글 디스코 ㅎㅎㅎ노래는 좋아하는데
디라인이라 ㅎ춤에는 좀 ㅋㅋㅋㅋ
열근하십시요 ㅎㅎㅎ
눼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