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센도...점점 커진다는 뜻의 악상표시이다.악보에 보면 crescendo라고 써있거나 < 표시가 되어있다. 반댓말로는 데크레센도 혹은 >이다. 작년 반클라이번 콩쿨대회에서 1등을 한 임윤찬의 콩쿨대회 참가 다큐가 크레센도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제목이 왜 크레센도일까?
반클라이번이 누구인지 부터 그 대회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까지 역사와 대회가 생긴 계기등을 설명한다. 냉전시대에 소련에서 권위있는 차이코프스키 콩쿨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한 반클라이번은-이름상으로는 독일풍같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면서 1등을 거머쥔다. 그러면서 아무리 냉전시대라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통합, 화합의 영역이고 이데올로기가 침입할수 없는 영역이라고 못을 박았다. 반클라이번은 미국에 마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마냥 금의환향을 하고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의 유산으로 반클라이번이름을 딴 대회가 만들어지고 올림픽처럼 4년에 한번씩 열리면서 참가연령은 만18세에서 30세로 젊은 예술가들이 그 대회 참가로 단숨에 프로로 대뷔할수 있는 상금, 연주활동, 음반등을 지원받고 전세계 클래식팬들앞에서 연주할수 있는 기회 등 을 부여한다. 2022년 반클라이번대회는 원래 2021년에 열렸어야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그 다음해에 열렸고 그 덕분에 임윤찬이 18세가 되어 참가를 할수 있어 우리가 그의 위대한 탄생을 볼수 있게 되었다. 4년마다 올림픽처럼 개최가 되고 대회열리기 몇달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이 터지고 다시한번 반클라이번이 활동했던 냉전시대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참가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혹시나 대회를 못나가게 하면 어쩌나 했지만 반클라이번이 차이코프스키대회에서 우승했듯이, 그 모토로 대회는 개최되었다.
한달의 기간동안 380명의 참가자중에 혹독하고 피를 말리는 접전을 벌여 최종 3명에게 금, 은, 동메달을 주는 대회이다. 세계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은 호스트 패밀리 집에 기거하면서 주최즉에서 보내준 피아노를 가지고 적응 훈련 연습을 하면서 대회에 출전한다. 임윤찬이 거주했던 호스트는 의사부부였는데 윤찬이 그에게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양해를 구하자 그러라고 얘기하면서 속으로 어린게 치면 얼마나 오래 치겠어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웬걸...그는 15시간을 쳤다고 한다. 그렇다. 그는 천재이면서도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그가 얼마나 음악에 대해 겸손한지 알수 있다.
접전을 벌이는 방식은 첫번째, 초연이였다. 작곡가가 쓴 한번도 연주되지 않은 곡을 발표하는 것이 초연인데 이것은 연주자의 해석능력과 독창성을 보는 것 같다. 한번도 연주되지 않았기에 어떻게 쳐야하는지 모르는 데다가 오로지 악보에 의존해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으로 해석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부분이고 나도 대학입시나 콩쿨대회에 나갔던그 짧은 경험으로 봤을때도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바로 처음에 연주되는 것이다. 곡을 처음 연주하는 것도 부담되지만 첫순서로 나가서 연주하는 것은 얼마나 부담인지 모른다. 이건 연주회가 아니라 운동경기와 같았다.
순서를 정할때 번호표를 추첨하는 방식으로 저번회 우승자가 나와 이름이 적힌 쪽지를 뽑아 호명하면 나와서 자신이 원하는 순서에 이름을 적는 식이다. 저번회우승자도 한국인피아니스트인 선우예권이였다. 이번 대회도 한국인이 무려 임윤찬 포함 4명정도였고 일본인 한명, 중국인 한명이였던거 같다. 그들은 18명뽑을때도 통과, 12명뽑을때도 통과되었었다. 준준결증까지 다 통과한 셈이다. 정말 대단하다. 러시아와 유럽의 전유물인 클래식음악이 변방의 아시아국가가 이렇게 선전하다니..여하튼 선우예권이 이름을 호명할때마다 참가자들이 한숨을 오르쉬는 모습, 박수치는 모습등 여느 보통 젊은이들이 하는 상황과 똑같고 공감이 되었다. 처음 경연을 치렀을때는 2주후에 그다음 경연이 있어서 통과자들이 연습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 다음부터는 이틀있다가 다음 시합이 있다든지 하는 식이라 점점 연습할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그렇게 되면 점점 부담이 가중될수밖에 없는데 다음경연까지의 텀이 짧지만 연주해야할 곡은 점점 대곡으로 되기 때문이다. 또 한 공연장에서만 대회를 치르지 않고 한번 공연장을 바꾼다. 피아노도 두대중에 자신에게 맞는 피아노를 고르게 하기도 하고 연주하기 전 사전에 체크해볼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준다. 공연장을 바꾸는 이유는 앞으로 여러 콘서트장을 방문하여 연주할텐데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의 취지라고 한다. 또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곡을 연주할때 어떤 생각이 드냐, 발표를 기다릴때 어떠냐 등을 물어보는데 어떤 인터뷰어는 윤찬이 모차르트 곡을 칠때 너무 아름다워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쳤느냐고 물었다. 어떤 특별한 생각을 했길래 그렇게 칠수 있는가였다. 그는 아무 생각도 안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했지만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였다. 또 다른 연주자들도 곡을 칠때 떨리지 치고나서 발표를 기다릴때는 오히려 괜찮다고 한다. 왜냐면 이미 나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내손에서 떠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대기실에서 각자 긴장감을 푸는 방식이 나온다. 테이블에 앉아 손가락을 두드리는 사람, 헤드셋을 착용하고 눈감고 있는 사람, 왓다갔다하는 사람, ,,그중 한 참가자는 그랬다. "이렇게 대기할때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명상을 해요. 그리고 들어가서 칠 곡의 첫음연주하는 것을 상상하죠. sns나 핸드폰 보는 것은 도움이 안되요. .. "세상의 모든 연주자들, 예술가들은 명상가이다. 본격적 명상을 배우지 않아도 이미 명상을 해왔다.
또 어떤 참가자는 이랬다. "저는 이 경연이 경연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일리야(경쟁자)가 제가 치는 곡과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자신의 연주를 들려줬어요. 같이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다른사람은 어떻게 연주하는지 배울수 있고 자극이 되고 너무 좋아요."
다음 종목은 피아노 독주곡이였는데 예를 들면 베토벤 소나타 3번을 친다거나 하는 식이였다. 그 종목이 끝나고 그 다음은 60분정도 혼자 독주를 해야하는 시합이다. 여기서 임윤찬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12곡을 쳤다. 이 곡들은 일단 악보보기가 너무 싫을 정도로 어렵고 끔찍할 뿐 아니라 극강의 난도와 엄청난 스킬을 요구한다. 그래서 프로 연주자들도 부담스러워하는 곡인데도 이 18살 소년은 콩쿨곡으로 골랐으니 그의 대담함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였다. 참가자들은 그 속에서 누가 무슨 곡을 골랐는지, 또 어떻게 치는지 굉장히 예민하고 눈치작전에 또 자신이 어떤 곡을 언제 쳐야 결승으로 가는 쐐기를 박을지를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라서 대회를 치를거고 얼마나 그곡들을 자신있게 소화하고 있었는지 컨디션조절과 마인드컨트롤까지 전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였는지..영화를 보면서 숨이 막혔다. 김연아와 아사다마오가 했던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의 무덤덤하고도 강인한 멘탈과 유리멘탈로 흔들렸었던 마오의 대비와 같이 윤찬은 엄청난 멘탈로 연주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그 현장에서 심사위원, 참가자 모두들이 그에게서 뿜어나왔던 에너지가 얼마나 거대하고 강렬하다는 것을 잘 느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소하고 말도 잘 못했다. 머뭇거리면서 느리게 얘기하고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영어도 잘 못했다. 중간중간 한국말로 말하는 그가 강조한 것은 가지고 있는 재능은 그저 하늘의 예술가들을 위해 쓰일 뿐이라고 했다.
준결승이 끝나고 8명에서 6명으로 최종 선발되면서 그들이 치르는 마지막 결승은 피아노협주곡 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였다. 협연은 독주와 완전 다르다. 화합해가며 자신의 소리를 죽여야 할때, 내야 할때를 잘 해석해야하고 호흡도 중요하며, 지휘자와 단원들과 원활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이 또한 연주자로써 역량을 볼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6명중 4명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을 골랐고 그중에 윤찬포함하여 3명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한명은 2번이였다. 러시아 30대 아기엄마인 피아니스트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을, 나머지 한명은 스크랴빈인가...잘 기억이 안난다. 프로코프예프였나..여하튼 그렇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은 협주곡중 가장 어려운 곡중의 하나로 괴물같이 커다란 손을 가졌던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 초연을 하러 가는 배속에서 연습했던 곡이였다. 영화에서는 임윤찬이 도입부를 치는 부분에서 반클라이번이 차이코프스키대회에서 쳤던 부분을 오버랩시키고 그곡을 연주했던 나머지 두명의 연주들을 곡의 진행순서로 보여주면서 최종 임윤찬의 연주로 마무리 지었다. 심사위원겸 지휘자였던 마린 압솔, 또다른 심사위원,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극찬을 하며 윤찬에게 다가와 같이 사진찍고 잊을수 없는 연주였다고 감격에 겨워 말하는 장면들은 그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의 느낌을 경연이 아닌 음악을 연주했던 거로써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고 감격해 했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라흐마니노프여, 당신이 살아서 이 연주를 들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들은 그렇게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이미 리허설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쟤가 1등이라는 것을. 그의 연주는 모든 음들이 명확하게 들리고 그러면서 튀지 않으며 보통 멜로디를 강조하느라 중간음들이나 왼손음들은 거의 소리가 안나게 치는데 그는 다 들리게 친다. 그리고 연주하다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는 오로지 작곡가의 의도로만 연주를 했다. 그게 다른 연주자들과의 차이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윤찬의 인터뷰장면에서 그 대회가 끝나고 뭐가 달라졌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노라고. 나는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고 더많은 예술가들의 곡들을 연습하고 알고 배워야 한다고.
그의 음악에 대한 자세는 소명이였다.
정말 존경한다. 감동적인 영화였다.
모든 것이 크레센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