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의 신앙고백 - 고훈 목사 (안산제일교회)
세겜의 신앙고백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여호수아 24장 21-28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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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눈에 보기>
1. 섬김의 고백입니다
세겜의 고백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고백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하기 위해서다.
2. 감사의 고백입니다
세겜의 고백은 나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평생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한다.
3. 복종의 고백입니다
세겜의 고백은 절대 복종의 고백이다.
여호수아의 위대한 점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복종의 고백을 하게 한 것이다.
<핵심 메시지>
세겜의 고백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절대 복종과 감사의 고백이다.
<청중의 적용 포인트>
‘나는 어떤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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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110세의 나이로 자기 생애를 끝내면서 세겜으로 이스라엘 12지파를 한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게 한 후 중요한 고백을 하게 합니다.
여호수아가 “우리 민족은 이집트에서 430년 광야에서 40년 가나안에서 정착하여 살아오면서 우리 주변에 많은 우상과 신들을 보아왔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많은 신들 속에서 어느 한 분을 선택해야 한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라고 하였더니 백성들도 하나같이 “우리도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라고 복창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맹세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겜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세겜의 고백은 어떤 것 입니까?
1. 섬김의 고백입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수 24:16)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라는 이 고백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온 민족에게 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나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재산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전부입니다. 이 하나님만이 전부이신 경지가 바로 오직이란 의미입니다.
♪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중국 오지에 선교하러 갔을 때 어느 집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이미 복음을 받았던 집이었는데 부처와 공자, 예수의 성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석가 성화에, 점심 때는 공자 성화에, 저녁 때는 예수 성화에 대고 복을 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도대체 무슨 교인이냐고 묻자,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몰라서 세 분을 모두 섬기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웃을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이단은 사단입니다. 교단이 정죄한 전도관, 통일교, 신천지 등 모든 이단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이단들에게 예수는 액세서리일 뿐입니다.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에도 신천지가 침투해서 80여 명의 기성교인이 넘어졌고 순천, 광주 등의 지방은 초비상사태입니다. 전도관과 구원파가 휩쓸고 가고, 통일교와 신천지가 휩쓸고 가는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라는 세겜의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의 교주가 말하는 144,000명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해보면, 2,000년 역사의 교회와 순교자와 기성교회는 모두 지옥을 갑니까? 하나님은 실패자이십니까?
또한 사주를 공부하는 수강생이 50만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타파한 미신이 다시 부활해 정신적으로 공허한 사람들을 우는 사자같이 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무엇이든, 모태신앙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중요합니다.
부족한 종도 병들어 가장 곤고하여 붙잡을 신앙이 필요할 때 불교, 전도관, 통일교에서 전도를 받아 한 주간씩 새신자 교육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곧 이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이끌고 계신 성령이 예수 믿기 전에도 나를 붙잡아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는 집입니다.
15년 전 10월 30일 한 이단은 예수가 재림한다며 교인들을 종말론으로 현혹하여 재산을 갈취한 뒤 자기 통장에 30억 불을 챙겼습니다. 경찰이 조사하면서 ‘당신은 신도들에게 돈은 휴지라고 가르쳤으면서 당신의 통장 안의 30억 불은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교주가 태연하게 ‘교인들 휴거시키고 그 뒤처리하려면 돈이 필요해서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다 속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멸망으로 가는 것이 이단입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가족도 마음대로 구성하지 못하고 법의 혜택도 받지 못하며, 자유도 없고 예배도 없고 행복도 없고 내일도 없는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430년동안 노예로 굳어진 그 민족을 하나님이 해방시키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3일 길을 가서 하나님께 예배케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 5:1).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목적은 그들을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으로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아낙 자손이 무섭다고 돌아가자고 한 백성들 60만 명은 다 죽고 그 후손들이 가나안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다시 우상과 잡신에게 현혹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원하는대로 하라고 하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기어코 하나님과 잡신과 비교해서 그들이 우수하면 택하고 그곳으로 가라고 말했고, 다 떠나가도 자신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2. 감사의 고백입니다
수도원의 성자들은 ‘감사’를 팔복 다음인 제9복이요 10계명 다음인 제11계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다른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 생명’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신앙인이고 감사가 없는 신앙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에너지는 감사에서 나옵니다.
처음 중학생이 됐을 때 무사히 학생이 되게 하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고백은 공부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결혼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다는 그 감격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고 일하게 합니다. 처음 직장을 잡았을 때 평생 보장에 대한 감사가 죽도록 충성하게 합니다. 축복과 응답과 은혜에 대한 감사가 평생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수 24:17-18)
애굽 430년 동안의 종살이에서 단번에 구원해주시고 광야에서 기적과 은혜로 원수와의 대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보호해주신 은혜를 입술로는 감사밖에 고백할 것이 없고 섬김으로 보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만일 ‘하나님께 “너무 합니다.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셨습니까?”라고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이미 저는 감사를 잃은 자로 저주받은 목사일 것입니다. 반석이 따로 있고 배반이 따로 있으며 배교가 따로 있겠습니까? 저주가 따로 있겠습니까? 감사를 잃을 때 모든 것을 갖고도 인생을 포기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차선을 주셨다면 차선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밀가루로, 비둘기, 참새, 어린양으로 우리 죄를 용서받을 때 그 제사를 소제로, 번제로, 화목제로, 속건제로, 속죄제로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다 주셨을 때 “너희도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하셨습니다(롬 12:2). 우리가 예배 한 번 드렸다고 해서 우리의 의무를 다 이행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 전체를 드려서, 모두를 드려서 예배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 32:10)
광야에서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셔서 하나님의 눈동자로 지켜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범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잠 7:2)
이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하고 멸시한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경멸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 2:30)
하나님이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셨기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내 힘으로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세겜의 고백입니다.
3. 복종의 고백입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수 24:20)
세겜의 신앙고백은 섬김과 감사와 복종의 고백입니다.
여호수아의 위대한 점은 오직 하나님만 복종한 것입니다. 또한 그의 위대한 리더십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복종케 한 고백을 하게 하고 임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복종은 바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복종은 바로 멸망입니다.
여호수아는 임종 앞에 있는 약한 종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흠잡을 수 없는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민족을 생각하는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도자의 지도력이 건강하지 못할 때는 공동체를 감독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도자가 비도덕적일 때에는 아무도 그를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지도자에게 내일이 없을 때 지도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꿈과 미래 없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임종을 앞둔 나약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흠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는 하늘의 내일을 보았고 백성의 축복의 내일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너희도 고백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서에서 말하는 복종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로 ‘의논 복종’이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 11:18) 그러니 의논해 보자는 복종입니다. 둘째로 ‘자원의 복종’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셋째, ‘선택의 복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게 보이면 하나님을 섬기고 이단들이 좋게 보이면 이단들을 섬겨라.” 여호수아의 복종은 타협이 되는 복종이 아닙니다. 의논 복종도 선택 복종도 아니고 절대 복종입니다.
예수는 사랑으로 복종하고 헌신하여 세계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복종하고 살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축복으로 바꾸어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세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최선이자 최고이고 모든 것이며 절대자이십니다. 섬김과 감사와 복종은 바로 이 절대자 하나님에게 바치는 신앙고백입니다.
고훈 목사
호남신학대학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선교학 석사
풀러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저서>
「교회성장을 위한 팀목회」, 「나의 자랑 십자가」, 시집 「소중한 외출」, 「비탈에 선 나무」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