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김광한
아놀드 토인비
역사서를 단 한줄이라도 읽은 자는 결코 남과 가족과 국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세계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역사책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쓴 요시프스의 이스라엘 역사, 중국 한대이전의 중국역사를 열전(列傳)식으로 기록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가 있다.나는 요시프스의 이스라엘 역사를 크리스찬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고 사기(史記)는 동서문화에서 나온 최인욱(전 중앙대 교수)교수의 역(譯)으로 된 것을 읽었다.그리고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전 12권으로 되어있어서 우리와 관련이 있는 문화권의 역사만 대충 읽었다.왜 역사를 읽는가? 그것은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면교사이면서 삶의 거울이기 때문이다.많은 사람들이 토인비를 들먹거리지만 누구 한사람 토인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더구나 그가 쓴 역사서를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여기 그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해설을 붙인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세기의 고전 <역사의 연구>.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원판을 약 6분의 1로 편집한『Arnold J. Toynbee. A Study of History, abridgement of VOL i~vi by D. C. Somervell』을 완역한 것이다. 토인비는 국가 단위 역사관과 서유럽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관을 극복하고, 세계사에 21개의 문명권을 설정하여 그 가치와 의미를 다루었다. 문명발생의 계기로 '도전과 응전'이라는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문명의 발생, 성장, 쇠퇴, 해체의 주기적인 과정을 살펴본다.
<역사의 연구>는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지향하며, 세계사의 전체상과 그 의미를 해명하고 있다. 토인비는 자신의 민족적 체험이나 이해에만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깊이와 눈으로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았다. 토인비의 진지한 동기, 넓은 시야로부터의 고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깊은 정신적 통찰, 전문가를 능가하는 정확한 예측, 비지배적 소수자로서 학대되고 억압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 등이 높이 평가되는 책이다
1889년 4월 14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과 의사였으며, 삼촌은 19세기 경제학자인 아놀드 A. 토인비였다. 그는 학창시절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의 바일리얼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아테네 고고학원으로 그리스에 가서 공부한 경험도 있었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고전고대사 학위를 딴 뒤 외무성에서 근무했으며, 1919년에는 런던 대학에서 비잔틴 역사학, 현대 그리스어 교수로 재직했다
터키 독립전쟁당시 가디언지의 특파원으로 파견되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Western Question in Greece and Turkey'을 저술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리스 정부를 비난하여 그리스인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1924년 런던 대학의 바잔틴 역사학, 현대 그리스어 교수 자리에서 사임해야 했다.
1925년 런던 정치경제대학의 국제역사학 교수와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34년에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를 저술하기 시작하여 27년에 거쳐 12편을 완성하였다. '역사의 연구'의 창작 동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서유럽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이었다. 1975년 10월 22일 요크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홍사중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사회사상학과와 위스콘신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시대의 불의를 질타하고 대의를 주창하는 명칼럼을 쓰다 1980년 5공 신군부에 의해 강제 퇴직당하여 칩거하였다. 그 뒤 1987년부터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지은책 《근대시민사회사상사》 《리더와 보스》 《한국인, 가치관은 있는가》 《히틀러》 《한국인에게 미래는 있는가》 《과거 보러 가는 길》 《나의 논어》 옮긴책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있다.
첫댓글 토인비에 대한 소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