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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에서 박희순이 맡은 김장옥은
실제 독립운동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데
그게 누구냐면
김상옥 의사.
김상옥 의사는 3.1 운동 이후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조선 총독 암살 계획이 실패하면서
상하이로 망명했다가
의열단에 합류하게 됨
의열단은 김원봉이 수장인 항일무장단체로
영화 암살에 나왔던 조승우 역할이 김원봉
암튼 이 의열단에 들어간 김상옥은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며
의거 활동을 이어감
처음에 폭탄 투척한 게 김상옥인 줄도 몰랐던 일본은
의거 발생 후 며칠 뒤에
김상옥의 은신처를 겨우 찾아내고
김상옥을 포위함
이때 대동한 무장 일본경찰이 스무명 정도
하지만 김상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음
그는 양손에 🔫쌍권총🔫을 쥐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총격전을 벌임
그렇게 일본놈들을 따돌리며
은신을 이어가던 김상옥은
결국 고문 당한 동료에 의해 최후의 은신처가 발각됨
의거 발생 후 10일 뒤,
스무명으로 부족했던
일본은 이번에 수백 명(천 명이라는 말도 있음)의
경찰을 데리고
김상옥을 잡으러 감
세 시간 동안 총을 맞아가면서까지 끝까지 버티던 김상옥.
하지만 총알이 부족하다는 걸 감지하고는
결국 머리에 총을 쏘고 자결함
순국 전 그가 남긴 한 마디는
“대한 독립 만세”
그런데 이 순국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야수파 화가 구본웅.
구본웅은 당시 중학생으로,
만석꾼이자 출판사 사장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라면서
일본으로 그림 유학도 다녀온 일제강점기 화가, 조각가.
김상옥 의사의 순국 장면이 인상깊었는지
그 장면을 아래 그림으로도 남겼음
그 사건이 구본웅의 화풍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도 있음
이러한 구본웅의 그림은 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그 중 남아있는 그림 중 하나가
바로 친구의 초상화
초상화의 주인공은
<오감도>, <날개>로 유명한 이상.
이상과 친하게 지내던 구본웅은
여자도 소개해줌
이 여자의 이름이 변동림.
변동림에게는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 이름은 변동숙으로
구본웅의 계모이기도 함
(칭구칭긔랑 이모 이어준 것)
암튼 이상과 변동림은 동거하다가 결혼까지 함
그러나 이후 도쿄로 여행간 이상은
생각과는 달랐던 도쿄 살이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 폐병까지 악화되어 죽음을 맞게 됨
이상과 사별한 변동림은 몇 년 뒤 다른 남자와 재혼하고
이름도 남편을 따라 바꾸는데
재혼한 남편이 김환기
바꾼 이름은 김향안임.
암튼 구본웅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일본 유학을 갔던 구본웅은 1933년 귀국하여
작품 활동과 함께 미술 비평 활동을 계속함
1939년에는
몇 가지 글을 썼는데
이걸로 2009년 발간한 사전에 실리기도 함
그게 무슨 사전이냐면
친일 인명 사전
구본웅이 게재한 글의 내용이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전략에
적극 동조하자는 내용이었기 때문
(광복 후에는 참회했다고는 함)
광복 후 52년 삶을 마감한
구본웅은 세 명의 아들을 뒀는데
차남인 구상모는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함
“원체 말이 없으셨어요. 한번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를 찾아갔어요.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며 당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 제게 주셨어요. 세이코 시계였는데 지금의 롤렉스 정도의 가치일 거예요. 의례 손목시계 끈은 가죽인데 아버지가 주신 시계의 끈은 비닐이었어요. 당시로선 신소재 끈이었던 거죠. 그 손목시계를 차고 학교에 가서 얼마나 자랑했던지…. 그런데 그만 부산 피란 가서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805100036
삼남 이외에도 구본웅에게는 다섯명의 딸도 있었음
이 중 구근모라는 딸은
자신의 딸들에게 무용과 악기 등을 가르쳐줬는데
그 중 한 명이
발레리나 강수진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
핑존에 썼다가 소라방에도 써봄
이야
아니 그 장면을 보고 친일파가 돼요...? 허 참
친일파 30%설이 맞나보긔..
역시 친일파는 3대를 멸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