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드레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댓글 작성 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다해주세요.
아라고른 2세는 어린 시절을 요정 엘론드가 다스리는 리븐델에서 보냈긔.
아라고른 2세는 두네다인 순찰자 지도자의 혈통이었는데, 본래 두네다인 순찰자들의 지도자는 어린 시절을 리븐델에서 보내는 전통이 있기도 했거니와 그의 아버지 아라소른이 오크들에게 살해당한 뒤 사우론의 손가락을 자르고 반지를 탈취했던 이실두르의 후손이며 아르노르와 곤도르의 가장 정통성 있는 왕위계승자인 아라고른 2세의 안위를 걱정했던 어머니 길라인이 그를 리븐델에서 숨겨 키우고자 결심했기 때문이었긔.
아라고른을 보호하기 위해 길라인과 엘론드는 세간에는 물론 아라고른 본인에게까지 그의 혈통과 진짜 이름을 숨긴 채 희망을 뜻하는 요정어인 '에스텔'이라는 이름으로 아라고른 2세를 키웠고, 아라고른은 어머니 길라인의 따듯한 사랑과 엘론드의 보살핌 아래 자신을 그저 에스텔인 줄 안 채 자라게 되었긔. 그러나 아라고른이 20세가 되었을 때,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그를 본 엘론드는 마침내 아라고른이 그의 고귀한 혈통에 걸맞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음을 깨달아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진짜 혈통과 이름을 알려주었긔.
영화에서의 아라고른은 성장형 인물로서, 끝내 반지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반지를 파괴하지 못함으로써 이 사달을 만든 이실두르의 후손인 자신이 과연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지 많은 고민을 하지만, 원작에서의 아라고른은 완성형 인물로서 자신의 혈통에 대한 비밀을 듣고 고뇌하기 보다는 매우 뿌듯해하며 기뻐했다긔. 그래서 다음 날 그는 기쁜 마음으로 베렌과 루시엔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리븐델을 산책하고 있었긔.
루시엔은 아르웬의 고조 할머니로(고조 할머니라고 하면 그닥 오래 전의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요정들은 영생을 살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까마득히 옛날에 존재하며 전설처럼 느껴지는 인물이었긔. 참고로 아르웬의 나이가 2700살이 넘긔), 당대의 요정들 중 가장 아름다운 요정이었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반지의 제왕 세계관에서 일종의 하급신인 마이아였으므로 혈통 역시 인간도 요정도 감히 비빌 수 없는 매우 고귀한 혈통의 소유자였긔.
고귀하고 아름다운 요정 루시엔은 인간 영웅 베렌과 사랑에 빠졌는데, 사랑하는 딸 루시엔을 인간 남자와 결혼시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싱골의 반대와 여러 역경 속에서도 두 사람은 마침내 사랑을 이루어 외아들 디고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긔. 그리고 베렌이 죽던 날, 루시엔은 요정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필멸자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베렌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였긔. 요정은 본래 죽으면 그 영혼이 발리노르로 날아가게 되어있지만, 루시엔은 필멸자의 삶을 선택했기에 '진정한 죽음'을 맞아 그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하긔.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도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언급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fO9vymA8-vo
Tinúviel elvanui
Tinúviel the elven-fair,
고운 요정 나이팅게일이여
Elleth alfirin edhelhael
Immortal maiden elven-wise,
불멸의 요정 처녀이시여
O hon ring finnil fuinui
About him cast her shadowy hair
그녀는 베렌에게 그림자와도 같은 머리칼과
A renc gelebrin thiliol
And arms like silver glimmering.
은은히 빛나는 은빛 양팔을 드리웠네
"그녀는 누구죠? 당신이 노래하는..."
"루시엔. 필멸자 베렌을 사랑했던 엘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요?"
"...죽었어."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초반에 호빗들을 데리고 리븐델로 향하던 아라고른이 밤중에 루시엔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긔. 여기에서 아라고른은 필멸자 베렌과 영생을 사는 엘프 루시엔의 모습에서 자신과 아르웬의 비극적인 운명을 투영해 슬픈 마음으로 부르긔ㅠㅠ
아무튼 원작으로 돌아와서, 리븐델을 산책하던 아라고른의 눈 앞에 은청색 망토를 두르고 요정 나라의 황혼녘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으니... 그녀는 당대 요정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던, 마치 밤하늘의 반짝이는 저녁별과도 같았던 아르웬이었긔.
아라고른은 바로 조금 전까지 넬도레스의 숲에서 루시엔과 베렌이 만나는 내용이 담긴 루시엔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벤델에 있는 바로 그의 눈앞에 은청색 망토를 두르고 요정 나라의 황혼녘만큼이나 아름다운 루시엔이 거닐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검은머리를 나부끼며 이마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보석을 달고 있었다.
아라고른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으나, 그녀가 그대로 사라져 두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티누비엘, 티누비엘!>하고 불러보았다. 그것은 저 옛날 고시대 때 베렌이 불렀던 그 이름이었다.
그러자 여인은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시죠? 그리고 어째서 그런 이름으로 날 부르는 거죠?"
그 말에 아라고른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그대가 내가 노래하던 루시엔 티누비엘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그분이 아니라 해도 걷는 모습이 그분과 너무나 비슷하군요."
"많은 이들이 그런 말을 하지요."
그녀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에요. 어쩌면 내 운명이 그분과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난 지금까지 에스텔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라소른의 아들이며 이실두르의 계승자이고 두네다인의 영주로서, 본명은 아라고른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 순간 그는 그토록 기쁨을 주었던 자신의 고귀한 혈통이 이제 무가치하고, 위엄 있고 아름다운 그녀에 비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명랑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린 먼 친척인 셈이군요. 전 엘론드의 딸 아르웬이고 운도미엘이라고도 불리니까 말이에요."
- 반지의 제왕,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한기찬 옮김, 2001, 황금가지 출판-
루시엔의 미모 유전자가 엄청나게 막강했던 건지 그녀의 자손들은 하나가팅 외모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는데, 그중에서도 고손녀인 아르웬이 루시엔을 가장 많이 닮았었다 하니, 아르웬의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시죠? 이런 아르웬을 본 스무살의 젊은 아라고른이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을 거긔. 위의 원작을 발췌문을 보면 첫눈에 반한 아르웬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내가 이실두르의 후손이고 두네다인의 영주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나 이렇게 잘난 남자요~하고 자랑하다가 급 현타 맞는 젊은 시절의 아라고른이 좀 귀엽기도 하지 않긔?ㅋㅋㅋ
아무튼 엘론드의 세 자식들 중 막내딸이자 고명딸인 아르웬은 외할머니 갈라드리엘이 있는 로스로리엔에서 지내다가 잠시 아버지와 오빠들을 보기 위해 리븐델에 들린 참이었는데, 이날의 첫만남으로 두 사람은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긔.
그러나 아르웬의 아버지인 엘론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했긔. 아라고른이 아무리 고귀하다한들 그는 한낱 인간이고 아르웬은 마이아의 혈통을 이어 받은 엘프였으니 두 사람의 고귀함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니까요. 아라고른의 어머니 길라인 역시 요정과 인간이 결혼하는 건 안 되는 일이라며 아들을 막아섰긔.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혈통의 고귀함 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라고른이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인 반면, 아르웬은 영생을 사는 요정이라는 것이었긔. 아라고른이 장수의 축복을 받은 두네다인이기는 했지만, 요정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의 백년, 이백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긔. 아르웬이 아라고른과 결혼하다면, 찰나와도 같은 잠깐의 행복을 누린 뒤 그 후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영원히 홀로 고독하게 지내야 할 운명이었던 거긔.
하지만 이미 불붙은 마음이 부모들이 뜯어말린다한들 꺼지겠냐긔... 아르웬은 두 사람 앞에 닥쳐올 비극적인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아라고른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고, 아라고른 역시 리븐델을 떠나 두네다인 순찰자로 활동하면서도 아르웬을 잊지 못했기에 훗날 로스로리엔에서 그녀를 만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긔.
그가 황금빛 꽃이 만발한 카라스 갈라돈의 나무숲 아래를 지나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을 때 그녀는 마음을 정했으며, 그와 더불어 그녀의 운명도 정해졌다.
그들은 아라고른이 떠날 때가지 함께 로스로리엔의 숲 속을 거닐며 한 계절을 보냈다. 하짓날 저녁 아라소른의 아들 아라고른과 엘론드의 딸 아르웬은 로스로리엔 한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언덕 케린 암로스에 올라 엘라노르와 니프레딜이 핀 풀밭을 맨발로 걸었다. 그들은 그 언덕 위에서 동쪽의 어둠과 서쪽의 황혼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으로 결혼을 서약했다.
아르웬이 말했다.
"저 암흑은 어둡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요. 당신, 에스텔이 그 어둠을 깨뜨릴 위대한 용사 중 한 분이니까요."
그러자 아라고른이 대꾸했다.
"아! 난 알 수가 없구려. 앞일이 어떨지 예측할 수가 없소. 하지만 그대의 희망에서 희망을 얻을 것이오. 난 저 암흑을 철저히 파괴할 거요. 하지만 아르웬, 저 황혼도 나를 위한 것은 아니오. 난 언젠가 죽어야 할 운명이고, 저녁별인 그대가 나를 따른다면 당신도 저 황혼을 단념해야 할 것이오."
그 말에 그녀는 하얀 나무처럼 서쪽을 바라보며 잠자코 서 있더니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두나단, 전 당신을 따르고 황혼을 단념하겠어요. 하지만 저곳은 우리 종족의 땅이며 우리 모든 친척들의 오랜 고향이 있는 곳이랍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 반지의 제왕,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한기찬 옮김, 2001, 황금가지 출판-
https://www.youtube.com/watch?v=p7tDQWGzEtc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나요?"
"난 내가 꿈을 꾸는 줄 알았소."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죠. 당신은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군요.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 기억하나요?"
"당신은 기꺼이 내게 서약하겠다고 했지. 당신의 종족이 가지고 있는 영생을 버리고..."
"아직도 마찬가지에요. 혼자서 이 세계의 모든 시대와 직면하느니, 차라리 당신과 함께 일생을 나누고 싶어요. 난 인간의 삶을 택했어요."
"이걸 내게 줄 수는 없소."
"내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겠어요. 내 마음처럼..."
반지의 제왕 실사 영화 시리즈에서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아라고른이 반지 원정대와 함께 떠나기 전날, 두 사람이 리븐델의 어두운 밤, 아름답고 몽환적인 호숫가 다리 위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오긔..
이렇듯 아라고른과 아르웬의 사랑은 열렬히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엘론드는 소중한 자신의 딸이 불행할 운명을 맞이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긔. 더군다나 당시에는 중간계를 잠식하는 악의 기운을 피해 모든 요정들이 발리노르로 떠나고 있던 때였긔. 아르웬이 끝까지 아라고른과 함께 남기를 고집한다면, 그녀는 가족들과 영영 이별한 채 아라고른이 죽은 뒤 슬픔과 고독 속에서 영생을 살아야 할 처지였긔. 때문에 아라고른에게 그녀를 단념할 것을 종용하고, 아라고른은 사랑하는 아르웬이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려 하긔.
https://www.youtube.com/watch?v=_i3Ax4YJySg&t=95s
그리고 엘론드는 아르웬이 아라고른을 향한 마음을 확실히 단념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그녀가 맞이할 불행한 미래를 보여주었긔. 두네다인인 아라고른이 아무리 장수를 한다한들, 영생을 사는 요정들에게 인간의 백년, 이백년은 그저 찰나에 불과할 뿐. 아르웬이 아라고른과 결혼한다 한들, 그와의 사랑은 찰나에 불과하며, 아라고른이 죽고나면 아르웬은 아주 오랜 시간을, 아라고른의 죽음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위대한 영웅들의 서사시가 아득히 먼 옛날의 기억이 될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슬픔과 회환 속에서 홀로 시들어가야 할 운명이었던 거긔.
결국 아르웬은 자신의 뜻을 꺾고 아버지 엘론드의 뜻에 따라 발리노르로 가는 길에 오르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T5y99rpk8to
발리노르로 향하던 중 그녀는 환상, 혹은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었긔. 그녀가 본 것은 햇살이 환히 비추는 왕궁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아라고른이 한 아이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이었긔. 바로 아라고른과 그녀의 아들 엘다리온의 모습이었죠.
저는 영화보다 이 장면에서 아르웬이 눈물흘릴 때 항상 같이 눈물 흘리게 되더라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게 될 것이 분명한 내 아이가 함께 행복한 미래가 있다면 어느 누가 그 미래를 외면할 수 있겠긔? 내가 없다면 내 아이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데요.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그 아름다운 미래를 이미 봐버렸는데 어느 누가 그 미래를 외면할 수 있겠긔? 그 결말이 비극인 것을 안다 할지라도,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겠냐긔...ㅠㅠ
결국 아르웬은 말을 돌려 리븐델로 돌아가고, 엘론드는 더 이상 그녀의 뜻을 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긔.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반지전쟁이 서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뒤, 아라고른 2세는 곤도르-아르노르 통합 왕국의 왕이 되긔. 그리고 아르웬은 그와 결혼하여 통합 왕국의 왕비가 되었긔. 이 날은 아르웬에게 있어 기쁜 날이자 슬픈 날이었을 거긔. 사랑하는 아라고른과의 결실을 맺는 날이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가족들이 발리노르로 떠나면서 가족들과 영영 이별해야하는 날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아르웬은 통합 왕국을 최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왕의 왕비로서, 아라고른과 문자 그대로 백년해로하며 잘 살았긔. 두 사람 사이에서는 훗날 아라고른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게 되는 아들 엘다리온과 여러 딸이 태어났고, 아라고른은 120년동안 왕국을 통치하며 왕국의 번영을 이루었다긔.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잠시였고, 결국 두 사람의 시간에도 끝이 오고야 말았긔.
그녀는 요정족과 인간족의 왕비로서 120년 동안 영광과 축복 속에서 아라고른과 함께 살았다. 이윽고 아라고른은 노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비록 여느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긴 것이었지만 그 삶도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아라고른은 아르웬을 향해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 저녁별이시여, 마침내 내 삶도 저물고 있소. 우리가 만나 삶을 누렸으니 이제 갚을 때가 된 거요."
아르웬은 그의 의중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왕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당신의 말에 의지해 사는 백성들 떠나시겠다는 건가요?"
"때가 되기 전이 아니오. 왜냐하면 지금 가지 않는다면 조만간 억지로 가야 할 테니까 말이오. 게다가 우리의 아들 엘다리온도 이제 왕권을 이어받을 만큼 성장했소."
- 반지의 제왕,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한기찬 옮김, 2001, 황금가지 출판-
장수의 축복을 받은 두네다인들에게는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있었긔. 아라고른은 아들이 장성하자 왕위를 물러주고 그만 떠나야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긔. 아르웬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퍼했긔. 그러나 아라고른은 먼 옛날 반지의 유혹을 이겨냈던 그때처럼, 삶에 대한 집착을 이겨내고 떠나야할 때 떠나기로 결심했긔. 아라고른은 라스 디넨에 마련된 자신의 묘소에 스스로 누운 뒤,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아르웬과 단 둘이 남았긔. 그리고 홀로 남을 그녀를 걱정해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발리노르로 떠날 것을 제안했긔. 그러나 아르웬은 자신의 선택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긔.
"난 그대에게 아무런 위안의 말도 하지 않겠소. 이 세상에 이런 고통에 위안이 될 말은 없을 테니까 말이오. 이제 그대 앞에는 가장 큰 선택이 남아 있소. 지난 일을 후회하고 항구로 가서 우리가 함께 보낸 날들의 추억을 안고(그 추억은 영원하겠지만 한낱 기억에 불과할 거요) 서쪽으로 떠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운명을 달게 감수할 것인지 말이오"
"그렇지 않아요, 왕이여, 이미 오래 전에 선택이 끝난걸요. 이제 나를 태워 갈 배도 없으니 내가 원하든 않든 인간의 운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상실감과 침묵을 말이에요. 하지만 누메노르의 왕이시여, 전 지금까지 당신의 종족과 그 몰락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들을 어리석은 바보라고 경멸했으나 이제 동정하게 되었어요. 엘다르족의 말대로 이것이 정말 절대자가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이라면 실로 쓰라린 선물이니 말이에요."
- 반지의 제왕,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한기찬 옮김, 2001, 황금가지 출판-
저는 아르웬의 이 말이 항상 참 슬프긔. 영생을 사는 요정의 입장에서는 필멸의 삶을 사는 인간의 집착과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까지 하는 욕심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긔. 그러나 사랑하는 아라고른과 요정의 입장에서는 찰나와도 같은 순간을 누린 뒤, 그를 떠나보낼 때가 되자 아르웬은 마침내 인간의 삶을 이해하게 된 것 같긔. 인간이란 언젠가는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것들과 손을 놓아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것을 더 안타깝게 여기고, 더 사랑하고, 더 애틋해하고, 더 손에 쥐고 싶어하고, 더 욕심내게 되고, 더 집착하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인간의 운명이라는 게 참 슬프긔...ㅠㅠ
"그런 것 같구려. 그러나 오래 전에 암흑과 반지를 단념한 우리들이 이런 시험에 넘어가서는 안 되오. 우린 비록 슬픔 속에서 헤어지는 것이지만 결코 절망은 아니오. 보시오! 우린 이 세상에 영원토록 묶여 있을 수는 없소. 그리고 그 너머에 추억 이상의 것이 있을 거요. 잘 있으시오!"
"에스텔, 에스텔!"
그녀가 울부짖었다.
왕의 묘에서 나온 아르웬의 눈에서는 빛이 사라졌다. 백성들의 눈에 그녀는 별 하나 뜨지 않는 깊은 겨울의 해질녘처럼 차갑고 늙어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엘다리온과 딸들,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고는 미나스 티리스의 도성을 떠나 로리엔 땅에 들어가 겨울이 올 때까지 시들어가는 나무숲 속에서 홀로 살았다. 갈라드리엘과 켈레보른이 떠난 그 땅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침내 말로른의 잎이 지고 봄이 오지 않자 그녀는 케린 암로스 위에 누웠다. 그녀의 푸른 무덤은 세상이 변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으며 후세인들은 그녀의 삶을 망각했고 바다 동쪽에서는 엘라노르와 니프레딜이 두번 다시 꽃피지 않았다.
- 반지의 제왕,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한기찬 옮김, 2001, 황금가지 출판-
결국 아라고른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여 아르웬의 곁을 떠났긔. 찰나와도 같은 행복이 끝난 아르웬의 눈에는 빛이 사라지고 말았긔. 아라고른이 사망한 뒤, 아르웬은 자식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요정들이 모두 떠나 아무도 없게 된 로스로리엔으로 향했긔. 갈라드리엘의 권능이 사라져 더이상 봄이 찾아오지 않는 고요한 숲 속을 거닐던 아르웬은 아라고른과 그녀가 처음 만난 장소이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했던 케린 암로스에 올라 몸을 뉘였고, 그곳에서 영면에 들었긔. 두 사람의 위대한 사랑은 그렇게 끝을 맞이하게 되었긔.
반지의 제왕은 프로도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삼촌 빌보에게서 물려 받은 레드북에 이어서 썼고, 그 레드북을 톨킨이 번역해서 책으로 출판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동화처럼 '악당을 물리치고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긔. 그 대신 반지 전쟁 이후 인물들의 생몰년도나 주요 행적들을 연표로 정리해두고 있다긔. 반지 전쟁에 참전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은 아라고른이 죽기 전에 먼저 죽거나, 여러 이유로 중간계를 떠났긔. 그리고 아라고른이 죽은 뒤, 레골라스는 배를 타고 안두인 강을 따라 바다로 항해를 떠났긔. 이 항해에는 김리가 함께 동행했다고 하긔. 반지의 제왕 연표에는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뒤 이렇게 쓰고 있긔.
그 배를 마지막으로 중원에서 맺어졌던 반지의 우정도 막을 내렸다.
여기까지 읽으면 항상 뭔가 엄청나게 슬프고 씁쓸한 기분을 느끼긔. 독자들 혹은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그 수많은 전쟁과 영웅들의 일대기가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막을 내린다는 게 마음 한 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너무너무 슬프더라긔ㅠ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건 당연한 건데 받아들이기 참 힘들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숙부가 전에 올렸던 글인데 오류 있던 부분 수정해서 재업하긔!
- 본문에 나오는 원문 출저: 반지의 제왕, J. R. R. 톨킨, 한기찬 롬김, 황금가지 출판, 2001년 출간
- 중간에 나오는 베렌과 루시엔의 노래 가사 번역 출저: 나무위키
- 자료 참조: 반지의 제왕 실사 영화 시리즈, tolkiengateway.net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발리노르라는 땅 자체가 영생의 힘이 있는 건 아니라서 요정처럼 영생을 사는 존재가 아닌 호빗이나 난쟁이들은 발리노르에 갔더라도 그곳에서 살다 생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거긔ㅠㅠ 발리노르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건 반지의 제왕 세계관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발라와 마이아들 그리고 요정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었긔(발리노르라는 말 자체도 요정어로 발라의 땅이라는 뜻이긔). 그래서 프로도도 반지를 운반하느라 얻은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특별한 허락을 얻어 발리노르로 가게 된 거긔.
이 발리노르에는 죽음을 관장하는 발라 만도스(본래 이름은 나모)의 거처인 만도스의 궁정이라는 곳이 있는데, 요정들이 죽음을 맞이하면 그 영혼이 만도스의 궁정으로 와 머물게 되고,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부활하며 영생을 이어가게 되어있긔(큰 죄를 지어 부활이 금지되거나 본인이 거부한 경우가 아니라면요). 반면 필멸자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면 그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발라들도 알 수 없구요. 아르웬은 필멸자의 삶을 선택했으므로 그 영혼도 만도스의 궁정으로 가지 못하고 루시엔처럼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거긔ㅠㅠ
어릴때 읽었을때는 아라곤의 마지막 말이 너무 차갑다고 생각했어요 별 위로의 내용도 없구요 ㅠㅠ 지금 다시 생각하면 아라곤은 혼자 영겁의 세월동안 홀로 남을 아르웸에게 할 말을 차마 찾을수 없었던 거였긔 ㅠㅜ
숙부님 코멘트가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데 항상 큰 도움이 돼요 감사하긔
예전에 너무 재밌게 봤는데 정성스럽게 정리해주셔서 기억이 새록새록 나긔 감사해요!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후대에는 설화처럼 전해진다고 생각하면 아련하고 슬프고.. 그 처절하고 뜨거웠던 반지 원정이 쓸쓸한 낙엽같아서 마음이 시리긔ㅠㅠ 모든 게 한낱이라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과 사랑, 격정의 순간들이 갖는 의미가 있겠지요. 그리고 숙부님 좋은 게시물 감사하긔!! 제가 원작을 읽다 말아서 ㅋㅋ 가끔 반제 생각나면 검색해서 보곤 하는데 진짜 재밌고 유익해요
감사해요ㅜㅜㅜㅜ
참 아름답지만 덧없네요 ㅜㅜ 아르웬도 죽은 거겠죠? 뭔가 막연히 둘이 같이 늙어서 한 날 한 시에 같이 저세상 가는 걸 상상했는데 넘 슬프긔
아ㅜㅜ너무절절하긔ㅠㅠ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영화만 봤는데 이렇게 세세한 내용 감사하긔 정성이 깊은 글이었긔
흐엉ㅜㅜㅜ아르웬이 미래보는 장면 진짜 젤 조아하냄ㅜㅜㅜ흑흑 애기 목걸이ㅜㅜㅜ흑흑
반지의제왕2편에서 아르웬아버지가 아르웬에게 아라곤이죽고나면 나혼자남게될거리며 저 아라곤장례식장면과 그 뒤에 베일을쓰고 계절이바뀌거 또 바뀌도록 오래도록서있는아르웬의모습이넘 쓸쓸하고슬퍼서기억에남더라긔 ㅜ
제 인생작...ㅠㅠ 숙부님 글로 다시 자세하게 알게되서 넘 좋아요ㅠㅠ 늘 정독하고있습니다 감사해요ㅠㅠㅠ
소드님
정성스러운 글 정말 감사하긔
영화는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먼 미래에 이별이라 실감이 안났는데
글만 읽어도 헛헛하네요
헉 아라곤과 아르웬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있을거 겉아 디테일한게 너무 궁금했는데 정리해주셔서 감사하긔!!
흑흑 ㅠㅠ 넘 예쁘고 슬프긔 진짜 어렸을 때 첨 봤을 때는 그냥 아르웬.. 사랑.. 이런 느낌이 더 강했는데 여러번 복습하면서 보니 아르웬보다는 엘론드에 더 이입하게 되는 것 같긔 딸의 선택을 막는 아버지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이해 된달까요ㅠㅠ 딸의 행복이 여기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차선의 행복도 저기 있는 걸 아는데…. 어찌 안 막을 수 있겠어요 그치만 결국 딸이 저렇게 선택했을 때도 올게 왔다.. 하고 보내주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
책에서 반지 파괴되고 난후의 애기가 진실로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부분이라고 느꼈긔. 등장인물 하나하나 그 후의 삶들이 우리와 다를바가 없더라긔 어느정도 상실한채로 허망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거요 그래서 더 사랑하게 돼었긔
너무너무 재밋ㅆ긔
정말 잘읽었습니다. 정성스러운 게시글 감사해요
와 ㅠㅠㅠㅠ 너무 잘 정리해주셨긔
ㅠㅠ 설명읽으면서 보니 그때랑 또 다르게보이네요 ㅠㅠ 반지의제왕은 증말 레전드다 ㅠㅠ⭐️⭐️
ㅠㅠㅠㅠ글 정말정말 감사합니다ㅠㅠ
ㅠㅠ 원작이랑 영화 또 봐야겠긔ㅠㅠ 정성스러운 글 너무 감사하긔
넘 잘읽었어요...! 책 너무 길어서 엄두가 안났는데 둘의 이야기를 글로 쓴 묘사만 봐도 역시 책만한 영화는 없나봐요
정말 잘 봤어용
와 영화 다시 보고 싶네요. 요정의 시간 속에서 찰나와 같은 사랑이라니 참 속절 없어요…
정성스러운 글 정말 감사해요ㅠㅠㅠ
감사합니다
슬프네여ㅠㅠㅠㅠ정성스러운 글 감사합니다!!
너무 잘봤긔!!! 책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너무 마음아프긔ㅠㅠㅠㅠ 이게 비교할수는 없지만 인간으로 치면 내 수명이 백년인데 1년동안만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하고남은 삶은 그걸 그리워해야하는거아니긔? ㅠ
영화 너무 재밌었긔 근데 소설은 왠지 항상 읽다가 중간에 포기ㅠ 문체의 문제인가..아라곤은 하오체 쓰고 아르웬은 존대하는 것도 거슬리고
2222 번역하는 사람들이 문제긔. 아르웬이 2000살 넘게 연상이고 지위도 훨씬 높은데 아르웬이 존대라니 말이 안되긔 ㅋㅋ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 번역해놓은거 보면 부부 사이에 꼭 아내가 남편한테 존댓말 쓰는 걸로 해놨더라긔.
ㅠㅠㅠㅠㅠㅠㅠㅠ
넘 재밌긔. 원작소설은 읽어볼 엄두가 안나던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화 보면서도 트릴로지 통틀어 이장면이 제일 슬펐는데 님 글 읽으니까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여 넘 감동적인 비극(?)이라 여운이 더 남자나ㅋㅋㅋ
정성스런 글 감사하긔!
영화도 잘 모르는데 재밌긔..!
글 너무 좋긔... ㅠㅠ책 다읽고 넘 맘이 아렸었긔...
글 잘 읽었긔 반지의제왕 다시 보고싶네요!
아르웬 운도미엘 ㅠㅠ 어릴때도 최애였긔..ㅠㅠ
ㅠㅠ 잘읽었어용…!감사하긔
톨킨할아버지 비석에 자신은 Beren, 아내는 Luthien 이라고 써둔거 제기준 인간 최고 로맨틱맨이쟈냐ㅠㅠㅠㅠㅠㅠ 이 세계관 제작자니까 셀프 베렌 한거는 흐린눈 해드리곸ㅋㅋㅋㅋ 세계관 최강짱짱퀸미녀 러브스토리로 설정한거 사실은 내 아내임 이런 느낌이요ㅋㅋㅋㅋ
반지의제왕은 정말 최고에요....게시물 넘 감사해요!
반지의 제왕 복습하다가 여기까지 왔긔 정성스러운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