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일본 경제가 꿈틀거리며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그간 돈을 무한대로 찍어내는 '아베노믹스'에 회의적인 평가가 많았으나, 결국 이 정책이 기업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8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는 "일본이 아직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침체를 끝내고 다소 반등하는 시기"라며 "올해 일본 역사에서 취업자 수가 가장 많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9년부터 일본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흐름과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경제에 대해 그는 "한국이 버블기 일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계속되면 높은 부동산 가격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일본 경제가 최근 살아나고 있다고 하는데 '잃어버린 30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인가. "일본 경제가 버블 붕괴 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좋아지는 것은 맞다. 일본 경제가 계속 나빴던 것이 아니라 2003~2007년, 2013~2018년은 좋았다. 경기가 순환하면서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2003년, 2013년 그리고 2023년 이렇게 10년 주기로 좋아졌다. 경제 상황을 볼 때 GDP(국내총생산)보다는 고용이 중요하다. 지금 일본이 고용이 아주 좋다. 올해 일본 역사에서 취업자 수가 가장 많다."
- 저금리 정책 등 소위 '아베노믹스'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2008~2011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왔을 때 전 세계가 양적완화를 했는데, 일본만 안 했다. 그때 일본이 많이 힘들었다. (아베노믹스를 시작한) 2013년부터 양적완화를 하니까 일본 엔화가 상당히 절하되었다. 2013~2018년 사이 엔화 가치가 너무 과도하게 높았던 것을 조정했다. 아베노믹스는 금리를 0%로 유지하면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엔화 가치가 높으면 구조조정에 독이 될 수 있었다. 아베노믹스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 것은 맞다. 2010년까지는 망하는 일본 기업이 많았다. 산요는 분해됐고 샤프는 대만에 매각되었다. 도시바는 반도체도 팔아버렸다. 일본항공도 상장폐지가 되었다가 재상장되었다. 소니 역시 2010~2012년 사이에 거의 망할 것처럼 보였다. 구조조정을 많이 했고, 사업 부분도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집중할 것에 집중했다. 기업의 실적이 2013년 이후로 좋아지고 그 결과 고용도 좋아졌다."
- 역대급으로 엔화가 저평가되어 있다. 환율로 손해 보는 미국이 보고만 있을까. "2013~2018년 사이의 엔저는 균형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의 엔저는 '불안한 엔저'다. 엔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다. 전 세계가 금리를 올리는데 일본만 금리를 올리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일본 역시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적완화를 유지하려면 중앙은행이 계속 대규모의 채권을 사야 하는데, 이미 일본 국채의 50%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더 사면 시장에서 채권이 사라진다. 이미 한계 상황이다. 전 세계 경제에 한파가 닥쳐서 금리가 다시 내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지금 같은 환경이 지속된다면 일본 역시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다. 다만 미국은 일본이 금리를 올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일본은 해외에서 생산, 판매하는 비중이 크다. 미국에서 만들어서 미국에서 파는 것이다. 환율을 조작해 수출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은 알고 있다. 미·일 동맹이 중요해지면서 일본 경제가 좋아지는 것이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 미국은 일본이 군대를 가지기를 원한다. 미·일 동맹을 통해 나토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동맹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좋지 않으면 방위비 증액이 어렵다."
-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 경제를 키워줄까. "경제는 누가 키울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망가트릴 수는 있다. 미국이 키워주고 싶어도 일본 기업이 경쟁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일본에 우호적인 경제 환경이 조성되도록 미국이 공조하고 협조하는 것이다."
-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 경쟁력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반도체 패권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하지는 않을까. "과거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처럼 한국에 굉장히 불리한 환경이 미국에 의해 조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보다는 한·미·일 동맹을 원한다. 우선 일본과 미국은 반도체 동맹은 밀고 나가면서 한국도 여기에 함께하자고 권유하는 것이다."
-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꺼졌다. 한국 역시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다는 평가가 많다. "몇 년 전만 해도 도쿄 신주쿠보다 경기도 외곽의 집값이 더 비싸더라. 완전한 버블이었다. 이제 한국 부동산도 조금 조정이 되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급작스럽고 과도한 버블은 없었다. 버블기의 일본만큼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계속되면 높은 부동산 가격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소득과 괴리가 크다. 소득이 오르는 동안 부동산 가격이 정체되는 방식으로 소득과 부동산 가격의 괴리가 좁혀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소득과 주택 가격의 괴리가 좁혀져서 평범한 직장인이 부모님 도움이 없이도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자 비로소 부동산 가격 하락이 멈췄다."
- 한국도 저출산·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일본의 사례를 볼 때 한국의 대책은 무엇인가. "일본은 1990년대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출산율을 1.26에서 1.46까지 반등시킨 경험이 있다. 독일, 프랑스처럼 1.5 이상으로 반등시키지는 못했다. 일본이 유럽에서 배운 것이 모성보호다.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도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 여성의 고용률이 높아지고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출산율이 늘어난다는 것을 선진국 데이터를 보면 알 수 있다."
- 윤석열 정부는 '민간주도성장'을 이야기한다. 기업 경쟁력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전략은 바람직한 방향인가. "방향은 맞다. 결국에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어야 나라 경제가 살아난다. 다만 슬로건과 다르게 여전히 민간경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문제가 있다. 공기업들이 대선캠프 사람으로 채워지고 이런 것들을 지난 정부에서 비난했지만 이번 정부도 다르지 않다. 그 공기업 관련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간주도성장을 하려면 투명하고 일관된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정부는 심판만 해야 한다. 심판이 선수 기용에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이다."
-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인데,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다고 보나. "금리 차이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금리차가 더욱 벌어져서 자본 유출이 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자본 유출이 발생하면 한국 원화 가치가 절하된다. 한국 기업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을 경우 원화가 절하되면 한국 기업 실적은 더욱 좋아진다. 그러면 외국 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에 다시 유입될 것이다. 금리차가 일시적으로는 자본 유출을 가져올 수 있으나 한국 기업이 튼튼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정현 기자 john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