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205]다산시 부용정 노래[芙蓉亭歌]
원문=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부용정 노래
芙蓉亭歌
乙卯季春。臣直宿監印所撰書。一日上御春塘臺。設賞花釣魚宴。
臣叨承異渥。獲與盛筵。今眞游已遠。臣又流落窮荒。
適當莫春。時物感愴。恭述此篇。以瀉於戲不忘之思。
을묘년(정조 19, 1795) 늦은 봄에 신(臣)이 감인소(監印所)에서 직숙(直宿)하며
글을 쓰고 있었는데, 하루는 상께서 춘당대(春塘臺)에 납시어
상화조어(賞花釣魚)의 잔치를 여셨다.
신도 외람되이 남다른 사랑을 받고 그 성대한 잔치에 참여했었는데,
지금은 상께서 영원한 곳으로 가신 지 이미 오래이고,
신 역시 막다른 황원에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지금 계절이 마침 늦은 봄이라서 보이는 것마다 슬픔을 자아내기에
삼가 이 시를 써서 오희불망(於戲不忘)의 감정을 여기에 쏟아보았다.
장기성 동쪽 약천 북쪽에
약천(藥泉)은 유림(楡林) 남쪽에 있음. / 長鬐城東藥泉北
방초는 연기 같고 난만한 꽃 짜놓은 듯 / 芳草如煙花似織
문만 닫고 있는 내가 주인 생각에 안됐던지 / 主人憐我長閉戶
봄구경 한 번 다녀오자고 넌지시 날 권하면서 / 勸我一出看春色
채소도 뜯어 오고 생선도 익히고 / 爲摘野蔬烹海鮮
흔연한 얼굴로 술까지 한 병 찼기에 / 帶酒一甁貌欣然
못 이긴 체 짚신에다 죽장을 챙겨 짚고
국상[國恤]이 아직 소상(小祥) 전이었음. / 試穿菅屨扶竹杖
그를 따라 애써서 사립문 밖 나섰다가 / 黽勉隨至柴門前
머뭇머뭇 갑자기 옛날 일을 생각하니 / 躕躇欲行忽反顧
눈물이 주르륵 가을비처럼 쏟아져서 / 泫然淚落如秋雨
말 없이 다시 들어와 침통한 얼굴로 / 入門無語慘顔色
막막한 하늘 보았더니 천지가 아득하데 / 漠漠視天天地暮
생각하면 그 옛날 태세가 을묘인 해에 / 憶昔單閼歲在乙
님 은혜로 규영실에 들어가 있었는데
감인소(監印所) 편액을 규영부(奎瀛府)라고 달고
동실(東室)과 서실(西室)이 있었음. / 承恩入處奎瀛室
님의 수레 그때 막 화성에서 돌아와서
2월에 자궁(慈宮)을 모시고 화성에 행차하였음. / 法駕新自華城還
노부를 적어서 책으로 만들어 올리라네
신으로 하여금 《정리통고(整理通考)》를 찬술하도록 명하였음. / 令記鹵簿進縹帙
때는 그때 삼월달 상순으로 접어들어 / 是時三月屬上旬
백화가 춘당지를 곱게곱게 물들였고 / 百花照耀龍池春
성모의 나이가 회갑을 맞았기에 / 聖母年周花甲子
문신들과 금원에서 함께 놀며 즐겼는데 / 禁林游賞同詞臣
내구에 있는 말들 총마며 유마 낙마 / 內廏物馬驄駵駱
가슴걸이 뱃대끈이 번쩍번쩍 빛이 났지 / 繁纓七就光灼爍
님 타신 말 앞에 서고 신의 말은 뒤 따를 제 / 御乘在前臣馬後
말들끼리 주고받아 깜짝깜짝 놀랐다네 / 馬鳴相答中心戄
궁중 길 구불구불 내원을 감아돌 때 / 輦路逶迤繞內苑
온갖 나무 꿰뚫고서 봄바람 불어 오고 / 雜樹穿出春風遠
꽃 속에서 노는 벌들 앵앵소리 요란했으며 / 花底游蜂聲正沸
새끼사슴은 풀밭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네 / 草間穉鹿眠方穩
석거문 아래서 일제히 안장 푸니
석거각(石渠閣)이 영화당(映花堂) 동편에 있음. / 石渠門下齊卸鞍
모직물 비단자리에 술자리 차려 놓고 / 氎裀綉席陳杯盤
계주에다 자면에다 옥액이 흘렀으며 / 桂酒茈麪流玉液
조고에 귤병에 금환까지 쌓여 있었네 / 棗糕橘餠疊金丸
못 마신다 사양해도 억지로 다 마시라며 / 臣辭不飮强之釂
예의도 상관없이 술잔 건네고 안주 권해 / 折俎媵爵刪禮貌
석 잔 마시고 취하여 토하고 쓰러지니 / 三杯酪酊吐且顚
동료들은 빈정대고 님께서는 웃으셨네 / 同列嘲訕至尊笑
바람 쏘이며 자리 옮겨 옥류각으로 들어가서
석거문 북쪽에 옥류천(玉流泉)이 있고 각(閣)은 그 못 속에 있음. / 迎風轉入玉流閣
붉은 난간 기대앉아 춤추는 학 보노라니 / 醉倚朱欄看舞鶴
비단바위에 해가 비쳐 쉬던 놀이 움직이고 / 錦石日射棲霞動
맑은 물에 개지 떨어져 잔물결 일고 있는데 / 鏡水漪生飛絮落
자의가 쫓아와서 술 깼느냐 묻고서는 / 紫衣催召問酒醒
날 데리고 농산정을 함께 가서 구경했지 / 提携往觀籠山亭
다래덩굴 울밀하여 흡사 절과 같았으며 / 藤蘿蒙密似僧院
도서 속에 고요하기 선경인가 싶데그려
농산정이 옥류천 동편에 있는데 깊숙하고 고요하여
마치 산인(山人) 은자(隱者)가 살고 있는 곳 같았으며
반궁(泮宮)과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 / 圖書靜嘉疑仙扃
갑자기 숲 속에서 홍색 일산 나타나더니 / 忽見林中紅繖起
어라 쉬 님 행차가 화원 속에 멎으셨네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둘레를 담으로 치고
속에는 많은 꽃과 나무들을 기르고 있었음. / 警䟆移駐花園裏
높다란 누각 위에 님의 자리 마련되고 / 草閣岧嶢御座淸
새물로 끓인 차를 어명으로 내리셨다 / 勅賜龍茶試新水
총대 앞으로 님의 수레 돌아오고
바로 춘당대(春塘臺)임. / 瑞葱臺前鳳輦廻
장원봉 곁에다는 곰 과녁을 쳐뒀는데
작은 과녁에는 다섯마리 새를 그리고
그 가운데다 곰을 그렸음. / 壯元峯側熊帿開
님이 쏘신 열 발 중에 아홉 발이 명중되어
선왕께서는 언제나 한 발은 고의적으로 맞지 않게 하여
겸양의 덕을 보이었음. / 御矢十發奏九中
북 친 사람 홀로 서있고 징 친 사람은 오데그려 / 鼓人獨立鉦人來
석양에는 또다시 천향 따라 들어가니 / 夕陽復隨天香入
태액지의 물빛은 뜨고 싶도록 그윽하고
이 못은 영화당(映花堂) 서편에 있음. / 太液池光幽可挹
황룡 새긴 작은 배는 규모가 북만한데 / 黃龍艓子小如梭
비단돛에 수를 놓아 붉은빛이 선명하다
돛에 수놓인 글자는 “款乃一聲山水綠”이란 일곱 글자였음. / 錦帆繡字紅慴慴
배 젓고 노닐면서 뱃노래도 구성지고 / 刺般容與櫂歌歡
부용정 올려보면 그렇게도 좋을 수가
부용정은 못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정자 한 쪽 머리가 못 속으로 들어와 있었으며,
상께서는 부용정으로 납시어 배 타고 노는
제신(諸臣)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음.
/ 正好芙蓉亭上看
난간머리서 운을 부르면 배 안에선 시를 짓는데 / 欄頭命韻舟中作
좋은 시를 올려바친 선관들이 많았었네 / 淸詞捧獻多仙官
낚싯대를 받아들고는 못 굽이에 늘어서서 / 却授漁竿列池曲
님이 낚은 건 수십 마린데 신은 겨우 대여섯 마리였네 / 御釣數十臣五六
고기를 낚지 못한 자는 술 마시는 것으로 벌을 삼았음.
낚은 고기 도로 놔주고 저녁밥을 먹었는데 / 放生洋洋晩飯宣
회에 국에 생선에다 육까지 곁들였지 / 細膾糝羹雜鮮肉
잠시 후에 둥근 달이 동상 머리에 떠오르니 / 須臾月上東廂頂
금물결이 일렁이고 하늘은 거꾸로네 / 金波瀲灩天倒影
바람 맑고 이슬 내리고 취하여 잠이 올 때 / 風淸露下醉欲眠
은촉이 앞을 서서 화성으로 돌아갔었지 / 銀燭導前歸華省
아 아 그게 모두 어제 일만 같은데 / 嗚呼此事如昨日
바람 앞에 촛불처럼 갑작새 빛을 잃고 / 欻忽收光風燭疾
구름 속으로 가버린 용 붙들려도 길이 없이 / 龍髥入雲杳莫攀
유대와 석수만이 쓸쓸하게 서 있구나 / 乳臺石獸寒蕭瑟
그 당시 있던 사람도 영남으로 밀려나가 / 舊人流落在嶺南
소나무 풀독 속에서 술에 늘 빠져있다네 / 松嵐草瘴常沈酣
천보 시절 영관을 그 뉘라서 돌봐주리 / 天寶伶官誰見恤
원우의 간비가 이미 다 새겨졌는데 / 元祐姦碑知已劖
흙자리 대창문에 처량하게 누웠으니 / 土牀竹牖悽獨臥
곁에서는 잘못 알고 내 불우함을 걱정한다네 / 傍人錯謂愁轗軻
마음 아파 세상 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 傷心不忍見時物
눈물만 하염없이 옷깃 앞에 떨어진다 / 蔌蔌襟前淸淚墮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1994
芙蓉亭歌
乙卯季春。臣直宿監印所撰書。一日上御春塘臺。設賞花釣魚宴。臣叨承異渥。獲與盛筵。今眞游已遠。臣又流落窮荒。適當莫春。時物感愴。恭述此篇。以瀉於戲不忘之思。
長鬐城東藥泉北。藥泉在楡林之南。
芳草如煙花似織。
主人憐我長閉戶。
勸我一出看春色。
爲摘野蔬烹海鮮。
帶酒一瓶貌欣然。
試穿菅屨扶竹杖。國恤未小祥。
黽勉隨至柴門前。
躕躇欲行忽反顧。
泫然淚落如秋雨。
入門無語慘顏色。
漠漠視天天地暮。
憶昔單閼歲在乙。
承恩入處奎瀛室。監印所扁曰奎瀛府。有東室西室。
法駕新自華城回。二月陪慈宮幸華城。
令記鹵簿進縹帙。命臣撰整理通考。
是時三月屬上旬。
百花照耀龍池春。
聖母年周花甲子。
禁林游賞同詞臣。
內廏物馬驄駵駱。
繁纓七就光灼爍。
御乘在前臣馬後。
馬鳴相答中心戄。
輦路逶迤繞內苑。
雜樹穿出春風遠。
花底游蜂聲正沸。
草間穉鹿眠方穩。
石渠門下齊卸鞍。石渠閣在映花堂之東。
㲲裀綉席陳杯盤。
桂酒茈麪流玉液。
棗糕橘餅疊金丸。
臣辭不飮強之釂。
折俎媵爵刪禮貌。
三杯酩酊吐且顚。
同列嘲訕至尊笑。
迎風轉入玉流閣。玉流泉在石渠之北。有閣在池中。
醉倚朱欄看舞鶴。
錦石日射棲霞動。
鏡水漪生飛絮落。
紫衣催召問酒醒。
提携往觀籠山亭。
藤蘿蒙密似僧院。
圖書靜嘉疑仙扃 濃山亭在玉流泉之東。深邃若山人隱者之居。與泮宮相近。
忽見林中紅繖起。
警䟆移駐花園裏。有小亭周以響墻。多養花木。
草閣岧嶢御座淸。
勅賜龍茶試新水。
瑞蔥臺前鳳輦廻。卽春塘
壯元峯側熊帿開。小帿畫五禽。熊居其中。
御矢十發奏九中。先朝每故遺一矢。以寓謙挹。
鼓人獨立鉦人來。
夕陽復隨天香入。
太液池光幽可挹。池在映花堂之西。
黃龍艓子小如梭。
錦帆繡字紅熠熠。帆繡款乃一聲山水綠七字。
刺船容與櫂歌歡。
正好芙蓉亭上看。芙蓉亭在池南。一頭入池中。上御芙蓉亭。俯觀諸臣乘舟。
欄頭命韻舟中作。
淸詞捧獻多仙官。
却授漁竿列池曲。
御釣數十臣五六。釣不得魚者。飮酒爲罰。
放生洋洋晚飯宣。
細膾糝羹雜鮮肉。
須臾月上東廂頂。
金波瀲灩天倒影。
風淸露下醉欲眠。
銀燭導前歸華省。
嗚呼此事如昨日。
欻忽收光風燭疾。
龍髥入雲杳莫攀。
乳臺石獸寒蕭瑟。
舊人流落在嶺南。
松嵐草瘴常沈酣。
天寶伶官誰見恤。
元祐姦碑知已劖。
土牀竹牖悽獨臥。
傍人錯謂愁轗軻。
傷心不忍見時物。
蔌蔌襟前淸淚墮。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