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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07월16일(일요일) 서울 [연세대학교&봉원사&안산&고은산] 산행기
12:00~12:24 서울 지하철 구산역에서 6호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신촌역으로 이동한 후 신촌역 3번 출구로 이동 [24분 소요]
산 : 서울 [연세대학교&봉원사&안산&고은산]
[안산(鞍山)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으며 높이는 295.9 m로 나지막한 도심의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안현(鞍峴), 모래재, 추모련이라고 불렀고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해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렀으며 호랑이가 출몰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모아서 산을 넘어가야 했기에 모악산라고도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하륜(河崙)이 안산 남쪽을 도읍지로 추천하였다.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서울 시내 중심에서 홍제동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해발 340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대문독립공원, 이진아 도서관이 위치한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가 안산에 연결되어 최종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정상 부근에는 큰 바위들이 많고 서울시 중구 일대를 관망하는 전망이 뛰어나다. 태고종의 총본산인 봉원사(奉元寺)가 남쪽에 있으며 관음보살을 닮았다는 관음바위가 유명하다. 그리고 근래 새로운 모습으로 보수한 봉수대(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3호) 등을 볼 수 있다.
수맥이 풍부한 27개의 약수터가 있어 등산로가 발달하였다. 옥천약수, 백암약수, 맥천약수, 봉화약수 등이 유명하다. 서대문구청, 연희b지구 시민아파트, 연세대학교 기숙사, 봉원사 등에서도 등반할 수 있고, 주변에 백련산과 인왕산이 있어 함께 등반할 수 있다. 지하철 무악재역, 독립문역 쪽에서도 등반이 가능하다.]
산행코스 : [ 신촌역 3번 출구~연세대학교 정문~연세대학교 캠퍼스~연세대학교 동문~봉원사~안산 주능선~안산 봉수대~고은 초등학교~고은산 고은정~홍제역 4번 출구 ]
산행일 : 2023년 07월 16일(일요일)
날씨 : 구름이 낀 날씨 [서대문구 봉원동 최저기온 24도C, 26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총 산행시간 : 2시간 50분)
12:24~12:33 신촌역 3번 출구에서 산행 출발하여 연세대학교 정문으로 이동
12:33~12:37 이한열 동산으로 이동
12:37~12:46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기숙생 생활을 했던 핀슨관으로 이동
[핀슨관은 백양 삼거리의 서쪽 언덕에 1922년에 지어진 2층 영국식 주택이다. 봄날에는 건물 입구의 벚나무 한 그루가 곱게 꽃을 피운다. 핀슨관은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수많은 기숙생 중 한 사람으로 인해 주목 받는다.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다. 1941년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3년여를 연희전문학교에서 보냈다. 그는 기숙사에서 머물며 사색하고 고뇌하며 그 감성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우리가 애송하는 많은 시들이 이곳에서 지어졌다.
윤동주 시인이 사용했다는 핀슨관 2층의 205호는 윤동주 기념실이 되었다. 사진자료와 미공개 자필시 등을 전시한다. 핀슨관 앞에는 그의 시비도 섰다. 그의 필체대로 조각한 「서시(序詩)」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시인의 마음이다. 그 곁에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 소리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12:46~12:48 식당과 카페가 있는 건물인 어울샘(한경관)으로 이동
12:48~12:52 1920년에 세워진 연희전문학교 최초의 석조건물인 스팀슨관으로 이동
12:52~12:54 현재는 대학본부 건물로 총장실을 비롯한 중요 행정부서가 있는 언더우드관으로 이동
12:54~12:56 언더우드와 함께 한국에 온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아펜젤러관으로 이동
12:56~13:00 유억겸 기념관으로 이동
[유억겸(兪億兼, 1896년 10월 23일 ~ 1947년 11월 8일)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계몽운동가이자 법조인, 교육인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신간회, 흥업구락부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고, 연희전문학교 부교장, 조선체육회 회장등 역임하여 각종 사회활동을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후반에 변절하여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다.]
13:00~13:01 사회과학대학(연희관)으로 이동
13:01~13:02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성암관)으로 이동
13:02~13:13 연세대 동문으로 이동하여 연세대 탐방을 완료
[사적 제276호 언더우드관은 정방형의 평면에 5층 높이의 중앙탑이 두드러진다. 현재는 대학본부 건물로 총장실을 비롯한 중요 행정부서가 있다. 언더우드관은 아펜젤러관과 같이 지어졌으나 1925년 6월에 공사가 마무리됐다. 긴 공사 기간을 반영하듯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 사적 3동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건물의 좌우 끝에는 돌출형 창을 가진다. 백양로 등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건축의 설계는 재미 건축가 머피가 맡았다. 시간상으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은 사적 275호 스팀슨관이다. 1920년에 세워진 연희전문학교 최초의 석조건물이다. 교사 건립을 위해 2만 5천 달러를 기부한 스팀슨의 이름을 땄다. 1919년 4월에 착공해 1920년 8월 완공했다. 지상 2층 반지하층으로 이루어졌다. 스팀슨관만의 특징은 돌출한 형태의 정면 현관 입구다. 그 정수리 부근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하다. 맞은편의 사적 277호 아펜젤러관은 1921년 10월 착공해 1924년 가을 완공했다. 스팀슨관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졌다. 언더우드와 함께 온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를 기념한다. 배재학당을 세운 인물이다. 아펜젤러관은 스팀슨관과 유사한 형태이나 현관이 아닌 양쪽 끝이 돌출했다. 중앙 출입구에는 1층 높이의 페디먼트(입구 위의 삼각형 벽)를 설치했다. 현재는 사회복지대학원으로 쓰인다.]
13:13~13:24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번지에 있는 봉원사로 이동 (동문~봉원사 : 751m)
13:24~13:36 [대방~대웅전~삼천불전~칠성각~명부전~한글학회 창립한 곳~미륵전~극락전~만월전]의 동선으로 봉원사(奉元寺)를 탐방
[봉원사(奉元寺)는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이다. 889년(진성여왕 3)에 국사 도선(道詵)이 부유한 신도의 집을 희사받아 절을 창건하고 반야사(般若寺)라 하였다. 그 뒤 고려 공민왕 때에 보우(普愚)의 중건으로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1396년(태조 5)에는 이 절에 왕의 초상화를 모신 원당(願堂) 반야암을 지어 불교탄압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지인(智仁)이 크게 중창하였고, 1651년(효종 2)에 다시 법당과 동서에 있던 요사가 소실되었지만 극령(克齡)·휴암(休巖)·도암(道庵) 등이 중건하였다. 또, 선조·인조·영조 때에는 반야암을 수호하라는 왕명이 있어 조정의 극진한 보호를 받았다. 특히, 1748년(영조 24)에는 왕이 절을 지을 부지를 하사하여 찬즙(贊汁)·증암(增巖) 등이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고, 이듬해 영조는 봉원사라는 현판을 내렸으므로 이때부터 절 이름을 봉원사라 하였다.
1788년(정조 12)에는 팔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를 설치하여 승려의 승풍(僧風)을 지도, 단속하게 하였다. 구한말에는 개화파의 대표적 인물인 이동인은 이곳 봉원사에 주석하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교류함과 동시에 일본과 서양문물에 관한 지식을 쌓아갔으며 승려의 신분으로 수차례 일본을 내왕하며 당시의 선진문물을 소개하여 김옥균 등을 개화사상에 눈 뜨게 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고, 1884년(고종 21)에는 갑신정변의 주동인물이었던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박영효(朴泳孝) 등이 이동인(李東仁)의 지도 아래 개화파의 젊은이들을 깨우쳐 정변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서재필(徐載弼)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곳 봉원사를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1894년에는 주지 성곡(性谷)이 약사전을 신축하였으며, 1911년에는 다시 이보담(李寶潭)이 크게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가람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66년 최영월(崔映月)이 복원한 것이 많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극락전을 위시하여 범종각·명부전·납골당·산신각·칠성각·종무소·비각 등이 있다. 중요한 유물은 도선의 반야암 편액, 이광사(李匡師)의 대웅전 편액, 정도전(鄭道傳)의 명부전 편액, 친일 어용총리 이완용(李完用)의 명부전 주련(柱聯)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信力), 김정희(金正喜)의 대방(大房) 청련시경(靑蓮詩境)·산호벽루(珊瑚碧樓), 옹방강(翁方綱)의 대방(大房) 무량수각 편액, 장승업(張承業)의 신선도 십폭병풍 등이다.
대웅전 탱화와 단청은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다. 대웅전에 걸린 ‘大雄殿(대웅전)’ 현판 필자는 조선의 명필 원교 이광사(李匡師)이다.
법당 안 우측에 보관 중인 범종(梵鐘)은 충남 가야사에 있던 종인데 조선의 억불정책(抑佛政策)으로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을 때 타지 않았던 종을 옮겨온 것이다.
대웅전 마당 우측에 있는 3천불전은 1986년 주지 조일봉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건물허가 및 준비 과정을 거쳐 1988년 삼천불전의 복원불사가 시작되어 단일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의 건물로 9년 여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아랫마당에는 대방(大房)이 있는데 공덕리(지금의 마포구 염리동이고, 현재 서울디자인고교가 들어서 있음)에 있던 대원군의 별장 아소정(我笑亭) 건물을 옮겨 세운 건물이다. 대방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 "산호벽루(珊湖碧樓)"와 추사의 스승으로서 중국 청대 중기의 학자이자 서예가인 옹방강(翁方綱)의 행서체 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이 걸려 있다.
명부전(冥府殿)편액은 600년 전 조선개국의 일등공신 삼봉 정도전의 예서체 친필이다, 이성계가 부인 강씨 신덕왕후가 승하하자 명복을 빌기위해 정동에 현당인 흥천사를 세워 명부전을 짖고 삼봉에게 편액을 쓰도록 했다. 그런데 명부전 기둥에 쓴 주련(柱聯)은 구한말 조선(대한제국)의 총리대신으로,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이다. 조선의 시작과 끝을 이끈 두 인물의 글씨가 한 건물에 있는 셈이다.
극락전 건물은 봉원사의 꽃이다. 4군자 문향의 목각(木刻) 문살조각과 색 바랜 단청의 고즈넉한 우아함이 시공을 초월하는 극치미이다. 전면 문살대 위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및 각종 화초를 덧붙여 화려함을 장식했다.
명부전과 칠성각을 지나 미륵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한글학회 창립한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처음에는 국어연구학회로 출범한 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우리 민족의 문맹을 깨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이곳에서 창립총회를 연 곳이다. 창립 초기부터 우리 말과 글의 수호와 연구, 보급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에 목표를 두었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와 국어학 발전 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과 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봉원사 미륵전(彌勒殿)은 특이하게도 흰색의 현대식 건물이다. 미륵전은 사찰에서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이곳은 미륵불이나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는 미륵보살을 모시는데, 이는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내세 신앙의 발로 때문이다. 미륵전 내부에는 미륵불입상이 봉안돼 있으며 미륵불 옆으로는 윤장대(輪藏臺)가 마련되어 있다.
봉원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칠성각(七星閣)은 본래 영조의 적장손인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의 신위(神位)를 모신 원당(願堂) ‘의소제각(懿昭祭閣)’이었다. 의소세손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첫아들로, 정조와는 동복형인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고종 1년(1864)년 중건되면서 해당 전각은 ‘칠성각’이라 불렸다. 이와 같은 역사는 지난 2011년 봉원사 칠성각의 불단을 수리하면서 ‘의제소각’이라고 각인된 편액이 발견되면서 명확해졌다. 일제 강점기 많은 사찰에 있던 조선왕실 원당이 폐쇄되고 편액들이 훼철되었는데 칠성각 불단 아래 숨겨진 편액은 비록 훼손되었지만 남았다.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조선왕실의 원당에 대한 실마리를 풀 희소한 사례로 평가되며, ‘봉원사 칠성각’과 함께 2020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서울특별시 보호수 제67·69·70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령 약 500년의 괴목이 있고, 절 뒤에는 관세음보살의 영험담이 얽힌 관음바위가 있다. 매년 7, 8월에 봉원사는 아름다운 연꽃으로 장식된다. 100여 개의 대형 고무 물통에 흙과 물을 채워 연꽃을 피운다.
또한 봉원사는 불화와 단청의 최고 기능을 보유하고 있고, 불교음악 범패(梵唄)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영산재(靈山齋)가 열린다. 영산재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영산회상을 상징화한 의식절차다. 1973년 11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가곡780)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괘불을 걸어놓고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인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큰 행사다.]
13:36~13:44 안산 주능선으로 이동
13:44~13:56 안산(295.9m) 정상부에 있는 안산 봉수대로 이동
13:56~14:03 사진촬영
14:03~14:44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로 441 번지에 있는 고은 초등학교로 이동
14:44~14:52 고은산(113.7m)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이동
14:52~14:55 고은산 정상부에 있는 정자인 고은정으로 이동
14:55~14:58 사진촬영
14:58~15:14 서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4번 출구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아펜젤러관&스팀슨관&핀슨관]
위치도
서울 서대문구 [안산&고은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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