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남안동 톨게이트 쪽으로 가던 중 말로만 들었던, TV 뉴스로만 보았던 역주행 차를 접하고 아찔했습니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구나 싶은 마음에 지금도 움찔하게 됩니다. 남안동 톨게이트로 진입하는 풍일로는 그리 복잡한 길이 아닙니다. 편도 3차선으로, 중앙분리대 없이 쭉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건너편 1차선에서 맞은편 차선으로 역주행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없는 구조지만, 누가 봐도 확연하게 구분이 되어 있어 맨정신으로, 판단력이 있는 운전자가 역주행할 구조는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그런 일을 접하자 순간적으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차선을 바로 2차선으로 바꾸어 사고 위험을 일단 피하고 차근차근 보니 내가 잘못 들어간 게 아니고, 전적으로 그 차의 역주행이 확실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미러로 보니 그 차도 제 차를 보고는 아차 싶었는지, 좀 지나서 유턴하더군요. 역주행에도 불구,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사고도 없었음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운전을 30여 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사고도 접하고, 사고당사자가 되어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한 번도 없었음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운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운전임은 강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안전운전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상식 중의 기초 상식입니다. 신호위반 금지, 안전벨트 착용, 안전거리 확보, 과속 금지, 졸음운전 금지, 음주 운전 금지, 휴대폰 사용 금지, 전방 주시, 차선 준수 등이 기본입니다. 방어운전도 사고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안전거리 확보, 전방 주시, 룸미러/사이드미러 수시 확인, 횡단보도 인근 무조건 서행, 양보 운전 등... 제가 30년 이상 운전하면서도 인명사고 한번 없었던 건 안전운전 수칙을 잘 지키고 방어운전을 습관화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차량 운전도 안전운전이 기본일진대, 국가 경영은 오죽하겠습니까만, 총선을 앞둔 나라 꼴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뉴스와 대담 프로그램을 총선 때까지 끊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 정도입니다. 말의 유희, 행동의 과잉 정도는 과속에, 난폭 운전에, 요란한 경적, 역주행, 잘못 떠넘기고 큰소리치기까지 하나하나가 난맥상입니다. 남안동에서의 그 역주행 운전자는 그나마 제 차를 보고는 자기 잘못을 알고 유턴했지만, 요즘 한국의 정치꾼들 보면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어 확증편향만 강화되고, 재생산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99.9%의 운전자가 안전운전, 방어운전을 염두에 두고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답시고 앞에 서려는 자들이 99.9%의 운전 습관을 잘 보고, 그들의 운전 방식에서 국가경영에 대한 기본 정신을 다시 세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너무나 간절합니다. 기대난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리되지 않는다면 나라가 거덜 날 판국이니, 다시 한번 밀알 같은 기대의 마음을 소망으로 키워봅니다. 모든 위정자들이 내 안에 있는 적, ‘나’를 극복하면 세상에 안전이, 평화가 오리라는 생각에 오늘은 칭기즈 칸의 말씀을 모셔 왔습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인간 세계와 달리 자연은 뻗대지 않고,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대구수목원이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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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적(모셔온 글)==========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어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 칸이 되었다.
-----칭기즈 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