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OECD 국가보다 연 155시간 더 일해
선진국 ‘주 4일제’ 도입 기업들 점점 많아져
“AI 활용하면 임금 안 깎고 근로 단축 가능”
시민단체·노동계, 주 4일 제도화 공약 촉구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많다. 우리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은 국가는 콜롬비아와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그리고 이스라엘이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나 근로시간만 보면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도 이런 흐름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게시된 일자리 정보지에 근무시간이 표시돼 있다. 2023.12.26.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56.2시간이었다고 연합뉴스가 3일 전했다. 이를 연 단위로 환산하면 1874.4 시간이다. 2022년보다 월 기준으로 2.5시간, 연으로는 30시간 줄었다.
그러나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하면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 국가로 분류된다. OECD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임금 근로자 근로시간은 회원국 평균 연 1719시간이다. 여기에 들어간 2022년 기준 한국의 근로시간은 1904시간이다. 고용부가 집계한 지난해 한국의 근로시간과 비교해도 OECD 평균이 155시간이나 적다. 월간으로는 13시간 차이가 난다.
근로시간 감소세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보기술(IT)과 로봇 등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투입되는 기술이 고도화하며 노동 투입량을 줄여도 생산성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되며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도 지난 10년간 근로시간이 꾸준히 줄었다. 지난 2013년 근로시간은 월평균 172.6시간, 연평균 2071.2시간이었다. 지난 2017년 연 1995.6시간으로 2000시간 아래로 내려왔고 지난해 1800시간대에 진입했다. 10년 새 월 16.4시간, 연으로는 196.8시간 감소했다.
2013∼2023년 상용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 월평균 근로시간. 연합뉴스
세계적 추세에 맞춰 한국의 근로시간이 감소한 요인 중에는 주 52시간제 도입의 효과가 매우 컸다.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경제계에서는 “기업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발했으나 기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근로시간이 많이 줄었으나 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갈 길이 멀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근로시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단축하려면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청년유니온, 유니온센터 등으로 구성된 ‘주 4일제 네트워크’는 지난달 29일 국회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여당과 야당을 향해 ‘주 4일제 법 제도화’를 총선 공약으로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국가노동시간위원회 설립·운영,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노동시간 체제 전환 등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이들 단체는 “주 4일제가 출근일 단축에 따른 탄소배출 감소와 돌봄노동 분배로 인한 성평등 사회 등을 실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주 4일제를 실험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배달플랫폼인 배달의민족과 핀테크 회사인 토스 등 벤처기업은 물론 포스코와 대명소노그룹 등 대기업도 주 4일제 또는 격주 4일제를 채택했다. 삼성과 SK, LG 등도 근무시간 단축에 나서고 있다. 근로자들도 이런 시도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1월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유럽연합 국가의 장시간 근로 시간 비교. 연합뉴스
세계 최대 규모의 ‘주 4일제’ 실험에 나섰던 영국 기업 대부분이 이 제도를 영구 도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주 4일 근무제 시범 운영에 참여한 61개 영국 기업 중 최소 54개 기업이 현재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 중 31개 기업은 주 4일제로 영구 전환했다.
CNBC가 언급한 실험은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와 비영리단체 주 4일제 글로벌, 옥스퍼드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보스턴대학교 연구진 등이 기획했다. 처음에 70여 개 기업의 3300여 명이 참여했고 이 중 61개 기업은 1년 후 후속 연구에도 참여했다. 오토노미의 후속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실험에 참여한 기업의 임원들은 주 4일제가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 건강, 일과 삶의 균형이 상당히 좋아졌고 삶의 만족도도 향상시켰다는 응답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