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팅만 하고 댓글만 다는 정회원의 죄송함에 정보 공유차 작성해 봅니다.
10년 주기로 챔피언스리그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955년 시작부터 2010년까지만요.
2010년도 부터는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테니깐요^^
자료가 너무 방대하니 4강(준결승)이상으로만 정리를 해봅니다.
정보 공유라고 해봤자 제가 궁금했던 점을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시작하죠!!
역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들
1. 1950년대
1954년 UEFA가 설립된 후 1955년에 16개 클럽이 참가하는 제1회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됩니다.
당시에는 챔피언스리그가 아니라 유로피언컵이었습니다.(1955~1992)
(이하 에서는 챔피언스리그라고 통칭하겠습니다)
50년대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아시다시피 1회 부터 5회 까지는 레알마드리드가 독식을 합니다.
당시 주역들을 보겠습니다.
금빛화살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알프레도는 이탈리아 피가 흐르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결국 레알에서 선수시절을 마치고 완전히 스페인인으로 살아갑니다.)
푸스카스 상의 기원이자 악마의 왼발 - 페렌츠 푸스카스(헝가리)
최고의 레프트 윙 - 프란시스코 헨토(스페인)
레알은 이 3명을 주축으로하여 악마의 군단이라는 애칭으로
전무후무한 챔피언스리그 5회 연속 우승을 이뤄냅니다.
스타드 드 프랑스, 피오렌티나, AC밀란, 스타드 드 프랑스, 프랑크푸르트를 모두 결승전에서 이겨내죠.
물론 지금처럼 32개의 팀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승확률이 더 높다고는 하지만
5회 연속 우승은 그 자체로 챔피언스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챔피언스리그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클럽이 레알마드리드인 것도 바로 이 역사가 기반이죠.
50년대 당시는 스페인이 강세입니다.
당시 4강 이상에 올라온 리그들을 살펴보자면
스페인이 7개팀(레알, 바르샤, 아틀레티코)을 준결승 이상으로 이끌었습니다.
다음으로 이탈리아 3번(AC밀란), 프랑스 2번, 잉글랜드 2번(맨유), 스코틀랜드 2번, 독일 1번, 기타 순입니다.
2. 1960년대
196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리그들이 우승경쟁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 첫번째 주인공이 바로 벤피카입니다.
60~61 챔스리그 우승
61~62 챔스리그 우승
아시다시피 축구는 1명이서 할 수 없는 경기이지만 1명이 2~3명의 역할을 하기도 하죠.
벤피카에서 그런 선수가 바로 이 선수죠.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흑표범 - 에우제비오(포르투갈)
에우제비오는 포르투갈의 아프리카령 모잠비에서 태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을 8강에서 무너뜨린 이로 잘 알려져있죠.
60~61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이기고(바르셀로나는 이때가 첫결승전 이었습니다)
61~62 결승에서는 디스테파노가 이끌던 레알마드리를 제압하고 2회 연속 우승을 했으니
포르투갈에서 에우제비오의 인기는 대단했죠. 더군다나 백인 일색이던
유럽축구리그에서 아프리카 태생 흑인이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는 것만으로
그 의미는 더해질겁니다.
아무튼 에우제비오의 활약으로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에 처음으로 챔스 결승컵을 안겨줍니다.
(참고루 61~62에 토트넘이 처음 챔스리그에 등장합니다. 준결승에서 벤피카에 패)
기세를 이어가
벤피카는 62~63의 결승전에도 진출을 합니다. 하지만 준우승에 머무릅니다.
우승은 바로 이팀이 하죠.
62~63 챔스리그 우승
로쏘네리. 챔스DNA의 원조(사견)
AC밀란입니다.
상기했듯이 AC밀란은 57~58년도에도 결승전에 진출한 이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레알마드리드에게 고배를 마셨죠.
하지만 다시 만났을때는 기어코 이탈리아에 챔스 첫 우승컵을 가져다 줍니다.
(참고루, 세리아A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한 팀은 피오렌티나입니다. 56~57)
당시 상대는 벤피카입니다.
아쉽게 3회연속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3회연속 결승진출을 한 벤피카는 대단한 강팀이었네요.
이탈리아의 기세를 경쟁팀이 이어갑니다.
63~64 챔스리그 우승
64~65 챔스리그 우승
로소네리의 영원한 경쟁자 네라주리.
인터밀란입니다.
인터밀란은 이전까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이상에 올라온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준결승고지를 밟고 내친김에 우승까지 한거죠.
결승에서 레알마드리드와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준결승에서는 리버풀(첫 4강 등장)과 도르트문트(역시 첫 4강 등장)를 이겼네요.
리버풀과 도르트문트의 등장이 반갑습니다.
기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네요. 인터밀란은 65~66에서도 4강 고지를 밟습니다.
하지만 이때 영원한 챔스리그의 제왕이 등장합니다.
65~66 챔스리그 우승
레알마드리드가 다시 등장합니다.
5회 연속 우승후에도 레알마드리드는 결승전에 2번이나 오르면서
여전히 챔피언스리그를 누비는 제왕이었지만, 벤피카와 인터밀란에게 막혀
우승을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인터밀란에게 설욕을 하고 다시 한번 왕좌의 자리 오릅니다..
이때 결승상대는 파티잔(세르비아)인데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올라온 팀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는 이번까지 3번이나 결승전 직전에 고배를 마셨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팀으로는 가장 처음으로 4강 무대를 밟았고
당시까지 총 3번의 준결승 무대를 경험하면서
프리미어리그 팀에서는 단연 두각을 나타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을 위한 예열을 하는 동안
옆동네 스코틀랜드에서 먼저 왕좌를 차지합니다..
주인공은 아시다시피
66~67 챔스리그 우승
스코틀랜드의 자존심
셀틱FC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두리와 기성용이 뛰었던 팀으로도 유명하죠.
셀틱은 이전에 준결승 이상에 올라온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승에서 인터밀란을 제압하고 잉글랜드보다 먼저
우승컵을 거머쥐네요.
아마 이때 가장 화가났을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겠죠?
보통 이럴때 영웅이 등장하죠.
결승에서 벤피카를 꺾고 맨체스터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우신 영웅 바로 이분들입니다.
축구종가의 자존심 - 보비 찰튼 경(잉글랜드)
영원한 맨유의 7번 - 조지 베스트(북아일랜드)
맨유의 첫 발롱도르 수상자 - 데니스 로(스코틀랜드)
57년 뮌헨 참사라는 큰 참변을 겪고나서도 맨체스터는 꾸준히 챔피언스리그의 문을 두드립니다.
번번히 결승직전에 고배를 마시지만 67~68에 드디어 위 3명의 활약으로
벤피카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네요.
67~68 챔피언스리그 우승
RED DEVIL's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 우승은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유러피언컵 참여팀이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First Round에서 32강 팀이 참가합니다.
직전 66~67에서는 First Round에 30개의 팀이 참가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아시는 분이 계시다고 믿을게요.)
아무튼 맨유로 돌아오죠.
보비 찰튼은 66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우승으로도 이끌며
73년에 기사작위를 받습니다.
(조지 베스트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아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잉글랜드 대표로서 참가할수 있었지만 북아일랜드 11명이 월드컵 무대를 밟아야 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죠.)
보비 찰튼경이 아직도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존경 받는 인물인 이유는
뮌헨 참사를 겪으면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맨유의 주장 덩컨 에드워즈를 잃었지만
기어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잉글랜드 1부리그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월드컵 우승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는 거죠. 당시 우승에서 주장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때 유벤투스가 처음으로 챔스 준결승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당시 준우승팀
벤피카에게 밀려 결승을 밟지는 못합니다.
유벤투스 팬분들은 좀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보비 찰튼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죠.
맨유는 다음해에도 기세를 올려
준결승 무대에 오르지만 당시 우승팀이었던 AC밀란에 가로막힙니다.
68~69 챔피언스리그 우승
AC밀란
Associazione Calcio Milan
AC밀란의 첫 우승때 언급을 못했는데 여기서 AC밀란의 시작에 대해 살짝 알아보고 가죠.
AC밀란을 창단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잉글랜드 인 2명 허버트 킬핀, 알프레드 에드워즈입니다.
그래서인지 초창기에는 크로켓도 같이 병행했다고 하네요.
잉글랜드인이 창단했다는 이유로 잉글랜드인과 이탈리아인의 우선하는
정책을 많이 폈는데 그에 반발해서 생긴 클럽이
Internazionale Milano.
인터밀란 입니다.
Internazionale은 이탈리아어로 국제적인, 만국의 같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클럽 이념을 클럽 명칭에 담았네요.
태생적으로 AC밀란과 경쟁할수 밖에 없는 팀이죠.
아무튼 AC밀란의 우승으로 인터 밀란과의
챔스리그 우승이 2:2로 동률이 되었습니다.
60년대는 이렇게 이탈리아의 강세속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잉글랜드가 타이틀을 나눠가지네요.
60년대 4강에 진출한 리그를 간단히 종합해보자면
이탈리아 7, 스페인 5, 잉글랜드 5,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3, 독일 2번 기타 순입니다.
확실히 세리아A의 강세죠?
4강 진출팀에 리즈유나이티드(69~70)도 보이는군요 반갑네요.
잠깐, 60년대 챔피언스리그가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69~70년대가 남아있죠?
이 부분은 70년대로 넘어가겠습니다.
3. 1970년대
69~70 챔피언스리그를 70년대로 넘긴 이유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게르만민족과 앵글로색슨족이 득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로마와 게르만 역사와 비슷하네요.
시작하죠.
많은 분들이 아약스가 에레디비지의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라고 생각하실텐데요.
아닙니다.
한 해 먼저 우승을 차지한 팀이 바로
이 팀입니다.
69~70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페예노르트
(안타깝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챔스리그 우승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송종국 선수가 뛴 클럽으로도 유명하죠?
당시 4강 팀을 한 번 나열해보죠.
페예노르트(우승, 네덜란드), 셀틱(준우승, 스코틀랜드), 레지아(폴란드), 리즈유나이티드(잉글랜드)
뭔가 이상해 보이지 않으시나요?
네. 그동안 강세를 이어오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클럽들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없이 완성된 첫번째 챔스리그 준결승 대진입니다.
아마 챔스리그의 기운이 남유럽에서 북유럽으로 올라오는 서막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네덜란드의 강세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하네요.
70~71 챔스리그 우승
71~72 챔스리그 우승
72~73 챔스리그 우승
아약스 입니다.
페예노르트에 네덜란드의 첫번째 챔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넘겨줬지만
3회 연속 우승하면서 확실한 대세로 떠오릅니다.
아약스의 결승 진출은 70~71결승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68~69에 결승에 올랐지만 AC밀란에게 패배를 했죠.
2년만에 다시 결승에 올라 파나시나이코스(그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해에 인터밀란,
그리고 다음해에는 유벤투스(첫결승)를 꺾고 3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네요.
그리고 모두가 아시는 이 분이 등장하죠.
토탈 사커의 창시자 - 요한 크루이프
사실 토탈사커의 창시자를 요한 크루이프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시지만
정확한건 아닙니다.
리누스 미헬 감독(네덜란드)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적이 있는 선수출신 감독입니다.
2007년영국의 더 타임스가 축구전문가를 상대로 선정한 20세기 세계 감독 랭킹
50위 중에 1위를 차지했던 대단한 감독입니다.
후에 바르셀로나에 가서 감독생활을 했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레버쿠젠 감독시절에는 대한민국 축구 영웅 차범근님 과도 인연이 있죠.
아무튼 이 감독의 철학을 축구장에서 그대료 표현해낸게 요한 크루이프 입니다.
요한 크루이프가 그라운드 위의 감독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요한 크루이프는 대단한 축구 선수였으며 또 대단한 감독이기도 하죠.
90~91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카탈루냐에 첫 우승컵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제보니 바르샤 팬 분들도 한참을 기다리셔야 하겠네요;;)
하지만 아약스의 전성기가 챔스리그에서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또 다른 축구영웅이 동시대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73~74 챔스리그 우승
74~75 챔스리그 우승
75~76 챔스리그 우승
분데스리가 명가
FC 바이에른 뮌헨입니다.
뮌헨은 창단 초기부터 분데스리가의 강호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잠깐의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60년대 중반부터는
항상 독일 축구의 맹주엿죠.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이렇게 강한 뮌헨도
73년 이전에 한번도 챔스리그 4강 무대를 밟지 못했다는 겁니다.
(최초로 4강 무대를 밟은 분데스리가 팀은 프랑크푸르트 입니다. 59~60)
도르트문트, 함부르크 등 많은 팀들이 4강에 성공했지만 뮌헨은 유난히 챔스리그에서 약했었죠.
그런 뮌헨을 구해준 이들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분들 입니다.
Das Kaiser, 리베로의 창시자 -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독일산 폭격기 - 게르트 뮐러(독일)
독일 수문장의 원조 - 토마스 마이어(독일)
이렇게 강한 공격수, 수비수, 골키퍼를 바탕으로 해서
뮌헨이 독일에 첫 챔스리그 우승컵을 가져다 줍니다.
무려 3번연속으로요.
그리고 이 분들은 1974년 서독월드컵의 우승에도 크게 일조하는
역할을 하죠. 바야흐로 전차군단의 시작이었습니다.
분데스리가의 우승운은 여기서 잠깐 멈추지만 이후에도 뮌헨은
꾸준히 4강 무대에 모습을 보입니다.
잠깐, 3회연속 우승을 하면서 결승전에서
아틀레티코, 리즈유나이티드, 생떼띠엥을 차례로 꺾는데요.
여기서 생떼띠엥 속했던 유명한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미셀 플라티니 인데요. 하지만 이분의 소개는 나중에 미루기로 하죠.
자 이제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던 팀이 나올 차례입니다.
76~77 챔스리그 우승
77~78 챔스리그 우승
붉은 제국의 탄생 - 리버풀
그동안 잉글랜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가 근근히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세웠는데
이제 혜성처럼 리버풀이 챔스리그에 등장합니다.
아 물론 리버풀은 전에도 준결승 무대를 밟아본적이 있습니다.
64~65 준결승전에서 당시 우승팀이던 인터밀란에게 패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차례로 뮌헨글라드바흐, 브뤼허(벨기에)를 꺾고
2연속 우승을 거머쥡니다.
잉글랜들 클럽으로서는 처음으로 연속우승을 성공하죠.
자 그리고 리버풀에 처음으로 우승을 안겨준 이 분
(이분의 활약이 컸다는 얘기입니다)
King Kenny - 케니 달글리쉬(스코틀랜드)
케니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셀틱에 처음 입단을 합니다.
케니는 이미 71~72 시즌에 엄청난 활약으로
셀틱을 4강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준우승팀 인터밀란에게 패했죠.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리버풀로 팀을 옮기고
레전드로 남게됩니다.
케니는 제라드가 오기 전(어쩌면 이후로도)까지 리버풀이
가장 사랑하는 축구선수로 뽑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감독으로 더 익숙한 분이죠.
이후에도 리버풀은 리그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잠시 숨을 고릅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여신은 계속 잉글랜드를 향해있죠.
78~79 챔스리그 우승
79~80 챔스리그 우승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뜬금포 - 노팅엄 포레스트
노팅엄은 프리미어리그(당시 1부리그에서) 직전년도 우승을 한
당시 잉글랜드 클럽중에서는 강팀이었습니다. 66~67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는
준우승도 했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왔다갔다 하는 좀 들쑥날쑥한 팀입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으로는 최초로 3부리그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죠.
아무튼 말모(스웨덴), 함부르크(독일)을 꺾고 2연속 우승을 합니다.
70년대 4강을 종합해보죠.
우승리그 잉글랜드 4, 네덜란드 3, 독일 3.
4강 진출리그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총 6회,
네덜란드 4회, 이탈리아 3회 기타 순입니다.
독일과 스페인 잉글랜드의 강세가 돋보이네요. 이탈리아는 70년대에 확실히 하향세 였네요.
4. 1980년대
1980년대 입니다. 바로 시작하죠
80~81 챔스리그 우승
숨을 다 골랐으니 다시 우승 사냥을 해야죠.
붉은 제국이 더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이 분과 함께요.
붉은 제국의 선봉장 - 이안 러쉬(웨일스)
이안 러쉬는 원래 에버튼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10대에 체스터시티라는 3부 리그에 입단 후
14골을 활약을 펼치자 리버풀에서 과감히 투자해 데리고 옵니다.
그렇게 해서 달글리쉬와 함께 붉은제국의 마침표를 찍죠.
이안 러쉬는 머지사이드 더비(리버풀VS에버튼)에서
가장 많은 골을(26골) 넣은 리버풀선수로도 유명하죠.
축구가 이래서 참 재미있습니다^^;;
국가대표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는데요
78경기 28골로 웨일스 최고의 득점 선수이기도 합니다.
리버풀하면 이스탄불 기적을 중심으로 한 2000년대 중반을
리버풀 전성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구요. 하지만 이제보니 이때가 리버풀을 전성기 였네요.
리버풀 팬들은 잠시 기다리세요 조금 있다가 또 나옵니다^^
대륙에서 바다를 건너간 챔스리그 우승의 기운은 쉽사리 떠날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많은 EPL팬 분들이 이 팀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다는 사실 모르시는데요.
바로
81~82 챔스리그 우승
EPL의 중위권팀의 대명사 - 아스톤빌라
아스톤빌라는 1부리그 우승경험이 7번이나 있는
유서깊은 구단이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합니다.
아스톤빌라의 우승으로 프리미어리그팀이 6회 연속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하네요.
당시에는 정말 잉글랜드의 강세였습니다.
그리고 챔스여신이 잉글랜드를 잠시 떠나
독일에 도착합니다.
82~83 챔스리그 우승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오래된 팀 - 함부르크 SV
함부르크는 예전에도 챔스 준결승 이상에 올라온적이 있습니다.
60~61 준결승, 79~80 결승에 올라왔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에는 실패합니다.
참고로 함부르크는 2차세계대전 이후 한번도 1부리그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하네요
비록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은 1회이지만
독일의 명문클럽입니다.
잠깐 챔스리그를 떠나 봅시다. 왜냐하면 잠시 소개해야할 인물이 있습니다.
1992년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탄생되기 전까지
유럽의 주요 리그는 3개입니다.
1.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각 리그 1등과 전년도 우승팀. 일종의 왕중왕전
2. 컵위너스컵
각 리그 컵(ex:FA컵) 우승 팀
3. UEFA컵
우승은 못했지만 상위권의 팀(리그별로 다름)
(위 부분에 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지금은
1. 챔피언스리그
2. UEFA 유로파리그
이렇게 단순화 돼있죠.
비록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을 못했지만
UEFA컵에서 우승을 경험한 한국인이 있습니다.
차붐, 갈색폭격기 - 차범근(대한민국)
차범근이 우승한 UEFA컵을 단순히 지금의 유로파리그와 비교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각 리그 2위 팀들도 출전을 했으니깐요.
당시 유로피언컵과 UEFA컵의 간격은
지금의 챔스리그와 유로파리그의 간격보다는
더 적다고 봐야할겁니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최고의 리그 중 하나였습니다.
차붐시절에 유러피언컵에도 뮌헨, 뮌헨글라드바흐, 함부르크 같은 팀들이 꾸준히
4강 이상에서 활약하고 있을때였죠.
위에서 언급한 독일 축구 3명의 영웅과도 같은 시절에 활약을 했었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분데스리가 전체 공격랭킹 3위, 당시에는 약체였던 레버쿠젠을
UEFA컵 우승까지 시켰으니 차붐의 위상은 정말로 대단했죠.
더군다나 군대에서 뺑이(?)까지 치고왔는데 말이죠;;
레버쿠젠 출신인 미하엘 발락이 차붐을 존경하는게 다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 챔피언스리그로 돌아오죠.
83~84 챔스리그 우승
붉은제국이 쉽게 무러나질 않습니다.
리버풀이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합니다.
물론 이때도 달글리쉬와 러쉬의 활약이 있었겠죠.
이때 결승전 상대팀이 AS로마입니다.
AS로마는 이때 처음으로 4강이상에 올라옵니다.
리버풀은 다음 시즌에도 결승에 진출하지만
패하고 말죠.
그리고 그 상대팀이 바로
.
.
.
.
84~85 챔스리그 우승
비안코네리 - 유벤투스
총 2번의 준결승(67~68, 77~78)
2번의 준우승(72~73, 82~83)에
울었던 유벤투스가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유벤투스 팬분들 기다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네요.
제가 듣기로는 유벤투스가 이탈리아에서 팬이 가장 많은 클럽이라고 하는데..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그리고 이 유벤투스를 구원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잠시 소개를 미뤘던
現 UEFA 회장, 발롱도르 최초 3회 연속 수상자, 플라토슈 - 미셀 플라티니
위에서 쌩떼띠엥이라는 클럽을 잠시 소개하면서
플라티니의 이름을 먼저 언급했습니다.
플라티니는 이미 르샹피오나에서는 엄청난 인기 스타였고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플라티니가 호흡기관이 안 좋아서 첫 프로 입단 제의때
퇴짜를 맞았다는 군요.
아무튼 프랑스에서의 활약을 기반으로 1983년에 유벤투스로 입단하게 됩니다.
당시에 프랑스에서는 배신자라고 욕을 했다더군요.
유벤투스 입단 후 반년만에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고
기어코 유벤투스에게 첫 챔스리그 우승컵을 선물합니다.
유벤투스의 한이 드디어 풀리는군요.
참고루 이때 결승전 장소가 헤이젤 입니다.
헤이젤에 관해서는 추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챔스리그 우승은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이 6개 나라에서 독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변방국에서 챔스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85~86 챔스리그 우승
루마니아 최고의 클럽 - FC 슈테아우어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리그에서 가장 많은 리그 우승을 했고
루마니아의 전설 게오르게 하지의 팀이기도 했던 슈테아우어입니다.
(게오르게 하지는 88~89에 슈테아우어를 결승에 진출시키지만
85~86 우승시에는 타팀 소속이었습니다.)
아무튼 루마니아에서도 챔스리그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참고로 당시 결승 상대는 FC바르셀로나입니다;
바르샤의 우승은 정말 멀기만 하군요.
그리고 오랜만에 포르투갈에서 우승팀이 나옵니다.
벤피카가 아닙니다.
86~87 챔스리그 우승
포르투갈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 FC포르투
FC포르투가 창단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거머쥡니다.
당시 결승 상대는 무려 바이에른 뮌헨입니다.
뮌헨은 레알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에 올라온 상태였죠.
2급(?)리그 들의 반란이 계속됩니다.
87~88 챔스리그 우승
히딩크, 위숭빠레, 수많은 축구스타들을 탄생시킨 - PSV아인트호벤
아인트호벤은 87~88챔스리그에 첫 4강 진출을 꿈을 이뤘고
우승까지 합니다.
우리에게 PSV는 히딩크와 박지성이죠-_-
당연히 장난입니다.
당시 준결승에서 레알을 꺾고
결승에서는 벤피카를 꺾었습니다.
대단한 위세였네요.
한동안 잠잠했던 이탈리아의 명문클럽이 드디어 황금세대와 함께 나옵니다.
88~89 챔스리그 우승
89~90 챔스리그 우승
AC밀란
68~69년 챔스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준결승 이상에서 보지 못했던
AC밀란이 20년이라는 기나긴 잠을깨고 다시 챔스리그 전면에 복귀합니다.
1986년 구단을 인수한 베를루스코니(미성년자 섹스파티 한 놈)가
당시 유망주 감독이던 아리고 사키를 영입하고
미친 선구안으로 선수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합니다.
오렌지 삼총사 NO.1 - 마르코 반 바스텐(네덜란드)
오렌지 삼총사 NO.2 - 루드 굴리트(네덜란드)
오렌지 삼총사 NO.3 - 프랑크 레이카르트(네덜란드)
산시로의 빛 - 로베르토 도나도니(이탈리아)
선수시절 부터 우승청부사 - 카를로 안첼로티
이 황금세대를 바탕으로 AC밀란은 2년연속 챔스리그 우승을 거머쥡니다.
당시 세리아A까지 연패를 하면서 챔스DNA를 다시 밀란에
이식시킵니다. 이 분들은 지금도 밀란 팬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계시죠.
이렇게 밀란을 끝으로 80년대가 챔피언스리그가 막을 내립니다.
90년대 부터는 본격적으로 지금의 챔피언스리가의 기틀이 만들어집니다.
80년대를 종합해보자면
우승은
잉글랜드 이탈리아 3번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 루마니아가 각 각 1번씩 차지합니다.
4강 진출은
스페인 6번,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5번, 포르투 3번. 기타 순입니다.
스페인은 가장 많은 4강 팀을 만들고도 챔스리그 우승에는 실패합니다. 불운하네요.
아직도 바르셀로나의 우승 소식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을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아직 아스날과 첼시는 4강에 등장도 하지 않았습니다ㅠㅠ
처음에 말했듯이 2010년도 까지만 작성하기 때문에 맨체스터 시티는 등장도 안합니다.^^;;
혹시 기다리시는 팬 분들은 그냥 마음을 비우시는게 좋을거에요ㅠ
2편에서 계속...
첫댓글 크 밀란 노팅엄 곧 있으면 첼시도 나오겠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추천 쾅
이런 글 완전 좋습니다.
굿이네요
너무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