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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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9:29, 이 외에 그의 시종행적은? 2024.7.7. 맥추절
여러분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하게 됩니다. 설령 그 사람이 나쁜 행동을 했을 지라도, ‘분명히 그에게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정말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을 주었다든지 상처를 주게 되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일을 했을 지라도, 또 그런 좋은 생각이나 계획을 가졌을지라도, 그냥 무조건 반대하게 되는 그런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그만큼 사람은 정의에 대해서 불완전하고, 어떤 것을 해석할 때에는 자기위주로 해석하는 그런 나쁜 편향성이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역대기를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역대기에 기록된 유대 왕들에 대해서 ‘그의 시종행적’, 다시 말씀드려서 그가 왕이 될 때부터 죽어서 왕이 마칠 때까지의 행한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 왕의 좋은 점만을 기록했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에 대해서 말하거나 평가할 때에 그 사람의 처음과 나중의 모든 일들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서 험담하거나 악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역대기를 기록하신 하나님처럼, 그 사람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고 평가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 외의 그의 시종행적’은 관심을 가지지 말고, 좋은 점만을 부각시켜서 말하게 될 때, 바로 그 곳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시종행적이 아니라 좋은 행적만 봐야 합니다.
사람은 본 대로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귀부인이 어린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려고 바이올린 학원을 가는 길에, 아이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겠지요. 그 가는 길에 어떤 걸인이 구걸을 하면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그 걸인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그 때 이 귀부인이 그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의 그 두꺼운 손으로 어린 아들의 눈과 귀를 막고 급히 피해 버렸습니다. 자기 아들이 그런 걸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일상의 일들은 때로는 여러분이 비판적인 자세로 사건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런 일들을 당할 때에는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위기에 닥치면 본 대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전통이 바로 세워져야 하고, 그릇된 것을 아예 시도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법에도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결정한 판례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잘못 판례법이 세워지면, 그 판례를 들어서 똑같은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리면, 바로 사형이다고 판결을 내리게 되면, 그 다음 부터는 그것이 판례가 되어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마다 다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기를 기록할 때, 남쪽 유다 왕을 위주로 기록했는데, 그것도 좋은 점만을 기록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인들은 누구든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이런 좋은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하 9:29,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 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행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1장부터 9장까지 솔로몬의 ‘좋은 행적’만을 기록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에게는 누군가나 또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도 판단할 그런 능력이나 자격이 없습니다.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고전 4:3–4,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둘째. 사람이 살아있는 한 좋은 점만을 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심판주)이라도 된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서는 심판대에 올려놓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도 그런 심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최종 심판의 날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인자가 무궁하셔서 오래오래 참고 계십니다.
출 34:6–7,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으로 역사하십니다. 특히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여러분이 논과 밭에 작물을 심고 나서 여기저기 자라나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 같은 작물들을 그냥 두고 보듯이, 그냥 추수 때까지는 물 줘가면서 비료줘가면서 그래도 기대를 하듯이, 그래도 마지막 추수 때에 알곡이 차지 않으면 그래서 쭉정이만 남으면 어쩔 수가 없이 채질하여 바람에 날려 버려, 끝내는 불태워 버리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냥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는 끊임없이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거기다가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자 잘못을 따지면서 심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을 때에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십니다. 함께 자라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추수 때에 가라지는 반드시 불사르게 되고, 곡식은 곳간에 넣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3:29–30,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여러분, 가라지같은 나쁜 행적에 대해서는 가만 두십시오. 좋은 행적만을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십시오. 하나님처럼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십시오. 그럼 기적과 축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나쁜 행적을 심판하십니다.
여러분, 사람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믿는 의인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악인이 될 수가 있고, 교회와 예수님을 핍박했던 악인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의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회개하면 그가 행했던 모든 악한 행실도 기억하지 않고 다 용서하여 주시고, 도리어 살게 하시고, 축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겔 18:21–23,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런데 반대로 평생을 예수님을 믿으면서 엄청난 공적을 쌓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의를 지나치게 믿고 변심해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버리고 악행을 저지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행한 그 공적을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지금 행한 마지막에 행한 그 악행으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잘해야 합니다.
겔 18:24, 32,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심판하지 않으시고 악인에게조차도 인자와 은혜를 베푸시고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