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의 정신 1
작성일 2000/02/28 비 고 한국의 대표시인론
저항시의 정신
Ⅰ. 서 언
일제치하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강조할 때 그 통치 기간을 식민지시대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시대라 하더라도 시기별로 성격을 달리하고 있음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체제론이 대두한 일제말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행한 시기였다. 1937년 이후 한국어 교수의 폐지와 간행물의 폐간은 한국어의 말살, 한국문학의 죽음을 의미1)하는 것이었다.
조국상실과 일제통치라는 조건하에서의 한국시를 굳이 시기별로 분리할 필요는 없는 일이겠으나 일제말 국어 말살정책 속에서의 우리 시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식민지시대의 저항시를 설명하고 개념을 정립할 때 마땅히 참작되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화적 저항2)의 한 형태인 때문이다. 물론 식민지 통치하에서의 우리 시에 대한 작업과 민족정신 고취를 통틀어 문화적 저항이라 할 수 있지만 특히 일제말의 시작업은 당대의 시대적 배경으로 해서 그 의미가 배가되는 것이다.
문화적 저항이라 할 때 저항인과 저항시의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게 된다. 저항인이면서 저항시를 쓴 경우는 논의가 분명해지지만 이 두 가지가 분리될 때 논란의 소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윤동주3)라 할 것이다.
또한 저항에 대한 개념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한 시인의 작품을 두고 저항시인가, 아닌가 또는 어느 정도까지를 저항시로 취급할 것인가 등의 논란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문학의 해석과 평가는 획일적·고정적일 수는 없다. 현대시에 이르러 해석의 다양성은 시의 본질과 특성을 구명하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 예로 만해의 ‘님’이 다양하게 해석됨으로써 ‘조국’이라는 단일한 의미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미적 가치가 확대됨을 보아 왔다.4) 그렇지만 일제치하의 시작활동을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할 때 그 개념이 분명하지 못함으로써 올바른 시의식을 바탕으로 생산된 작품이 제외되거나 소홀히 취급되는 것을 보아 왔다. 뿐만 아니라 저항시 부재 내지는 소수의 시인만이 거론되는 경우도 보아 왔다.
여기서 저항, 저항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이제는 그 개념을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저항이라는 어휘를 이민족의 통치와 관련해서 말할 때 먼저 프랑스 레지스탕의 문학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는 1940년부터 4년간 나찌스의 점령하에 있었다. 이때 ‘작가국민위원회’, ‘심야총서’의 형태 등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활동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친독, 침묵의 문인도 있었지만 많은 문인들이 적극적으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침략자에 대한 증오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였다.
프랑스의 이와 같은 활동에 비하면 우리의 경우는 미미한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의 경우는 무수한 동인지·잡지 등의 발간을 통해서 그 의지를 표출하였다고 할 것이다.
시대적 사회적 여건을 무시하고 비교한다는 것부터 모순이 있으므로 그 양상의 특징만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로 통치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서 우리의 경우에는 어린이 운동과 어린이를 위한 시도 활발했는데 이 점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사항이다.
그동안 저항의 강도를 소극적이다 적극적이다로 분류하려는 의도, 타국과의 비교 등이 저항시의 방향과 한계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이 저항의 범위 설정에 있어 관용을 베푼다면 日帝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모든 것이 저항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당시의 우리 민족 대다수가 저항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저항이 그 나름의 의미를 띠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극적인 것을 제외하고 일제하의 구체적인 활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5)
위의 인용문은 소극적, 적극적의 의미를 규정하는 한 예로서 일제에 대한 대항이 구체적일 때 ‘적극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시인의 경우 구체적인 활동은 무엇보다도 시를 쓰는 일이고 그 시를 통해서 내용이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을 인간의 일반적인 행동에서 찾으려 한다면 저항시인 또는 저항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소극적, 적극적 분류보다는 시정신과 시작태도를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즉 어둡고 궁핍한 시대에 친일하지 않음은 물론 조국과 삶의 문제, 자아의 진실을 노래한 시, 한민족의 의지를 직시하고 이를 함양하는 데 이바지한 시를 저항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수의 시인이나 시가 시의 의미나 위대성을 대표할 수 있지만 식민지시대가 특수한 질곡의 세월임을 상기할 때 조국을 위한 시정신 모두를 종합적 의지로 묶어서 그 전체를 저항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민지시대의 초기 후기의 시들이 다함께 뚜렷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게 될 것이다.
Ⅱ. 저항시의 양상
1. 좌절의식
시인은 저항하고 좌절한다. 이 말은 예술의 본질과 상통하는 말이다. 시인 자신이 세운 내면적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고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확장하고자 한다. 생성과 파괴, 저항의 과정에서 끝내 좌절하기도 한다.
우리 시에서의 좌절의식은 예술의 본질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요소와 시대적 요소가 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20년대 후기를 한국문학사에서 중대한 전환기6)로 볼 수 있는 것은 시에 대한 의식과 비평에서의 내재적 연구의 시작7)때문이라 할 것이다. 이 무렵, 시에 대한 인식의 저변에는 3·1운동의 실패와 민족의 슬픔이 스며 있다 할 것이다.
나는 王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러케 王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王 ! 이 世上 어느 곳에든지 설음잇는 I은 모두 王의 나라로소이다.
─홍사용의 「나는 王이로소이다」에서
‘설음잇는 I’은 비극적인 것에 대한 인식8)을 보여주고 있으며 눈물을 통해서 현실과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심훈은 「선생님 생각」에서 ‘가슴 속엔 <성애>가 들고 눈물이 고드름 됩니다’와 같은 싯귀를 통해 눈물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슬픔의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 성에와 고드름이 자연현상인 만큼 눈물도 이 현상의 테두리에 담기지만 그 형태가 추운 계절을 연상시킨다.
좌절의식은 고향상실, 조국상실에서 비롯되고 있으므로 좌절과 함께 우국을 읊은 시들도 많다. 우국시들은 개화기 창가 시조에서부터 볼 수 있다. ‘슴흐다, 國家의危急흔일을어이흐리, 靑年들아’(「老病」 大韓每日申報, 1909.12.1)와 같은 우국충정의 싯귀는 국운·국권의 존폐를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3·1운동 이후의 시들에서는 이미 상실된 조국땅을 보게 되며 그것이 좌절의식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집일흔 내몸이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I이 잇섯드면!
─소월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I이 잇섯드면」에서
우리 땅이 없다는 한스런 심정은 이상화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싯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남의 땅’이라고 인정하는 그 수동적 자세는 좌절의식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8연의 ‘내손에 호미를 쥐여다오’와 같은 귀절도 관념적이며 ‘쥐여다오’에서 수동적인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상화의 이 시를 이명재는 향토애와 울분에 겨운 조국의지를 절규하는 항일저항의식의 자연스런 표출9)로 보기도 한다. 김준오는 식민지시대의 절망적 극한상황을 보여 주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명10)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
이상화의 대표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 작품은 두 개 자아의 아이러니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의 절망적 자아와 “봄신명”에 빠진 자아가 그것이다. 여기서 봄신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왜냐하면 이것은 육사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 보다’(「絶頂」)로 연결되는, 우리의 전통적 초월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집힌 상태의 비합리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밖에 저항의 행위를 의존할 수 없는 우리의 비극을 보여주고 식민지 시대의 절망적 극한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11)
이 시는 이상화의 대표적 저항시로 주목되고 있으며 한결같은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리듬이나 향토성에도 불구하고 회복이나 구원의 의지가 희박하다 할 것이다. 초월의지를 통한 극한상황의 제시로써는 효과를 거두고 있으나 화자의 수동적 자세는 낭만적인 좌절을 보여 준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내일을 암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시에 나오는 ‘살힝 젖가슴’과 같은 시행과 어울려 영원성, 미래지향적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찾느냐 어데로가느냐 웃어웁다 답을하려무나’와 같은 귀절이 수동적 화자와 연결될 때 좌절의식을 뚜렷이 해 준다. 그러므로 이 시 또한 좌절의식의 소산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조국상실에 대한 ‘절망적 극한상황’, 좌절의식은 흙의 의미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이 흙은 고향땅, 조국 전체의 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울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한울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힝는 이 I이 애닯어
한울을 흘2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v지마라.
─이상화의 「慟哭」 전문
낮과 밤, 웃음과 울음의 관계, 두 발과 땅의 관계를 통해 절망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하늘과 해를 소재로 하여 민족의 비극에 대한 시인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돌아다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뛰어 건너서서
숨그르고 발놓는 남의 나라 땅
─소월의 「남의 나라 땅」 전문
남산아 잘 있거라, 한강아 너도 잘있거라!
너희만은 옛모양을 길이길이 지켜다오!
─심훈의 「잘있거라 나의 서울이여」에서
아, 가도다, 가도다, w처가도다.
이름속에잇는間島와遼東벌로
주린목숨움켜쥐고, w처가도다.
─이상화의 「가장 悲通한 祈慾」에서
예시한 시들에서 식민지시대의 절박한 시간성과 땅이 삶의 총체적 의미를 지니고 나타난다. 식민지시대의 삶의 시간은 흘러가는 순간의 연속적인 시간이 아니라 절대적인 생명의 시간으로서 삶 전체의 상실을 뜻한다. 이러한 민족의 아픔은 어린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壽男아
順이야
자─ㄹ 가거라
압바u라 북간도
가는 동무야
멀─니 가다가다
도라다보고
<잘 잇거라─> 손짓하며
우는 順아야!
─이원수의 동시 「잘가거라」에서
북간도로 가는 친구와의 이별을 노래한 동시에서 ‘잘 잇거라─’가 < >안에 표시돼 있음은 간절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별의 슬픔과 재회의 불가능성이 동시에 제시되고 있다. 조국상실, 고향상실에 의한 좌절은 민족애를 통한 삶의 문제였으며 자아의 진실한 추구와 직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삶과 관련된 흙이나 생활의 소도구, 또는 인물을 소재로 하는 시들이 이런 좌절의식에서 비롯된 시의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무렵의 시를 획일적으로 낭만성의 한 면인 퇴폐적, 감상적 시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2. 향토의식
향토성은 시를 제한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향토성이 지역성에 머무는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의 우리 시에서 향토성은 시인의 의도성 여부와 관계없이 시대적 반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산천, 기후, 풍토, 사투리, 지명 등은 향토성과 관계가 있다. 향토성이 식민지시대의 저항성과 연관이 있는 것은 고유한 민족정서를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리듬은 그 나라의 언어를 통해 독특하게 형성되는 것이며, 그 나라의 언어는 곧 그 민족의 얼이며 심혼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식민지시대를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는 민족의 정서와 얼을 가다듬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향토적 요소는 성인시에서 뿐만 아니라 이처럼 동시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가마 가마 꽃가마
단옷날 유둣날
고은 꽃도 폈다.
─박영종의 「꽃가마」에서
좌절의식이 시로 나타날 무렵 『어린이』를 비롯하여 어린이 잡지가 속속 간행되고 색동회의 조직 등 어린이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인과 지식인들이 이에 가담하고 있으며, 일제말 간행물들이 폐간을 당하자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던 문인들은 회람잡지를 간행하기도 했다.
1944년 林仁洙는 「아이생활」 執筆者로서 구성된 同人인 李允善과 함께 「童園」이라는 이름의 回覽誌를 4輯까지 내었으며(1輯은 원고지에다 표지를 붙인 것 1部와 林仁洙의 自筆自作製本 2部, 2輯은 分擔編輯, 3輯은 李允善이 製作하여 발송·輪讀한 후 回收, 4輯은 발송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함) 이를 前後하여 禹曉鐘 主宰의 「초가집」, 李鐘星 主宰의 「파랑새」(6輯까지 膽寫版으로 나옴)등 각종 回覽誌가 등장한 것이 그 구체적 예이다.12)
아동문학계에서도 수난을 당하게 되면서부터 친일적인 요소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결국 잡지들이 폐간에 이르게 되자 인용문에서처럼 어린이를 위한 의지를 회람지로 대신했던 것이다. 그 이전에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를 통해 어린이의 주체의식 확립과 민족애를 고취시켰다. 따라서 『어린이』는 수차례에 걸쳐 압수당하기도 했던 것이다.13)
성인문학계가 정통파(순수문학파), 반동파(순수사회파), 중간파14)로 대립되듯 아동문학계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는 정통파에 해당하는 동시 중, 향토적 요소를 지닌 작품을 대상으로 삼았다. 어린이들에게는 특히 향토적 요소가 삶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영랑의 ‘오─매 단풍들것네’와 같은 싯귀는 자연스럽게 향토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의 시에서 보이는 시어와 리듬은 그가 나고 자란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 얼의 지킴이오, 그 지킴은 시인의 내면세계를 표면화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 저항성을 찾을 때 「春香」이나 「毒을 차고」와 같은 시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찬란한 슬픔의 봄’이나 ‘오─매 단풍들것네’(「집」)와 같은 시에 나타나는 진한 향토성에서 먼저 기본 어조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 어린날 !
내 어린날 ! 아슨플 하다
아실아실 떠놀다 내어린날 !
오 ! 내어린날 하얀옷 입고 !
─영랑의 「연(1)」에서
느낌표는 어린 시절의 회고를 강조하고 있다. 이 느낌표의 의미를 확대해서 본다면 어린 시절과 현실을 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서와 삶이 온전하던 어린 날의 회상은 현재의 조국상실로 해서 그 아픔이 감탄부호로 끝나고 있다. 현재의 ‘상실’은 과거의 시간까지도 슬픔 속의 추억으로 빼앗아가버린 것이다.
외롭고 쓸ㅁ하고
괴로움많고 눈물많으나,
숨ㅅ결 잇고 生命잇는
이나라ㅅ 사람─
아아 나는 이나라ㅅ사람의 자손이외다.
─양주동의 「나는 이나라ㅅ사람의 자손이외다」에서
향토의식은 곧 고향의식이며, 고향이란 말은 부모, 산, 시내, 나무, 송아지, 친척, 가정 등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오는 삶의 터전임을 연상하게 한다. 이와 같은 삶을 강조하는 귀절이 ‘이 나라ㅅ사람의 자손’이라 할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시에서 보이는 산이나 자연, 강과 같은 자연의 물상들은 전원에 의탁하고자 하는 자세라기보다는 내 향토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에서 자연은 좋은 소재이며,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무렵의 시들에 나타나는 자연사상은 온전하게 향유할 수 없는 내 향토에 대한 갈증이며 상대성으로 나타난 자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월의 ‘山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山有花」)와 같은 귀절을 읽을 때 시대성을 떠올리고 읽는다면 그 꽃과 계절이 향토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엄마야 누나야」)는 귀절에서 강변이 평화스러움의 대명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저 오늘도 그립은바다,
건너다보자니 눈물겨워라 !
조고마한보드랍은 그옛적心情의
분결갓든 그대의손의
사시나무보다도 더한압픔이
내몸을 에워싸고 휘힝며힝러라,
나서자란故鄕의 해돗는바다요.
─소월의 「旅愁 二」 전문
해가 돋는 고향의 바다를 통하여 객지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몸을 찌르는 아픔은 고향을 떠났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고향과 연결되는 당대의 시어에는 신석정 등의 시어에서처럼 어머니가 많으며, 여성의 이름으로는 ‘순이’가 많다.
오늘은 순이의 시집가는 날
또하나 거륵한 꽃이 이 동니에 피어 오로다.
─청마의 「또하나꽃」에서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얼골─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윤동주의 「少年」에서
‘순이’라는 이름은 고향에서 쉽게 접하는 이름인데 쉽게 접한다는 사실에서 그 이름이 고향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특징 없는 이름이 일제통치하의 고향의식과 연관될 때에는 의미가 깊어진다. 순박한 얼굴이 ‘슬픈얼골’로 되는 것이다. ‘거륵한 꽃’이 피어오르지만 그 얼굴에는 슬픔이 어려 있는 것이다.
신석정의 시에 나오는 어머니는 거룩한 꽃으로 피는 과정을 거친 어머니로서 그의 많은 시에 나오고 있다. 이 어머니도 향토성과 관련해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신석정의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에서
이 시귀에서 보듯 어머니는 화자와 교신할 수 있는 인물이며 심적대화를 ‘어머니’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재철은 이 시를 분석, 다음과 같은 면을 지적하고 있다.
이 <어머니>는 <님>이나 <당신>으로 불리울 수도 있으나, 이 시에 또는 夕汀의 다른 시에서의 호소 대상은 <어머니>가 가장 적절하고 잘 어울리는 것이다. 또 이 시가 당시 시대적 상황 조국 현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어머니>는 조국을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좀 억지스러운 이야기이다.15)
어머니를 ‘조국’으로 보거나 ‘님’, ‘당신’으로 굳이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등분된 시각은 여기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 무렵의 신석정의 시는 목가적, 문명비판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이런 면보다 먼저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소망하는 점, 이 어머니를 통해 ‘먼 나라’를 갈망16)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 나라를 고향의 확대, 순리의 대자연으로 본다면 시인의 의식을 이루는 어머니의 지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기 전에 어머니의 삶과 화자의 삶이 일치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향토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를 통해 사물을 확인하고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은 삶의 불안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신뢰할 수 있는 절대자로 나타나고 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내 고장 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육사의 「靑葡萄」에서
고향의 모습이 어머니를 통해 보이듯 ‘내 고장’이 ‘청포도’를 통해서 보인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에서 청포도는 절대적 이미지 역할을 한다. 청포도 한 알마다 전설을 담음으로써 지역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시에서 작가의 생애, 활동과 관계 없이도 애향심을 볼 수 있다. 그 애향심이 지역성에 떨어지지 않고 공감을 크게 가져다 주는 것은 7월, 청포도, 전설이 4연에 나오는 ‘손님’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손님과 함께일 때 청포도를 따게 되므로 청포도의 의미가 과일이라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시대에 향토에 관한 시가 많고, 특히 고향에 관한 시들이 많은 것은 실향에 대한 슬픔, 삶의 위치를 확인하여 현실을 보는 시인의 자세와 관련되는 것이라 하겠다.
3. 구원의 의지
좌절의식과 향토의식의 근저에는 소망과 동경이 스며 있음을 보았다. 구원의 의지는 이런 점을 바탕으로 해서 식민지시대에 상실하였거나 진행중인 사항들에 대한 깊은 인식을 통하여 구체적인 인물 제시 또는 기다림의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비유와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거룩한 분로는
종교보다도 깁고
불붓는 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e보다도 더푸른
그물결우에
양귀비 e보다도 더불근
그 마음을 흘너라.
─변영로의 「論介」에서
논개를 노래한 이 시에서 ‘아,∼흘너라’까지는 후렴구인데 2, 3연의 마음에는 「 」로 강조되어 있다. 예를 든 첫연에 「 」이 없는 것은 오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나라를 생각한 정열이며, 그 정열을 찬미함에 있어 정열은 종교, 사랑보다도 위에 있음을 보게 된다. 조국이 없는 종교와 사랑은 무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영로는 시집 『朝鮮의 마음』(1924)을 내면서 「서대신에」17)에서 ‘「조선마음」을 어대가 차즐가?’로 시작하고 있다. ‘「조선마음」’을 논개의 나라사랑을 실천한 정열에서 찾았다 해도 빗나간 추측은 아닐 것이다. 조선의 마음을 찾으려면 논개와 같이 죽음을 초월한 정열이 있어야 할 것임을 ‘물결’ ‘마음’ 등으로 상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구원의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한용운은 「論介의愛人이되야서그의廟에」라는 시에서 논개의 정열을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라 애인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행적이 논개에 미치지 못함을 술회한다.
容恕하여요 論介여 金石가튼 굿은언약을 저바린것은 그대가아니오 나임니다
容恕하여요 論介여 쓸夕하고호젓한 잠ㅅ자리에 외로히누어서 2친恨에 울고잇는것은 내가아니오 그대임니다.
나의가슴에 「사랑」의글ㅅ자를 黃金으로색여서 그대의 祠堂에 紀念碑를세운들 그대에게 무슨위로가 되오릿가
나의노래에 「눈물」의曲調를 烙印으로찍어서 그대의 祠堂에 祭鐘을울닌대도 나에게 무슨贖罪가 되오릿가
속죄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울고 있는 화자는 자신의 사랑이 논개의 사랑에 미치지 못함을 뉘우치고 있다. 변영로의 「論介」처럼 이미지와 상징의 기법을 사용하여 나라사랑을 표현하고 있지만 서술적 표현을 통하여 화자는 바로 시인 자신이며, 시인 자신이 됨으로써 현실과 삶의 관계를 인식하고 ‘용서’를 통하여 소망과 구원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논개라는 특정인물을 향한 태도를 독립운동의 실패와 연관해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요인 중에는 시가 쓰여진 시기가 1926년이라는 점과 3·1운동 실패후 금강산에 들어가 『님의 沈默』을 단숨에 썼다는 점 등이다. 하여간 논개를 시화한 동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논개의 나라사랑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와 연관해서 볼 때, 한용운의 시에 나타나는 ‘기다림’은 구원의 의지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서요 당신은 오실 D가되얏서요 어서오서요
당신은 당신의 오실D가 언제인지 아심닛가 당신의오실D는 나의기다리는D임니다.
─만해의 「오서요」에서
구원의 의지와 「오서요」를 연관해서 해석할 때 확대하면 오실 분은 구원자와 같은 인물이다. 조국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화자와 대상과 관계를 한정시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문맥에 충실할 때 ‘오서요’는 기다림을 갈망하는 화자의 태도, 어조이며 정서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만해의 시 「快樂」을 보면 기다림에 대한 의미가 해명된다.
님이어 당신은 나를 당신기신D처럼 잘잇는줄로 아심닛가
그러면 당신은 나를아신다고할수가 업슴니다
……중략……
나는 당신가신뒤에 이세상에서 엇기어려은 快樂이 잇슴니다
그것은 다른것이아니라 잇다금 실컷우는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정상적인 서술로 시작되다 끝연에 가서 실컷 우는 쾌락이 있다고 함으로써 원망과 자조의 빛이 현저해진다. 우는 쾌락은 병적일 것이니 끝연은 역설적임을 알 수 있다. 병적인 것의 회복, 그 회복을 위하여 기다림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의지는 회복성18)을 토대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회복성은 식민지시대의 모든 상황의 회복성이라 할 것이다. 즉 만해가 「朝鮮獨立의 書」에서 밝히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인 첫번째, ‘민족자존성’19)을 토대로 한 회복성이라 할 것이다. 즉 기다림은 원상회복을 뜻하는 것이며 이를 ‘당신’(「나루ㅅ배와 行人」) ‘논개’ 등을 통해서 임이 지닌 사상의 일면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할 것이다.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曠野」에서
이 시의 ‘초인’ 또한 ‘당신’이나 ‘논개’와 같은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나룻배와 물과 관계가 있듯 논개 또한 물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강물을 굳이 재생의 의미로 보지 않더라도 물이 세월과 삶의 양상을 은연중에 제시하고 있다. 「曠野」의 귀절에서 보듯 길을 여는 것은 강물이다.
끊임없는 光陰을
부즈런한 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이 자연의 소재들은 그 자연을 향유하고 또는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서 빛을 발한다. 그 행인은 과거의 행인이기도 하며 기다림의 대상이기도 하다. 회복성, 구원의 의지는 조선의 마음을 찾는 일이며, 조선의 하늘을 제대로 보는 일과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가을날 풀밭에 누워서
우러러보는 조선의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높을까요?
닦아논 거울인들 저보다 더 깨끗하오리까.
─심훈의 「풀밭에 누워서」에서
영탄조로 본 ‘조선의 하늘’이 감동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그 하늘 밑에서 신음하는 동포를 생각한 역설적인 발화 때문일 것이다. 이 시의 끝연이 이를 설명한다.
미쳐날 듯이 심란한 마음 걷잡을 길 없어서
다시금 우러르니 높고 맑고 새파란 가을 하늘이외다.
憤한 생각 내뿜으면 저 하늘이 새빨갛게 물이 들 듯하외다.
분한 생각은 그 윗연의 ‘豊年든 벌판에서 銃을 맞고 그 흙에 피를 흘리다니……’에서 비롯된다. 하늘을 보아도 푸른 ‘조선의 하늘’이 못되고 있음을, 그 못 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피를 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과장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새빨갛게 물이 들듯’하다는 과장에서 피의 양과 그 진함을 공감하게 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의 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頭蓋骨은 깨어져 散散 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3.1)20)
이 시 「그날이 오면」 주제는 ‘그날’에 이미 드러나 있다. 그날이 오면 ‘넘치는 기쁨’에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울리겠다는 과장된 표현이 그날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광명을 기다리는 열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몸가죽과 북과의 과격한 이미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게외다.
─윤동주의 「새벽이 올때까지」에서
새벽과 나팔소리는 광명을 상징하며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새벽이라는 시각적인 면과 나팔소리라는 청각적인 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보고 듣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이 시를 그의 「十字架」와 연결해서 보면 기다림의 의지가 죽음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까지 열거한 좌절의식, 향토의식, 구원의 의지 이외에 가난한 생활을 표현한 시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일제치하의 굴욕적이고 궁핍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좌절·고향·구원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분야의 작품들은 계급적이고 편내용주의로 치달은 작품들과는 구별돼야 할 것이다.
저항시의 정신 1 - 이탄
출처: 작가사상 원문보기 글쓴이: 엘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