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을 건넌 흙의 위대한 여정
글. 김희정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부 학예연구사,
장효진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물컵부터 생을 마감한 뒤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뼈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도자기는 우리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다. 실용과 예술성을 겸비한 덕에 개인의 기호에 맞춰 수집되고 사용되었으며, 더 넓게는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생활품이자 역사의 산물, 도자기에 깃든 세계 역사를 만난다.
세계 문화의 얼 담은 교류의 보고寶庫
1975년 전남 신안군의 바다에서 한 어부가 들어 올린 것은 다름 아닌 도자기 6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다 속 더 깊은 곳을 향하자 신비의 보물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만 34m, 중량 200t급의 거대한 무역선이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된 수중 발굴 작업을 통해 이 배가 1323년 중국 경원慶元(현재의 닝보寧波)에서 일본 하카타(博多)로 가던 무역선이라는 것과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약 2만4000여 점의 문화재를 밝혔다. 신비의 무역선은 ‘신안해저선’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연구되었고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통해 관람객을 만났다.
신안해저선에 잠들어 있던 약 2만 점의 도자기는 전체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려청자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가마에서 생산된 수준 높은 완형의 청자, 백자, 청백자가 고려와 중국, 일본의 왕실 문화와 당시의 생활상까지도 짐작케 한다. 더불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도자기는 실용의 목적과 예술성까지도 겸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활발히 교류되었다.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과 예술, 경제적인 가치까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동서양이 바다를 오가며 주고받은 문화 교역의 중심에 있던 ‘도자기’는 세계 곳곳에 녹아 있는 문화적 공통점을 발견하기에 좋은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문화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도자기를 통해 세계 도자기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 공간을 새롭게 마련했다. 도자기를 통한 문화 교류를 살펴보면서 어쩌면 인류를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를 찾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흙을 매만지던 장인의 손길에서 시작된 인류 역사 여행을 국립박물관에서 만나본다.
중국 백자 항아리와 델프트 도기 항아리 中國白磁壺 · 荷蘭陶器壺
(오른쪽) 중국 청 1644~1661년, 높이 30.5㎝, 지름 22㎝
(왼쪽) 네덜란드 1660~1700년 델프트, 높이 25.5㎝ 지름 19㎝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소장
델프트 도기가 인기를 끌면서 중국 청화백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풍 디자인의 꽃병과 항아리는 가구나 벽난로 위에 놓여 집안을 꾸미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기품 있는 아시아 도자기의 멋과 힘
국립광주박물관 아시아도자문화실
국립광주박물관은 ‘아시아 도자 실크로드의 거점’이라는 브랜드 목표를 가지고 아시아 도자 문화와 신안해저문화재의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2024년에는 도자문화관(가칭)이 완공될 예정으로, 국내외 전문가 및 연구기관과 함께 신안해저문화재를 비롯한 아시아의 도자 문화를 활발히 알릴 예정이다. 앞으로의 여정에 이제 막 돛을 단 국립광주박물관은 지난 12월 18일부터 아시아도자문화실을 열고, 이름 그대로 한국에서 아시아를 아우르는 도자의 다양한 이야기와 전시품 약 1150점을 소개한다.
오늘날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도자기의 역사는 기원전 4000~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보관을 목적으로 흙으로 빚은 토기가 만들어진 이래 기법과 형태의 발전을 거듭했다. 이후 불을 이용한 가마와 유약을 발명하고, 고화도 자기를 제작하게 되면서 실생활 용기로서 기능이 크게 확대되었다. ‘차문화’, ‘문인문화’, ‘의례문화’, ‘길상문화’ 등으로 쓰임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된 도자기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지는 한국 도자의 흐름을 타고 만들어지고 보이고 쓰였다.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 도자의 국내 유입도 활발했다. 아시아도자문화실에는 한국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들을 중심으로 고려와 조선시대 사람들이 수입해 사용하던 중국 도자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베트남 도자와 일본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의 디지털 사진(코로나19의 호전 상황에 따라 실물 전시 예정)을 통해 흥미로운 동아시아 도자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청자 상감 버드나무 학 동자무늬 매병 靑磁象嵌柳鶴童子文梅甁
고려 12세기, 높이 3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병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려청자 기종 중 하나다. 몸체가 풍만하고 둥글며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풍만한 몸체에 비해 입구는 매우 작아 독특하다. 몸체 양면에는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 두 명의 어린아이가 춤을 추는 듯한 형상으로 서 있고, 그 옆쪽에는 두 마리의 학이 그려져 있다. 태안 마도 2호선에서 출수된 고려청자 매병과 죽찰竹札에 쓰인 내용이 밝혀지면서 매병이 주로 술이나 꿀, 참기름과 같은 귀한 액체류를 담는 저장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밖에 꽃을 꽂아 공간을 장식하는 용도인 화병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황백유 갈채 주자 黃白釉褐彩注子
12~13세기, 높이 24.5㎝,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소장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중국 남부와 가까워 중국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이른 시기부터 품질이 우수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주자는 누런빛을 띠는 백유白釉 위에 갈색으로 발색되는 산화철 안료로 장식했다. 중국 송대 징더전요景德鎭窯에서 유행한 주자와 주완注碗을 하나로 합쳐놓은 형태로 마치 주완에 주자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독특한 기형은 송대 징더전요의 영향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청자 주름무늬 항아리 靑磁鎬文有蓋壺
중국 원년, 1271~1368, 높이 32.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병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대형 항아리로 중국 원나라(1271~1368) 때 저장성浙江省 룽취안요龍泉窯에서 만들었다. 룽취안요는 송나라 때부터 청자를 굽기 시작해 원나라 때에는 가마 수가 3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는데 길이 약 35m의 긴 가마를 통해 대량생산되어 해외로도 널리 수출되었다. 이 항아리는 해외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는 유형으로 일본에서 찻물을 담아두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또 귀족들의 유골을 넣는 골장기骨藏器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백자 청화 구름 용무늬 항아리 白磁靑畵雲龍文壺
조선 18세기, 높이 5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중국 남용무늬 항아리(용준龍樽)는 조선시대 왕실 잔치 때 사용된 최고급 도자기로 술을 담거나 꽃을 꽂는 용도였다. 왕실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몸체 가운데에는 구름에 둘러싸인 여의주를 쫓는 용이 그려져 있고 보조문양으로 곧게 올라선 입 주위에 당초문, 어깨부분에 여의두문, 항아리 밑부분에 꽃잎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왕이 앉은 자리 앞에 놓여 잔치의 화려한 분위기를 더하는 용무늬 항아리는 궁중 기록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자기에 담긴 동서 교류 600년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세계도자실
새롭게 문을 연 세계도자실은 특정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세계 여러 문화가 만나고 발전하는 과정을 동서 교류의 대표적인 산물인 도자기를 매개로 들여다보고자 전시를 마련하였다.
동서양의 문물이 가장 활발하게 오고간 17~18세기 세계사를 도자기를 통해 살펴보는 이번 전시는 2년간 계속되며, 국제 교역에서 도자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유럽까지 도자기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중국 자기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 이슬람까지 뻗어 나갔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자기를 자체 생산할 수 없었던 유럽은 중국 자기를 수입하였는데,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 VOC, 1602~1799년)를 통해 많은 양의 중국 자기가 유럽에 소개되었다. 당시 중국 자기는 비싼 가격으로 ‘화이트 골드White Gold’라고도 불리며 문화 전반에 흡수되었는데, 그 중 독특한 무늬 배치가 특징인 청화백자 ‘크락Kraak·Craak 자기’는 유럽 상류사회는 물론 일반 가정에도 하나쯤 소장해야하는 인기 품목이었다. 이는 곧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는 새로운 문화 풍조로 널리 퍼지며 모방, 수집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 유행한 정물그림 속에 그려진 중국 청화백자가 당시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한편 17세기 중엽 중국의 명청明淸 교체기, 내부 혼란으로 자기 교역이 어려워지자 이 틈을 타고 일본 아리타有田 지역에서 만든 백자, ‘이마리伊萬里 자기’가 유럽 자기 시장에 등장했다. 18세기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주문하여 유럽 양식이 반영된 독특한 도자기도 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중국과 일본 자기의 디자인과 제작 공정을 빌려 자기 생산에 큰 꿈을 품게 된 유럽은 중국 자기를 모방한 푸른색 ‘델프트Delft 도기’ 생산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계속해서 큰 사랑을 받았던 중국 자기의 미적 요소와 저렴한 가격을 더한 델프트 도기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1709년 독일에서 유럽 최초로 백자 생산에 성공하며 유럽은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간다. 1710년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된 마이센 자기는 공예적 기술과 예술성, 경제적 가치까지 두루 갖추며 유럽에서 명성을 얻고, 유럽 각국의 자기 생산에 디딤돌이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계기로 유럽 자기는 대량 생산 체제에 접어들게 된다.
바닷길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동양 자기는 유럽 자기를 탄생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대량생산의 성공은 세계에서 자기 생산의 중심이 동양에서 유럽으로 옮겨가게 된 결과를 맞이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인 도자기 속에 흙을 매만지던 장인의 손길은 물론 근대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반응했던 동서 교류의 단면을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
면도용 접시 金alt手面刀用alt匙
일본 에도 1700~1730년 아리타(有田), 높이 6.5㎝ 지름 26.5㎝,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소장
파란색, 빨간색, 금색이 어우러진 접시는 긴란데(金alt手) 양식으로 만들어진 수염 정리용 접시다. 접시의 파인 반원 홈을 남성 턱 아래에 대고 수염을 다듬는 용도로 쓰였으며 대표적인 유럽 수출용 자기 중 하나이다.
백자 청화 사슴무늬 접시 白磁靑畫鹿文alt匙
중국 명 1610~1630년 징더전요, 높이 8.2㎝, 입지름 51㎝,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소장
17세기 유행했던 크락양식의 청화백자 접시다. 접시 가운데에는 사슴과 소나무가 있는 풍경을 배치하고 둘레는 길조를 상징하는 각종 무늬로 장식했다.
샐러드용 체와 받침
영국 1725~1750년 웨지우드, 높이 19㎝, 지름 24.4㎝(체), 30.3㎝(받침),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소장
영국의 대표적 도자기 브랜드인 웨지우드Wedgwood의 ‘크림웨어’로 도기보다 대체로 강하지만 자기보다는 강도가 약한 편이다. 1760년대 영국 샤를로트Charlotte 왕비에게 선보여 퀸즈웨어Queen’s ware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 체와 받침은 부드러운 크림 빛깔에 ‘8’자를 이은 듯한 규칙적인 구멍과 배치 등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며 과일이나 채소를 씻은 후 담는 물 빠짐용 그릇이다.
관음보살상 白磁觀音菩薩像
중국 청 1675~1700년 더화요(德化窯), 높이 45㎝,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소장
중국 푸젠성 더화요의 인물 조각상들은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중국 조각상 그대로 수출되었지만 차츰 유럽 취향이 반영된 조각상이 만들어졌는데 이 조각상은 온몸에 하얀 천을 두르고 아이를 안고 있는 ‘백의관음보살’을 모티브로 유럽인에게는 마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커피포트 注子
일본 에도 1730~1750년, 높이 39㎝ 지름 7.7㎝,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소장
17세기 후반 커피가 유럽에 소개되고 애용되면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의 금속 주전자를 모방한 커피포트를 일본에 주문하였다. 이 커피포트는 인형 모양의 다리가 3개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학, 소나무, 대나무, 매화가 그려져 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삼손Samson 제작소에서 복제하기도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BF1224A73B9F37D)
자료 더보기
![](https://t1.daumcdn.net/cfile/cafe/2066A3444F114C0D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