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농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이동근/문숭리
이야기 앞서 필부에게 사과농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현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000에게 감사의 말씀과 더불어 글을 통해서 늦게나마 이렇게 인연이 되어 명복을 빕니다.
몇 해 전이었던가? 대략 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석명절을 맞아 내 고향 충청도를 다녀가는 길이었다. 산과 사람들 이야기에 나오는 산 아래 필부네 답(畓 논)이 있어 큰 형님 경운기를 타고 오랜 세월 오고가는 길목에 마을 사람의 1000평의 전(田, 밭)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밭을 구입하여 사과나무를 심기시작한 것이었다.
듣자하니 필자나이 전후(필자 나이 당시 48 정도)의 서울 사람이 퇴직후 노후를 대비해서 주말농장으로 사과농장을 조성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5~6년을 그렇게 사과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지난해 부터 사과를 소량이기는 하지만 따기 시작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상품은 아니지만 식용정도로는 다소 땄을 것이 3~4년이면 사과가 한 두개 달리기 시작을 한다니까 말이다.
사과나무를 심은지 5~6년 부터 20년까지는 본격적으로 수확을 한다고 한다. 지난해 부터 처음으로 상품가치가 있는 사과가 달리게 되어있어서 봄에 전지도 하고 퇴비도 주고 이 농장주 남자주인이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3월 중순 가지치기와 퇴비를 주기작업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불러 3월 말경에 사과농장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는 것이다.
인생무상이라!
그 다음날 필부 큰 형님이 논에 일을 하러가는데 길에 승용차가 가로막혀 갈 수가 없어 농장을 살펴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 대답이 없어 119와 경찰이 출동하였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농장과 작별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해는 그 남자 친구가 가을에 처삼촌 벌초하듯 사과를 수확하고 이내 겨울내내 폐허신세를 면치 못하고 사과농장이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상 주말농장 성격으로 행복추구 차원이 아니면 1000여평 300주 사과나무 농사 하나만으로는 이해타산이 맞지않아 선뜩 임대료를 주고 농장을 맡아서 사과농사를 짓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현재 한국 경제나 농촌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필부 현재 나이 54살이다. 이 마을에서 큰 형님의 아들, 농사꾼인듯 하면서도 농사꾼이 아닌 농외꾼인 조카말고는 필부와 초등학교 졸업후 농부로 살아온 동갑내기 한명 말고는 행정마을명이자 필명인 문숭리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다. 다음이 60살 전후이다.
10일간의 전국 일주 기차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우연히 큰 형님이 입에서 그 사과농장 이야기가 나왔고 오고가는 길목이고 하니 큰 형님이 사과농장을 맡아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임대료 없이 가을에 서울에 거주하는 농장주(처 자식)가 식용으로 두 세 박스만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인력[가지치기 작업- 8일, 소독 14일(14회), 수확 20여일, 기타 제초작업 3~4일, 총 50여일 예상]이나 농자재(퇴비 구입비 70만원 예상 , 소독비용-1회당 13만원~15만원) 구입비용을 제외하면 거의 유가무가될 것이기에 선뜩 이미 다른 농사일도 다 못하는 판에 일을 더 맡아 사서 고생할 일이없다 싶어 거절했다며 다른 사람에게 말을 꺼내 본다는 식이었다.
다음날 아침 필부는 위탁을 소개받은 사람을 찾아가서 이유없이 농장을 필부가 해 보겠다고 농장 숙소 열쇠를 인계받았다.
(컨터이너가 사과농장 휴식처 내지 임시 숙소이고.. 건너편 산아래 별채 파란지붕 한옥이 장차 필부가 여생 마지막 단 한편 농민소설-대통령 아들- 집필실로 쓰일 한옥 펜션? 황토찜질방에 벽난로 거실에, 다도 체험실, 텃밭, 뒷편 30분 소요 울창한 숲속의 산책로, 한옥 주변에 각종 나무와 과실수, 산짐승들과 밤마다 별들이 내려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참 목련나무도 한 그루가 있는데 막 꽃눈을 티우고 봉우리가 되려고 합니다. 곧 한옥을 더 가까이에서 보여드리오다. ㅎㅎㅎ) (일을 하다다 봄날 커피한잔 마시는 자리?...참도 먹고 점심도 먹을 수 있는 식탁겸용)
(일을 마치고 농장에서 잠을 자는날 평상에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 보며 별과 바람과 사과나무와 벗하며 하모니카 연주를 할 수 있는 야외무대? 입니다...ㅎㅎㅎ)
(1000여평에 사과나무가 300주라 적당합니다. ㅎㅎㅎ)
(임시 숙소내지는 휴식처.. 오수를 청할 수 있는 침대와 더불어 취사도구 일체가 준비되어 있고 냉장고, T.V도 있습니다... 옛날 LP 플레어도 있어서 흘러간 노래를 들을 수 있네요. ㅎㅎㅎ)
(사과농사에 필요한 기본 서적들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답니다. 여호와 이레라!)
(사과나무 한 주당 발표퇴비 1포대씩 1년에 한번 밑거름을 준다고 하네요. 1포당 2000원 입니다. 성분은 돈분과 쌀겨등을 호합하여 1년간 발효숙성시킨퇴비입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남들이 하는대로 하기전에 일정을 참조하여 살피다 보면 따라하는 것이지요. 농사 별것 있겠습니까. 부지런히 남들하는대로 착실하게 하다 보면 가부간 답이 나오겠지요. 시행착오와 더불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라는 말을 교훈삼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최악의 경우까지는 하나님이 살펴주시지 않을까요?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거울삼아서 말입니다. ㅎㅎㅎ)
표고버섯 농장을 1500여평 구상을 했었는데 시설비나 제반 여건이 금년에 시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부에게는 수지타산을 떠나서 좋은 경험과 기회다 싶어 사과농사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물론 수지타산을 떠나서 행복추구 차원에서 말이다. 그 농자재 구입비 정도는 지난 겨울에 하루도 쉬지 않고 산에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기에 감당할만 하고 또한 한달에 10일 정도 건설현장에 오고가면 기타경비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 사과수확이 대략 500만원 수익이 있어 기본 경비는 충당했을 것이고 금년에는 큰 수익은 몰라도 적자는 면할 것이라기에 필부가 사과농사에 농민소설가로서의 체험으로도 현장에 뛰어들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전국 농어촌을 10여년 이상 1년 365일 주유를 했고 선친들로부터 필부 몸속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잘해 낼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금년 봄에 사고농사 농부로 변신을 한 것이다. 물론 야콘이라는 특수작물과 대학 찰 옥수수 농사도 계획중이지만 말이다.
건설현장에도 오고가며 필요경비 조달 내지는 한 달에 10여일 정도는 본업인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여생을 투여할 계획으로 지난 여름 본가에 고추를 따주러 왔다가 60살 이후 계획을 앞당긴 셈이다.
대략 건설현장 일당 8~13만원에 해당 하는 50여일 4~500만원에 농자재 구입비 2~300만원을 예상하고 사과농사가 큰 형님 농사일을 돕는다는 대용으로 본격적인 필부농사를 3월 5일부터 시작을 했단다.
우선 반폐허로 전략하고 있는 숙소와 주변정리를 하고 겨울내 하지 못한 가지 속아내기 작업을 하기로 했다.
처음이다. 일단은 최고 경력자 내지 전문가들이 하는 작업을 수소문 하여 하루 견학을 했다. 전국 농어촌을 오고가며 보아왔지만 그림의 떡이었고 글 소재는 될 지언정 내 일이 아니라 어깨넘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실전인 것이다. 당장 필부의 쌈짓돈이 사과수확 이전에 투자되는 것이기에 최소한 비용회수는 해야하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충북 괴산군 장연면 영농회장 부부에게 대학 찰옥수수 종자를 구입하러 가던 날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부부 사과농장에서 전문 사과나무 가지치기 하는 분들 12명이 동시에 가지 속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어서 견학을 우연히 하게 되었고 질의 응답과 동영상을 담았다.)
그 다음은 실제 가지속아 내기 경험자를 데려가가 실습을 통한 예비 학습을 했다.
그래도 좀더 안전하게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보자고 주변에 상황이 비슷한 5~6년 사과나무를 살펴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초등학교 동창 딸 결혼식이 서울 건대 동문회관에서 3.13 오후 3시에 있던 날에 필부 본가에 인접한 광월리 마을에 관광버스를 타러 갔더니 필부를 위하여 이미 가지치기 작업이 끝나고 발효숙성퇴비를 준 5~6년생 사과밭이 있어서 답사를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고 하나요... 기독교에서는 이런 경우를 여호와 이레라고 합니다. ... 뜻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죠!)
그리고 이내 일주일이 걸려 가지속아내기 작업을 조심스레 마치고 발효숙성퇴비를 사과나무 한 주에 한포대씩 주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달 하순 전후 첫 소독을 하면 본격적으로 사과농사에 발목을 담그게 되는 셈이다.
(전문 가지치기 일을 하는 분들이 하루 일당 15만원 입니다. 8명이 하루 분량을 필부가 7일 걸려서 했으니 현장일을 안 나가고 내 일을 하면서도 매일 7만원을 번 셈이 되나요? 모르면 물어보고, 남들이 한 것을 살펴보고, 준 전문가를 초대하여 막걸리 한잔에 정을 나누고... 스스로 경험도 쌓을 겸 숙사숙고 가지치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모르면 알때까지, 안 되면 될때까지, 하면 된다.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필부도 3년이면 준 전문가 수준이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ㅎㅎㅎ 실패를 두려할지 말지어다.)
내 나이 이제 54세다. 사과나무 퇴비를 나르다가 보니 옆에 이름모를 타동네 노인이 차를 몰고 와서 마른풀 제초작업을 예초기로 하신다. 인사차 커피를 타서 드리고 내년에는 이 밭을 빌려달라고 했다. 대학 찰 옥수수를 심어보겠노라고... 그러마 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내일일은 잘 몰라요! 내년이 되어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깐요. - 일본 대 지진이 그 답입니다. 너무 세상 물질을 내것인냥 발 버둥치며 살지는 맙시다. 필요이상은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 생각이 되어지지 않나요? 내 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현실에서 내 것처럼 쓰다가 가는 것일뿐!
평생 농부였다고 하는 그 청춘 할아버지가 금년 82세란다. 갤로퍼 승용차 운전을 손수하고 와서 젊은이도 힘겹다하는 예초기로 하루 종일 즐겁게 마른 풀들을 베는 것이 아닌가? -예초기는 하루 일당이 12만원이니가 이 농부노인도 12만원 벌고 가는 셈입니다. ㅎㅎㅎ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80부터라는 것을 이 동영상으로 필부가 증명, 확인시켜드립니다. ㅎㅎㅎ)
금년에도 지난해에 이어 서리태(검은콩)을 심어보신다는 것이다. 지난해 농촌에서는 서리태 수확이 거의 무의미했다. 비오는 날이 많아 그냥 밭에서 수확을 하지않고 퇴비대신 버려둔 집이 허다하다. 이 농부노인도 그랬단다. 이 지역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면소재지 부농인데 땅을 놀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콩이라도 심어보겠다는 것이다. 미처 작년에는 일손이 닿지않아 제초작업을 못해서 풀이 콩을 못자라게 했고 비가 많이 와서 도루아미타불이 되었다고 하면서 금년에도 서리태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단다. 사는 그날까지 말이다. 내년에 필부에게 옥수수 심어먹으로라고 하실라나? ㅎㅎㅎ 호두나무가 좋다고 하니 호두나무를 심고 싶다고... 그러면 결국을 필부가 호두를 따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과농장하고 3m 거리니깐요. ㅎㅎㅎ
이 농부노인을 보면서 인생은 80살 부터라고 필부가 온 세상을 향하여 외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고 말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아직 농사일을 놓지 못한 85세 남자 노인이 남자로서는 최고령인데 필부 부친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며 모친이 94세인데 아직 최고령 갱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8년을 더 사셔야 101살 문중 안노인 기록을 갱신할 것입니다. 필부 모친이 마을 유래 현재는 2등이십니다.
이 글을 읽는 문숭리와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에 인연이 되어있는 각 카페, 단체 ,지인들은 공식, 비공식 절차를 통하여 언제든지 필부 사과농장으로 오시면 체력단련과 더불어 하모니카 연주, 때로는 삼결살 파티에, 녹차를 통한 다도의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다도는 이 글에 이에 필부의 집필실로 태어날 한옥 펜션을 수리와 더불어 소개하면서 차도 체험실을 소개하겠습니다.
토, 일요일이나, 평일일지라도 삶에 지치고 피곤한 날에 내 고향 충청도로 오십시요. 문숭리가 마음의 호수가 되어줄 내 고향 충청도(문숭리 저, 2009.07. 도서출판 젤기획) 표지에 나오는 저수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필부의 연락처요. 이 글이 실리는 카페나 단체에는 이미 공인자격으로 공개되어 있으니 찾아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사과농사도, 옥수수도, 야콘도, 황토찜질방을 손수 지으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손길과 더불어 체력도 단련하시고, 하모니카도 밤새 함께 불어보시고, 별이 하늘에서 곧 떨어지는 별밤지기도 함께 되어 보십시다. 먹고 자고 가고 오고 그 모든 것은 필부가 책임을 지오리다. 빈손으로 오십시요. 생각보다 필부는 이미 오래전에 의식주 차원이 아닌 행복으로 살아가는 꿈을 먹고 사는 청춘입니다. 못하는 것 몇가지(당구 ,포카, 댄스 ,골프외 한 두가지) 말고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었고 현재도 가지고 있는 존재옵시다. 그 어느 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하루를 매일 행복하게 살고 있기에 마음만 가지고 오시면 되지 않을까요?
2011. 3.19(음력 2.15). 내 고향 충청도 충주에서 54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날에
|
첫댓글 가보니참 사과나무도 무럭무럭잘자라고. 어디에서농사지식을알았는지 감탄할뿐이라오. 그나마시골에친구라도
있으니 얼마나다행이구만. 전국방방곳곳 방랑자생활13년만에 이렇케고향에 돌아와자연을벗삼아. 살기를바라오.
앞으로 40 년은 더살아야지 어머니나이 많큼 ~을~~~
암요... 남은 인생 행복하게 서로 지내마 보내십니다. 필승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