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경본문: 잠언 1: 23-33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낙타를 타고 상업 차 먼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막을 지나가다가 타고 가던 낙타가 지치면 다른 낙타로 바꿔 탈 생각으로 그는 낙타 한 마리를 더 끌고 갔습니다. 얼마를 가던 중에, 주인을 태우고 가던 낙타가 뒤돌아보니 뒤에 오는 낙타는 아무 것도 싣지 안고 너무나 편안하게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을 태우고 가던 낙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나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가던 낙타는 온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고 하고, 일부러 비틀거려 보기도하는 등 자신의 마음의 불편함을 등에 앉아 있는 주인에게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비틀거리는 낙타를 더 타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뒤에 있는 낙타로 바꾸어 탔습니다. 뒤에 있던 낙타는 주인을 등에 태우고 가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뜨거운 사막을 열심히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따라가게 된 낙타는 마음이 여전히 불편했습니다. 등에 아무 짐도 지지는 않아서 힘은 들지 않았지만, 뒤에서 하는 일없이 끌려가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 하면서 주인에게 불편한 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주인이 한 참을 생각하다가 낙타를 자유롭게 살도록 줄을 풀어주었습니다. 모처럼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한 낙타는 사막의 이곳 저곳을 마음껏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낙타는 자기가 가야할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말랐지만 물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먹이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낙타는 사막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주인을 모시게 된 낙타는 주인의 인도함을 따라서 가야할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주인이 가야할 길을 갈 가르쳐 주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주인이 물을 주었고, 배가 고플 때면 주인이 맛있는 먹이도 주었습니다. 때로는 편안한 곳에도 쉼도 갖도록 주인의 배려를 받았습니다. 결국 주인을 떠난 낙타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고, 주인을 등에 태우고 주인의 인도함을 받은 낙타는 생명도 보존할 수 있었고, 충성스러운 낙타로 귀히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적 진리도 이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자유 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때로는 부자유한 것 같고,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생명을 얻고 귀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복된 삶을 살아가려는 귀한 마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철저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면 우리 모두는 주님과 더불어 살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하나님 때문에 살게 되는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솔로몬도 본문에서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고 하나님 음성을 들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즘 한 두 대의 컴퓨터가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정말로 컴퓨터는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쉽게 처리해줍니다. 정말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컴퓨터의 기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고 신뢰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면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기능들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 진리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귀하게 믿고 있다하더라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을 모른다면 이것처럼 애석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을 제일로 여겨야 한다.
언제인가 엘파소 공항에서 달라스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가 활주로에서 무려 2시간 동안이나 비행기에 갇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장은 달라스 공항의 기상상태 때문에 계속해서 기다리라는 명령을 관제탑으로부터 받고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비행기의 기종이 뛰어나고 조종사의 기술이 훌륭하다고 해도 비행기를 통제하는 관제탑의 명령 없이는 어떤 비행기도 뜨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조정하는 조종사에게는 비행기의 관제탑의 명령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비행기는 뜨고 나르고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관제탑과 교신을 하면서 운행할 때에 안전하게 도착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도자시요 통제자인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교제 없이는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지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인도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제일로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하는 자들에게 기쁨으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원하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2.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인도자이신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제일로 여기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40일 금식기도를 일년에 몇 번씩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40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교회에 돌아와 보니 새로운 목사님께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기도원에서 보내는 목사님을 성도님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40일 금식기도는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에 쓰시는 방법이지 보편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실 때나 바울을 부르실 때처럼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보편적인 방법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즐겨하십니다.
1>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시간을 물어본다면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는 성숙한 신앙인이라기 보다는 어리석고 게으른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계가 있으면 시계를 들여다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설교자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시편기자는 말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추어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우둔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밝은 광채가 비쳐오기를 바랍니다.
2>성령님을 통해서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의 최고의 상담자시며 인도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하나님의 행위 대리자(Agent)이십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들을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친히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은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항상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소멸치 말고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하여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성령 충만해 있어야 하고, 또한 지속적인 성령충만 함을 간구하여야 합니다. 산소가 없으면 불이 붙을 수 없듯이 성령 충만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들려와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인식은 되어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3>환경을 통해서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즐겨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면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깨며 있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나 만나게 되는 사건들 또는 만나게 되는 이웃의 입술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에 만나는 사건이나 만나는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만나는 사건이나 만나는 이웃들을 하나님의 뜻의 전달자로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울왕은 사무엘의 입술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거부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의 입술을 통한 질책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자복하고 회개하여 용서하심을 받게 됩니다.
과부가 된 나오미는 환경을 통해서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미는 며느리 룻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행복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환경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4>양심을 통해서
양심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격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물론 화인 맞은 양심 즉 죽어 있는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양심이 건강하다고 확신하시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양심에 걸리는 것은 하나님에게도 결리는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어라.
여러 가지 차원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된 삶으로 인도함을 받으려면 방해물들이 철저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옛사람의 찌꺼기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옛 사람의 불신앙의 찌끼기들이 제거되어야 하나님의 음성은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1> 영적 질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적 질병에 걸려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영적 질병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으실 것이야>라는 열등감이요, 다른 하나는 <내가 내 자신의 것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라는 교만입니다. 이 열등감과 교만이라는 병은 하나님의 음성을 굴절시키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자격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자녀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엄청난 죄를 지은 아담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간음하다 붙잡혀 온 가련하고 추한 여인에게도 주님께서는 사랑의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귀한 믿음의 성숙자인 아브라함에게도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 한자라고 불리 운 다윗에게도 말씀하셨고,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2>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성별 된 삶이란 세상에 물들지 않은 구별된 삶 즉 세상과 분리된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세상에 물들어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세상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노아의 방주가 물 가운데 있었지만 물이 스며들지 않았듯이 세상의 물결이 우리의 삶 속에 침투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상의 벗된 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면 세상과 벗이 되면 이는 곧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약4:4). 요한은 입을 열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고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원하시면 세상풍조와는 구별된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TV 채널을 틀면 그 방속국의 화면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비싼 TV라도 켜지도 않은 방송국의 화면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관한 채널은 과감하게 꺼야 합니다. 세상과는 다른 자세로 살아가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고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3>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몇 번 기도해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포기하고 마는 성도님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고 모든 것 다 버리고 기도원에만 가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쉽게 포기하고 물결에 요동치는 배처럼 살아가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시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문을 열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항상 찬송가를 펼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찬송이라 생각하는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어린아이가 병으로 고통받고 있어서 심방을 갔습니다. 찬송가를 펼쳤더니 291장 장례찬송이 나왔습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돌아왔는데 그날 밤에 그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전도사님도 그 교회에서 더 이상 목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그런 방법으로 쉽게 찾으려하면 오히려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 목사님 집을 나서다가 철대문에 머리를 꽝하고 부딪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목사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분명하네, 정신 좀 똑똑히 차리고 다니라는 뜻일세"
옳습니다. 머리를 부딪힌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40일씩 금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면 항상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인내의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하나님의 일군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 있었다"는 말은 인내하며 깨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인내하며 대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은 잔잔하고도 분명하게 들려올 것입니다.
맺는 말
삼상30을 보면 우리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다윗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내들과 자녀들을 아말렉에게 강탈당한 다윗이 제일먼저 취한 행동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초를 다투는 위급한 때인 대도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는 일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30:8)"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해서, 마침내 잃어버린 모든 식구들을 다 찾게 됩니다. 다윗은 인생에 있어서, 특별히 삶의 위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기도의 부족이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부르짖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아갑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는데, 열심히 잘못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소리라고 다 소리가 아닙니다. 음성이라고 다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중요합니다. 삶의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