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2509A4A50436B1428)
[대사동모전석탑]
안동대박물관 주변에도 이런저런 문화재들이 많이 있지만, 도저히 찾아볼만한 시간이 되지 못하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편도 1차선인 다리(뒤에 찾아보니 포진교인 것 같다)를 건너는데 난간 공사를 하고 있어 차량을 통제하고 교차진행 하도록 하고 있었다. 곧 35번 국도에 올라 건동대 입구를 지나 임하면 금소리에 닿는다. 이곳 금소 3길 8-9호 집 앞에 있다는 석탑과 불상을 보기 위해 마을로 들어섰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741D4C50436B4B09)
하지만 찾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우고 아이폰을 켜 포털지도를 열고 다니면서 겨우 집 앞에 도착했으나 탑과 불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여름철인지라 나무의 잎이 무성한데다 텃밭에 비닐하우스까지 있어서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담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탑과 불상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촬영허락을 구하니 ‘기단석도 없는데…’ 하신다.
석탑과 불상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탑은 본래 이중기단을 갖춘 3층 이상의 석탑이었을 것으로 본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42354A50436B2B3F)
석불은 팔각대좌를 갖추고 있는데 하대석에는 복련, 중대석에는 안상, 상대석에는 앙련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얼굴과 무릎이 크게 손상되어 있다. 이 불상과 석탑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고, 위치한 곳은 당연히 사유지이겠지만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산이 없으시겠지만…
![](https://t1.daumcdn.net/cfile/cafe/1363F74A50436B2C08)
마을에서 돌아 나오는데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2002년 홍익대 미대생들이 그린 것이었다. 저 벽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1748334A50436B2E37)
당초 이번 안동 나들이를 계획할 때 임하-임동-길안-예안-도산면 등 동부지역은 남, 북 무관하게 모두 제외시켜 두었었다. 그런데 다시 동선을 세우다 보니 금소리사지가 욕심났고, 대사동 모전석탑 역시 빼놓기가 아쉬워서 결국 서후와 북후면은 가지 못하고 엉뚱하게 이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임하면의 네 탑은 이미 다녀온 바 있지만 꼭 다시 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추수 후에 가야만 탑의 아래쪽 부분을 제대로 볼 수 있을 터인데 대계 계절까지 맞춰가며 다니지 못하는 편이니 그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길안면에서는 대사리모전석탑과 함께 현하리사지에 가기로 했다. 내가 참고한 [한국사지총람]에 길안면 현하리 잉골과 현골 사이 도로변 오른쪽에 사지가 위치하고, 이 사지에 있던 석탑과 석불이 의곡마을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아무런 검색결과를 얻을 수 없어 현존 여부가 미심쩍긴 했다. 하지만 자료에는 ‘삼층석탑-기단부 없이 초층 탑신과 2, 3층 옥개석, 4단 층급, 높이 1m/ 석조여래좌상 -높이 40cm 작은 굴에 안치, 석탑과 3m 거리/ 석등 하대석’ 등의 내용이 있었기에 존재 여부의 확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53284A50436B2F26)
결과적으로 고생만 했다. 의곡마을은 잉골의 다른 이름인데 이 동네가 어딘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어 윗동네, 아랫동네를 들락날락, 탐문에 탐문 시도… 결과는 이미 오래 전에 도난당했다는 주민의 말만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대략 30~4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게 나의 방식이므로…
사실 길안면은 안동이라고는 해도 거의 청송에 가깝고, 청송과 엮어 답사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답사는 대개 기초지자체를 넘나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자료조사부터 동선 수립이 이뤄지기 때문에 오늘 다시 길안면에 가게 된 것이다. 2009년 당일치기 안동답사 때도 길안면 용담사와 묵계서원을 포함시키는 바람에 동선이 무척이나 길어졌는데 오늘도 같은 愚를 범하고 만다. 길안면 중에서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0호 안동대사동모전석탑(安東大寺洞模塼石塔)이 있는 대사리는 동남쪽 끝자락에 해당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7DC04950436B313A)
문화재청을 비롯한 각종 공식 사이트에 나오는 대사동모전석탑의 주소지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 145’번지다. 이 주소에 함정이 있었다. 나의 두 내비는 명칭검색이 지원되었고, 그 명칭검색 끝에 나를 데려다 준 곳은 모전석탑 입구인(물론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토일마을을 지나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너고 청송 경계를 넘나들더니 4km 남짓 떨어져 있는 상사마을이었다. 실제 이 마을 입구 직전 왼쪽의 지번이 대사리 145번지가 맞다. 문제는 모전석탑이 있는 곳의 실제 주소는 ‘山’ 145번지라는 점이었다.-제천소악사지석탑과 마찬가지의 경우다. 문화재청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다녀온 뒤 정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고, 대부분의 자료와는 달리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는 정확하게 ‘산145번지’로 나온다. 보다 세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66974A50436B3004)
사실 사전에 조사하면서 명칭보다는 토일마을(대사리 591)을 검색해서 접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이 점을 깜빡하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고, 이후에도 상당한 어려움 끝에 겨우 탑을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논할 탑은 아닌 것 같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모전석탑이고, 반드시 힘들게 발품을 팔아야할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어 비록 2층 이상의 탑신이 허물어져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만나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석탑인 것으로 여겨진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1D574950436B3208)
대사동모전석탑에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봉황사까지는 같은 안동이라 하더라도 거리가 무려 40km에 달한다. 거기다 중간에 늦은 점심까지 해결해야 했으니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점심은 안동대학에서 임하댐 방향으로 가는 국도 오른쪽에 있는 대운칼국수식당에서 해결했는데 그야말로 大運이었다. 칼국수를 시켰는데 밥이 나오기에 깜짝 놀라 칼국수를 시켰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국수만으로는 배가 고프지 않겠냐’고 하면서 이어 칼국수를 내왔다. 반찬도 깔끔했고, 푸근한 인심이 오래 기억될만한 식당이었다.
봉황사(鳳凰寺)는 황산사(黃山寺)로도 불렸는데 원래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4년 봉황사로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24년 중창되면서 황산사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80년 사찰 옆 개울에서 사적비가 발견되어 봉황사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A794950436B380F)
봉황사가 깃들어 있는 산은 아기산인데 그 한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사람의 아이가 생각이 나서 슬몃 미소 짓게 된다. 원래는 산세가 거위 모양을 하고 있어서 거위 鵝에 산 이름 岐를 쓴 것이라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1DBF4950436B3708)
봉황사 대웅전(유형 141호)은 조선중기에 중수한 것이다. 산중에 있는 법당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인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대웅전의 단청은 봉황이 하였다고 하여 일명 봉황사라고도 하는데 단청을 할 때 사람들이 쳐다보아 일을 끝마치지 않고 날아갔다고 전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106A4950436B351F)
봉황사에는 몇몇 석조 유물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갔으나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석등 간주석은 요사(寮舍)채 앞 장독대 안에 남아 있는데 현재 숫돌로 사용되고 있다니 찾아보기가 민망했다. 절집 남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지점 민가 입구의 밭둑에 석탑의 옥개석 한 점이 있다지만 열심히 찾아보지 못했다. 종형부도(鍾形浮屠)는 남서쪽으로 약 80m정도 떨어진 야산 중턱에 3기가 있다지만 나중에 스님께 확인해보니 최소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기에 포기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05564950436B3933)
다만 하나, 황산사 석불좌상(黃山寺石佛坐像)은 포기하기 어려웠다. 자료에는 ‘황산사 대웅전 앞 서편 화단에 유존하고 있다.’고 되어 있으나 보이지 않았다. 스님께 여쭈니 대웅전 왼쪽으로 난 길을 통해 산으로 들어가면 길목에 보이며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신다. 그 말을 믿고 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길은 풀이 웃자라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니 혹시나 뱀이 나올까 조심하며 걸음을 옮긴다. 약 5분 정도 갔을까, 개울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고, 제법 물소리가 커질 만큼 낙차가 있는 지점 개울 건너편에 석불이 이끼를 잔뜩 뒤집어쓴 채 좌정하고 있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F974950436B3A05)
불상의 머리는 떨어져 나갔고 둥근 자연석을 불상의 머리 대신에 올려 시멘트로 접합시켜 두었다. 화강암제인 불신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수인(手印)은 선정인(禪定印)이다. 법의는 통견이고 옷자락의 주름은 얇게 조각되어 있다. 등 뒷면의 법의는 생략되었고 편평하게 처리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석불로 추정된다고 한다. 코리아템플 등의 사진을 보면 대웅전 앞에 있었던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산으로 옮겨 놓았는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B3F4C50436B3D33)
다음은 임동면 대곡리 583번지에 있는 동암사였다. 같은 임동면이라도 18km가 떨어져 있고, 길이 좋지 않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첫날과 달리 내내 맑았던 날씨가 동암사로 향하던 중 갑자기 비를 뿌린다. 그렇다고 하늘이 어두워지지는 않았는데 동암사 근처에 가니 본격적으로 쏟아져 내린다. 당초 위성지도를 통해 볼 때 동암사는 평지에 있는 것으로 짐작했는데 비탈에 일궈놓은 과수원과 고추밭 등을 평지로 착각한 탓이었다. 아무튼 막바지 길은 좁고, 경사도 심하고 마주 오는 차도 겨우 비껴야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69354C50436B3E1D)
동암사 대웅전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다. 높이는 94cm이고, 팔각대좌에는 십이지신상이 양각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좌 부분은 자세히 살피기가 어려웠다. 석불의 대좌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예가 어디에 또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이 대좌는 원래 불상의 대좌가 아닌 다른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1975년 예안 신림에서 이전한 것이라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781B4C50436B4002)
이번에는 와룡면 나소리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나소동삼층석탑(羅所洞三層石塔)을 찾아가는데 역시 무려 20km에 달하고 고개도 두엇 넘어야 하니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전 조사 덕분에 다행히 잘 찾았지만 입구에서 지키고 있는 셰퍼드 때문에 조금 애를 먹었다. 낯선 이에게는 사나운 덩치 큰 견공이지만, 주인에게는 애교덩어리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5AA94B50436D8F22)
석탑은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5년 이건되었는데 주인은 원래 있었던 위치를 손으로 짚어준다. 이 집에서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2층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기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B034C50436B4133)
상당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문화재자료 제71호 남양사지삼층석탑(南陽寺址三層石塔)까지 찾기로 했다. 녹전면 원천리 804번지에 있는데 부실한 사전조사 탓에 이렇게 북쪽 방향으로 25km 씩이나 가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었다. 농산물집하장 앞에 차를 세우고 집하장(야산) 쪽을 바라보면 주변에 우사와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탑이 보인다. 난 왼쪽으로 들어가 맹렬하게 짖어대는 견공들의 합창을 들으며, 악취에 코를 쥐면서 두리번거리다 겨우 발견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739B4C50436B420B)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고,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있고,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조각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고, 탑신 위로 모습을 드러낸 초저녁달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6CC64B50436D9002)
[인용 설명문 출처: 문화재청, 전국문화유적총람, 한국사지총람, 코리아템플]
첫댓글 황산사. 제글을 읽고 가셨으면 좋았을 건데... 안동 답사기 잘 읽었습니다.
평소 꼭 찾아보았었는데 이번에는 왜 그랬는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미리 보고 갔더라면 더 풍성한 답사가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소리 탑....팔부중은 못보셨네요.. 주인께서 자랑이 대단하시던데....^^
탑 기단 면석에 팔부중이 있는데 그 돌을 누가 훔쳐갔었는데.. 수소문 끝에 찾아다 집 마당에 뒀습니다.
저는 주인 어르신 덕분에 보고왔습니다만...^^
사전조사가 워낙 건성건성이어서요^^
누들스님 올리신 사진만 봤더라도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보았을텐데 전에 보았겠지만 막상 기억을 못하니...
@시니브로 지금은 대구 어느 절에 기증했다합니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올때 시니브로님 답사동선을 따라 함 다녀오고 싶어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추수 후 임하동 들판 석탑 4기 포함시켜서 다녀오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잘 보고있습니다...안동의 부처님들은 다른 곳보다 매우 당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저의 속된 안목일까요?
그렇습니까? 저는 돌아댕기기만 하고 안목은 없어서요...
비교해서 보고, 연구하고 하면 좋을텐데 그렇게 안되네요...
덕분에 구경 잘 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태풍에 피해는 없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목포 쪽에 피해가 컸다던데...
대사리모전석탑;길안면 대사리 산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