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푸른 숲을 낀 협곡 사이로 급류를 이루며 흘러가는 몬 타나 강에서
플라이 낚시의 환상적인 캐스팅과 함께 펄펄 뛰는 팔뚝 굵기의 무지개 송어를 걸어내는
브레드 핏 의 낚시 솜씨는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가 아닐 수 없다.
맥 레인 교수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한 “흐르는 강물처럼”은 우리에게 이처럼
강 낚시의 진수(眞髓)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 이 낚시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도
그 장면들은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살에 들어서서 모든 잡념
을 털어버리고 온몸으로 즐기는 계류(溪流)낚시는 생각만으로도 나를 들뜨게 만든다.
싱그러운 자연의 품에서 대기를 휘-익 가르며 강 멀리 루어를 날리다 보면 어느 순간
덜컥 어신(魚信)을 받기 마련이고 한동안의 승강이 끝에 드디어 파등 거리는 은린(銀鱗)
을 불쑥 건져 올릴 때의 그 짜릿한 손맛과 흥분은 세사(世事)에 찌든 심신을 말끔히
씻어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강 낚시는 이렇게 마음만 작정하면 언제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가 있고 여울목에 들어서면 별다른 조건 없이 자적(自適) 할 수 있는 넉넉함이
있다.
일부 조과(釣果)에만 급급 하는 멋없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 낚시의 결과
몇 마리의 차이와 준척과 월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던가, 이 또한 도시인들의
극성스런 성과주의의 안달일 뿐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로 깜 냥 것 하루를 물가에서
즐기면 보상은 이미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손맛 또한 그렇다. 호사스런 요트에
베이트 릴 장비로 물보라를 가르며 대물(大物)의 새치 류를 트롤 링 하는 거창한 귀족
낚시가 없는 것도 아니나 반드시 장비(富)와 손맛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데에 낚시의
평등주의와 묘미가 있다.실제로는 오히려 간단하고 소박한 낚시 일수록 기계화나 중장비
쪽보다 고기를 걸어 때 훨씬 섬세하고 각별한 손맛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묵직한
릴대로 잉어를 끄는 맛 보다는 칸 반대로 휘어지게 준척의 붕어를 거는 편이, 월척의
쏘가리를 루어낚시로 감아 낼 때 보다는 여울목에서 알량한 견지 대 하나로 멍 짜 누치를
끌어 낼 때의 그 손맛은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물이 있으면 고기가 있고 고기가 있는 곳이면 낚시가 가능 하다는 이 간단한 등식(等式)
은 낚시인들의 소박한 낙천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소택(沼澤)과
수로가 부지기수인 데다 산지(山地)와 강우량 또한 넉넉해서 계류와 강까지도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낚시인들의 낙원이다. 낚시의 종류를 바다와 호소 그리고 강 낚시로
대별 한다면 각기 특유의 분위기와 매력이 있기 마련인즉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자연히 어느 한 분야의 낚시에 몰입하기 마련인데 내 개인적으로는 계류나 강 낚시를
선호한다.
바다낚시 중에서도 갯바위 낚시는 힘 좋은 돔 종류와 다 금 바리 같은 황금어종을
대상으로 그 호쾌한 손맛과 야성(野性)을 한껏 만끽하는 부러움이 있고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서 사랑받는 호소(붕어)낚시는 참선(參禪)의 경지에서 미풍과 찌와의 기미를
즐기는 양 하면서도 동양의 검도처럼 한순간의 결정적인 가격을 놓치지 않은 치밀한
정중동(靜中動)의 경지를 또한 상찬(賞讚)치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계류와 강 낚시 쪽의 체질이다. 이럴 때 그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요령 있게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강 낚시를 선호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코흘리개 어린 시절에 맑은 시내와 강이 나를
자신의 품으로 선택 해 버렸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마누라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해
가야 되듯이 이 낚시를 즐기다 보면 나름대로의 돋보이는 자랑거리를 발견 할 수가
있다.
강 낚시는 우선 출조(出釣)준비가 간편하다. 채비라야 손가방 하나면 가뿐히 끝나는
-견지 대 하나 파리낚시 한 벌 그리고 루어낚시에 필요한 소형 스피닝 릴과 대, 약간의
부속물이 전부이다- 이것이면 어느 강계(江界)나 어떤 조건에서도 그 다양한 어종을
대부분 걸어 낼 수가 있다.
강 낚시는 또한 탐욕스럽지가 않아서 좋다. 마치 리 벌 버 권총 한 자루에 모든 것을
거는 서부의 명사수처럼 실제 물에 들어가면 루어건 견지건 간에 낚시 대 한 자루만을
용납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유명한 호소 낚시터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그 어마어마
한 물량과 탐욕에는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한사람이 부채 살같이 크고 작은 대를
수도 없이 펴 놓은 것도 모자라서 대공포화가 무색할 정도로 각기 릴이 장착된 방울낚시
를 즐비하게 진설(陳設)해 놓았던 것이다. 이쯤 되면 낚시가 아니라 어류 토벌대의
출동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치 않겠는가?
강 낚시는 어종에 따른 다양한 손맛을 즐길 수 있거니와 화끈한 손맛이 자랑이다.
같은 어종의 같은 크기라 해도 여울목의 격류와 장마철의 홍수를 견뎌내야 생존 할 수
있는 까닭에 그 힘과 야성이 호소에서 얌전하게 자란 놈들과는 도시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찮게 생각되는 피라미가 주대상어인 파리낚시라 할지라도 붉은
갈 피리가 걸려 나올 때의 그 앙칼진 낚시 털이는 참으로 화끈한 손맛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수년전 나는 그렇게도 선망해 마지않던 플라이 낚시(서양식의 파리낚시)에 드디어
입문할 기회를 얻을 수가 있었다. “레인보우 플라이 휫싱 클럽”의 호의로 필요 장비를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그 환상적인 플라이 라인의 캐스팅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예비
훈련을 쌓았고 D데이 에는 팔당 상류에서 배스를 노리기로 의논이 되었다. 다음날
그곳에 도착한지 얼마후 나는 플라이 낚시에 그만 흥미를 잃고 되돌아 와 버렸다.
그리고 그이후론 플라이 낚시와는 영 거리가 멀어진 채로 있다.
그곳은 이미 내가 그리던 맑은 강도 깨끗한 상수원의 풍경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자저분한 쓰레기 더미가 떠다녔고, 비닐을 비롯하여 농작물의 폐기물이
산재(散在) 했으며 심지어 가장 자리의 물빛은 암갈색이 돌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비위마저 역(逆)해져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모든 것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비록 코흘리개 때부터 대빗자루 중에서 제일 긴 댓가지를 끌어내 재봉사로 줄을 매고
성냥갑에 파리를 잡아서 피라미 낚시부터 시작했을 지 언 정 결코 고기만을 낚아 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_ .
나는 여울목의 맑은 물살에 부서지는 눈부신 햇살을 낚았고 강변의 찔레꽃 향훈과
호밀밭 종달새의 지 저 김을 낚았으며 또한 보리누름 녘에 하늘과 들판과 산굽이를
돌아가는 강물을 붉게 물들여 버린 저녁노을까지도 낚아 올렸다는 것을, 아니 낚은 것은
내가 아니라 사실은 애초에 서시 내와 섬진강이 나를 단단히 낚았으므로 여지 것 파 등
거리며 향수(鄕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닐지__ .
첫댓글전,,바다낚시를 조금 한 적이 있어요,,,물론 근 손맛도 조금은 알지요,,대어는 못낚아도 ,,,그냥 재미있은적이 있었는데..요즘은 통 못하고 있어요,,잠깐의 여유를 즐겻다고 생각이 드네요,,,시간을 낚으시는 님..삶도 그렇게 기다림같이 온유하고도 평안하게 재촉하지 말고 낚아 가시길...
첫댓글 전,,바다낚시를 조금 한 적이 있어요,,,물론 근 손맛도 조금은 알지요,,대어는 못낚아도 ,,,그냥 재미있은적이 있었는데..요즘은 통 못하고 있어요,,잠깐의 여유를 즐겻다고 생각이 드네요,,,시간을 낚으시는 님..삶도 그렇게 기다림같이 온유하고도 평안하게 재촉하지 말고 낚아 가시길...
낚시만큼 좋은 도락도 없을 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여유자적하면서 가끔 자신을 성찰 할수있는 시간도 갖게 되지요...
님은 민물 낚시에 전문가신가봐요? 님 고향을 좋아하고 자연의 풍광을 사랑 하시나봐요. 님 고향이 그 경치 좋은 섬진강 어느 쪽인가요....
민물 보단 강낚시쪽의 전문가랄 수 있습니다. 제 고향은 노고단을 비롯한 지이준봉과 화엄사를 머리로 천년고찰이 즐비한 구례군입니다. 구례와 하동사이에 잘 알려진 화개장터가 있지요...
낚시라면 안가본곳이 없지만 그래도 묘미는 수로낚시 같아여..길도없고 앉을자리 마땅찮아 겨우 응뎅이 붙이고 앉아도 나름에 맛이있거든여.......ㅎ
님께서는 붕어낚시에 푹 빠지시나 봅니다... 아마도 가장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낚시이지요...
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