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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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
2023년 9월 8일 우리 시대 종교학계의 석학 길희성 교수가 80세의 일기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10일 강화도 심도학사 뒷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는 가운데 수목장으로 장례를 마쳤다. 필자는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가신 이를 추모하면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필자는 학자로서 길희성 교수의 정체성을 ‘종교신학자’라고 본다. 물론 길희성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철학, 신학, 종교학의 구별은 학술활동상으로는 경계와 구별이 있지만, 실제상 나(길희성)의 사고나 쓰기에는 더 이상 엄밀한 구별이 없다.”1
길희성의 학력, 연구 경력, 교수 경력이 보여주는 대로, 특히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될 만큼 그는 종교학, 철학, 신학을 넓고 깊게 연구하고 회통한 보기 드문 인문학계의 석학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종교적 영성과 실존적 신앙의 밑바탕에는 기독교 신앙이 있었고, 기독교 신학이 그의 본심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길희성 교수의 학문적 정체성을 ‘종교신학’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교학자이지만, 20세기에 크게 발전한 종교학의 성과를 기독교 신학에 조명하고 접목하면서, 기독교 신학을 새로운 문명시대에 걸맞는 신앙으로 혁신하려고 노력한 학자요 진정한 영성가이자 신앙인으로서 그를 보려는 것이다.
위와 같이 길희성을 규정하는 것이 길희성을 좁은 의미의 기독교 종교영역으로 다시 복귀시키고 가두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불교학자들도 그가 인도 종교와 불교, 특히 중국 선불교의 임제 선사, 한국 불교 지눌 연구, 일본 정토종 신란 연구 등에서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한다.2 그가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을 비롯한 가톨릭 신학과 동방 정교회 신앙, 그리고 유교와 원불교와 동학 연구에서도 깊은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학계에서는 모두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희성의 종교학과 철학과 인문학의 깊은 비밀을 알려면 그가 진정한 ‘예수쟁이’였으며, 인간적-역사적 참사람 예수를 지극히 애모하고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려고 몸부림쳤던 진리 구도자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3
길희성 종교신학을 지탱하는 삼각대: 파울 틸리히, 윌프레드 스미스, 루돌프 오토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아이작 뉴턴이 인용해서 더욱 유명해진 경구이다. 학문 세계 혹은 정신사의 발전과 새로운 혁신 사상은 앞선 현명한 사람들의 업적을 기초 혹은 퇴비로 삼아 발생하고 싹튼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길희성의 경우도 그렇다. 필자는 ‘거인들의 어깨 위’라는 은유 대신 야외에서 사진을 촬영할 때 카메라를 고정해주는 ‘삼각대’라는 은유를 쓰고 싶다. 길희성 사상의 기초 터를 마련하고 떠받들어 준 삼각대는 파울 틸리히(Paul Tillich),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그리고 루돌프 오토(Rudolf Otto)라고 생각한다. 그 세 학자의 어깨 위에서 길희성은 세계종교사와 현대문명을 멀리, 넓고 깊게 바라보고 새로운 자기 사상을 피력할 수 있었다.
길희성은 자신의 삶과 학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관심과 문제의식으로 ‘신 문제와 삶의 의미’를 꼽았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을, 그리고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기나긴 학문적 순례길을 걸었다. 모든 위대한 학자들도 선생을 가진다. 길희성이 걸어온 학문의 길에 동서양의 많은 대학자들이 있었겠지만, 특별히 20세기의 큰 학자 틸리히, 스미스, 오토의 영향이 컸다.
길희성은 틸리히에게서 (1) 궁극적 관심으로서 종교 이해, (2) 존재의 지반과 능력으로서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 이해, (3) 상징의 중요성과 종교에서 상징을 물상화하는 위험, (4) 종교의 속화(俗化)와 마성화(魔性化)를 비판하는 예언자 전통과 신비가 전통의 비판 정신, (5) 자율과 타율,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를 넘어서는 신율적 황홀한 이성개념을 배웠다.
스미스에게서는 근현대적 의미에서 말하는 종교 개념, 즉 ‘축적된 전통으로서의 종교’와 살아 있고 숨 쉬는 ‘경건한 신앙’을 구별하는 분별력을 배웠다. 그는 스미스 교수의 명저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직접 번역했다.4 하버드대학교 비교종교학 박사과정 중 스미스 교수의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하여 배운 길희성은 “종교에서 영성으로”라는 화두를 후반기의 학문적 과제로 삼았다. 스미스의 통찰과 종교신학적 주장을 한국 사회 혹은 동아시아의 정신문화 풍토에서 구체화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영성’과 스미스가 말하는 ‘신앙’ 이해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오토에게서는 종교적 체험의 원초적 특징인 ‘성스러운 실재 체험의 현상학’을 배웠다. 또한 종교는(혹은 경건이나 영성은) 자연과학자가 강조하는 ‘인과율’, 수학적/실증적인 것만을 인정하려는 단세포적이고 평면적인 합리성을 넘어서는 ‘초합리적/비합리적’(superrational/irrational)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다.5
비합리성(非合理性)은 반합리성(反合理性)을 의미하지 않는다. 길희성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현대인들, 특히 지식인들이 종교를 미신적 소산으로 여기거나 무지몽매한 고대 문화의 잔재물로 여기는 경박한 종교 이해를 비판하고, 신앙과 이성은 갈등 관계가 아니라 화해하고 공존해야 할 관계임을 강조했다.
석학으로서 길희성 교수의 팔십 평생 업적은 동연출판사 김영호 사장의 열정에 힘입어 간행된 총 22권의 ‘길희성 종교와 영성 연구 전집’에 담겨 있다. 그의 사상을 담은 중요한 책들이 모두 출판된 것이다. 제한된 지면에서 길희성의 넓고 깊은 학문 업적을 모두 고루 소개할 수도 없고, 필자의 학문적 능력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길희성의 저작물 중에서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 『신앙과 이성의 새로운 화해』, 『영적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그의 ‘종교신학’이 우리에게 남긴 공헌과 과제가 무엇인지 세 가지만 골라서 그 문제에 집중하려고 한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
1) 칸트의 이성 비판의 인식론적 프레임, 형이상학 진리 불가지론을 넘어서
길희성이 우리에게 남겨준 공헌과 문제 제기는 모든 지식/앎/체험은 왜/어떻게 가능하며 그것들이 진실한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인식론(epistemology) 문제에서 시작된다. 그 문제는 매우 중요한 쟁점인데, 길희성이 공공연하게 여러 번 공론화한다. 왜냐하면 길희성 말년의 역저 제목이 『영적 휴머니즘』인데, 계몽주의 시대 이후 소위 계몽된 지식인들은 영적인 것, 종교적인 것, 신앙과 하나님 은혜 체험 등을 개인의 취향 문제로 여겨 지성적 학문 세계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현대인들은 하나님, 영혼 불멸, 사후세계, 마음의 자유 등등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이성의 한계’를 금 그어준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의 충실한 신도들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세계는 신을 잃어버렸거나 망각하게 되었고, 신은 세계를 잃고 현실 세계와 관계없는 하늘나라의 군주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자신을 단지 복잡한 생물학적 기계로 바라본다.
철학사에서 다루는 인식론을 여기서 재론할 수는 없지만, 칸트의 인식론이 가져다준 획기적 공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칸트 이전의 인식론은 크게 보아서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대륙의 합리론(rationalism)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국적 경험론(empiricism), 이렇게 두 흐름으로 대변된다. 칸트는 이 두 인식론을 종합하여 양쪽의 일방적 주장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합리론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이성, 깊은 지성은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직관하고 질서를 세워 이해하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감각적 경험의 도움, 즉 외계 사물과 사건의 감각적 정보제공 없이도 스스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정신 속에 내재한 로고스, 리(理), 불성(佛性) 등이 선험적으로 있기 때문에 인식행위가 가능하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 ‘소박한 경험론’(naive empiricism)은 외계 사물을 카메라가 사진 찍듯이, 밖에 객관적으로 있는 대상이 주는 자극과 정보를 카메라가 받아들여 마음이라는 백지 위에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보았고 경험 없이는 아무 지식도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경험론의 입장을 일부 받아들여서 하나님, 영혼, 자유 등은 감각적 경험 대상이 아니므로 ‘형이상학적 지식’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감각적 오관을 통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정보/자료를 일정한 질서와 법칙 아래 정렬시키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살아간다. 칸트는 그러한 판단이 인간 마음의 ‘범주’(範疇)로 불리는 인간 정신의 ‘선험적인 능력과 인식 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합리론의 타당성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길희성은 인식론적 혁명으로서 소위 칸트의 ‘종합적 구성설’ 이론이 갖는 공헌을 인정한다. 그러나 칸트의 인식론은 결국 하나님, 영혼, 영성 등 형이상학적인 실재들의 실재성과 믿음 자체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불가지론자들의 손에 그러한 문제들을 맡겨버린 셈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길희성은 자기 입장을 ‘비판적 실재론’이라고 말한다.6 그는 ‘소박한 경험론’과 경험을 무시하는 ‘관념적 합리론’을 동시에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순수이성은 형이상학적 지식에 접근 불가능한 한계성이 있다.”라는 칸트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울 틸리히는 ‘이성의 빛’을 강조하는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의 자녀라는 깊은 통찰을 남겼다. 퀘이커의 창시자 조지 폭스가 말하는 ‘내면의 빛’과 바울 사도가 말하는 ‘성령의 내주(內住) 경험’, 그리고 ‘이성의 존재론적 기능’은 모두 같은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말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인간 본성 안의 신령함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7 ‘허령통철’(虛靈通徹, 권근), ‘성자신해’(性者神解, 원효), ‘공적영지’(空寂靈智, 지눌), ‘환하게 뚫려 비침’(함석헌)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나타나지만, 길희성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인간 영성은 선험적으로 하나님의 내주와 현존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 신비한 경험은 주관적 환상이거나 망상이 아니라 진실이요 실재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본래 마음의 본향이며 본래성이므로, 그의 종교신학은 신앙과 이성을 갈등 관계로 생각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두 진영의 갈등과 이분법을 넘어서
길희성의 종교신학이 전통적 기독교 신학과 현대인들에게 남긴 공헌과 과제는 오랜 세월 동안 신관과 실재관에서 상호 대립되어 온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제3의 길을 제시하고 강조한다는 점이다. 길희성은 이 제3의 입장을 ‘자연주의적 초자연주의’(natural supernaturalism)라고 표현하는데, 그 개념 자체는 일반 대중들이 언뜻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초자연주의적 실재관/신관은 고대 시대부터 현대의 우주 시대에 이르기까지,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신앙을 지배하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실재관이며 신관이다. 이 입장은 스콜라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가장 정교하게 정립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자연세계와 초자연세계, 시공우주와 영성우주, 이성으로 알 수 있는 ‘땅’과, 계시와 믿음으로서만 알 수 있는 ‘하늘’이라고 총괄 표현하는 두 질서로 구성되어 있다. (2) 하나님은 초자연세계, 물리적 시공을 넘어선 영적 하늘나라에서 절대적 자유와 자비의 힘으로써 구원 사역을 수행하신다. (3) 위와 같은 초자연적 진리는 영감적 경전인 성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계시적 종교이다.
위와 같은 초자연주의적 실재관과 신관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모델이다. 그런데 초자연주의적 실재관은 뉴턴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 시대 이후 지성인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과학적 지식의 증대만이 아니라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연재해(화산, 지진, 전염병)와 홀로코스트 같은 전쟁을 통해 경험한 역사적 악의 폭력성을 겪으면서 초월론적 유신론 신관은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게 된 실재관 모델을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부른다.
자연주의라는 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물질론자, 유물론자, 실증적 과학자, 통속적 무신론자들이 생각하는 자연주의이다. 그 입장은 일체의 초자연적, 형이상학적 실재를 부정하고 세계와 인간은 ‘우연과 필연’이라는 물질 법칙이 지배한다고 믿는 세계관을 일컫는다. 둘째는 스피노자의 입장이다. 자연은 ‘신의 몸’이고, 죽은 물질 덩어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능산적 자연’(能産的 自然)이라는 것이다.
길희성이 말하는 제3의 길은 초자연주의와 무신론적 자연주의 및 범신론적 자연주의를 모두 부정하는 입장이다. 신과 세계의 관계를 “신이 만물에 내재하지만 동시에 초월하는 포월적(包越的) 실재”라는 신관으로 규정한다.8 크게 보면 길희성의 실재관과 신관은 현대신학의 전위적 사상가들이 말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을 지지한다. 대표적인 성서 구절을 예로 든다면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길희성은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과학과 종교, 이성과 신앙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포월적 실재’를 주장하며 전통적 초월주의에 갇혀 있는 한국 기독교에 성찰을 촉구한다.
그렇다면 길희성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사후 천국신앙이나 신령한 개체적 인간존재의 부활신앙을 부정하는 과정신학적 범재신론자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천국 이해나 부활신앙 이해를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하늘나라(천국)에 가는 것을 반드시 우리가 사는 시공간을 넘어 저 멀리 우주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길희성은 사도바울의 말처럼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이 있다”(고전 15:44)는 것을 믿는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극악무도한 삶을 산 사람에 대한 엄한 심판도 믿는다. 다만 예수께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요 14:2)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때, 우리가 지금 ‘시공우주’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종류의 특별한 시공간이라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서라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존재 양식이 다르고, 시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고, 몸의 영광이 다르고, 존재하는 것들의 진동과 주파수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3) 전통신학에서 강조하는 유일회적 성육신론과 원죄론을 넘어서
길희성의 사상은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연구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 철학,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선(禪) 사상가, 중세신학과 신비가, 그리고 비교종교학과 종교다원론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글은 특히 길희성의 사상을 기독교 신앙 내지 신학과 관련되는 부분에 한정해서 그의 ‘종교신학’을 일별하여 왔다. 마지막으로 그의 종교신학 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과 쟁점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통신학으로 말하면 하나님 형상론, 말씀 화육론, 인간 타락과 원죄론, 칭의론과 성화론 등에 관련되는 핵심적 주제이다.
이에 관한 길희성의 종교신학 담론은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과 『영적 휴머니즘』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첫째, 길희성은 엑카르트의 사상을 지지하면서 ‘유일회적 특별 성육신론’을 넘어서서 ‘보편적 성육신론’을 주장한다. 하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하여 갈릴리 나사렛 예수의 몸 안에서 특별하게 유일회적으로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문명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이뤄지는 은총 사건의 ‘범례적 표징’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 아들의 탄생, 말씀의 탄생, 혹은 단순히 하느님의 탄생은 엑카르트 영성과 신비 사상의 핵심 주제”이다.9
둘째, 길희성의 종교신학에서 ‘보편적 성육신론’은 하나님과 피조세계의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신의 자유로운 의지 행위로서의 창조’라는 전통적인 은유 대신 어머니가 자녀를 낳듯 ‘낳는다’라는 은유를 강조한다.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은 독립된 개체 인격체로서 어머니와 구별되지만, 여전히 어머니와 닮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갖는다. 그렇듯 절대 거룩하고 자유롭고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연약한 피조물 특히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론적 관계성을 ‘선험적으로’ 갖게 된다. 이것이 ‘인간 영성’의 존재론적 근거이다. 태초의 시원적 창조, 지속적 창조, 종말론적 완성으로서의 창조가 수미일관 회통된다.
셋째, 필자가 보기에 길희성 종교신학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그의 성화론에 있다. 그의 성화론에 의하면, 인간은 탄생할 당시 ‘하나님의 씨’를 은총으로 부여받았으며,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닮은 자답게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 길희성의 종교신학적 인간학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과 ‘선행적인 은총’(prevenient grace)을 인정하지만, 도덕적-영적 수련 및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 은총론을 본회퍼와 함께 ‘싸구려 은총론’이라고 비판하고 이를 비복음적, 아니 반복음적 신학이라고 경고한다.10 정통 신학이 강조해 왔던 ‘인간성의 전적 타락’, ‘원죄론’, ‘행위 없는 믿음만으로의 구원’ 등은 4개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민중들에게 기대하고 격려하시는 말씀과 배치되는 경직된 도그마들이다.
성탄절이 가까워져 온다. 엑카르트는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가 내 영혼 안에 탄생하는 날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영혼은 ‘가난, 비움, 초탈, 순수’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길희성은 증언한다. 이렇듯 길희성은 내 안의 영성 씨앗이 발아하여 꽃피고 열매 맺기를 간절히 바란 종교신학자였다.
주(註)
1 길희성, 『인문학의 길』(동연, 2022), 7.
2 ‘길희성 종교와 영성 연구 전집’(제4권 『지눌의 선(禪)사상』, 제5권 『일본의 정토사상』, 제7권 『인도철학사』)을 참조할 것.
3 정경일 교수는 은사 길희성 교수를 추모하는 글(「한겨레」, 2023. 9. 18.)에서 어느 날 오후에 있었던 대화 일부분을 이렇게 회상했다. “정경일: 선생님은 초종교의 영성을 추구하시면서 왜 그리스도교를 떠나지 않으세요?, 길희성: 예수님이 너무 좋아.”
4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분도출판사, 1991).
5 루돌프 오토, 길희성 옮김, 『성스러움의 의미』(분도출판사, 1987).
6 길희성, 『영적 휴머니즘』(아카넷, 2021), 253.
7 한자경, 『한국철학의 맥』(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8), 170.
8 길희성, 『영적 휴머니즘』, 15.
9 길희성,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분도출판사, 2003), 219.
10 길희성, 『영적 휴머니즘』, 852-853.
김경재|한신대학교에서 문화신학·종교신학 교수로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했다. 현재 삭개오작은교회 원로목사, 한신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해석학과 종교신학』, 『이름 없는 하느님』, 『영과 진리 안에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생』, 『틸리히 신학 되새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