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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49호](인터뷰)조이킥 스포츠 이광재 대표와 일문일답.
송한용 추천 0 조회 2,773 15.05.15 13:43 댓글 71
게시글 본문내용

전국의 족구동호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끔씩 족구칼럼 끄적이고 있는 송한용입니다.

 

예전에 한세대학교에 방문했을때 개인적으로 조이킥 스포츠의 이광재 대표를 알게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인터뷰를 요청했고, 이광재 대표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만남은 참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늦은 밤, 이광재 대표와 전화통화를 하며 극적으로(?) 이 인터뷰가 이루어 졌습니다. 제가 동경했던 선수와 직접 전화로 인터뷰를 하는 아주 꿈 속에서나 이루어 질 법한 마법같은 일이 이루어 진 시간이었습니다. 

 

이광재 대표가 족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의 일들에 대해 물었는데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성심성의껏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오늘 그 인터뷰 내용을 이렇게 공개합니다.

 

송한용(이하 송):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광재(이하 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더 영광입니다.

 

송: 먼저 지난 주 벌어진 비슬산대회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구성원들이 (우승을 해야 한다는)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아 앞으로 더 좋은 경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 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대표님과 '1문 1답'을 해볼텐데요. 그냥 편안히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네! 알겠습니다.

 

송: 첫번째 질문입니다. 대표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이름은 이광재입니다. 85년생, 소띠, 올해 31세이고요, 고향은 강원동 평창군 진부면 거문리라고 하는 시골입니다. 부모님 그리고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송: 대표님의 현재근황은?

 

이: 평일 오전 9시 부터 오후6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주문 및 홈페이지관리, 그리고 신제품의 원활한 공급 및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또한 타격기는 앞으로 출시할 예정이고요. 이미 출시된 가방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세대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수,목요일에 수업이 있죠. 화요일, 목요일은 학교에서 '팀훈련'을 하고 있고요.

 

가끔 제 스케쥴과 동호인 분들의 시간이 맞으면 동호회에 직접 방문해 무료로 '팀레슨'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는 지금 개발하고 있는 타격기를 시험해 볼 겸 해서 사무실 앞 공터에서 '개인레슨'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회가 있는 주, 주말에는 대회에 참가하고 있죠.

 

 

송: 하루하루가 정말 바쁘시네요. 그런 대표님께서 족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어렸을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축구, 농구, 배구 등등. 중학교 3학년 때, 운동장에서 강원도 족구대회를 개최해서 족구도 대회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다닐때 저희 동네 태권도 사범님이셨고, 지금은 강원도연합회 사무장님으로 계시는 지용원 사부님(개인적으로 사부님이란 호칭을 사용한다고 함.)께서 넘어차기를 하시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우리 학교에서 면민체육대회를 하고 운동장 구석에 코트를 설치하고 그냥 놔두고 가셔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창군 족구연합회장기대회 때 '매니푸니팀'(강승호, 조용수, 김기훈 등등)과 '평창군팀'이 시범경기를 하였는데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그 때 차고 받고 하는 모습들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이후로 '성공하려면 무언가에 미쳐야 한다'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 미쳤었다고 생각합니다.

 

송: 그럼 혼자하지는 않으셨을텐데 누구랑 운동을 시작하신건가요?

 

이: 제 고향 진부면은 작은 시골이지만 족구장이 6군데가 있었고, 클럽이 7개가 있을 정도로 규모에 비해 족구가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길 가다 보면 족구장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매일 야족을 하셨는데, 찐빵내기, 커피내기등등을 하셔서 거기에 껴서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 역시 구멍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가니까 공격수는 안 시켜주시더라고요. 수비를 하다가 일찍 가시는 분들이 계셔서 가끔 그자리에서 공격을 하고는 했습니다. 우리 지역연합회에서 후배 육성차원으로 용품이나 대회참가 경비등을 지원해 주셔서 대회 참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송: 그럼 족구를 시작한다고 하셨을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이: 심하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께서 엄하셨습니다. '남들 공부할때 넌 뭐하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까 말씀드린 분들과 함께 야족을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인문계였는데 아마 전교생 중 야간자율학습을 안 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을겁니다.(웃음)

 

송: 그리고는 한세대학교에 입학을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입학을 하셨나요?

 

이: 2003년에 제8회 전국연합회장기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전국족구연합회 공지에 청소년부 우승,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은 한세대학교에 '족구 특기생'으로 입학시켜준다는 공문이 떴습니다. 문제는 대회 날이 수능 3일전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에 대해 이해하시기 힘드셨지만 어차피 저는 수능을 포기하고 체대를 준비한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함께 운동했던 후배들과 참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마 한 달 전부터 그 대회를 위해 '올인'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당시 같은 학교에 다녔던 (권)혁진이랑 (이)승호가 수시에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걔들한테 '한세대에 이런 전형이 있는데 너네도 같이 해볼래?'라고 제안을 했고 결국 함께 출전했습니다. 결승에서 맞붙은 팀이 평창고등학교였습니다. 거기에는 (강)성준이와 (강)구민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평택태양스포츠단'의 신경우 단장님께서 고향이 평창이셨습니다. 그래서 걔들을 가르치셔서 대회에 참가시키신 것 같습니다. 경기에선 저희가 우승, 평창고등학교가 준우승을 차지했고, 저랑 혁진이, 승호, 성준이, 구민이 이렇게 5명이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송: 그럼 처음 입학하셨을때는 대회에 참가하시기가 쉽지 않으셨겠습니다.

 

이: 저희 팀의 포지션을 보시면 공격수 둘, 세터 둘, 수비수 한 명 이었습니다. 성준이는 구민이의 토스를 했었고, 승호가 제 토스를 해주었죠. 당시에 저보다 구민이의 공격력이 더 좋아서 구민이가 공격을 하고 제가 좌수비를 자주 봤었습니다. 물론 바꿔가면서 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구민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담세터였던 성준이가 조금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던건지 1학기 마치자마자 군대를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정말 선수구성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당시 강원도연합회 사무장님으로 계셨던 강승호 감독님께서 저희 팀에 선수 겸 감독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감독님이 공격, 제가 좌수비를 보며 대회에 참가를 했습니다. 그 이듬해, (김)동휘, (박)수훈이가 들어오면서 학생 선수들로 구성이 가능해졌습니다.

 

송: 그럼 강승호 감독님이 처음부터 계신 상태에서 선수들이 입학한게 아니고, 선수들의 입학 이후에 감독님이 나중에 취임하신 건가요?

 

이: 예 그렇습니다.

 

송: 그럼 그 동안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저는 강승호 감독님께서 원래 한세대학교에 계셨던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그럼 한세대학교에서 운동환경은 어땠습니까?

 

이: 저는 스포츠선교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때까지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오후 6시 부터 10시까지 훈련을 했습니다. 그런데 족구특기생, 최초의 대학족구팀이라는 특이한 타이틀(?) 덕분에 공중파 및 여러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그래서 족구는 물론이고, 학교까지 자연스럽게 홍보가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희를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수님들께 시간 할애를 받는 것도 더 쉬워졌고, 2학년때부터는 오전 수업만 받고 오후에는 마음껏 운동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2시 부터 6시까지는 팀훈련, 6시 부터는 개인훈련을 했었죠. 물론 학교측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대회참가비는 물론, 훈련 끝나고 먹는 간식, 마사지까지 그야말로 다른 종목의 프로선수들 못지 않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송: 정말 환경이 최고였네요.

 

이: 네! 아마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한세대학교만큼 좋은 환경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밥 먹고 운동만 했으니까요. 여담으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학교 근처 33평 아파트 하나를 통째로 받아 선수들끼리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쉬운 것도 많이 있고요. 

 

송: 혹시 그럼 한세대학교의 첫 우승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십니까?

 

이: 음...2006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1회 영월동강배 우승이 첫 공식 우승이었습니다.

 

송: 그때부터 한세대학교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군요. 전족연 랭킹 1위까지 올라가셨죠? 그럼 수많은 경기를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이: 뭐 기억에 남는 경기는 정말 많습니다. sbs대회도 기억에 많이 남고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경기도 연합회장기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결승전, 성남한성과의 경기였습니다. 3세트 13:13으로 맞선 상황이었는데 심판이 오심이 있어서 13:14가 되었죠. 그런데 그 오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국 역전해서 우승을 했었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하신 말씀이 '매너도 이기고, 경기도 이겼다'고 말씀하셨어요. 우승을 한 것 보다도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 정말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송: 그럼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셨는데, 군 생활 중 족구에 관련한 에피소드가 꽤나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정확히는 3학년 마치고 갔습니다. 운전병으로 지원해 신교대 6주 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서 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았습니다. 교육 받으러 간 곳이 '제3야전수송교육단'이었는데 교육생 중에 족구선수가 들어왔다고하니 부대 전체가 난리가 났었죠. 가는 곳마다 '네가 족구선수냐?', '넌 좋겠다', '넌 군 생활 끝났다.'등등. 당시 교육생인 제게 기간병, 간부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교육대 단장님(대령)이 수송병은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며 족구를 권장운동으로 정하시고 매달 족구왕 선발대회를 하여 우승한 분대에게 포상휴가를 지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대의 족구장은 화강암으로 관중석이 층층이 쌓여 가운데 있는 코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관중석은 약 500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지붕만 없었을 뿐이고, 완전히 돔구장과 같은 형태였습니다. 코트의 좌우폭이 조금 좁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족구장을 다녀보았어도 그 족구장만큼 운치있고 웅장한 구장은 본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세계최초의 족구전용구장이었을 겁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족구장은 1개 중대가 전담하여 6개월에 걸쳐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단장님이 수차례 바뀌어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네요.

 

어쨌든 이런 부대에 조교자원으로 착출되어 오전에는 일과, 오후에는 족구장 관리병으로 군 생활을 하였는데 일과 끝나고 타중대 족구선수들에게 운동도 시켜주고, 간부식장, 간부목욕탕 출입에 주말에는 외출, 외박, 시합 출전, 부대에 손님들이 오시면 시범경기 준비. 군대에서 이래도되나 할 정도의 출타와 혜택을 누렸습니다. 나중에 위병소에서 출타일을 계산해 봤는데 공식적으로 140일정도 나가 있었습니다.(웃음)

 

이후 단장님이 이임하시고 정상적인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부대 자체가 교육부대라 훈련자체가 없어 체육대회가 가장 큰 훈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편안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이외에 더 많지만 군기강 확립을 위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송: 이른바 천국에 계셨군요. 그럼 당시에 국방부 족구단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그때는 어떠셨나요?

 

이: 당시 대회가 있으면 하루이틀정도 전에 착출되어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용산에 있는 '수방사'였던 것 같아요. 그 곳에서 연습하고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연습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부대내에서 운동을 더 많이 했으면 했지, 국방부 족구단에서 운동한 기억은 별로 안납니다.

 

송: 그런데도 2008년 sbs족구최강전에서 우승을 하셨죠?

 

이: 사실 우승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송: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한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삼성전자 족구단에 입단하셨습니다. 일과 운동을 병행하셨을텐데 족구선수들은 무슨일을 하나요?

 

이: 광주삼성전자 가전사업부 에어컨그룹 제조사원으로 에어컨 제조업을 했습니다. 뭐 단순히 에어컨을 만드는 일인데 저는 출하담당으로 제품포장 및 출하를 맡아서 2년 6개월정도 일했습니다. 족구 선수들 역시 각자 맡은 파트에서 일을 합니다. 운동은 생산이 끝나고 하는 편이고, 시합이 있으면 약간의 시간 할애를 받습니다.

 

송: 그 시간할애라는 것이 연습시간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 음...결국은 그게 맞는데, 생각하는 개념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삼성전자 족구단 역시 결국은 홍보 목적의 팀입니다. 사실 우리 선수들이 일을 하면 잔업을 해야지 수당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시 전 어려서 돈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선수 개개인이 그 부분에서 생각의 차이가 있어 잔업을 더 하려는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습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소양강배와 같은 방송대회가 있을때는 잔업을 하지 않고 연습을 해도 그 시간을 특근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넉넉하게 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시간을 딱히 표현할 말이 없어 시간 할애라고 했던겁니다.

 

여담인데 예전에 삼성전자 인사과에 우리 족구 선수들에게 지원금과 함께 연습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인사과 담당자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우리 삼성전자의 광고 모델은 김연아 선수이니 족구 선수들은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송: 저도 족구선수들이 정말 힘들게 운동하고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듣고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족구만해도 생업을 해결할 수 있는 날이 빨리와야 할텐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 이후 돌연 식당을 오픈하셨는데요. 갑자기 왜 그러신건가요?

 

이: 결국은 조이킥스포츠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요식업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였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오게되었는데 아무래도 저도 벌이가 있어야 하다보니 시작하였습니다. 포인트푸드 사장님께서 족구를 너무 좋아하셔서 족구단을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계셨는데 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요, 음식점을 오픈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송: 그러다가 족구화를 만드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정말 깜짝 놀란 일이었는데요. 족구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 단순합니다. 돈 많이 벌어서 족구로 번 돈 족구에 투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지막 목표가 후배 선수들이 맘 놓고 운동할 수 있는 실업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송: 그럼 혹시 애초에 신발에 대한 지식들이 있으셨나요?

 

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고요. 처음 생산해서 샘플을 보았을때, '이건 출시했다가 욕만 먹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사치라는 말을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힘든일도 많았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 고생도 이제는 추억이네요. 긴 얘기는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송: 알겠습니다. 그럼 조이킥스포츠 족구화, 자랑 한 번 해주시죠?

 

이: 기존의 족구화에 비해 내구성에 상당히 신경썼습니다. 바닥이 빨리 닳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이고요, 기존의 족구화들은 신다보면 갑피가 늘어납니다. 그래서 그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고요. 또한 디자인도 지금까지의 디자인들에 비해 차별화를 주기위해 애를 썼습니다. 

 

송: 그럼 현재 출시되고 있는 상품 중 최신품이 '백두산'인데, 상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기존의 독도, 이어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용하시는 동호인들 입장에서는 겉에 보이는 외피만 보시는데요. 내부에 들어가는 자재가 상당히 많습니다. 신발 용어라 설명드려도 잘 모르실 것 같아 생략하겠지만 그 자재들을 더 좋은 제품들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저희 조이킥 스포츠의 장점이 작은 회사다보니 컴플레인(Complain)이 들어오는 제품에 대해 재빨리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많은 수량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그 제품 출시를 중단하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용이하죠. 기존의 제품들이 뒷꿈치가 까진다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백두산'은 개발 실장님과 함께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했습니다. 아마 그런 얘기는 이제 없을 겁니다.

 

송: 예! 저도 현재 신고 있는 제품이 '백두산'입니다. 아주 잘 신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백두산'의 후속작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대표님의 사업인 만큼 정확한 제품의 설명을 부탁드리는 것은 실례이지만 그 제품에 대해 살짝 힌트정도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지금까지의 제품들이 족구화라고 했지만 그래도 다른 운동화와 큰 차이점이 없었습니다. 안축부분에 타격돌기가 있었다는 것 이외에는요. 하지만 새롭게 출시될 제품들은 외형부터 내부까지 족구를 하는데 가장 적합하게 만들도록 신경쓸 것입니다. 누구든지 눈으로만 봐도 '이건 족구화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이런 부분을 강조시킬 것입니다.

 

송: 정말 기대됩니다. 그럼 그 제품의 이름 정도만이라도 공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 제품의 이름은 '무궁화'입니다. 출시 시기나 다른 부분은 비밀입니다.

 

송: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족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지난 해까지 일반부를 경험하셨는데 일반부와 최강부의 수준은 어떤가요?

 

이: 개개인의 수준차이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력입니다. 일반부같은 경우에는 공격수의 비중이 약 60%라고 보시면 최강부에서는 30%이하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일반부에서는 기라성 같은 공격수만 있으면 4강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강력한 서브만 제대로 넣어도 가능하죠. 4강 이후에는 결국 그 날의 컨디션이 성적을 좌우합니다. 하지만 최강부에서는 아닙니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단 한 경기도, 한 포인트도 쉽게 따낼 수 없습니다. 수비수부터 세터, 공격수까지 모두 득점을 하는데 25%의 비중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리시브 토스 공격 그 어느것 하나도 허투로해서는 안됩니다.  

 

송: 그럼 과거 대표님께서 최강부로 뛰셨을때보다 지금 선수들의 기량이 더욱 향상된 건가요?

 

이: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의 기량은 상향평준화되었는데 공격수들의 개성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오병관 선배님같은 경우 안축밀어차기, 이찬호 선배님은 안축감아차기, 우덕식 선배님의 발코, 김종일 선배님의 왼발 넘어차기. 이런식으로 공격수만의 각각의 특색이 있었는데 요즘엔 저도 안축, 넘어차기를 하고 있고 태호도 똑같은 공격 옵션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공격이 다 거기서 거기인것 같습니다.

 

송: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들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올 시즌 초 저와 카톡으로 주고 받기를 올 시즌 목표가 우승 5회라고 하셨는데...

 

이: (말을 끊으며)아! 그거 정정하겠습니다. 5회는 힘들 것 같고, 3회로 하겠습니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은 목표일겁니다.

 

송: 네 알겠습니다. 올 시즌 최강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이 참가팀 수가 부족하다는 것인데요. 최강부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정말 아쉽습니다. 족구를 대표하는 팀들의 무대인데 초라한 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최강부가 동경의 대상이고 동호인들의 꿈의 무대였는데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아직은 비현실적이지만 최강부 경기관람을 유료화 시켰으면 합니다. 대회의 모든 부서 참가비 중 일부를 최강부팀들의 복리후생비로 모금하거나 관람의 수익금으로 선수들의 복지(선수카드, 용품, 참가비, 대회경비)를 위해 쓰여진다면 일반부팀들도 최강부에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기존 최강부팀들은 잔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송: 저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잘 하는 선수들은 대접을 받아야하는데 오히려 잘 해서 왕따가 되는 그런 비정상적인 구조는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모교인 한세대학교에서 다시는 특기생을 선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 뭐,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특기생을 전혀 뽑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입생 선발 요강에서 없어진 것이죠. 한 마디로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시험쳐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럼 기존의 선수들과 똑같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죠.

 

송: 그러고보니 이태호 선수가 마지막 특기생이었죠?

 

이: 사실 태호는 특기생이라고하기 좀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쳐서 일반학생들과 동일한 전형으로 합격했거든요.

 

송: 아 그랬나요? 그럼 공부도 잘 했었군요.

 

이: 네! 맞습니다.

 

송: 이태호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이제 대표님이 한세대학교에 다시 들어가시게 되었는데, 상황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 아시다시피 태호가 군입대를 했고, (신)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남은 선수는 정철이랑 성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걔들(박정철, 박성호)을 우리 조이킥스포츠에 합류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행정과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학교 고위급에서 족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졌으니, 저 보고 들어와서 관심을 끌어보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빠와 함께 하는 족구교실'이 있는데 저보고 들어와서 이걸 발전시켜 학교 홍보나 수익에 도움이 된다면 학교에서도 족구단을 계속 운영하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임종흔 감독님께서도 '그래도 명문인데, 신입생이 들어오고 안들어오고를 떠나서 쟤들 졸업할때까지는 명맥은 이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더군요. 마침 그 시기에 (지)성민이가 우리 학교 대학원에 입학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게다가 대학원에 처음으로 스포츠 경영학과가 신설되었습니다. 저도 조이킥스포츠를 운영하며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송: 그런데 문제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박정철, 박성호 선수가 졸업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올 11월에 심강국, 김태환 선수가 전역을 한다고해도 세터가 없는 상황인데, 혹시 대비책이 있습니까?

 

이: 네 맞습니다. 그 대비책도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하고는 있는데, 일단 급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있는만큼 그 문제는 잠깐 덮으려고 합니다. 머리 아프네요.

 

송: 예 알겠습니다. 그럼 심강국, 김태환 선수가 제대를 하면 몇 학년인가요?

 

이: 우리 학교는 전통적으로 3학년 마치고 군대를 갑니다. 그러니까 제대하면 4학년입니다. 걔들도 결국 내년까지입니다. 저도 마찬가지 이고요. 그래서 태호 혼자 남습니다. 어쨌든 그 이전까지 과거의 그 특기생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송: 잘 알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한세대의 명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대표님의 대학원 입학은 지난해까지 같이 뛰었던 조이킥 스포츠 선수들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네! 맞습니다. 어떻게 그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결정된 것이 올2월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그 선수들은 올해도 같이 뛸 것으로 생각했었죠. 게다가 작년에 대회도 많이 나갔지만 운동하면서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게다가 세터를 맡았던 (김)은중이 형님은 최강부에서 뛰는 것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 형님들 입장에선 결국 제 개인적인 사정인데 그것 때문에 그 바램이 문턱에서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제게 '어쩔 수 없지. 잘 뛰어라'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돌이켜봐도 그 선수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내년까지 한세대에서 뛰고 그 이후 마음이 맞는다면 다시 합쳐서 팀을 꾸려보고 싶습니다. 

 

송: 꼭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텐데요. 많은 이들이 '족구의 발전'을 이야기 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족구의 발전'은 무엇입니까?

 

이: 상당히 애매한 질문이고 포괄적인 질문이네요. 음...지금 이런게 족구의 발전 아닐까요? 족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영상으로 남기는 것들 말이죠. 족구에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어 실행해나가는 것이 족구의 발전이라 생각됩니다.

 

송: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겠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가벼운 질문하며 인터뷰를 서서히 끝내볼까 합니다. 본인을 제외한 선수 중 최고의 공격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선수를 지목하신 이유는?

 

이: 뭐 다들 좋아하시는 강만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부터인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강부 선수로 활동하며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는 강만규 선수 한 명 뿐입니다. 그만큼 자기 관리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송: 그럼 최고의 라이벌로 생각하는 선수는 누구입니까?

 

이: 올해 지나고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실력이 한참 모자라 지명당하는 분께 죄송합니다.

 

송: 강만규 선수인가 보군요.

 

이: (웃음)사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한적은 없는데 주위에서 하도 라이벌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기량부분에서 한참 떨어져서 라이벌이라고 하기 민망합니다.

 

송: 사석에서는 '만규형'이라고 부르실텐데, 나중에 저도 소개 좀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꼭 인터뷰해보고 싶습니다.

 

이: 네. 알겠습니다. 추진해 보겠습니다.

 

송: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엔 짖꿎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혹시 시합나갈때, '저 선수한테만은 진짜 지기 싫다.'하는 선수가 있습니까?

 

이: 그런 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해 졌던 선수들한테는 한 번 씩 다 이겨보았는데 딱 한 선수, 장한빈 선수한테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족구를 하면서 다섯 번 정도 시합을 했는데 한 번도 못이겨봤습니다. 그 중엔 교류전도 있었는데 그나마도 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슈퍼오닝배에서 또 한빈이네랑 같은 조더라고요. 이번에 준비도 많이 한 만큼 꼭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필자 주. 이 인터뷰는 슈퍼오닝배 이전에 했습니다.)

 

송: 네 알겠습니다. 대회장에 가시면 한세대 동기들 혹은 후배들과 많이 만나실텐데 무슨 대화를 나누나요?

 

이: 주로 안부를 물어봅니다. 일은 힘드냐? 돈은 많이 모았냐? 결혼은? 이런 것들입니다.

 

송: 아니, 운동 이야기가 주(主)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이: 환경들을 서로 뻔히 아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서로 그런 사정을 뻔히 아니까 이제 알아서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얼굴보는게 좋은거죠. 옛날 생각도 나고요.

 

송: 정말 이런 현실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럼 이제 족구선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현실적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축구 선수들에게 '박지성 처럼 잘 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라도 해줄수 있지만 족구선수들은 그럴수가 없으니까요.  

 

 

송: 잘 알겠습니다.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셨는데 소감은?

 

이: 첫 방송을 시청하기까지 꿈인가 생각했습니다. 국민MC 강호동씨와 여러 연예인들과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서 족구를 소개하고 시범을 보이는 동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정말 이제는 뭔가 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송: 이제 족구편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중인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기대가 너무 컸는지 그냥 똑같은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때만 해도 '네가 졸업할때 즈음엔 족구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아마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송: 앞으로 대표님께 족구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이: 첫번째로는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돈 많이 벌어서 실업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선수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는 선수들도 무언가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어야겠죠. 그래서 오전에는 각자의 파트에서 홈페이지 관리나 주문을 받는 등의 일을 하고요, 오후에는 전문적인 교육단이 강습을 해서 강습비로 수익을 얻고 강습 받으신 분들이 자연적으로 홍보도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족구아카데미'를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두번째는 예전에 집에 가는데 '떡볶이 연구소'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신기해서 거기에 가서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떡볶이의 유래', '역사'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족구도 '족구 연구소'를 만들어 '족구의 유래'나 과거의 '스타플레이어'들의 사진등을 전시해 놓아 공개하는 곳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송: 아!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때 저를 꼭 기억해 주셔서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당연하죠. 그땐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송: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가벼운 질문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결혼 계획은?

 

이: 올해 10월 예정입니다. 뭐 더 빨리 할 수도 있고요.

 

송: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럼 예비 신부 자랑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이: 자랑은 아니고요. 만난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운동하는거, 대회나가는거 모두 이해해 주고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그 부분이 너무 고맙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갚아야죠.

 

송: 네 정말 고마워하셔야 합니다. 제 아내는 족구하러 가면 나가는 순간까지 째려봅니다.

 

이: 오늘 안그래도 45세 되신 분이시라는데 아내분께 무릎 꿇고 나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송: 나이 40이면 그래도 눈치 안보고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닌가보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광재에게 족구란?

 

이: 왜? 무엇이 이렇게 절 즐겁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족구장에 많이 나갔고, 족구대회를 많이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족구장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대회장에 나가면 설레입니다. 축구선수가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축구화를 만들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 이렇게 족구화를 만들고 있네요. 

 

송: 오늘 대표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제가 느낀 건 대표님은 족구를 위해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족구가 활성화되어 있는 진부면에서 85년도에 태어난 것, 그래서 대표님이 대학진학을 해야하는 해에 처음으로 한세대학교에서 족구 특기생을 뽑았던 것, 군대에서 족구를 좋아하시는 단장님을 만나신 것,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하신 것, 그리고 지금 조이킥스포츠가 만들어지게된 것 까지 말이죠. 이 모든것이 마치 대표님을 위해 마련된 것 같습니다.

 

이: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족구를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너에게 그런 자리들이 마련된 것이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가 받은 것을 보답하려고 합니다. 조이킥 스포츠를 만들었지만 저는 저 혼자 잘 살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이곳에서 얻은 수익은 반드시 우리 족구가 발전하는데 보탤 것입니다.

 

송: 시간이 지나도 그 마음 변치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오랜 시간 이렇게 소중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획하시는 일들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열심히 응원하고 있겠고, 저 또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실망시키지 않는 글들로 보답하겠습니다.

 

이: 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자주 뵙길 바라겠습니다. 

 

Epilogue...

 

이것으로 이광재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힘든 시간 내어 인터뷰를 해주신 이광재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인터뷰를 하다가 느낀 것은 저의 부족한 인터뷰 실력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싶었던 것들을 제대로 물어보았는지, 대답을 잘 이끌어내었는지, 정리는 잘 한 것인지...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정식 기자도 전문가도 아닌 저의 한계라고 생각해 주시고 앞으로 하다보면 늘지 않겠습니까?^^;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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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5.16 08:01

    나름대로 한세대와 이광재 선수팬이라 거의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네요.^^ 이광재선수로써 또 대표로써 건승하길 바라고 족구발전에 큰 교두보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인터뷰 그리고 긴글쓰신다고 고생많으셨습니다

  • 작성자 15.05.16 13:11

    저도 거의 알고있다고 생각해 아는척 많이했는데 아니네요ㅋ

  • 15.05.16 09:08

    좋은 글 그리고 훌륭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5.16 13:11

    감사합니다^^

  • 15.05.16 09:11

    송한용님의 노력에 존경을 표합니다.
    가슴짠한 무언가들이 솟구치는 글입니다. 더불어 광재형의 생각에 진심이 느껴지네요.
    대한민국 족구 화이팅입니다 ^^

  • 작성자 15.05.16 13:12

    대한민국 족구! 화이팅!

  • 15.05.16 11:43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5.16 13:1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5.05.16 14:41

    강만규 인터뷰도 추천드립니다. ㅎ

  • 작성자 15.05.16 15:03

    이대표님이 추진해 주시겠죠?ㅋㅋ

  • 15.05.17 04:37

    이야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강만규선수, 천유빈선수, 신진이선수등등 다음편들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 작성자 15.05.18 09:05

    이대표님이 다리 놓아 주실것이라 믿습니다~ㅋㅋㅋ

  • 15.05.17 11:49

    두분의 족구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져 마음이 짠하네요~사업번창과 더불어 꿈의 실업팀,족구아카데미,족구연구소..꼭 이루시길~항상 응원합니다^^

  • 작성자 15.05.18 09:05

    저두 소망해 봅니다요~^^

  • 15.05.19 17:12

    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5.20 08:55

    저두 감사합니당~^^

  • 15.05.29 13:54

    잘보고 갑니다~ ㅎㅎ

  • 작성자 15.05.29 13:55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당~^^

  • 15.06.16 00:08

    너무나 잘 봤습니다 텍스트의 힘을,느꼇습니다 ㅎㅎ

  • 15.06.22 12:58

    장문의 인터뷰 글이지만 마치 인터뷰 현장 옆자리에서 보고있는것처럼, 눈으로 읽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광재 선수... 85년생 소띠...저랑 동갑이었단 말이지요?!ㅋㅋㅋ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원도 평창군 진부 사람들은, 전국에서 소단위로(동 이하)쪼개어 족구대회를 한다고하면 단연 전국 최강팀일겁니다.^-^

    족구하면 진부사람들이지요~ ㅎㅎㅎ

  • 15.11.06 12:02

    이걸이제서야봣다니... 이광재선수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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