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공공정비 컨설팅 시작 성산시영, 광명 하안주공 3단지
"민간 재건축 추진" 현수막 걸어 높은 수익률 보장에도 반응 냉랭
공공시행 예상지역은 거래절벽
“민간 재건축으로 추진합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1986년 준공, 3710가구)는 최근 이런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난해 건물 안전진단에서 재건축 판정을 받은 이 단지는 현재 서울시에서 재건축 정비구역으로 지정받기 위한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4 주택공급 대책을 통해 주민이 희망하는 곳에서 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직접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하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산시영아파트는 민간 재건축을 하겠다는 게 현수막의 의미다. 이 단지에서 아파트를 소유한 최모(40)씨는 “공공 주도 재건축에 반대한다는 주민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현수막을 내걸었다”며 “정부안 대로 하면 재산권 침해가 심각히 우려돼 서둘러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23일부터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나 공공 재건축·재개발 사업 관련 컨설팅을 받을 곳을 모집한다. 공공 재개발에는 관심을 갖는 곳이 간혹 있지만 공공 재건축이나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에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많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주공 3단지(89년 준공, 2220가구)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민간 재건축 진행’이란 문구의 스티커를 만들어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돌렸다.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민간을 강조하기 위해 민간 재건축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는 정부가 지난해 8·4대책에서 제시한 공공 재건축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에선 재건축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2·4대책의 공공 직접시행은) 8·4대책보다 불리한 조치로 검토조차 할 수 없는 내용”이란 글을 보내기도 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에선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최근 아파트 소유자 2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설문에 응답한 136명은 모두 공공 직접시행 방식의 재건축을 반대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2·4대책 발표 직후에는 (공공 직접시행의 장점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면제 등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토지) 소유권을 공공기관에 넘겨줘야 하는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지난해 8·4대책에서 제시한 공공 재건축·재개발과 지난 2·4대책의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토지 소유권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공공 재건축·재개발에선 민간의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공공기관이 사업 관리자로 참여한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공공기관이 토지 소유권을 가져간 뒤 사업을 마무리하면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때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필요 없다. 대신 주민대표회의를 구성해 아파트 설계·시공·브랜드 등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국토부는 “도시규제 완화와 재건축 부담금 면제 특례를 토대로 민간 정비사업보다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을 하는 곳에선 지난 4일 이후 집을 산 사람들에게 새 아파트의 우선공급권(분양권)을 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겐 현금으로 보상한 뒤 각종 권리관계를 청산(현금청산)한다는 게 국토부의 방침이다. 공공 직접시행 예상 지역으로 꼽히는 곳에선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매수세가 끊기는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토부는 주민들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을 선택하면 높은 용적률을 적용해 추가적인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용적률이 높아지면 같은 땅에 더 많은 주택이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고밀 개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재건축 단지 입장에서 고밀 개발을 하면 그만큼 (주거) 쾌적성이 낮아질 수 있다”며 “고밀 개발은 지역적 맥락과 도시 인프라 용량 등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